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ee hearts in failed idol’s eyes RAW novel - Chapter 61
61. 친해지길 바라(4)
숙소 소파 한쪽에 앉아 영상을 시청하던 은찬의 눈이 댕그랗게 떠졌다. 이미 영상이 끝나 화면에는 검은 화면과 추천 영상만 떠 있는 상태였는데, 그럼에도 은찬의 표정은 심각했다.
‘현주인… 이거 미친 거 아니야? 이래도 돼?’
은찬은 한 손으로 하관을 가리고 크게 뜬 눈으로 눈만 끔뻑였다.
바로 현주인 때문이었다. 영상 맨 처음에 등장했던 현주인 때문에 다른 애들한테는 제대로 집중하지도 못했다.
‘이거 노출 너무 과한 거 아닌가? 이거 나갈 수 있어? 이래도 되는 건가? 아니… 나갈 수 있으니까 편집 안 하시고 내보낸 거겠지만 그래도…….’
물음표 살인마가 된 기분이었다. 머릿속에 그놈의 잔상이 너무 강렬했다.
저번에 목걸이 빌렸을 때 목 라인 넓은 티셔츠를 입고 있긴 했는데 이렇게 적나라하게 나올 줄이야. 놈은 영상 내내 일부러 목과 쇄골 부근을 강조하듯이 자꾸만 화면에 그 부분을 보여줬다. 심지어 고개를 숙여 달랑거리는 묵주반지를 강조하곤 했으니, 은찬으로서는 눈을 벅벅 비빌 일이 맞긴 했다.
‘이러려고 목걸이 빌렸나?’
내 소중한 묵주반지를 그런 이미지 셀링에 이용하다니. 이놈 뭘 잘못 먹었나. 머리 뒤를 한 대 맞은 듯 뒤에서 댕-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지잉-
경악한 은찬이 머릿속으로 현주인의 저의에 대해 추측하며 생각을 조립해 맞춰가던 때였다. 핸드폰 액정 위, 메시지 알림이 도착했다. 은찬의 굳어 있던 안면에 미세한 주름이 생겨났다.
[ 백무영 선배 : 은찬 씨, 다음 주에 시간 되는 날 있을까요? 사전 미팅을 한번 해야 할 것 같아서. ]뮤직센터 MC 건으로 연락 주신 모양이었다. 하겠다고 나서긴 했으나, 확정되었다는 연락 이후 뭐라 확실히 안내된 게 없었기 때문에 막연히 연락만 기다리는 중이었다. 아직 선배의 영화 촬영 일정에 대한 게 언론에 공개되지 않은 터라 하차 시점도 짐작할 수 없었으니까. 은찬이 엄지손가락으로 타이핑하며 답변을 적었다.
[ 막방 해서 아무 때나 괜찮습니다! 선배 편하신 시간에 맞추겠습니다 ㅎㅎ ]선배와 후배, 톱스타와 신인의 입장에서도 이쪽에서 맞추는 게 맞다. 다행히 아직 다른 스케줄도 없었으니 내 쪽이 선배에 비하면 한참이나 널널하다.
[ 백무영 선배 : MC는 아마 제가 알기론 12월 첫째 주부터 진행하시면 될 것 같아요. 그럼 매니저분 통해 정확한 미팅 시간 공지해 드릴 테니 부담 갖지 마시고 오세요^^ ]은찬이 옅은 미소를 띤 채 답장을 작성했다. 이 정도면 공백기 없이 눈도장을 찍을 수 있는 기회인데도 역시 조금은 마음이 쓰렸다. 다음 주에 선배를 만나면 갖고 있는 앨범에라도 사인을 받아야 할 것 같기도 하고.
[ 네! 감사합니다! 선배, 다음 주에 봬요! 편안한 저녁 보내세요 (이모티콘) ]달 이모티콘과 함께 감사 인사를 전송한 은찬이 미묘한 마음에 입안이 씁쓸해질 찰나였다. 뒤에서 현관문 도어락이 잠기는 소리와 함께 별의 목소리가 우렁차게 울렸다.
“형, 밥 왔어!”
때마침 배달 음식이 도착했다. 딱 생각이 많아지는 중이었는데, 적절한 타이밍이었다. 은찬은 고개를 쳐든 채 양손에 배달 음식을 들고 들어오는 별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었다.
“어, 잠깐만!”
별이 식탁 위에 배달 음식을 두고 하나씩 풀어가기 시작했다. 그런 별을 지켜보던 은찬이 중요한 걸 깨달은 듯 양손을 짝 소리 나게 맞부딪혔다. 그러고는 후다닥 방으로 들어가더니 서랍을 뒤져 삼각대를 꺼내 왔다.
“와… 아주 철저하셔요, 리더님.”
“그렇지? 까먹으면 안 되지.”
인플루언서 시절부터 라방을 한두 번 해본 게 아니라 익숙할 텐데도 분위기를 맞춰 띄워주는 별에 은찬이 실실 웃었다.
별이 도착한 배달 음식을 깔끔하게 테이블 위에 정리하는 동안 은찬은 삼각대에 핸드폰을 고정시켰다. 다행히 멤버들 또한 밖에서 외식을 하거나 방에서 간식을 먹을 거라며, 저녁 방송에 대해서는 불만이 없었다. 방송을 켜기 바로 전 셀카 모드로 얼굴을 확인할 그때, 메시지가 도착했다.
“대표님한테 연락 왔네?”
“으으, 왜?”
“읽어줄게.”
별이 고개를 끄덕였다.
“얘들아, 이번 활동도 수고했다! 이번 활동엔 언급이 확 는 게 눈에 띄더구나. 앞으로도 잘 부탁하고 연말 기념으로 12월에는 일주일간의 휴가도 생각하고 있으니까 연습에 정진해 주길 바란다~ 자랑스럽다, 큭큭.”
“말투는 안 따라 해도 됐을 것 같아, 형.”
“똑같지?”
“응. 너무 똑같아서 기분 언짢아졌어.”
그나저나 휴가라니.
활동하면서 정식으로 받아본 휴가는 은찬으로서도 처음이나 다름없었다. 회귀 전엔 눈에 띄는 성과를 내지 못했기에 보상 휴가도 없었을뿐더러 망한 이후에는 매일매일이 휴가나 다름없었으니까.
‘딱히 할 것도 없긴 한데.’
돌아갈 본가도, 아직 여행을 갈 만한 경비도 없기에 막상 할 건 없는데도 휴가란 말에 괜히 가슴이 설레긴 한다. MC 활동이야 준비해야겠지만 다른 거라면 생각을 미뤄두고 어느 정도 편하게 있을 수 있을 테니까.
테이블 위를 전부 세팅하고 방송 시작 버튼을 눌렀더니 시청자 수가 빠르게 증가하기 시작했다. 별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아까 지니들이 이거 많이 추천해 주시길래 저희가 그대로 시켜봤어요. 음… 로제 떡볶이에 중국 당면하고 김말이랑 컵밥 추가! 이게 그렇게 맛있다면서요?”
“둘 다 결정 장애라서 좋지, 뭐. 배달 음식 진짜 오랜만이다.”
은찬이 젓가락을 양옆으로 가르고 떡 하나를 집어 입에 넣었다. 그러고는 입을 오물거리며 얼굴을 앞으로 빼 채팅창을 천천히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저희 자컨 보셨어요?”
배고팠던 모양인지 밥 먹느라 바쁜 별을 대신해 은찬이 자연스럽게 물었다. 팬들의 채팅이 계속해서 올라오는데 그냥 친구와 대화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재미있어야 한다는 강박이 없는 대화.
“그거 재밌죠?”
[ 아니 ㅋㅋㅋㅋ 너희 너무 웃겼어 캐릭터성 뚜렷해 성격 보여 ] [ 별이는 근데 어쩌다 김광춘 걸린 거야ㅠ ㅋㅋㅋ 근데 좋아하던 게 제일 웃겨 ]쭉 올라오는 댓글을 읽으며 떡볶이를 입에 쏙 집어넣은 은찬이 미소 지었다.
“이번에 다들 자기 모습 보여주려고 애썼다고요~ 아, 빨리 3편도 보셨으면 좋겠다. 업로드되면 꼭 보세요. 애들 정말 웃겼어요.”
“저 목도리 받았어요, 대표님한테!”
별은 한참을 먹다 말고 팬들에게 대표님께 받은 선물을 자랑하려는지 후다닥 일어나 제 방으로 쏙 사라졌다. 어찌나 빠른지 손에 목도리를 들고 나온 별은 목도리를 목에 둘둘 둘러 보이더니 그것을 자랑하기 시작했다.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진짜 맘에 드나 봐 ] [ 김광춘 돈 벌어서 애들 선물 많이 해줘라 ㅇㅇ 저렇게 좋아하는데ㅋㅋㅋ 생각해 보니 우리 돈이겠지만 그러라고 주는 거니까 ]별은 한참을 화면에 목도리를 자랑하더니 바닥에 풀어두고는 다시 밥을 먹기 시작했다.
[ 그래서 진 사람들 벌칙은 머야? ]“아! 그거 벌칙…이랄 것도 딱히 없긴 해요. 저희가… 아, 이거 안 되지? 3편 안 올라와서. 비밀이에요, 비밀. 지니들, 저 아무 말도 안 한 거예요. 지금부터 다 잊어주세요…….”
나도 모르게 오늘 촬영한 내용을 입 밖으로 낼 뻔했다. 당황한 은찬은 뒷수습이라는 명목하에 적당한 애교로 상황을 무마시켰다. 다행히 댓글에서도 은찬을 안심시켜 주려는 듯 동조해 주는 분위기였다.
[ 은찬아 근데 주인이랑 목걸이 맞춘 거야? ]그 이후로도 자체 콘텐츠에 대한 대화를 몇 마디 더 나누었는데, 유독 눈에 띄는 댓글이 하나 있었다. 튀김을 떡볶이 국물에 적셔 베어 물던 은찬이 눈썹을 움찔거렸다.
“아? 주인이랑 맞춘 거냐고요? 이거? 아니에요. 제 거예요!”
“맞아. 그거 은찬 형 잘 때도 하고 있는 건데.”
“맞춘 거 아니에요. 예쁘다고 하길래 하루 빌려준 거지! 네. 예쁘다는데 기분 좋잖아요.”
사실은 ‘소중한 건데 어떻게 똑같은 걸 맞추냐’라는 말까지 하고 싶었지만.
소중한 거라고 언급했다간 괜히 구설수에 오를 수도 있다. ‘소중한’ 거라니. 누구에게 받았냐는 의문에서 시작된 질문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며 없는 사실까지 만들어내겠지. 그 짧은 시간 사이에도 머리는 재빠르게 돌아갔다.
‘하마터면 실수할 뻔했네. 이미 단련되어 있는데도.’
뭣 모르던 칠월칠석 때 몇 번 겪었기 때문에 이 정도는 피할 수 있다. 잠시 입을 닫고 별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떡볶이나 열심히 먹었다.
“애들 수능이요? 아, 맞아!”
그러고 보니 기사는 진작에 나갔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안 끼어들 수가 없었다. 수능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는 걸 안 좋아하는 줄 알았더니, 의외로 팬들은 이렇게 멤버들의 중대사에 신경을 쓰는 편이었다.
[ 애들 공부는 해? 누가 제일 잘해? 주인이 잘하는 건 동창 인증 봐서 알아 ㅋㅋ ]은찬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주인이 잘하죠. 그래서 미지예고 3명 요즘 숙소에 거의 없어요. 주인이는 성적이 돼서 수시 실기 전형으로 원서 넣었고. 주혁이는 수능 안 본다고 했고… 이선이는 보러 가긴 할 텐데. 기사 나갔죠? 진짜 다음 주네.”
음악방송의 한 텀이 짧아졌다지만 사실 수능도 껴 있었기에 겸사겸사 활동을 일찍 마무리한 것도 있다. 미지예고 3인방의 진로 특성상 대학과 수능이 그렇게 중요하진 않았다. 애들도 그다지 수능을 신경 쓰는 편은 아니었다.
‘칠월칠석 때랑 비슷할 것 같은데.’
당시에도 이선은 대학에 입학은 했고, 주혁은 수능을 치르지 않았다. 현주인은 워낙에 필모그래피가 탄탄했기 때문에 어디든 찾아주는 곳이 많았다. 성적도 좋았으니 대학 걱정은 거의 하지 않았고. 지금도 그때와 별반 다르진 않았다.
“전 수능 꼭 볼 거예요. 수능 완전 큰 이벤트잖아요. 으~ 벌써 내년이 내 차례라니! 시간 왜 이렇게 빠르지, 형? 흠… 그리고 저 떡볶이 코트 입으려고요.”
“별이는 공부 안 하잖아.”
“공부랑 수능이랑 무슨 상관?”
황당무계한 별의 발언에 은찬은 말없이 음식을 씹으며 별을 빤히 바라보았다. 별이의 표정은 한없이 진지했기 때문에 은찬은 조용히 수긍한 채 다 먹은 용기를 치우기 시작했다.
“진짜 배부르다! 지니 정식 짱이다. 최고예요.”
“아, 곧 애들 돌아올 시간이라 이만 꺼야 할 것 같아요. 다음에 또 밥 같이 먹어요. 안녕~”
약 40분가량의 식사 겸 라이브 방송을 끝내고 테이블을 정리했다. 오랜만의 방송과 배달 음식에 별은 만족스러웠는지 배를 통통 두드렸다. 그래 봤자 워낙 말라서 여전히 판판했지만.
식사 후 생긴 쓰레기들을 분리수거한 별은 방에서 책을 읽고 있는 가을이를 골려줘야겠다며 방 안으로 쏙 사라졌다. 이쪽도 나른한 기분으로 방 안으로 들어갔더니 웬일로 진지한 표정의 현주인이 날 반기고 있었다.
“형.”
“응?”
‘오늘은 외출 안 했나 보네’라는 생각도 잠깐. 현주인은 사뭇 진지하게 물어왔다.
“목걸이 얘기 많았어?”
“어? 어. 왜?”
다짜고짜 목걸이 질문이라니. 역시 일부러 목걸이를 노출시킨 게 맞는 것 같았다. 이거 엄마 유품이라 소중한 거라고 말을 해야 하나. 일부러 그랬다는 걸 부정하지도 않는 현주인의 태도에 살짝 언짢아져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뭐야. 근데 너 내 목걸이 자랑은 왜 한 거야?”
“그냥. 아, 다행이네. 사람들 다 본 것 같지?”
“뭐냐? 정보 알려주고 싶어도 나도 몰라… 받은 거라.”
“아니. 그거 봐야 할 사람이 있어서. 보니까 그 인간도 봤겠다 싶네.”
“봐야 할 사람?”
또 영문 모를 소리를 한다. 숨기는 것 없이 지내겠다는 약속을 한 것도 아니니 그게 의무 사항은 아니었지만 한편으로는 섭섭한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같이 회귀한 마당에 서로 믿을 사람이 어디 있다고 죄다 숨기기만 하는지. 은찬은 입을 꾹 다물고 못마땅한 표정을 한 채 가늘게 뜬 눈으로 주인을 노려보았다.
“말 좀 해줘라. 섭섭하게.”
“핸드폰 울린다.”
“아?”
주인의 말에 은찬이 잠금화면을 풀고 미리 보기를 읽어 내렸다.
[ 백무영 선배 : 목걸이 빼고 다녀도 되는 거예요? ]백무영 선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