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ee hearts in failed idol’s eyes RAW novel - Chapter 49
49. 새로운 활용법(2)
“잘하는데?”
“…그런가……”
걱정과 달리 가을이는 첫 번째 사전녹화 무대를 잘 끝마쳤다. 내려와서 메이크업 수정을 하며 모니터링을 하는데 라이브는 물론이고 안무 소화도 완벽했다.
“응, 나머지 두 번도 이렇게만 하면 될 것 같은데?”
“고마워, 형.”
가을이는 조금 긴장이 풀렸는지 살짝 웃으며 답했다.
‘비공개 사전녹화인 게 좀 아쉽네…….’
2주 차 활동에도 사전녹화를 할 수 있다는 게 어디냐마는. 팬분들이 계셨으면 가을이도 더 잘했을 것 같은데.
“스탠바이-”
조연출 스태프의 지시에 무대에 오르며 나머지 무대도 잘해내자며 가을이를 토닥였다.
[수평선 저 너머에 우리가 나아갈 길이 보여]그리고 세 번째 사전녹화 무대에서 하이라이트 부분에 들어가기 직전이었다. 가을의 표정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왜 그러지?’
노래를 부르고 안무를 맞추면서도 가을이의 표정은 어두웠다. 실수한 부분도 없어 보였는데.
카메라 감독님의 중간 컷도 없었고 은찬이 생각해도 마무리까지 괜찮았다. 하지만 무대가 모두 끝났을 때까지 가을이의 표정은 거의 죽상이나 다름없었다.
헤메스 누나들이 무대 아래로 내려온 가을이에게 선풍기를 가져다 대며 땀을 닦아주고, 모니터링을 끝마치는 동안에도 가을이의 표정은 좀처럼 풀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은찬은 대기실로 향하면서도 가을을 반복적으로 곁눈질했다.
“가을아, 어디 아파?”
혹시 어디 삐끗해서 다친 건 아니겠지? 그럼 내일은 하루 종일 쉬게 해야…….
“실수했어. 미안해.”
“실수? 모르겠던데?”
가을의 울먹임 섞인 대답에 은찬이 어깨를 으쓱했다.
물론 나도 내 파트를 소화하느라 주변에 시선을 많이 못 줬으니 그 순간을 놓쳤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안무 대형상 가을이 근처에 있는 부분이 많고, 가을의 표정이 어두워지기 시작한 시점인 하이라이트 직전은 내가 얘 바로 옆쪽이었다. 그런데도 눈에 띌 만한 안무 실수는 발견하지 못했다. 큰 실수를 했다면 오히려 내가 먼저 눈치챘을 거다.
“너 오늘 잘했어, 가을아.”
“진짜 실수했어… 무대 망친 거면 어떡하지… 미안.”
위로가 딱히 들리지 않는 상황인가 보다. 지금은 어떤 말을 해줘도 들릴 것 같지가 않다.
‘연습을 많이 한 만큼 본인에 대한 기대치가 크겠지…….’
어떤 심정인지 알 것 같네. 은찬은 미미한 미소를 지으며 가을의 축 처진 어깨를 말없이 지켜봤다.
“근데 내가 봤을 땐 진짜 모르겠던걸?”
“…….”
가을이의 머리 위에 귀가 보이는 것 같았다. 귀가 축 처진 강아지의 시무룩한 모습하고 가을이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등이라도 토닥여 주려고 하는데 가을이 홱 고개를 돌렸다. 이미 허공까지 뻗어 있던 손이 뻘쭘했다.
“모니터링 한 번 더 할 수 있을까?”
“응, 아마 매니저 형이 파일 받으셨을 거야.”
공중에 있던 손을 갈무리하며 멋쩍게 웃자 가을이 고개를 끄덕였다.
‘눈에 보이는 실수였다면 감독님이 진작에 컷 했을 건데… 생각보다 많이 신경 쓰이나 보네.’
보기에 별문제가 없거나 그때의 카메라 포커스가 가을이 쪽이 아니었으니 문제 삼지 않으신 거겠지. 전체 무대 분량을 모니터링까지 하겠다니 생각보다 춤에 미련이 많이 남은 것 같다.
저렇게까지 속상해하는데 같이 못 가줄 이유도 없어서, 은찬은 머뭇거리던 가을을 끌고 가 모니터링을 했다.
본방송에 나오는 분량에선 도저히 보이지 않아 매니저 형이 단체 직캠용 풀샷 버전까지 따로 받아 와 찾아봤지만 별다른 실수가 보이진 않았다.
“괜찮은데?”
“여기…….”
깊은 한숨 소리에 은찬이 가을이 짚은 부분을 유심히 살폈다.
‘이거 때문에 그러는 거야?’
왼발과 오른발을 교차로 밟아야 하는 부분에서 거꾸로 밟은 게 전부. 가을이가 연습 때마다 헷갈려하는 부분이긴 했지만 보통이라면 실수로 칭하지도 않을 정도의 실수다.
‘근데 여기는 주혁이 파트라 가을이는 보이지도 않을 텐데?’
항상 연습하는 우리야 눈치챌 정도지 방송을 보는 사람들은 아예 알지도 못할 거다. 심지어 팬들이 봐도 절반 이상은 눈치채지 못할 정도고.
주혁이 팬분들이야 주혁이 닮아서 프레임 단위로 쪼개가며 동작이 어땠고 역시 우리 주혁이는 천재라면서 나노 분석을 한다지만, 가을이의 팬분들은 성향이 전혀 반대니까. 정말 본인만 신경 쓰는 거다, 이건.
모니터링을 확인하고 난 뒤의 가을이는 더욱 울적해 보였다. 어떤 말을 해줘야 위로가 될지 열심히 머리를 굴렸는데, 영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때 가을이 중얼거렸다.
“저 부분… 연습 정말 많이 했는데. 형, 역시 난 안 되나 봐…….”
“아, 무슨 소리야! 열심히 했잖아. 아니었으면 내가 이미 한 소리 했을 거고.”
“그래도…….”
유독 이 부분을 헷갈려 해서 주혁이의 스파르타 과외를 받긴 했지. 본인도 답답해서 짜증 나 했던 것까지 안다. 하지만 저건, 노력도 노력이지만 타고난 것의 문제도 있는 거니까.
‘아.’
문득 좋은 생각이 스쳤다. 가능성으로 열어두기만 했던 바로 그 생각.
‘스탯… 줄 수는 없나? 지금 꽤 많이 쌓였는데.’
지금까지 모아둔 스탯 분배 가능 횟수는 총 4회.
가을이가 춤으로 고통받고 있다면 춤을 좀 더 잘 출 수 있게 해주면 되는 거 아닌가. 내 스탯을 더 이상 못 올린다면, 묵혀두는 것보다야 백번 낫다. 같은 멤버들이 잘하면 나한테도 좋은 거니까.
“형.”
“응?”
좋은 생각이다. 바로 시도해 보려고 결심까지 했는데, 가을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불렀다. 겨우 다른 곳에 빼두었던 정신을 현실로 붙잡았다. 코에 익숙한 향수 냄새가 감돌았다.
“은찬 씨, 지금 이야기 좀 가능해요?”
“선배……?”
오늘 음악방송의 MC인 백무영 선배는 곧 있을 리허설을 대기하고 있는 중인 듯, 대본을 한 손에 쥐고 있는 가벼운 차림이었다. 이제는 백무영 선배가 갑작스레 등장하는 것에 조금 익숙해졌는지 뒤에서 불쑥 나타나셨는데도 전처럼 놀라진 않았다. 물론 마주한 용안은 여전히 놀라웠지만.
“다녀와, 형. 매니저 형이랑 애들한테는 내가 말해놓을게.”
“넌? 괜찮겠어?”
가을이 미소를 짓고 고개를 끄덕였다.
“금방 다녀올게. 너무 우울해하지 말고.”
“…응.”
“잠깐 얘기만 나눌 거라고 전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가을이와는 대기실 복도에서 헤어진 뒤, 은찬은 무영을 따라 같은 층 휴게실로 향했다. 부쩍 수상쩍게 느껴지는 선배이긴 해도, 팬으로서 선배와의 만남이 언제나 반가운 건 사실이라 이런 상황이 싫지는 않았다.
‘갑자기 현주인의 말이 떠오를 건 뭐냐…….’
무영이 자판기에서 음료 두 개를 뽑아 은찬에게 하나를 건넸다. 여전히 사람 좋은 웃는 낯빛이었다.
‘선배를 믿지 말라니. 이렇게 천사 같은 얼굴인데?’
감사 인사를 한 뒤 음료를 한 모금 들이켰다. 자꾸만 백무영을 믿지 말라던 현주인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러면 저 사람 좋은 얼굴 뒤에 본성이 숨겨져 있다는 소리인가?
‘그건 좀…….’
칠월칠석 활동을 하던 6년 내내, 백무영 선배는 항상 앞뒤가 같은 사람이었다고.
회귀 이후 어쩌다 보니 조금 친해진 백무영 선배는 내가 알던 모습과 조금 다른 느낌이긴 하지만. 그건 가까운 사이랑 그렇지 않은 사이의 차이일 수도 있는 거고. 무엇보다 애초에 사람 함부로 재고 그러는 건 좋지 않다.
‘하지만 현주인이 괜히 그럴 놈은 아니니까… 조심하는 것 정도는 괜찮겠지.’
백무영 선배 얼굴을 봤는데도 마냥 기뻐할 수 없는 상황에 조금 슬퍼졌다. 칠월칠석 시절의 은찬이라면 꿈도 못 꾸는 일이었을 텐데. 안면을 튼 것만으로 감격해서 울었을 거다.
“은찬 씨, 표정이 안 좋아요. 무슨 일 있어요?”
“네? 아… 제 표정이 많이 별로였나요?”
나중에 표정 관리 하는 특훈이라도 받든가 해야지. 현주인, 도이선, 서주혁, 그리고 리온이도… 멤버 중에 독설가는 많으니까 걔네한테 부탁하면 된다.
“근심이라도 있는 것 같아 보여요. 은찬 씨 표정이 안 좋으니까 나도 기분이 안 좋네.”
“네? 선배가 왜……! 저 지금 기분 완전 좋아요!”
은찬의 반응에 무영이 손등으로 입을 가리고 살짝 웃었다.
“은찬 씨는 거짓말이 서툴다니까. 그냥 걱정돼서 그랬어요. 무슨 일이라도 있어요?”
“아…….”
‘선배한테 말씀을 드려볼까?’
당연히 현주인의 이야기를 꺼낼 생각은 추호도 없다.
하지만 가을이의 이야기는 익명으로 물어봐도 괜찮지 않으려나. 일단은 나보다 아이돌 선배시니까 좋은 조언을 주실 수도 있잖아. 소년미 리얼리티에서도 선배는 멤버들의 고민을 자주 들어주는 편이었고.
현주인의 믿지 말라는 말이 여기에 해당될 것 같지도 않다. 그냥 가요계 선후배 사이의 평범한 대화잖아?
‘선배는 톱급이니까. 확실히 생각하시는 게 다르겠지.’
다양한 상황을 나보다 많이 겪어봤을 터다. 특히 아이돌로서는 대한민국 내에서 다른 사람과 견줄 자가 없는 ‘그’ 백무영이니까.
“같은 멤버가 춤 때문에 많이 속상해해서요. 정말 열심히 하는데 마음처럼 잘 안 되나 봐요. 보는 제가 안타깝고… 신경이 쓰여서.”
“아아… 아까 그분이신가?”
“선배는 이럴 때 어떻게 하셨어요?”
은찬의 질문에 무영의 표정이 묘하게 굳었다. 다만 아주 찰나의 순간이었고, 캔 커피를 한 모금 마시는 사이 선배의 표정은 다시 원래의 온화한 표정으로 돌아와 있었다. 정말 1초 안에 바뀌는 표정 변화였다.
보통 사람이었으면 눈치채지 못했을 정도로 잠깐이었다. 은찬이야 무영만을 바라보던 시절이 한참이었으니 눈치챌 수 있었지만.
‘혹시… 다른 소년미 선배님들이랑 좋지 않게 끝난 건가?’
전과 달리 재계약 없이 해체하셨으니 그럴 가능성도 적지 않다. 그런 거라면 내 실수다. 은찬이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억지웃음을 지었다.
“아, 물론 백무영 선배는 전부 다 잘하셨겠지만요! 하하…….”
무영은 짐짓 고민하는 듯 은찬을 마주 보던 시선을 살짝 좌측으로 두었다. 잠시간의 정적 후, 무영이 밝게 내린 답변은 은찬이 원하던 답변과는 조금 다른 쪽이었다.
”…일단 그룹이 잘되는 수밖에 없겠죠?”
‘무슨 소리야?’
완전 동문서답인데. 선배 딴에는 저게 해결 방안인 건가. 긍정적으로 생각을 해보려 노력해도 난감한 답변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은찬이 무의식적으로 되물었다.
“네?”
“보통 그룹이 잘되면 목표도 생기고, 그런 실수쯤은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 주니까. 그것보다 은찬 씨 저번에 MC 잘 맞았어요?”
“아, 네… 다들 많이 도와주셔서…….”
좀 큰 그림을 보고 말씀하신 건가 싶었는데 그런 깊은 생각을 할 새도 없이 대화 주제가 바뀌었다.
‘이게 본론이셨나 보네.’
애초에 할 얘기가 있다고 날 부르신 거니 내 질문은 가볍게 넘길 만하지.
“혹시 그거, 계속할 생각 없어요?”
은찬이 놀란 듯 무영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시선을 피하지 않는 무영의 눈빛이 꽤나 진지해 보였다. 은찬은 이내 고개를 살짝 떨구곤 손을 휘휘 저으며 더듬더듬 말을 이었다. 이미 귀 끝은 빨개진 채였다.
“에이, 제가 감히 어떻게…….”
“은찬 씨 말대로 주변 평가도 괜찮았고, 반응도 좋던데요. 마침 제가 곧 영화 촬영 들어가야 해서 하차할 예정이라…….”
“네?! 선배 영화 찍으세요?”
이런 과분한 권유를 받은 것도 중요하지만 선배가 아이돌 활동보다 연기에만 전념한다는 게 은찬에겐 더 큰 소식이었다. 이제 무대에 선 선배 모습은 못 보는 건가. 묘하게 상심한 은찬이 점점 쪼그라들면서 아쉬움 듬뿍 담긴 개미 같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럼 이제 배우로서의 선배만 볼 수 있으려나… 아! 일단 축하드려요.”
무영이 미소로 대답을 대신하는 사이 휴게실 바깥에서 시끄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은찬아, 어디 있냐~!”
매니저 형의 목소리였다. 날 찾는 걸 보니 필히 자리를 뜰 시간이 됐거나, 뭔가 공지 사항이 있는 듯했다. 그렇지만 선배와 대화를 나누던 참이라 함부로 자리를 뜰 수 없었다.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말하기 위해 문을 열려던 찰나였다.
”선배, 저 잠시만요!”
자리에서 일어나기 무섭게 목에 압력과 통증이 느껴졌다. 목젖을 강하게 압박하는 줄에 은찬이 반사적으로 고통 섞인 기침을 내뱉었다.
“컥!”
묵주반지가 달린 목걸이 줄이 목을 압박하고 있었다.
‘뭐, 뭐야… 일어나면서 어디 걸렸나?’
당황하여 고개를 돌리니 백무영 선배가 뒤에 가까이 붙어 있었다.
‘……?’
백무영 선배의 손엔 내 목걸이 줄이 잡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