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ee hearts in failed idol’s eyes RAW novel - Chapter 62
62. 피할 수 없는 수능
“…….”
뭐라 정의를 내릴 수 없는 기분이었다. 선배가 어떻게?
“뭔데?”
“아, 별것 아냐.”
은찬이 어설프게 웃었다. 입술이 얇아지며 광대가 봉긋 솟았으나 눈은 전혀 웃지 않는, 누가 봐도 상황을 무마하기 급급한 모양새라 꼭 삐걱거리는 목각 인형 같았지만.
“…….”
주인은 은찬의 표정을 읽은 듯 말없이 그런 은찬을 빤히 내려다봤다. 그러다 은찬과 핸드폰 화면을 번갈아 보며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키 차이가 좀 나기에 주인의 눈높이에서 발신자가 보이지 않을 리 없었다.
“자주 연락하냐? 내 말은 헛으로 들었나 보다?”
“아냐! 어떻게 하늘 같은 선배하고…….”
“그놈의 선배, 선배. 지겨워 죽겠네. 아는 것도 없는 주제에.”
주인이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후볐다. 누가 봐도 듣기 귀찮다는 제스처라 기분이 나빠진 은찬이 마른침을 삼켰다. 꼭 행동이 사람 반박하고 싶게 만드는 구석이 있었다.
“목걸이 얘기지?”
“어떻게 알아? 거기서도 보이냐?”
“일부러 도발한 건데 걸려드네, 멍청한 게.”
나한테 하는 얘기는 아닌 것 같은데.
‘도발?’
피식. 주인이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헛숨을 뱉듯이 웃었다. 은찬이 그런 주인을 의미심장하게 올려다보았다.
‘이 자식은 하여튼 수상하게 구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라니까…….’
“뭐 즐거운 일이라도 있냐?”
“봐야 할 사람이 본 것 같아서 즐거울 뿐이야.”
일부러 돌려 물었는데, 역시 현주인도 고단수였다. 자기보다 눈치로는 한 수 위라고 봐줄 수 있을 정도였으니 확실히 원하는 대답을 이끌어내긴 어려웠다.
‘즐겁다니… 현주인 입에서는 또 간만에 듣는 얘기네.’
지금 이놈은 마음이 약해져 있는 게 분명하다. 그게 아니라면 현주인이 자기답지 않게 고맙다거나 미안하다는, 지극히 인간적인 소리를 내뱉을 리가 없다. 게다가 회귀 사실을 자백하게 했을 때도, 회귀 전의 현주인이라면 어떻게든 대답을 기피했을 것이기에.
‘그나저나 회귀 전에는 옆에서 그렇게 난리를 쳐도 신경 쓰지 않던 백무영 선배에게 저렇게까지 반응하는 걸 보면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나 보네.’
분명히 백무영 선배와 나에게는 무언가 연결 고리가 있다. 거기에 현주인까지. 현주인도 그것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건 아닌 것 같았으나 나보다 무언가를 더 알고 있는 건 분명했다. 자꾸만 뭔가를 숨기는 현주인이 곱게 보일 수가 없다.
“봐야 할 사람이라니… 선배 얘기잖아. 왜? 또 말 못 할 이야기야? 너 왜 맨날 이유는 쏙 빼먹냐? 자꾸 섭섭하게 굴래?”
“물음표 더럽게 많네.”
주인은 질렸다는 듯 고개를 홱 돌렸다. 이대로 대화를 회피하게 둘 수는 없었기에, 은찬은 주인의 손목을 붙잡았다. 앞에서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잠깐 동안의 적막이 지나가고 주인이 꾹 닫고 있던 입을 열었다.
“그리고… 나만 숨기고 있는 것 같아?”
주인은 은찬에게 말하면서도 시선은 묵주반지에 고정시켰다. 아마 묵주반지의 정체에 대해 묻는 거겠지.
물론 묵주반지를 제하고도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건 이쪽도 피차 마찬가지였지만. 은찬은 주인이 진지하게 물어오면 마주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항상 먼저 꼬리를 내리던 건 저쪽이 아니었던가.
“궁금한 게 있으면 다 말해줄게. 어차피 서로 달리 의지할 사람도 없잖아.”
“나는 너한테 의지할 필요가 없어.”
“말 좀 예쁘게 해라…….”
현주인은 정말 내가 필요 없다는 듯 아예 딱 잘라 말했다. 그에 내가 머쓱한 듯 웃자 현주인은 너는 그래야 하겠지만- 하고 말을 덧붙였다.
‘가만 보면 자기가 사람 궁금하게 말을 하잖아. 나는 궁금한 거 잘 못 참는다고. 지금도 이미 인내심에 한계가 왔는데.’
이 정도로 의문점이 쌓이면 그냥 넘길 수가 없는 게 사람 본능이다. 외면과 회피도 정도가 있는 법이다. 문제에는 반드시 해결이 따라야 한다.
‘그런데 지금 심란하게 하는 것들에는 해결이란 게 없으니…….’
당연히 더욱 답답할 수밖에.
더 이상 회피할 수 없다면 정면 박치기가 답이다. 은찬은 무언가 결심을 한 듯 주인을 붙잡은 손에 힘을 더했다. 조르는 한이 있더라도, 지긋지긋하다는 소리를 들어도 저놈과 대화란 걸 나누어야 했다.
‘인정하긴 싫지만, 솔직히 난 의지할 만한 대상 1순위가 현주인이니까.’
회귀 전엔 이놈에게 심리적으로 기댈 때가 올 거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는데. 스탯과 호감도를 볼 수 있다고 해도 역시 내 한 치 앞도 모른다니까.
“얘기 좀 하자고 하면, 어울려 줄 거야?”
주인은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은찬의 수심 가득하던 얼굴이 환히 개었다.
“휴가 기간 때 둘이 좀 볼까?”
“휴가 기간에 내가 너를 왜?”
“네가 아니고 형…이 아니라! 어, 따라갈 거야, 그럼~”
“뭐?”
“까놓고 네가 그때 세주 누나 만날지 어떻게 알아?”
신이 난 듯 말을 쏟아내는 은찬에 주인이 살짝 몸을 뒤로 물렸다. 멤버들 눈을 피해 대화를 나누기에 지금보다 적합한 시기가 없으니 놓칠 수 없었다. 어떠한 핑계를 갖다 붙여서라도. 게다가 묘하게 또 피하는 것 같은 기분이라 더욱 붙잡고 싶은 열망이 불타올랐다.
“오늘 너무 솔직하네. 기분 나쁘게.”
“내가 너한테 기분 나쁜 존재인 게 하루 이틀인가.”
아무렇지 않게 되받아치긴 했지만 솔직히 말하고 보니 입안이 썼다. 자책도 익숙하지 않았던가. 회귀하면서 내상 면역마저도 리셋된 건지. 왜 새삼스럽게 속이 껄끄럽냐고.
“그럴 일 없으니까 신경 꺼.”
“…….”
은찬은 표정에서 티가 나는 타입이었다. 그러니 기분 나쁘거나 상처를 받게 되면 안 그런 척 애쓰는 것까지 티가 났다. 지금이 딱 그랬다.
“…잠이나 자. 씻겨주랴?”
“우웩, 꺼져.”
웬일로 주인이 농담조로 은찬의 어깨를 툭 쳤다. 그게 어설픈 사과라는 걸 눈치채지 못할 은찬도 아니었기에 적당히 장난조로 받아쳤다.
“야, 현주인.”
그래도 현주인이 남의 감정을 신경 쓸 정도라면 많이 발전한 편이긴 하지. 그렇게 자기 위로를 하며 은찬이 잘 올라가지 않는 입꼬리를 끌어 올려 웃어 보였다. 여전히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내년엔 연말 무대 꼭 서자.”
현주인은 대답이 없었다. 답이 없다는 건 긍정으로 해석해도 괜찮았다. 칠월칠석 때는 연말 무대에 섰던 적이 없었다. 언제나 연말에는 TV 앞 시청자였지. 연차가 쌓인 뒤 MC 진행을 하던 현주인도 그걸 알고 있으니 별말을 못 얹은 것이리라.
딱히 죄책감을 씌워주려는 의도는 아니었지만, 그렇게 된다고 해도 나쁠 것 같지는 않다. 더 열심히 하라는 기름 붓기 정도면 충분하다.
‘그리고 휴가 따라가는 거 포기한 거 아니다, 메롱.’
그렇다고 이 침울한 기분에 사로잡혀 대화할 기회를 놓치고 싶지는 않았다. 감정에 매몰되는 게 오히려 나에게 손해라는 건 이미 회귀할 당시 진작에 깨달은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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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발찾아다님 @blond_lover
우리 이선이는 수능이라고 흑발 염색하는 일 따위 안 함 존쿨
롱패딩에 금발 퀭한 얼굴
온몸으로 외치는 중임
“나는 아이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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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링 @bling_1212
하… 이선이 곧 성인이냐… 말도않되
그나저나 저 바리바리 든 짐은 뭐냐 ㅋㅋㅋㅋㅋ
수능 밤까지 치냐 ㅠㅠ 밥 먹으러 가냐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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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이중 메인트! ) 서니 @wpeirilmaIsun
(사진)
오늘 이선 오빠 수능 기념으로 인터넷 친구들이랑 케이크 맞췄어요!!!
수능 수고했어!!!!! 이제 곧 내 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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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연례행사로 가장 큰 이벤트 중 하나인 수능도 무사히 지나갔다. 고3들에게 무척 중요한 날인데도 팀에는 수능에 신경 썼던 멤버가 없었기에 우리 숙소는 그날조차도 제법 무난하게 지나갔다. 애초에 수능을 치러 간 게 도이선 하나뿐이기는 했지만.
팬들은 사뭇 실망하는 기색을 보였다. 아마도 19살 아이돌이라면 필수적으로 나와야 하는 ‘수능 보러 가는 기사 사진’을 못 봐서 그런 거겠지.
[ 수능 D-DAY – 제네시스 이선 등 수능 치르는 아이돌 스타들도 수능 고사장 行 ] [ 제네시스 이선 등… 수능장으로 향하는 아이돌들 ] [ 제네시스 이선, ‘오늘은 수능 치러 왔어요’ ] [ 제네시스 주혁, 주인 등, 수능 포기한 아이돌들 ]그래도 이선만큼은 착실하게 고사장에 가서 사진까지 찍혀줬으니 요 근래 이선의 언급량이 는 것도 당연하다. 은찬은 당일 새벽같이 일어나 이선을 위해 이것저것 챙겨주었으나 이선은 그 특유의 웃음으로 화답한 뒤 터덜터덜 밖으로 향할 뿐이었다.
그래도 이선의 기사 사진은 가방을 꼬옥 쥐고 있거나, 가방을 자랑하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드는 사진들을 본 은찬으로서는 내심 뿌듯할 수밖에 없었다.
‘싫어하는 줄 알았더니, 나름 챙겨준 보람은 있네.’
앞에서 들려오는 발소리에 은찬이 이선의 기사에 대한 반응을 확인하다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그러고는 몸을 일으키고 휴게실 의자를 테이블 안으로 정리해 넣었다. 그간 고생한 멤버들은 쉬게 놔두고 이제 일을 해야 할 차례였다.
“와, 은찬이 오랜만이네?”
“누나, 저 음악방송 출연할 때 몇 번 인사드렸었는데……!”
“그거랑 이건 다르지~ 이제 동료가 된 거 아니야. 그때 그렇게 잘한 데다 감독님도 마음에 들어 하셨는데 이만한 적임자가 어디 있어?”
“하하… 과찬을… 무영 선배가 계셨는데 다음 차례로 저는 아무래도 비교되죠.”
“어, 아냐. 그 선배 영화 크랭크인 들어가셔야 했잖아. 게다가 방송에서 너를 찍어두고 있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어. 나도 주변 지인들이 좀 있잖아.”
“…기대를 충족시켜 드려야 할 텐데~”
세주 누나였다.
누나는 특별 MC 때 그랬던 것처럼 밝게 나를 반겨줬다. 언제나 한결같이 높은 텐션으로 분위기를 띄우는 데는 일가견이 있는 누나였다.
‘그러고 보니 정말 백무영 선배 다음이라니, 직접 공기를 느끼니까 생각했던 것보다 더 떨려.’
그동안 음악방송에 출연하며 겸사겸사 공동 MC인 백무영 선배와 세주 누나의 진행도 지켜봐 온 터였다. 이제 나에게 오게 될 역할이기도 하니 모니터링은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둘의 진행과 비주얼이 잘 맞아서 보기 좋았는데 이제 그 자리에 내가 서야 하다니.
‘뭐라도 말을 해야 돼… 말을…….’
세주 누나와는 딱히 친한 편도 아니라 대화를 이어가는 게 어려웠다. 하지만 둘 사이에 이어지는 침묵이 더욱 어색했기 때문에 뭐라도 대화 주제를 생각해 내야 했다. 꼭 이럴 때마다 말을 먼저 해야 된다는 강박이 생긴다니까.
“선배랑 함께 일할 때 좋았을 것 같아요.”
누나는 답이 없었다. ‘그렇다’라는 답변이 곧장 돌아올 줄 알았는데.
‘뭔 일 있었나?’
지금 머릿속이 백무영 선배로 가득 차 있으니 하필 대화 주제도 이딴 게 나왔다. 다른 주제를 골랐어야 했나. 뒤늦은 후회를 하는데 누나는 양 손바닥을 비비더니 의미심장한 대답을 내놓았다.
“…음, 뭐랄까.”
정말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는 듯한 말투였다.
“보던 것과는 좀 다른 성격이던데, 그 선배. 그사이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혼잣말을 하는 듯했지만 그 안에는 분명한 의문이 묻어 나왔다.
‘선배… 도대체 몇 명한테 의심을 사고 있는 거야? 정말 내가 알고 있던 선배가 아닌 건가?’
하긴 백무영 선배는 워낙 유명하기도 했고, 데뷔한 지 오래되진 않았어도 배우로 활동하던 누나가 선배의 원래 성격을 모를 리 없었다. 철저하고 칼같은 성격의 누나라면 더더욱 그랬다.
마치 현주인이 백무영 선배를 의심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었다.
‘그러고 보니 나도…….’
은찬이 대화 주제를 돌리기 위해 고개를 저으려던 찰나였다. 뒤에서 산뜻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화에 집중하느라 발소리도 듣지 못했다.
“이제 오세요?”
“아.”
은찬과 세주는 당황한 마음을 숨기고 밝게 웃으며 무영에게 인사를 건넸다. 무영의 손에는 반짝거리는 효과로 ‘Chan’이라는 이름표가 붙어 있는 마이크가 들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