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ee hearts in failed idol’s eyes RAW novel - Chapter 5
5. 하트 보인 적 있으신 분?(5)
은찬은 우선 꼭 바꿔야 할 몇 가지를 떠올렸다.
우선 첫째, 현주인의 존재는 일단 보류.
배우 활동에 전념하는 것과 아이돌로 데뷔하는 것 사이에서 갈등하던 현주인에게 아이돌 하자고 설득했던 게 나였다.
데뷔조가 현주인을 제외한 6명으로 정해지자, 나는 대표님에게 무릎이라도 꿇을 기세로 현주인도 같이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데뷔조에서 떨어지자마자 아쉬울 거 하나 없이 배우로 노선을 정하려는 현주인을 돌려세워 같이 아이돌 해보지 않겠냐고 설득했고 결국 데뷔에 성공했다.
다만 문제는 그 현주인이 데뷔 초반부터 사생 친목질 논란이 크게 터져, ‘얼굴 감상하기엔 괜찮지만 내가 좋아하기에는 꺼려지는 아이돌’로 이미지가 굳혀져 버린 것이었다. 월등히 잘난 얼굴 덕에 입덕문을 담당했던 멤버라 타격 또한 꽤 컸다.
이후에도 계속되는 스캔들과 무대 불참 등으로 인해 ‘입덕은 현주인, 탈덕도 현주인’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상황이 악화되었고.
그래도 사생 친목질 논란만큼은 날조가 99%여서 마냥 현주인 탓만 할 건 아니었다. 나 역시도 이것만큼은 현주인 잘못이라고는 생각 안 하고. 다만 이후 반응이 좀 사람 돌게 했지.
회귀 전에는 이미 지나간 일이었기에 어떻게 할 수 없었지만 이번에는 미래를 어느 정도 알고 있으니 앞으로의 일을 바꿀 수 있을 터였다.
만약 현주인이 아이돌로 데뷔하지 않는다면 더 안심이겠고.
둘째, 그룹명으로 칠월칠석만은 피한다.
그룹명이 특이하다 보니 임팩트는 있었다.
‘문제가 있다면… 임팩트만 있다는 거였지.’
저걸로 조롱당했던 과거만 생각하면 지금도 눈앞이 흐려진다. 머리도 어지럽고 속도 안 좋아지는 거 같다고.
다른 그룹명이 당장 떠오르진 않았지만 대충 영어 몇 개 갖다 붙이는 게 이것보다는 낫겠다 싶을 지경이었다. 우선 데뷔조 공개까지 한 달 정도는 여유가 있으니 차근차근 생각해 보기로 했다.
셋째, 데뷔곡 컨셉 선택에 신중해야 한다.
‘다시는 아무거나 괜찮다는 소리 하면 안 돼. 오작교가 생생하다.’
바야흐로 데뷔 전, 데뷔곡 컨셉이 나왔으니 골라보라고 대표님께 호출당했을 때.
‘저는 아무거나 괜찮습니다’라고 했던 게 제일 후회스럽다. 그때는 잘 몰랐지만 우리 대표님은 생각보다 곡에 대해 감이 없었다. 확실히 신생은 신생인 이유가 다 있다.
아무튼 그룹명 ‘칠월칠석’에 데뷔곡 ‘오작교’가 되는 참사만큼은 무조건 피해야 했다.
‘그 외에 주의할 만한 건… 함정원 정도려나.’
칠월칠석 활동 당시, 그래도 데뷔 초창기까지만 해도 팬이 아주 없지는 않았다.
현주인이 입덕문에서 입덕 장벽으로 바뀌긴 했다지만 ‘신이 직접 강림한 듯한 외모의 미남’, 줄여서 ‘신강남’으로 불릴 정도로 현주인의 외모는 모두가 인정했다. 현주인은 괜찮은 관상용 멤버로 두고 나머지 6명만 좋아하는 팬들도 다수 존재했다.
다만 칠월칠석 데뷔 1주년이 다가오기도 전에 모 방송사에서 남자 아이돌 데뷔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방영되었고, 그 프로그램은 ‘아이돌계의 생태계 파괴종’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크게 히트를 쳤다.
‘나도 무심코 한번 봤다가 중간부터는 과몰입했지… 그때 울지 않았나?’
하지만 얼마 뒤 순위 조작부터 소속사 비리까지 터져 버려서 데뷔와 동시에 해체되었다.
함정원도 그 프로그램 출연자 중 한 명이었는데 최종 순위 5위로 개인 팬덤이 어마어마했다. 데뷔가 코앞에서 엎어지자 눈이 돌아간 함정원은 출연자 중 몇 명을 우리 회사로 데려와 데뷔하게 해달라며 대표님을 설득했고, 과몰입 시청자 중 한 명이었던 최 이사님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유토피아로 데뷔하는 동시에 히트를 쳤다.
여기까지만 보면 별 트러블 없이 지나갈 수 있었다.
문제는 함정원이 나를 싫어했다는 것이다. 그것도 엄청!
과거에 왜 그런 건지 이유를 물어보기도 했지만, 답은 없었다.
오히려 그 이후로 더하면 더했지, 상황이 나아지진 않았기에 결국 내 쪽에서 먼저 피했다.
하지만 피하면 피할수록 함정원이 SNS나 방송 등에서 칠월칠석을 언급하며 나를 교묘하게 살살 긁어댔고, 이에 현주인도 짜증이 났는지 그대로 맞받아치며 개판이 났다. 그 덕에 팬덤 간 기 싸움에 질려 버린 팬들은 연달아 칠월칠석을 탈덕했고, 이후 현주인의 3개월 3스캔들까지 더해지면서 유입은 0에 수렴하게 되었다.
‘문제는 이걸 어떻게 막느냐인데…….’
현재 연습생인 함정원과는 데면데면한 사이었다.
당연한 게 함정원은 열여섯이고 나는 스물하나. 다섯 살이나 차이가 났고 연습 스케줄도 거의 안 겹쳤다. 자율 연습 때나 가끔 어색하게 인사하는 정도?
‘프로그램에 내보내지 말자고 회사에 말이라도 해볼까…….’
아니, 이 방법은 내가 생각하기에도 별로다.
프로그램에 비리가 많으니 연습생을 내보내지 말자고 하기엔 조금 애매하다. TOP7은 데뷔만 엎어졌지, 결과적으론 다른 아이돌들이 겪어보지 못할 짧은 시간 내에 어마어마한 개인 팬덤을 확보할 수 있었으니까.
함정원이 인기를 얻게 된 계기이기도 해서 그걸 말리기는 뭐했다. 내 인생 편하자고 남의 인생 앞길을 막을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다고 은찬이 해당 프로그램에 나가는 건… 싫었다.
일단 순위로 경쟁하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라는 시스템부터가 성향과 맞지 않았다. 게다가 TOP7은 데뷔하지 못하지만 현재 소속사에서는 데뷔가 코앞에 있었다.
물론 이게 흔히들 말하는 성공하는 방법과는 멀다는 걸 은찬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왕이면 우리 애들이랑 같이 데뷔하고 싶지. 당연히.’
현주인은 배우로, 그리고 그를 제외한 멤버들과 함께 6인조로 팀을 만들어서 7명 모두가 성공하고 싶었다.
애초에 현주인은 배우에 뜻이 있어 연습 불참, 무대 불참, 이후에는 앨범 활동 불참의 순서를 밟아 5년 차쯤엔 객원 멤버 취급을 받았으니.
‘6명은 아이돌로서 성공하고, 현주인도 배우로서 성공을 하면 되지 않을까?’
굳이 같이 데뷔해서 같은 길을 걸을 필요는 없다. 따로 가도 7명 모두 행복할 수 있다.
현주인이 밉기는 해도 지난 몇 년을 봐오며 미운 정이 들긴 했는지 얘가 망하는 걸 보고 싶지는 않았다.
은찬의 머릿속에는 음악방송 방청, 팬 사인회, 악수회, 셀카회 등을 할 때마다 와주었던 칠월칠석의 팬덤, 까치들의 얼굴이 아직도 생생했다.
시간이 흐르며 팬 사인회에 와주는 팬들도 100명도 될까 말까 한 인원이 되어버렸고, 그렇게 몇 년이 지나다 보니 자연스럽게 얼굴도 외워졌으니까. 그때 우리 팬들 다시 볼 수 있으려나. 볼 수 있으면 좋겠는데.
은찬이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다 한숨을 내쉬었다. 하늘도 내가 얼마나 안쓰러웠으면 이런 기회를 준 건지 모르겠다. 그래도,
‘…이왕 기회가 온 거, 놓치고 싶지는 않아.’
내 기억이 맞다면, 내일 중 나는 대표님께 호출당한다. 데뷔 관련한 일로.
‘말 잘해야 돼.’
그 전까지 어떻게든 7인조보다는 6인조가 낫다는 주장에 대표님께서 수긍하실 만한 이유를 생각해 내야 했다. 어설프게 말실수를 하거나 잘못된 선택을 했다가는 모든 게 어긋난다. 내게 있어 이건 생존 전략에 가까웠다.
이번에는 성공해 보고 싶다.
소위 말하는 톱급, 1군까지는 아니어도 길을 지나가던 누군가가 날 알아볼 수 있는 정도면 된다.
은찬에게 있어서 성공은 ‘적자를 벗어나 최저시급 정도만 적당히 벌 수 있는 것’, 그 자체였다. 애초에 하고 싶어서 시작한 일로 돈까지 많이 벌겠다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으니까.
아이돌이, 너무 하고 싶다.
한번 경험했던 아이돌 생활이 처참할 정도로 망했으면서도 여전히 대중 앞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게 좋았다. 기회만 있다면 언제라도 무대 위에 서고 싶었다.
이번에는 욕심내 보고 싶다.
‘노력하는 건 잘하잖아.’
아역배우 출신인 현주인,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우승해서 이미 데뷔조에 한 번 들었던 서주혁을 비롯한 다른 멤버들보다 잘난 점이라고는 내게 없었지만.
그래도 노력하는 건 자신 있었다. 과거에는 장점이 그것밖에 없었지만, 이제는 미래의 방향도 알고 있으니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예전처럼 순응하는 삶을 살지 않으리라고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그러니까 반응만 보고 자자.’
주먹을 불끈 쥐고 각오를 가슴에 묻은 은찬은, 다시 핸드폰을 오른손에 쥐고 SNS의 구독 계정에 접속했다. 6년간의 경험으로 보건대, 아이돌 판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확인하기 위한 수단으로는 이것만 한 게 없었다.
“엑?”
방금 했던 다짐이 무색하게 이 안에서는 또 난리가 난 것 같지만.
“뭐야, 이거?”
구독 계정의 타임라인을 조금 내리자마자 발견한, 눈에 띄는 게시글 하나. 은찬이 눈을 벅벅 비볐다.
‘하.’
첨부된 사진도 어이가 없는데 내용은 화룡점정이다.
누가 뒤통수를 때린 듯이 징징 울리는 골에 은찬이 눈을 질끈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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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잡이잡덕녀 (~6/30 동결! 중간고사 치고 올게여)
@wkqejrdla
내 연습생 친구가 보내줬는데 ㅎㅈㅇ 옆에 비공개 연습생인가 본데?
둘이 친한 것 같다고 했고 비주얼합 좋은 듯 곧 데뷔한대 ㅇㅇ
구씹 아님 인증 가능 좃소에서 이 정도면 ㅆㅅㅌ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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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ST : ㅎㅈㅇ? 얘한테 다 묻힐 거 같지 않냐 내 케이팝 경력이 말함
ㄴ 옆에 있는 애도 존나 잘생겼는데? 비공개인가?
ㄴ ㄹㅇㅋㅋ ㅎㅈㅇ이 정석 미남이라면 얘는 선이 좀 부드러운 느낌
-REPOST : 오 개잘생김ㅋㅋ 저 정도면 비주얼은 끝난 거 아냐?
ㄴ 저 두 명 같은 그룹이면 미닛츠에 내가 뼈 묻는다
ㄴ 옆에 있는 애도 배우 얼굴인데? 배우 지망생인 건 아니냐
ㄴ ㅆㅂ 안 된다고 요새 케이팝에 인물 없다고ㅡㅡ
—–
“뭐라는 거야?”
다른 것보다도, 사진이 환장할 노릇이다.
액정에는 대문짝만한 현주인의 모습과, 거기에 반쯤 가려진 내가 대화를 하는 모습이 떠 있었다.
머쓱하게 웃는 얼굴이 화기애애하게 대화하는 모습처럼 날조가 되다니.
게다가 뭐……? 배우 지망생? 나는 죽어도 그럴 일 없다.
“이래서 조작이 쉽다는 거라니까. 말만 갖다 붙이면 다 말이 되는 것처럼 보인다고. 역시 카더라는 믿으면 안 돼.”
SNS상에서 사진으로 곡해하는 일이야 이미 몇 번이나 겪어봤으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하필 나와 현주인을 엮는 글이라니. 그저 헛웃음만 나왔다.
‘…미치겠네. 언제 찍힌 거지?’
급격히 아파오는 머리에 은찬이 인상을 찌푸렸다. 미간 사이를 두 손가락으로 주무르며 사진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다.
문득 장면 하나가 뇌리를 스쳤다.
아, 아까 평가가 끝나고 아주 잠깐 현주인과 대화를 했을 때인가.
‘나야 옷이 몇 벌 없어 거기서 거기라지만, 현주인은 아까 입었던 옷이랑 똑같네.’
그런데 오늘은 데뷔 전 월말 평가라 내부에는 연습생들밖에 없었는데 이 사진이 어떻게 유출된 거지?
[…내 연습생 친구가…….]다시 한번 150자 정도 되는 글을 읽은 은찬이 혀를 찼다.
아, 누가 몰래 찍었구나.
다만 모든 연습생과 친한 게 아니라 인물을 특정하기에도 곤란했다.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 싹 다 틀린 내용으로 글을 올렸을 줄이야. 완전 소설이잖아.
“맞는 말 하나도 없거든.”
딱 하나만 인정한다. 비주얼. 현주인이 잘생기긴 엄청 잘생겼지.
하지만 친한 것도 아니고, 같이 배우 할 것도 아니야. 누군진 모르겠지만 감은 없군.
‘괜히 심란하게… 쓸데없는 걸 봤잖아.’
은찬은 답답한 속을 손바닥으로 꾹꾹 문지르며 핸드폰을 잠금화면으로 돌렸다.
SNS상에서 사진 한 장으로 날조하는 거야 신물 날 정도로 봐온 데다, 과거에 더한 것도 너무 많이 겪은지라 딱히 신경 쓸 일이 아니긴 했다. 저 글쓴이한테 사실이 뭔지 알려줘야겠다는 생각만 들 뿐.
오늘 하루를 겪으며 알게 된 사실 하나.
흘러가는 상황 속에서 내가 특이 행동만 하지 않으면 큰 틀은 과거 그대로 흘러가는 듯했다. 오후에 있었던 마지막 월말 평가가 그 증거다.
그리고 전에는 보지 못했던 목격담이 SNS에 올라온 걸 보면, 딴죽을 걸었을 때 그로 인해 바뀌는 것들이 꽤 많은 듯했다.
손짓 하나 말투 하나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하나. 꽤 까다로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