I see hearts in failed idol’s eyes RAW novel - Chapter 43
43. 시스템의 한계(1)
딩동댕동-
학교 종이 울리자마자 최대한 빨리 가방을 싸고, 교무실에 불려 간 놈이 오기 전에 혼자 숙소로 빠르게 튀었다. 일부러 회사에도 들르지 않았다. 애써 피했는데 갔다가 만나면 말짱 도루묵이니까. 귀찮은 일은 미연에 방지하는 쪽이 최고다.
“오, 서주혁! 타이밍 굿. 마침 딱 광고 시작했어. 와서 앉아.”
“…너 왜 여기 있냐?”
그런데 어째서 도이선이 나보다 먼저 숙소에 와 있는 거지? 지금은 현주인이랑 같이 연기 수업 받고 있어야 하는 시간인데. 심지어 이 자식은 작정이라도 한 건지 방 안에 테이블을 펴놓고 태블릿과 감자칩, 그리고 음료수 두 개까지 세팅을 끝마쳐 놓은 상태였다.
“왜에, 있으면 안 돼?”
“너 레슨은.”
“안 갔는데? 미뤘어. 너 오늘은 연습실 안 온다길래.”
“뭐? 난 연기 수업 안 듣는데 그게 무슨 상관이야!”
“응? 집 올 때 같이 못 가잖아. 밥도 따로 먹을 거고. 안 그래도 너 먼저 하교하는 바람에 혼자 쓸쓸하게 택시 타고 왔는데……”
“야, 이 미친 새끼야… 코앞인데 무슨 택시를… 아니, 그렇다고 레슨을 빠져?”
“화내지 마. 어차피 주인이도 갈 데 있다고 해서 선생님도 다음에 보자고 하셨단 말이야.”
이미 변명거리는 다 준비가 되어 있었는지 하나하나 받아치는 도이선의 행동이 기가 막혔다.
‘이 새끼는 매번 이러네, 진짜…….’
맨날 겪는 놈의 패턴이지만 여전히 이해되지 않았다. 하고 싶지도 않았고. 여기서 더 참견하면 귀찮게 굴 게 뻔하기 때문에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쪽에 가까웠다.
[10월 셋째 주 뮤직센터!]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새롭게 진행을 맡게 된 뮤직센터 MC 세주!] [특별 MC 은찬입니다~] [그럼 제 마음을 훔쳐 간 k-pop의 범인을 찾기 위한 수사, 지금부터 시작합니다!]“은찬 형, 오늘 더 잘생겼네~”
도이선은 얼굴에 철판을 100겹 정도는 깐 게 분명하다. 그렇지 않으면 팔짱 끼고 노려보는 내 앞에서 평안하게 감자칩이나 처먹을 수 없는 법이지. 그것도 말을 돌리면서까지.
“하… 너 이따 안무 좀 보러 가자. 이거 끝나고.”
“네네, 선생님.”
‘컴백이 코앞인데 속이 편한가, 저 새끼는.’
나는 안무 디테일 생각하느라 잠도 제대로 못 자는데.
게다가 지금 이것도 그냥 노는 게 아니다. 우리 팀 리더가 MC로 나오는 음악방송을 모니터링하는 거라고. 우리 그룹 이미지에 직결되는 스케줄이잖아.
“너 다른 생각 하지?”
“…별로.”
아무튼, 도이선의 말대로 태블릿 화면 속에서는 음악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매번 무대 클립만 몇 개씩 봤지, 생방송으로 챙겨 보는 건 오랜만이네.’
밝은 미소로 인사를 하는 은찬 형은 확실히 도이선의 말대로 오늘따라 더 빛이 났다.
원래도 잘생긴 얼굴이긴 했지만 요즘 더 물이 오른 느낌이라 해야 하나. 상대 MC인 구세주 씨 또한 유명세만큼 잘난 외모였으나 은찬 형도 전혀 뒤처지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둘이 좀 닮은 것 같네.’
인상이 선한 것도 그렇고, 눈이 크고 하얀 피부에 목이 가늘고 길다는 점에서 그랬다. 옷까지 맞춰놔서 남매 같은 느낌도 들었고.
‘이번 특별 MC도 무사히 끝마쳤으면 좋겠다.’
까놓고 성격이 잘 맞는 편은 아니어도 형을 형대로 존중할 수 있는 이유. 바로 매사 노력파라는 점이 맘에 들고 대단해 보여서다. 이번에도 입 닫는 걸 못 봤을 정도로 멘트를 하루 종일 중얼거리곤 했으니까.
거기다 데뷔 전과 달리 지금은 자잘한 곳에서까지 운이 따라줬다. MC 자리까지 떡하니 따 오는 걸 보니 확실히 남들보다 운이 좋다. 세상이 형을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대운이 터졌나?’
예전에는 뭘 손대는 족족 망하거나 순번이 밀리는 등 제3자인 내가 봐도 불운의 아이콘이라 남 일 같지 않았는데.
‘…나도 운이 좋았다면 지금쯤 그 그룹에서 활동하고 있었겠지.’
주혁이 짜증스럽게 좌우로 고개를 내저었다.
‘옛날 생각을 해서 뭐 하냐. 지금 우리 팀도 잘되고 있는데. 서주혁, 제발 과거에서 좀 벗어나자…….’
얼굴을 잔뜩 구기고 있는 주혁을 빤히 바라보던 이선이 주혁의 어깨 위에 손을 올렸다. 주혁은 그런 이선의 손을 탁 쳐내곤 다시금 화면 속 은찬에게 집중했다.
[오늘 저희 컨셉이 탐정이잖아요, 세주 씨!] [맞아요. 오늘 저희가 또 조사할 게 있었죠! 오늘이 ‘경찰과 도둑’ 특집인 만큼! 저희는 탐정이 되어 어떤 멋진 그룹들이 있나 조사하는 중입니다~ 뭔가 발견한 게 있나요, 은찬 씨?] [아, 또 발견한 단서가 있습니다! 바로 이 보석! 보석을 흘리고 다니는 이분들은 요즘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그룹이죠? 이미 제 마음은 이분들에게 도둑맞은 것 같습니다! 으윽……!가슴을 붙잡고 살짝 얼굴을 찌푸리던 형은 어느새 탐정 모자를 잡고 다른 포즈를 취하는 중이었다.
‘걱정할 필요까진 없었나?’
구세주 씨와 티키타카를 하는 형의 모습은 진행을 최소 1년은 해본 사람 같았다. 신인 그룹답게 적당히 상큼한 연기와 능숙한 진행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진행에 뒤따라오게 했다.
“그러게. 잘생겼네.”
“스타일링이 유독 잘 받는 것 같지? 탐정 컨셉 잘 어울리네. 모자는 좀 웃기다.”
컨셉이 어울리는 것보다도 진행이 여유롭고 매끄러워서 시선이 저절로 집중된다. 꼭 진행을 처음 맡은 사람 같지 않다고 느껴졌다.
“주혁이 엄청 집중하네~”
“시끄러워. 조용히 좀 해.”
“아니, 네가 너무 화면만 보니까 그렇지! 영화관도 아닌데 대화도 좀 하면서 보면 더 재밌고 좋잖아?”
주혁이 미간을 좁히며 자꾸만 옆에서 말을 걸어오는 이선을 타박했다. 때마침 옆에서 감자칩을 먹는 소리가 들려왔다. 도이선은 음식을 조용히 먹는 편이라 의아한 마음에 고개를 돌려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와작- 하고 감자칩 부서지는 소리만 들리도록 동영상을 재생해 놓은 것 같았다. 이선이 웃으며 감자칩을 내밀자 주혁은 못 이기는 척 과자를 집어 천천히 우물거렸다.
‘MC 잘 보네. 걱정은 괜히 한 것 같기도.’
매일 열심히 연습하는 모습을 지켜봐 왔으니 그 부담감이야 잘 알고 있었다. 형의 롤 모델인 백무영 선배 대타 자리였으니 특히나 잘해야겠다는 생각이었겠지.
긴장해서 실수하거나 목소리가 떨리면 어떡하나 하고 계속 신경 쓰였는데, 괜한 걱정이었다.
‘천직인가.’
전혀 신인 같지 않은 실력과 능숙함이다. 형은 모르고 있는 것 같지만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완성형 아이돌’ 같다고 느껴질 정도니.
원래도 올라운더답게 춤도 노래도 부족한 구석이 없어서 연습할 때도 주혁이 은찬을 지적하는 경우는 없었다. 하지만 그런 주혁에게 굳이 피드백을 요청하는 은찬이었고, 그런 은찬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항상 같았다. ‘동작만 좀 더 크게 하세요’.
형은 항상 자신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었다. 겸손에서 비롯된 건지, 정말 자존감이 낮아서 그런 건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분명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기량을 못 펼치는 느낌.
그런데 오늘 방송을 보니 비로소 그런 자신감을 가진 듯 보였다.
‘뭐 좋은 일이라도 있었나?’
가끔 신나면 주체 못 하고 표정에 다 티가 나면서 동작도 커지는데, 지금이 딱 그래 보였다. 덕분에 진행 또한 평균 이상을 넘어 정말 잘한다고 느껴졌다.
‘팬분들 좋아하시겠네.’
은찬 형 다음으로 SNS 눈팅을 많이 하는 별이가 말하기론, 은찬 형을 최애로 꼽는 팬분들의 비중이 상당하다고 했다.
저 인간은 그런 것도 모르겠지. 자신보다 주변에 더 관심이 많은 인간이다. 본인은 악플 위주로 보고, 팬들의 긍정적인 반응은 다른 멤버들 위주로 확인하니 알 리가 없다.
화면에는 두 MC 대신 다른 무대들이 연속해서 등장하던 참이었다. 소리가 좀 시끄러운 듯해서 음량을 줄이려는 찰나,
쿵-
갑자기 문 쪽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났다. 화들짝 놀란 주혁이 고개를 쳐들었다.
“…미친 거 아닌가.”
안경을 쓴 가을 형이었다. 문 앞에 몸을 살짝 기댄 채 마른세수를 하는데 드물게 허망한 얼굴을 한 채였다.
“까먹고 있었어…….”
아, 저 형… 은찬 형 모니터링해 준다고 그랬던 것 같기도. 워낙 사이가 좋던 둘이고, 은찬 형을 유독 잘 따르는 가을 형이었으니 저렇게 속상해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
“형, 거기서 뭐 해요~ 볼 거면 빨리 들어와요.”
“들어가도 돼?”
“네, 뭘 새삼스럽게?”
“…주혁이 다른 사람 들어오는 거 싫어하잖아.”
“됐으니까 그냥 들어와요.”
어쩐지 들어와서 같이 보고 싶다는 눈빛을 그렇게 쏘아대면서도 방문 앞에서 달싹거리더니. 내 입에서 허락 아닌 허락이 떨어지고 나서야 가을 형은 방 안으로 들어왔다.
‘음…….’
아무리 그래도 형인데 이렇게 불편하게 대하는 건 오히려 내 쪽에서 불편하다. 물론 나이 차이와 그에 관한 서열은 단체생활에서 중요한 점이라 생각한다. 정작 팀 내 연장자 라인인 은찬 형이나 가을 형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지만.
‘내 눈치를 본다기보다도 거리를 두려고 저러는 거겠지.’
가을 형이야 은찬 형 앞에서는 순한 양이 되지만 그 외의 인물 앞에서는 낯을 가리며 꽤 벽을 치는 편이니까. 지금도 제 딴엔 규칙이나 선을 지키기 위한 행동이었음이 분명하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나랑은 잘 안 맞는단 뜻이다.
“홍별은요?”
“걔는 왜?”
그냥 가을 형이랑 룸메라 물어본 것뿐인데 도이선이 예민하게 반응했다. 홍별의 말실수 사건 이후 도이선은 홍별을 유독 경계하는 느낌이다. 연습할 때도 은근히 갈구던데.
“야, 도이선. 순진한 애 괴롭히지 말랬다.”
“네가 뭐라고 안 하고 그냥 넘어가니까 그러는 거야.”
“리더가 군말 않고 해결해서 잘 넘어간 문젠데 굳이 그럴 필요 없잖아.”
“…그때 엄청 스트레스 받았으면서.”
컴백에 차질이 생길까 우려돼 잠시 걱정을 했던 것뿐인데 보아하니 그게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었다.
‘저 새끼는 가만 보면 유독 내 일에 예민하게 굴어.’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왔을 때부터 나를 존경했다며 입을 털긴 했지만. 하는 행동을 보면 존경보다는 장난감 뺏기기 싫어하는 애새끼 같았기에 딱히 신뢰 가는 발언은 아니었고.
“아직 학교일 것 같은데, 별이는.”
이런 대화 속에서도 가을은 태블릿 화면에만 눈을 고정한 채로 답했다. 어느덧 이번 주에 컴백하는 그룹의 인터뷰까지 지나간 후였다.
[은찬 씨, 아까부터 눈이 반짝반짝 빛나는 것 같은데,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큰일 났어요, 세주 씨… 저 선배님들이 너무 빛나서 수사를 못 하겠는데요……? 한 편의 뮤지컬 같은 무대였습니다. 저도 선배님들께 구속되고 싶어졌어요.]“은찬 형, 오늘 텐션 미쳤네? 뭐 좋은 일 있었나?”
그때, 도이선이 아까 내가 한 생각과 비슷한 발언을 했다. 확실히 오늘 기분이 좋아 보이긴 했다.
[네, 저도 옆에서 눈을 한시도 떼지 못했는데요. 어, 은찬 씨, 울어요?] [전 지금 당장 주머니가 털려도 좋아요…….] [앗, 탐정이 수사를 하셔야죠!]화면 속 은찬 형은 울상을 짓더니 마이크를 쥐지 않은 한 손을 살짝 말아 쥔 채 눈 밑에 가져다 대고 여러 번 기울이며 우는 척을 했다. 가을 형은 이미 화면에 빨려 들어갈 것 같았다.
“…윽.”
“왜 그래, 주혁아? 물이라도 떠다 줄까?”
살짝 당황한 나와는 달리, 도이선은 여전히 표정 변화 없이 다큐멘터리라도 보는 것 같은 초연함을 유지하는 중이었다. 쟤는 같은 멤버가 저렇게 오글거리는 행동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데 별생각이 안 드나?
[그러고 보니 은찬 씨, 은찬 씨도 다음 주에는 무대에 선다고 하셨던 것 같은데? [네, 다음 주에는 저희 제네시스가 새로운 컨셉으로 컴백합니다! 이번 타이틀곡은 ‘문샷’으로, 벽에 가로막히고 좌절도 하지만 그 감정을 인정하면서 꿈을 좇는다는 내용의 곡입니다. 다양한 모습 많이 보여 드릴 테니까요. 기대 많이 해주세요!]주혁이 정신을 바짝 차리고 그 말에 집중했다. 지금이 가장 중요한 포인트다. 저걸 위해 형이 특별 MC 출연에 칼을 갈았다고 봐도 무방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