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ee hearts in failed idol’s eyes RAW novel - Chapter 48
48. 새로운 활용법(1)
얘가 미쳤나. 하늘 같은 선배한테 새끼라니!
듣는 귀가 나밖에 없어서 망정이지, 큰일 날 소리를 하고 있네. 아니, 그것보다도.
“믿지 말라니? 선배를? 왜?”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지난번부터 둘 사이에 뭔가 있을 거라는 생각은 했지만, 다짜고짜 이유도 말하지 않은 채 믿지 말라고 하면 내가 ‘응! 안 믿을게!’ 할 것 같냐고. 상황을 뒤바꿔 생각해 봐도 그렇다. 적어도 그럴듯한 이유를 말해줘야 내가 고려라도 해보지.
당황한 은찬이 이마와 눈썹을 구기며 답이 없는 현주인을 향해 더듬더듬 말을 이었다.
“너무 두서가 없는데… 무슨 소리냐? 뭐라도 말을 해줘야 내가 납득을 하든 말든 할 거 아니야.”
뭐라도 좋으니 빨리 말을 이어주길 바랐다.
평소에는 안 그러던 현주인이 이렇게 직접적으로 말하는 거라면 필히 이유가 있을 터다. 지금은 놈의 말을 믿고 싶지 않지만, 그래도 막연히 좋아하고 존경하던 선배보다는 같은 멤버의 말에 더 신뢰가 가는 게 당연한 거니까.
‘까놓고 백무영 선배와 접점이 생긴 건 회귀 후지…….’
반면에 현주인은 회귀 전후 싫든 좋든 몇 년을 같이 보낸 데다가, 회귀한 사실을 서로 알고 있다. 최소한의 신뢰도가 쌓여 있을 수밖에 없었다.
“자세히는 말 못 해주는데… 그냥 그런 줄 알아.”
“뭔데? 너 돌아오기 전에 선배랑 싸웠어?”
정확한 회귀 시점을 알진 못하지만 정황상 나보다 뒤늦게 회귀했을 테니, 그사이 내가 모르는 일이 있었을 수도 있다. 그때 선배와 문제가 있었던 거라면 지난번에 대기실에서 그렇게 행동했던 것도 이해가 간다.
‘하지만 그런 이유라면 더더욱 알아야겠는데.’
비단 나뿐만 아니라 현주인을 위해서라도 그 편이 더 낫다. 혼자서 뭘 어쩌려고 저러는 건데, 대체?
“…때 되면 말해줄게.”
“뭐 하러 때 되면 말해. 뭔가 있어서 그러는 거 아니야? 평소엔 말도 없으면서.”
“그…….”
말해줄 것같이 뜸을 들이던 현주인의 대답은 결국 NO. 눈동자만 위로 올려 은찬을 바라보던 현주인이 눈을 내리깔곤 작게 숨을 머금었다.
‘뭐야, 진짜……’
원래 이런 태도를 보이던 놈이 아닌데.
“미안. 조금만 기다려.”
뒤통수를 망치로 맞은 듯한 기분이다.
‘…이거 죽을 때가 됐나?’
사과를 하든가 핑계라도 대보라고 빌빌거릴 땐 표정 변화 하나 없던 놈의 입에서 나온 말이 정말 맞나. 아무래도 잘못 들은 것 같아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후벼봤다. 그러나 일자로 닫힌 현주인의 입은 더 이상 열리지 않았다.
‘왜 내가 더 착잡하냐…….’
은찬이 깊은 한숨을 길게 내뱉었다.
“…현주인 너, 요즘따라 사과가 헤퍼.”
“너한텐 그 소리 듣고 싶지 않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아무튼.”
사과를 받는데 이렇게 찝찝한 사과가 또 없다. 너무 당황스러워 현주인의 턱을 붙잡고 좌우로 돌려 얼굴을 살폈다.
“놔.”
“…겉보기엔 문제가 없는데.”
“하, 놓으라고.”
여전히 이목구비 주차 잘되어 있는 도자기 같은 얼굴이다. 사람이 변하진 않았는데.
“아무튼 내 말 잘 새겨들어.”
그 말을 마지막으로 내 손을 쳐낸 현주인은 문밖으로 직행했다. 가뜩이나 알 수 없는 것투성이인데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무언가가 또 늘었다.
***
공은 공이고 사는 사인데, 여전히 찝찝함이 가시지 않는다.
어제 그렇게 씻으러 간 현주인을 보내고 한참을 침대에서 뒤척이다 잠에 들었다. 결론이 나지 않을 문제를 계속해서 붙잡고 있는 성격이 아닌데도 잠이 오지 않았다. 요즘은 잠잠해진 불면증이 꼭 다시 온 것처럼.
‘웃어야 돼. 팬들한테 집중해라, 유은찬.’
이번 팬 사인회는 저녁 일정이었다. 아직까지도 찝찝함을 지우지 못한 상태였다. 팬 사인회장에 오기 전 명상도 해봤으나 그렇게 큰 도움이 되진 않았다.
‘저놈은 그렇게 큰 폭탄을 투척해 두고 어쩜 저렇게 태평하냐.’
괜히 억울해 옆자리에 있는 현주인을 흘겨보니 생글생글한 얼굴로 기가 막히게 팬 서비스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역시 팬들 앞에서만큼은 잘하는 놈이다.
은찬 또한 팬들이 준 여러 가지 머리띠와 장신구를 쓴 채로 틈틈이 요청하는 포즈를 취하거나 질문에 답을 하며 활짝 웃고 있었다. 한 손으로는 사인을 하고 입은 쉴 새 없이 답을 하는 와중에도 착실하게 호감도를 열람하며 스탯을 모았다.
‘역시 팬들은 다르네. 벌써 스탯 분배 횟수 2개나 모였어.’
질문이나 표정으로 미루어 나한테 가장 관심 있어 보이시는 분들 위주로 골라봤는데, 운이 좋았다. 4번 열람에 2번 적중이라니. 반타작이면 감이 괜찮은 편인 거지.
‘나한테는 더 이상 스탯을 분배할 수 없다고 해도, 언제 어떻게 사용할 수 있을지 모르니까.’
하루 5회의 호감도 열람 횟수는 어차피 매일 초기화된다. 사용하지 않고 날려 버리긴 아깝다.
어쩌면 지난번에 했던 가정대로 다른 사람에게 스탯을 분배해 주거나, 뽑기 시스템을 사용하는 걸로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르니 미리 모아둬서 나쁠 건 없었다,
“안녕하세요!”
“앗, 처음 오시죠? 안녕하세요!”
한숨 돌리는 사이 새로운 팬이 앞자리에 앉았다. 다시 펜을 든 은찬이 양손을 흔들며 눈앞의 팬을 반겼다. 그녀는 그런 은찬의 인사를 받기가 무섭게 눈물을 잠시 글썽이는 듯하더니 가방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그 행동이 무척 분주했다.
“일단 이거.”
“이거 머리에 쓰고 귀에 달면 되는 거예요?”
“네!”
왕관과 귀걸이 세트다. 꼭 장난감 가게에서 파는 공주 놀이 장난감 같은 거. 그녀는 그걸 재빨리 건네곤 은찬이 받아 드는 사이 앨범을 펼쳐 은찬의 클로즈업샷이 나온 티저 사진 볼 위에 붙어 있는 포스트잇을 가리켰다.
“여기 포스트잇 체크해 주시고… 아, 어떡해… 눈앞에서 보니까 더 극락이다.”
“아하하, 저 잘 어울려요?”
“네, 완전… 제가 나중에는 진짜 보석으로 가져올게요… 우리 은찬이 주얼리 광고 찍어야 되는데 감 없는 광고주 새… 아니, 아무튼… 저 입덕도 은찬이고 최애도 은찬이에요! 외모부터 성격까지 전부 취향에 맞아서…….”
“앗, 진짜요?”
이렇게까지 직접적으로 말씀해 주시는 분은 지금까지 못 봤는데. 말씀하시는 게 의식의 흐름대로인 것 같다는 느낌은 있었지만 내용은 전부 다 날 향한 칭찬이었기에 기쁜 마음을 안고 포스트잇의 내용을 확인했다.
[은찬이 생각하는 멤버들의 정신연령은?]주인 (5) 가을 (11) 주혁 (7) 이선 (7) 별 (2) 리온 (17)
[무인도에 간다면 꼭 데려가고 싶은 멤버 한 명이랑 그 이유는?]주인……? 그냥 별 이유는 없고… 뭐든 잘해서!
‘현주인이랑 무인도에 떨어지면 욕은 먹어도 굶지는 않겠지.’
은찬은 망설임 없이 펜으로 답을 적어 내렸다. 별로 고민할 만한 내용도 아니었다. 그리고 사인을 하며 아까 못 쓴 To. 란에 팬의 이름을 적으려고 했을 때였다.
‘To. 디어플러피?’
이름 대신 닉네임으로 받아 가시려나 보네. 이런 경우야 흔했지만 뭔가 아쉬웠다. 내가 최애라고 하셨으니 뭐라도 좀 더 해드리고 싶은데.
“디어플러피 님?”
“네, 네?”
“이름은 따로 안 적어드려도 돼요? 닉네임으로 받고 싶으신 거면 제가 P.S. 란에 추가로 적을게요.”
과거 칠월칠석 시절에도 이렇게 하고는 했다. 매니저 형이나 팬매니저 누나가 조금 눈치를 주긴 했으나 적당히 피해서 해주면 들키지도 않았고, 별것도 아닌데 팬들은 엄청 좋아해 주셔서 나도 뿌듯했으니까.
“미쳤다… 진짜 잘하네…….”
“네?”
“아! 괘, 괜찮아요. 닉네임만 적어줘도 돼요.”
“네~”
그럼 하트라도 많이 그려 드려야지. 보통은 하트를 한두 개씩 그리고 말았지만, 이분한테는 10개가 넘어가도록 하트를 그려 드렸다. 앞서 호감도가 80%가 넘어가던 분들한테 했듯이 정성스레.
그녀는 은찬의 답에 흡족한 얼굴을 하고선 은찬이 펜을 내려놓기가 무섭게 다음 부탁을 해왔다.
“이 귀걸이 이렇게 양손으로 붙잡고 고개 살짝만 들어줄 수 있어요?”
“이렇게요?”
“네! 완벽해요! 그리고 저기 단발머리에 카메라 들고 있는 친구 쪽 한번 봐주세요.”
‘처음 보는 분인데 팬 사인회에 되게 익숙하신 느낌이네.’
은찬이 양 귀에 매단 왕 귀걸이를 매만지며 턱을 살짝 추켜들고, 그녀가 말한 쪽을 쳐다봤다. 그런데 그곳에는 익숙한 얼굴이 앉아 있었다.
샤이닝 모먼트?
놀란 탓에 눈이 살짝 커졌으나 금세 포즈를 바꿔 웃으며 윙크하고 하트를 날리니 카메라 셔터 소리가 쉴 새 없이 들려왔다.
‘이번에 새로 사귄 친구분이신가?’
샤이닝 모먼트의 친구 중 한 사람이라면 과거에 많이 봤기에 모를 리가 없는데. 그 예시로 저쪽에 앉아 있는 이선이 팬분이랑 주혁이 팬분, 그리고 오늘은 안 오신 것 같지만 가을이 팬분의 얼굴도 이미 알고 있다.
‘현주인이랑 달리 홈마는 엄청 인싸네…….’
물론 괜히 이상한 친목질 할 바에는 아싸인 게 낫지만. 그래도 저런 사교성은 좀 갖춰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은찬이 샤이닝 모먼트의 카메라를 바라봤다.
그녀는 멍하니 포즈를 바꿔가는 은찬을 바라보다 양손으로 입을 가리고 있었다. 마스크를 써서 하관은 전부 가려져 있었는데, 눈에서는 감격의 빛이 뿜어져 나오는 듯했다.
어딘가 모르게 한번 본 듯한 느낌이다. 분명 제네시스 오프라인 행사에선 본 기억이 없는데.
‘아! 이분… 혹시 그분인가?’
현주인 데뷔 축하 카페에서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 카페 구석에서 스티커 붙이고 계시던 분. 그분이랑 체격이 비슷하다. 그때는 머리를 묶은 채 안경을 쓰고 계셨다. 오늘은 렌즈를 끼고 머리도 풀고 오신 탓에 몰라봤는데, 샤이닝 모먼트와 친구라고 하니까 모든 게 들어맞았다.
‘역시 우리 팬이라서 카페에 계셨던 건가 보네?’
안 그래도 좋았던 기분이 더 좋아졌다.
“디어플러피 님! 우리 자주 얼굴 봬요! 저 사람 되게 잘 기억해요.”
“응, 은찬아… 나 휴학해서 시간 많아… 맨날 올게… 꼭 올게…….”
곧 울먹거릴 것 같은 얼굴. 다른 분들보다는 확실히 호감도가 높아 보이는데. 아직 호감도 열람 횟수가 1회 남았으니 확인해 봐도 될 것 같았다. 다음 차례로 넘어가라는 소리가 들리자 은찬이 재빠르게 그녀의 호감도를 확인했다.
[ ♡ +90% ] [ system : 금일 호감도 열람 가능 횟수 (0/5) ]기대만큼 호감도가 굉장히 높았다. 은찬이 기쁜 마음으로 디어플러피에게 양손을 흔들며 다음으로 넘어갈 때까지 인사해 주던 그때, 갑자기 그녀가 넘어지며 둔탁한 소리를 냈다.
“으앗!”
보아하니 뒤에 계시던 분이 디어플러피의 긴 치맛자락을 밟은 모양이었다. 당황한 은찬이 벌떡 몸을 일으키곤 상체를 숙여 상황을 살폈다. 앞쪽에서 팬들의 포스트잇 내용을 검수하던 팬매니저 누나와 뒤에서 뒷짐을 지고 있던 씨큐가 갑자기 소란스러워진 은찬 쪽으로 다가왔다.
“무슨 일이야? 은찬아, 괜찮아?”
“아, 저는 괜찮아요, 팬분이 넘어지신 거라… 괜찮으세요?”
“…네네!”
씨큐가 가만히 있길래 은찬이 손을 뻗어 잡아주자 디어플러피는 떨리는 눈으로 손끝을 살짝 맞잡으며 다음 차례인 가을의 앞에 착석했다.
“사인 끝나면 다친 곳은 없는지 살펴보세요. 팬매니저분한테 말씀하시면 밴드라도 챙겨주실 거예요.”
“응… 아니… 네…….”
답을 하는 그녀의 눈에서 살짝 빛이 나는 것 같기도 했다.
***
문샷 2주 차 활동 중인 오늘의 무대의상은 교복이었다. 팬분들이 좋아하시는 만큼 스타일리스트 누나가 엄청나게 신경 써서 착장을 맞춰주셨는데 은찬의 눈에도 그게 확연히 보였다. 특히 현주인은 교복이 정말 잘 어울렸다.
‘쟤 포토카드도 이 의상이었지, 아마?’
SNS 눈팅했을 때 몇억짜리 포토카드라던 글을 분명 봤다. 그만큼 사진이 예쁘다는 뜻인지 공유수 또한 엄청났었다.
무대에 오르기 전 가쿠란의 옷깃과 액세서리들을 마지막으로 점검하는데. 뒤에서 혼자 연습하던 가을이 짜증스럽게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오늘 컨디션이 왜 이러지?”
‘어제 늦게까지 연습하더니… 무리했나?’
가을이는 평소에도 다른 멤버들보다 춤에 열중하는 경향이 있었다. 노래는 항상 무리 없이 잘했으나 비교적으로 부족한 춤 실력은 스스로의 약점이라 판단한 것 같았다. 객관적으로 봐도 배우는 속도가 느린 편이긴 했지만 그래도 못하는 정도는 아닌데.
“가을아, 많이 힘들면 조금 힘 빼서 해도 돼. 사전녹화라서 두세 번은 할 테니까.”
“…아냐. 내가 민폐 끼칠 순 없잖아.”
가을이의 댄스 스탯은 별 3개. 그래도 평균보다는 괜찮은 편이다. 하지만 자신감이 부족한 편이라 그런지 스스로에 대한 평가가 더 냉정했다,
무대에 오르기 직전까지 몸을 꾹꾹 누르는 가을이의 모습에 은찬 또한 걱정스러운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래도 괜찮겠지. 컴백 주에도 잘했었으니까.’
사전녹화 무대에 오르면서 가을이의 어깨를 톡톡 두드려 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