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ee hearts in failed idol’s eyes RAW novel - Chapter 47
47. 지니(2)
라이브 방송 알림을 클릭해 들어가 보니 가을이와 별이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이렇게 하는 거 맞나?”
“어, 안녕하세요!”
제목부터 이라니.
“풉.”
둘이서 방에 들어가자마자 방송을 켠 모양이었다.
‘별이는 괜찮나?’
아무래도 혼자 라이브 방송을 하다 사고를 친 전적이 있다 보니 걱정되는 것도 사실이다. 오늘은 매니저 형도 숙소 말고 회사로 가시느라 봐줄 인원이 없었기에 더더욱. 그래도 선을 잘 지키는 가을이가 옆에 있으니 괜찮으려나.
“헉, 깜짝이야……”
“쉿.”
호기심이 생겨 둘의 방으로 다가간 다음, 문 앞에 서서 내려다보았다. 올려다보더니 놀란 표정을 지은 가을을 발견한 은찬이 검지손가락을 입술 앞에 가져다 대며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별이는 아랑곳하지 않는 게 확실히 이런 소통 방송이 익숙해 보였다.
[누구야? 왜 놀라?] [별아, 오늘은 무슨 얘기 해?] [hi oppa~ say english plz] [별 오빠ㅋㅋ 저 내일 쪽지 시험인데 시험 좀 잘 보라고 해주세여] [오늘 내 생일이야~~ 생일 축하해 줘!] [다른 애들은 어딧어???]“어… 아니, 은찬 형이 잠깐 와서요… 어… 헬로! 땡큐 포 리스닝… 시험 잘 보세요~ 헉, 생일 축하드립니다!”
방송 화면과 가을이의 대처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자니 올라오는 질문에 모두 대답을 하는 모양이었다.
‘하긴 가을이는 라이브가 처음일 테니까.’
그런데 별이가 가만히 있는 게 이상했다. 별이는 이런 걸 잘 알기도 하고, 저렇게 모든 질문에 대답을 해주는 가을이를 보고 가만히 있을 스타일이 전혀 아니다. 보통이라면 먼저 컷 했을 텐데.
‘음… 지난번 일 때문에 아직도 기죽어 있나?’
그 이후 첫 라이브 방송이니 충분히 그럴지도. 별이가 그 정도로 멘탈이 강한 편은 아니니까.
고개를 갸웃거리던 은찬이 이내 결심한 듯 씩 미소 지었다.
“아, 깜짝이야…….”
스윽 등장한 은찬이 소리 없이 가을과 별의 뒤에 얼굴을 내밀었다. 그러고는 깜짝 놀라 눈이 커진 가을이를 보며 웃고는 무릎을 굽혀 쭈그려 앉았다. 금세 화면 속에 세 명의 모습이 들어찼다.
갑작스러운 은찬의 등장에 채팅창뿐만 아니라 가을과 별도 살짝 놀라 상체를 기울였다.
“안녕하세요. 지니들~ 와, 어떡해. 지니라고 불러보고 싶었어.”
“형, 언질 좀 하고 들어와요!”
“왜에, 나도 이거 계속 해보고 싶었어.”
아예 둘 사이에 자리를 잡은 은찬이 찬찬히 채팅창에 뜨는 댓글을 속으로 읽기 시작했다.
[귀여워ㅠ] [은ㅜㅜ찬ㅠㅠㅠ아ㅠㅠㅠㅠ] [은찬이는 화장 지웠나 보네??] [이거 완전 순딩조다ㅋㅋㅋ 진짜 무해함] [은찬이 저 사이에 있으니까 제일 세 보이네 다른 멤버들이랑 있을 땐 순해 보였는데ㅋㅋㅋ]댓글이 올라오는 속도가 빨라 전부 읽지는 못했지만 몇몇 눈에 띄는 댓글만으로도 기분은 이미 날아오르고 있었다. 팬들의 애정 어린 관심에 몸과 마음이 충족되는 느낌. 이걸 얼마나 해보고 싶었던가.
문득 회귀한 날, 함정원의 라이브 방송에 반강제로 출연했던 기억이 떠올라 감격스러워졌다. 그 당시 느꼈던 감정은 비참함이었는데, 지금은 벅참이다. 실시간으로 느끼고 있는 이 감정을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았다.
‘이번에는 꼭 망하지 말고 잘해보자!’
은찬이 속으로 다짐하며 채팅창을 다시 열심히 읽어 내렸다.
[밥 먹었어, 얘들아?!]역시 한국인.
예나 지금이나 밥 먹었냐는 댓글은 언제나 빠지지 않는다. 은찬은 고개를 끄덕이며 야식 메뉴를 추천해 달라는 댓글에는 요 근래 제일 먹고 싶었던 메뉴를 추천했다.
별, 가을과 함께 저녁에 있던 일을 이야기하던 은찬이 방송을 하던 태블릿에 얼굴을 가까이 가져다 댔다. 댓글을 읽어 내리던 은찬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생일이신 분들 너무 축하드리고요! 시험 있으신 분들도 좋은 결과 있으실 거예요! 아! 지금 안 보이는 애들은 연습 중이에요.”
“다른 애들 안 보여서 아쉽죠~ 저희도 너무 아쉬워요. 대신 재밌는 얘기 많이 해드릴게요!”
라이브 방송 중 제일 많은 중복 질문들이다. 적당한 질문들을 골라 답한 은찬에 뒤이어 별이가 애교를 떨었다.
‘앞으로도 자주 봐주셨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하며 웃고 있을 때였다. 옆얼굴이 따갑게 느껴진다 싶더니 별이가 바라보고 있었다. 제 딴엔 존경의 눈빛인 것 같은데, 말티즈 같은 눈망울에 살짝 부담스럽기도 했다.
’어쩔 수 없나……‘
라이브 방송에 익숙한 줄 알았더니, 별이도 1인 방송이나 익숙했지 이런 공식 채널에서 갖는 자리는 아직 어색한 모양이었다. 하긴 시청자 수의 단위부터가 다르긴 하다. 지난번 일 때문에 더 조심하고 있는 중이겠고. 역시 별이는 배움이 빠르다.
[근데 왜 지니야? 우리가 이제 너희 소원 들어주면 되는 건가?]’그러게……‘
사실 나도 오늘에서야 확인해서 정확한 뜻은 잘 몰랐다. 미리 물어봤으면 좋았을걸. 정신없다는 핑계로 세세한 건 뒤로 미뤄둔 것 같아 죄송스러웠다.
“여러분의 사랑으로 저희와 여러분의 꿈을 이뤄준다는 뜻에서 지니로 결정됐어요. 앞으로 저희가 잘할게요… 지니들.”
은찬이 당황하는 사이 가을이 대신 청산유수로 조목조목 뜻을 전달했다. 저런 뜻이 있었다니. 생각보다 의미 있게 지어진 이름인 것 같아 은찬도 채팅창의 팬들과 덩달아 납득의 고개를 끄덕였다.
“엇, 나 매니저 형.”
옆에서 같이 고개를 끄덕이던 별이 핸드폰을 확인하더니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 덕에 화면에는 별이의 하체밖에 보이지 않았다.
“잠시만요~”
별은 다시 몸을 낮춰 화면에 얼굴을 내밀고는 손을 흔들더니 사라졌다. 그때 은찬이 뭔가가 떠오른 듯한 표정을 짓더니 가을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러고는 곤란하다는 듯 목소리를 낮추었다.
“아, 나도 잠깐 들른 거라… 볼일 있어서 잠시 나가봐야 해. 잠깐만.”
“어, 어?”
은찬까지 자리를 뜨자 당황한 가을이 방문과 화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여기서 갑작스럽게 라이브를 종료할 수도 없으니 어떻게든 진행을 해야 했다. 가을은 누가 봐도 적잖이 당황한 모습이었다.
“음… 안녕하세요. 저만 남았어요. 싫으신 건 아니죠……?”
가을이 머뭇머뭇 말을 이었다. 멋쩍게 웃음 짓는 가을의 얼굴이 화면 가득 잡히자 채팅창이 다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누가 싫대? 탕 내가 없앴음 ㅇㅇ] [ㅋㅋㅋㅋㅋㅋㅋ당황한 거 봐 귀엽네~~~~~] [주인(not HyeonJI) 잃은 멍멍이 같애ㅠㅋㅋ] [가을아 키 컸어?! 데뷔 초반보다 몸이 좀 커진 것 같은데? 설마 벌크업은 아니지?!]채팅창을 읽어 내려가던 가을이 마지막 댓글을 확인하고선 양손을 좌우로 격하게 흔들었다.
“아, 아니에요. 살 안 쪘어요. 그사이에 키가 좀 컸나? 어쩐지 바지가 좀 짧아지긴 했더라고요. 근데 저 벌써 20살인데, 성인도 키가 계속 크나요? 다음에 한번 재보고 정확히 말씀드릴게요.”
[아냐 분명히 컸어 칭찬이야~] [저 가을 오빠 목소리 너무 좋아해요 매번 귀 녹고 있어요!!!! 노래 불러주세요! 커버도 좋아요!]가을의 낯빛이 지금까지 중 제일 밝아졌다.
“아, 노래? 그럼 제가 좋아하는 노래 몇 소절씩 불러 드릴게요!”
가을은 이번 제네시스 미니 2집의 수록곡 중 한 곡을 몇 소절 불렀다. 노래를 끝마친 가을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채 다시금 채팅창을 확인했다. 채팅창에는 수많은 팬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곡을 나열하는 중이었다. 거의 발라드 위주의 곡이었다.
“아, 그거 좋아요. 선배님들 노래 정말 좋아해요.”
커버 범위가 넓은 목소리긴 하지만 확실히 팬들은 가을이 부른 발라드를 듣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팬들이 추천해 준 노래 몇 곡을 짤막하게 부른 가을은 스스로도 만족스러운 듯 기쁘게 미소 지었다.
“이거 다음에는 각 잡고 노래 커버해도 좋을 것 같아요. 노래 불러주는 방송 한번 켤게요.”
그러다 눈에 띄는 댓글 하나를 읽자 살짝 처져 있는 가을의 눈이 크게 뜨였다.
“어… 문라잇 엔젤? 아, 그 만화 너무 좋죠! 저희 지금 타이틀곡도 약간 애니메이션 오프닝곡 같지 않아요? 초등학교 때 생각난다. 불러 드릴게요.”
리온이에게도 타이틀곡이 애니메이션 오프닝곡 같다며 그런 느낌으로 가자고 강력하게 추천했던 가을이다. 본인이 좋아하는 주제에 대한 요청을 받았는데 그냥 넘어갈 리가 없다. 아까까지 짤막하게 부르던 다른 노래들과 달리 오프닝곡 1절을 끝까지 부른 가을이가 혹시 다른 애니메이션 오프닝 듣고 싶은 건 없냐고 물을 때였다.
“형! 별이 등장!”
별이 화면에 요란하게 등장했다. 깜짝 놀라 몸을 떤 가을의 얼굴이 화르륵 붉어졌다. 불특정 다수인 팬들 앞에서 애니메이션 오프닝곡을 부르는 건 괜찮아도, 가까이 지내는 멤버들에게 이런 모습을 들킨 건 창피한 모양이었다.
“깜짝 놀랐잖아… 평소처럼 노크하고 들어오지……”
“은찬 형도 뒤에서 보고 있었는데?”
“뭐? 형 볼일 있다면서.”
“응, 그런데 어디서 장난 아닌 노랫소리가 들리잖아. 구경 안 할 수 없지.”
“아!!!”
가을은 정말 쑥스러웠는지 이내 상체를 푹 숙여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었다. 옆에서 별이 그런 가을을 보며 와하하- 하고 크게 웃었다. 채팅창도 전부 ‘ㅋㅋㅋㅋㅋ’로 도배되는 중이었다.
‘저 분위기면 둘이 둬도 별 사고 안 치고 잘하겠네.’
마무리까지 잘하겠지 싶어서 방문을 닫고 나와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는데, 현관 도어락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곧 슈트를 입은 채 귀가하는 현주인이 보였다.
‘쟤는 왜 저렇게 차려입었어?’
스케줄이 있는 날도 아니었던 것 같은데. 평소보다 유독 차려입은 것 같은 현주인의 모습에 은찬이 눈을 가늘게 좁혔다. 설마 데이트하고 온 건가.
과거 3개월 3스캔들의 악몽이 떠올라 팔을 쓸며 의심스레 쳐다보자 현주인과 눈이 마주쳤다. 놈은 이쪽을 보더니 곧장 미간을 좁혔다.
‘저건 또 왜 얼굴 보자마자 짜증이야?’
별 신경 안 쓰려고 했는데!
곧장 방으로 직행하는 현주인을 쫓아갔다. 현주인이 지나간 자리에는 시원한 향수 냄새가 감돌았다. 자식, 아주 풀세팅을 했구만. 설마 진짜 여친 생긴 건 아니겠지? 뭐라도 미리 예고를 해줘야 나도 대비를 하는데.
“어디 갔다 왔냐?”
“가족 모임.”
의외로 즉답이 돌아왔다. 거기다 무척이나 건조한 목소리로.
재킷을 벗고 셔츠의 단추를 푸는 현주인 뒤에서 뻘쭘해진 은찬이 멋쩍게 제 뒷목을 만지작거렸다. 오해했네. 거기다 분위기가 쎄한 게 타이밍을 약간 잘못 잡은 것 같다.
“아… 어머니 잘 계셔?”
현주인의 어머니는 칠월칠석 활동 초반에 몇 번 뵌 적이 있었다. 현주인의 외모를 납득하게 하는 분이셨지. 그분은 날 비롯해 멤버들에게는 정말 친절하셨지만, 정작 아들인 현주인하고는 거리감이 있는 느낌이었다.
‘뭔가 대하는 게 어색한 것 같았어.’
현주인의 무뚝뚝한 성격이나 틱틱대는 말투를 생각하면 그러는 것도 어느 정도 이해되긴 하지만.
‘근데 얘가 원래 가족 모임 같은 걸 다녔던가?’
회귀 전엔 그런 걸 본 적이 없는데. 아니면 갈수록 숙소에 들어온 날이 적어져서 내가 몰랐던 걸 수도 있고.
‘뭐, 가족끼리 잘 지내면 좋은 거지.’
나야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로는 저런 가족 간의 정이 부럽기만 했으니까.
긍정인지 부정인지 현주인은 내 질문에 성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잔뜩 피곤해 보이는 현주인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은찬이 손에 쥐고 있던 맥주 캔을 따 입에 가져갔다.
“야, 근데 언제 말해줄 거냐?”
“뭘.”
“선배 일. 나중에 말해준다면서 왜 말이 없어.”
“……”
이 질문에는 이렇게 뜸 들일 줄 알았다. 예상했던 부분이라 맥주로 목이나 축였다.
“나도 맥주 좀 줘.”
“너는 몸이 미자라서 안 돼. 더 커서 와라.”
“하?”
“안 돼. 성인 돼서 와. 네 몸은 지금 미자야.”
드물게 헛소리를 하네. 피곤하긴 한가 보다.
어느새 반팔 티로 탈의를 마친 현주인은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러고는 맥주 마시는 날 빤히 올려다보더니 억눌린 목소리로 똑똑하게 경고했다.
“백무영 그 새끼, 믿지 마.”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