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ee hearts in failed idol’s eyes RAW novel - Chapter 50
50. 새로운 활용법(3)
백무영 선배와 눈이 마주쳤다. 아까와 마찬가지로 온화한 표정인데도 그 속의 눈빛은 서늘했다. 눈을 마주치고 있는 중 온몸에 끼치는 차가운 기운에 등 뒤가 오싹해지며 소름이 돋았다.
“선, 선배?”
은찬과 눈이 마주치기가 무섭게 무영은 허공에 양손을 펴고 손바닥을 보였다. 아직도 목이 칼칼했다. 목걸이 줄의 압박이 남아 있는 것 같아 반복적으로 목 부근을 만지작거렸다.
“아, 미안해요. 괜찮아요? 은찬 씨 어깨를 붙잡는다는 게 급하다 보니 그만.”
“아…….”
뭐라 대꾸할 말이 없었다. 선배의 말이 사실이라고 믿고 싶다. 하지만 이성적으로 핑계라는 것도 모르지 않는다. 더군다나 저 잘난 얼굴로 걱정스럽다는 표정을 짓는데, 얼굴만으로도 신뢰도 풀충전이다.
‘물론 말이 그렇다는 거지. 내가 바보도 아니고…….’
일부러 그랬다는 걸 눈치 못 챌 수가 없는데. 힘을 더 세게 줘 당겼으면 문제가 생겼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더군다나 목을 쓰는 가수니까.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잖아.’
아주 짧은 몇 초 사이인데도 온갖 감정들로 머리가 복잡했다. 백무영 선배한테 받을 만한 감정이 아니다. 순간적인 공포, 위압감, 당황스러움 같은 건. 감정에 너무 많은 이름이 붙었다.
회귀 후 거의 처음 느껴보는 본능적인 감정이라 은찬이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괜찮아요? 정말 미안해요.”
백무영 선배는 직접 손바닥을 비벼 양손으로 내 목을 감쌌다. 따뜻한 기운이 목에 닿았는데도 불편함이 가시지 않았다. 꼭 찝찝함이 기름 찌꺼기처럼 엉겨 붙은 기분이다.
“어떡해, 자국이 좀 남았네… 살짝 붉어진 정도라 곧 사라질 것 같긴 한데 미안해서 어떡하죠.”
“아, 괜찮아요…….”
갑자기 이런 행동을 하신 이유를 종잡을 수 없었다.
‘내가 선배한테 실수라도 했던가.’
그렇다기엔 지나치게 잘 챙겨주는 면모가 있다. 아니면 역시 너무 과하게 다가가서 부담스러우셨나? 그것도 아니라면 내가 선배를 의심하고 있다는 사실이 눈에 보였던 건가?
“아프진 않고?”
“네, 정말 괜찮아요.”
“다행이네.”
어쨌든 계속해서 걱정을 해주는 백무영 선배에게 더 이상 걱정을 끼치고 싶진 않았다. 부담스럽기도 하고, 조금 무서웠다. 이제 목에서 느껴지던 통증도 많이 옅어졌으니 표정을 굳히고 있을 필요도 없었다.
‘나 예쁨받고 있던 게 아니라 미움받고 있던 걸지도…….’
며칠 전이라면 실수라는 선배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겠지만, 지금은 그렇게 순진하게 생각할 수 없었다.
현주인의 ‘백무영을 믿지 말라’라는 말 때문이라기보다도, 내가 애써 부정하고 있었던 쎄한 감정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지금은 눈앞에 완전히 드러나고 있었다.
‘여태 나한테 잘해줬던 행동들은 연기였던 건가?’
선배가 사람이 좋긴 해도 그 정도로 귀찮은 일에 노력을 들일 사람은 아닐 텐데. 이건 마치 내가 알고 있던 백무영 선배가 아니라, 아예 다른 사람이 백무영 선배의 탈을 쓴 것 같다.
‘어쩌면 그동안 콩깍지가 껴서 놓친 걸 수도 있고.’
팬의 입장에서 동경하는 대상을 보는 시선은 일반인과 다를 수밖에 없다. 안구에 막이라도 씐 듯 객관성 떨어지는 판단을 한다는 것 정도야 나도 인지하고 있다. 내가 선배를 봐왔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런 객관성 떨어진 판단 중에는 진실도 섞여 있기 마련이다.
“아무튼 은찬 씨 하고 싶단 말 한마디면 MC 맡을 수 있게 해놨으니까 생각 잘해봐요.”
“저한테 왜…….”
봐, 지금도 엄청나게 신경 써주시고 있잖아. 이건 은찬이 알고 있던 무영의 모습이 맞다. 친절하고 또 자기 사람 잘 챙기는.
‘선배 원래 성격은 이런 건가?’
겉보기엔 누가 봐도 친절하지만 깊게 들어가 보면 묘하게 쎄한 게 영화에서 나오는 최종 흑막처럼 보였다. 현주인은 이런 백무영 선배의 성격을 알고 있던 걸지도.
“MC 자리 별로예요?”
“아, 아뇨! 그건 아닌데…….”
인지도가 필요한 아이돌이라면 음악방송 MC 자리를 거절할 리가 없다. 나도 특별 MC로 1회 출연했던 것뿐인데도 SNS에서 언급량이 눈에 띄게 늘어났으니까. 게다가 직접 말씀까지 해주셨다니, 감동받아 마땅한 일이고, 감사해야 하는 일이다.
그렇지만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엔 걸리는 점이 많다. 현재 본인의 소속사에서도 직책이 있는 선배이니만큼 여러모로 입김이 세긴 할 테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차기 MC 자리까지 확정시킬 정도인가? 내가 그만큼 MC를 잘한 건 아닌 것 같은데.
“은찬 씨 하고 싶어 했잖아요.”
“네… 그건 맞는데…….”
‘…혹시…….’
무영의 거절하기 힘든 제안에 당황한 은찬이 머리를 굴리는 사이, 매니저의 우렁찬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은찬아! 어디에 있냐! 급하다~!”
“이만 가봐요. 찾는 것 같은데.”
복잡했던 머리가 그 목소리 하나에 잠시 날아갔다. 지금 당장 이동해야 하는 모양이었다. 은찬이 입술을 달싹이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자 무영이 부드럽게 웃었다.
“연락처 알죠?”
“네, 선배. 이렇게까지 챙겨주실 건 없는데… 너무 감사합니다! 아, 그리고 오늘도 너무 잘생기셨어요! 얼굴에서 빛이 나십니다! 그럼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은찬은 허리를 90도로 숙여 무영에게 인사를 건네고 문밖으로 뛰어나갔다. 나가면서도 의심스러운 태도를 보이기보단 최대한 지금 선배에게 가지고 있는 좋은 감정을 보이며 휴게실을 나왔다.
‘그냥 조금… 못된 구석은 있어도 여전히 좋은 사람이면 좋겠는데.’
혼란스러웠다. 백무영 선배의 태도가, 성격이, 전부.
***
“형, 나 주혁이한테 연습 도와달라고 했어. 도와준대.”
“오! 진짜? 다행이네.”
“…조금 불편하고 빡셀 것 같긴 한데 다시는 실수하기 싫으니까…….”
“그래도 그만큼 완벽해질 테니까. 잘 생각했어.”
대기실에 돌아오자마자 가을이 반겼다. 이미 멤버들은 사복으로 갈아입은 상태여서 무대의상을 입고 있는 건 나밖에 없었다. 스타일리스트 누나가 재빨리 사복을 가져다주었다. 빨리 갈아입으라며 눈짓으로 성화였다. 그렇게 재빠르게 옷을 갈아입고 주차장으로 이동했다.
차로 이동하는 중 옆자리의 가을이 눈에 띄었다. 등받이에 머리를 기대고 잠든 가을은 표정부터 시무룩함이 뿜어져 나왔다.
‘말은 그렇게 하더니만… 완전 기가 죽었네.’
안쓰러운 마음에 은찬이 어깨를 살짝 토닥였다. 가을은 조금 움찔하더니 다시 잠에 푹 빠져들었다.
‘피곤한데 잠은 안 오고…….’
은찬도 창틀에 머리를 기댔다. 밖을 멍하니 바라보다 이제는 멀쩡해진 목을 만지작거렸다.
‘애들이 별말 없는 걸 보니 선배 말대로 자국은 사라졌나 봐.’
창문에 슬쩍 비치는 모습을 보니 목에는 옅은 자국조차 없었다. 목에 매달린 묵주반지를 들어 물끄러미 살펴봤다. 목걸이 줄을 얇은 줄로 한 게 천만다행이었다. 굵었으면 질식했을 수도.
‘그나저나 MC 자리라니, 그렇게 과분한 자리를 왜 제안하신 거지?’
행동이 꺼림칙한 건 그렇다 쳐도, 기회는 기회다.
하지만 괜히 이 기회를 덥석 받아들였다가 오히려 선배의 미움을 더 사게 되는 건 아닐지 걱정도 된다. 왜인지는 몰라도 자꾸만 도움을 받으면 안 될 것 같다. 본인이 제안한 거지만 내심 수락하지 않길 바라는 걸 수도 있으니까.
‘이것도 빚이지. 선배한테 지는 빚.’
결국에는 선배의 그늘에서 못 벗어날 수도 있다는 거다. 피하고 싶을 때 피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 ‘백무영’의 입김이니까. 촉이란 건 빅데이터에 의한 뇌의 경고라고 누가 그랬는데.
‘그래도 일단 해주신 조언은 맞는 말이긴 해.’
-일단 그룹이 잘되는 수밖에 없겠죠?
제네시스를 띄워라.
틀린 말이 아니다. 자리를 만들어야 그에 걸맞게 따라오는 사람도 있다. 회귀 전 가을이를 생각한다면 가을이가 딱 그런 타입이고. 팬들이 귀엽다 귀엽다 해주니까 언젠가부터 스스로 귀여운 행동을 자처하던 애다.
무엇보다 은찬의 목표와도 일맥상통한다. 단독콘서트까지 열 수 있을 만큼 인기가 많아지고 멤버들과 오래 활동하는 것도 그룹이 잘된다는 전제가 필요하니까.
‘…그래. 빚이라면 내가 두 배로 갚아주면 돼. 무조건 하는 게 나아’
나의 촉과 현주인의 조언을 무시할 순 없다. 그러나 이런 하늘이 주신 기회를 발로 찰 수도 없으니 이건 내가 처사를 잘해야 한다. 선배의 그늘에 잡아먹히지 않도록, 언제든 대처할 수 있도록. 이제는 사적인 감정을 배제해야 한다.
‘확실히 선배를 경계할 필요가 있겠어.’
은찬이 무릎 위에 올려두었던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예전에 저장해 둔 무영의 연락처를 찾아 메시지창을 띄웠다.
[선배! 말씀해 주신 MC 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내가 알던 선배가 아닌 것도 맞지만, 그게 나한테 유리한 패라면 거절할 필요는 없다.
***
“가을 형, 가요.”
“엇, 너희 연습 가?”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은 가을과 주혁을 본 은찬이 둘 사이에서 기웃거렸다.
‘체력들이 좋다니까.’
피곤할 법도 한데 또 연습하러 가겠다고 하다니. 정말 열정 하나는 알아줘야 한다. 가을을 부르던 주혁이 은찬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갈래!”
“형도 헷갈리는 부분 있으세요?”
“어… 음, 난 감독하면 안 돼……?”
“…….”
주혁의 표정이 의심으로 물들었다. 거짓말하는 건 역시 힘들다니까.
“나도 숙소에 있는 것보단 연습실에라도 있는 게 나을 것 같아서 그래. 보다가 헷갈리는 거 생각나면 바로 물어볼게.”
“…그러세요.”
약간 언짢아 보이는 주혁의 표정을 못 본 체하고 신발을 신었다.
나 또한 머리를 비우고 싶기도 했고, 가을을 쫓아 스탯 분배 가능성에 대한 시험도 해야 했기에 둘을 따라가야 했다. 주혁이가 형인 나나 가을이에게 거리감을 두고 대하는 건 알고 있었다. 주혁이로서는 형들과 같이 있는 자리가 조금 불편할 수도 있겠지만.
‘한 번만 이해해라, 주혁아.’
이거 성공하면 나중에 너한테도 도움이 되지 않겠어?
***
은찬은 연습실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가을과 주혁은 아까 버벅거렸던 부분을 맹연습 중이었다. 주혁의 성격답게 ‘빨리 하고 빨리 끝내자’를 모토로 스파르타식이었는데 쉬는 시간도 없이 연습을 이어갔다.
‘어디 볼까.’
뒤에서 양반다리를 한 채 가을을 지켜보던 은찬이 스탯창을 띄웠다. 그러자 가을의 옆쪽에 선명한 글씨들이 생겨났다.
[ 연가을 ]외모 ★★★★
보컬 ★★★★★
댄스 ★★★
끼 ★★
행운 ★★
‘사실 제일 낮은 것부터 올리는 게 밸런스를 맞추는 데는 도움이 될 텐데.’
이게 내 스탯이었다면 끼나 행운부터 올렸을 것이다. 하지만 가을이가 스트레스를 받는 부분은 댄스이니 그쪽부터 신경 써줘야겠지.
‘이제 이걸 어떻게 해본다……?’
내 스탯을 올렸을 때처럼 가을이의 스탯 중 댄스 부분을 주시해도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설마 안 되나?’
내 스탯들이 풀로 찼음에도 계속해서 스탯 분배 가능 횟수를 획득할 수 있었던 걸 보면 다른 쓰임새가 있다는 뜻으로 치환된다. 스탯 분배 가능 횟수를 시스템이 무의미하게 주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다른 방법이 있을 텐데.’
은찬이 다시 가을의 스탯을 주시했다.
‘왜 안 되는 거야?’
반복적으로 스탯 분배를 시도해도 미동조차 없는 가을의 스탯에 슬슬 짜증이 나려던 찰나였다.
[ system : 해금하시겠습니까? 필요 조건 (★) ]드디어 나타난 시스템창이 이렇게 반가울 데가 없었다.
‘해금?’
해제 조건이 있었던 건가? 그제야 스탯 분배 시도를 멈추고 다시 가을의 스탯을 자세히 살펴봤다.
은찬의 눈이 가로로 가늘어졌다.
‘자물쇠 모양이 있었네?’
좀 더 전체적으로 보니 스탯창 위 전체를 뒤덮은 옅은 자물쇠 모양이 보였다. 지금껏 보이지 않던 광경이었다.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투명해서 어지간히 신경 써서 보지 않는 이상 발견도 못 할 거다. 시력이 나빴다면 영원히 못 봤을 거고. 이렇게 옅은데 어떻게 확인하라는 거야?
‘숨겨놓기도 잘 숨겨놨다. 남한테 줄 생각을 안 했다면 아예 발견하지도 못했을 모양이잖아.’
마치 꽁꽁 숨겨놓으려고 작정한 듯한 모양새였다. 은찬이 발견하지 못했을 때보다 선명해진 스탯창 부분을 다시 살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