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ee hearts in failed idol’s eyes RAW novel - Chapter 67
67. 노력의 성과
MC도 어느덧 3주 차다. 다행히 신고식 같았던 사고 이후 별 탈 없이 진행된 뮤직센터 스케줄은 이제 어느 정도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멘트가 생각나지 않는 일도 없었고, 말의 속도도 안정화되어서 처음에 비해 매끄러운 진행이 가능했다.
그리고 현주인과 의문스러운 대화를 나눈 것도 어느덧 2주가 지났다. 그 이후로 내 나름대로 대화를 정리했다.
1. 현주인과 나는 의문의 중성적인 목소리를 들었다 → 동일 인물일지도?
2. 묵주반지가 내 몸에서 떨어지면 사고가 일어날 수도 있다 → 두 번의 경험으로 90% 확신 가능
3. 현주인은 ‘아마도’ 그런 나를 지켜보라는 부탁을 받은 것 같다 → 추측
4. 백무영 선배는 나에게서 이 묵주반지를 떨어뜨려 놓고 싶은 것 같다 → 현주인이 묵주반지를 일부러 노출시킨 뒤에 선물받은 고가의 목걸이로 판단
‘그리고…….’
5. 그 이후, 백무영 선배로부터 연락이 없다
선배는 영화에 출연한다더니, 촬영 때문에 바쁜지 연락이 없었다. 일부러 첫 방송에 차고 나갔던 거라 뭐라고 한마디라도 해주실 줄 알았다. 먼저 연락하기에도 그림이 좀 이상하니 얌전히 기다렸다. 솔직히 지금까지의 상황으로 보아 선배의 연락이 없는 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게 정상인 상황이겠지만, 이러면 내 추측이랑 안 맞는데.’
뮤직센터에서 퇴근한 은찬은 드물게 얼굴을 찌푸린 채로 숙소로 들어와 곧장 방 안으로 향했다.
“…아~”
의자에 풀썩 앉자마자 몸을 기대 쭉 뻗고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현주인도 그 이후로는 별다른 행동이 없고. 이게 연말 분위기 때문인지 더욱 사람을 침울하게 만들었다.
‘우리도 내년엔 연말 무대에 설 수 있으려나.’
항상 동경해 왔던 연말 무대. 올해는 방송 3사 중 한 곳이 유독 일찍 방송을 진행한다고 들었다. 그게 오늘 밤이니 설레야 정상이건만 묘하게 입안이 썼다.
‘신인이니까’라고 치부하면 편하긴 하지만. 어쨌든 신인이 연말 무대에 서는 게 아예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대형기획사에서 데뷔했거나 센세이션한 인기를 몰고 왔다면 말이지. 뭐, 객관적으로 우리는 그런 경우가 아니었지만.
‘그래도 칠월칠석 때보다 수월하게 인지도가 올라가고 있으니 내년에는 가능할 거야. 추후에는 콜라보 무대 같은 것도 섰으면 좋겠다.’
그래도 이번엔 내가 MC를 맡아서인지 뮤직센터에서 제네시스 연말 결산 무대를 배치해 주었다. 마지막 주에 문샷을 한 번 더 선보일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한다. 좋은 무대를 만들어야지.
“읏차.”
숙소에 멤버들이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아마 다들 연습실에 가 있을 터였다. 나라고 피곤하다고 널브러져 있으면 안 되는 법이었다. 속으로 스스로를 향해 주문을 외웠다.
‘아자, 아자! 지금까지처럼만 하자. 이게 어디냐고, 괜히 연말이라고 우울해져서는. 그러지 않기로 했잖아.’
안 좋은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그에 침체되기 쉽다. 이럴 땐 억지로라도 웃으며 몸을 일으켜야 한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은찬이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었다.
***
회사 지하에 있는 연습실로 가자 이미 멤버들끼리 연습이 한창이었다. 항상 꼬박꼬박 연습에 참가하는 다른 멤버들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건 단연 현주인이었다. 회귀 전 여러 핑계를 대며 연습을 회피하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변화였다.
‘땀 흘리는 현주인이라니… 꿈이라도 꾸는 것 같네.’
잠시 땅굴을 팠던 게 미안할 정도로 다들 열심이었다. 은찬은 활기차게 손을 흔들며 멤버들 한 명 한 명에게 인사를 건넸다.
“오, 가을이 열심인데?”
사실 음방을 마친 곡이니 다들 안무 숙지는 다 되어 있을 터였다. 리메이크를 한다거나 대형을 바꾸는 것도 아니니 다 같이 합과 각도만 맞춰보면 되는데도 가을이는 구석에서 연습에 열중이었다.
“가을 형이 요즘 춤 가르쳐 달라고 주혁이 맨날 데려간다니까요~ 혼자 남겨져서 쓸쓸해요~”
옆에 있던 이선이 퍽 쓸쓸한 표정을 지으며 이온음료를 마셨다. 하긴 요즘 둘이 연습실에 자주 가는 것 같더니, 그게 춤 연습을 위해서였다니. 이선이도 자주 따라가는 것 같기는 했지만 친구 뺏긴 기분을 느끼는 것도 이해는 갔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비해 많이 는 것 같은데. 춤선이나 움직임이 많이 좋아졌어.’
전에는 안무를 겨우 따라 하는 느낌이었다면 이제는 음악을 쪼개 동작을 넣을 줄 알게 되었다고 해야 할까. 확실히 선생님을 잘 만난 덕택인 것 같기도 하고.
‘트레이너 쌤한테 받는 수업보다 주혁이가 더 빡센 거냐고…….’
연습량이 는 덕택도 있겠지만 확실히 주혁이가 무섭긴 하지.
문득 한눈에 척 보기에도 실력이 는 가을의 댄스 스탯이 예전과 달라졌을지 궁금해졌다. 내가 0.5를 나눠줘서 저 정도로 는 것인지 싶어 궁금하기도 했고.
[ 연가을 ]외모 ★★★★
보컬 ★★★★★
댄스 ★★★★
끼 ★★
행운 ★★
‘음?’
가을이의 스탯을 확인한 은찬의 눈이 가늘어졌다.
분명히 내가 분배해 줬던 스탯은 0.5고, 마지막으로 확인했던 가을이의 댄스 스탯은 ★★★☆이었다. 혹시 잘못 본 건가 싶어 눈을 세게 끔뻑였는데도 변하는 건 없었다.
‘어떻게 된 일이지?’
내가 스탯을 추가로 분배해 주었던 기억은 없다.
‘본인 노력 여하로도 올릴 수 있는 건가?’
가을이는 매번 연습실에 출석 도장을 찍었다고 했다. 게다가 댄스 레슨을 받으면서도 주혁이에게 스파르타 교육을 받았다. 매번 녹초가 되어 숙소로 돌아오던 가을이의 모습이 눈에 선명하다. 그 정도로 열심히 하는 건 알고 있었는데, 오늘 보니 확연히 실력이 는 게 눈에 띄었다.
저 정도 실력이라면 별 4개라는 데 이견이 없을 정도였으니까.
‘이거 생각보다 공정한 시스템이네.’
굳이 스탯을 분배해 주지 않아도 본인이 노력하면 자연스럽게 스탯이 올라간다. 하긴 어떠한 것에도 마지노선이 있을 순 없으니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되는 건 아니다.
‘노력으로 안 되는 건 얼굴이나 운 정도려나…….’
확실히 그 둘은 타고나는 게 아니라면 힘든 부분이긴 하지. 절로 납득이 되는 부분이다.
가을이를 지켜보던 은찬에게 가능성 하나가 스쳐 갔다.
‘그럼 스탯 최대 수치인 4.5도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춤에 유독 신경을 많이 썼던 가을이가 온전히 본인 노력으로 스탯을 상승시켰다면, 4.5 이상의 만점에 도달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것 역시 가정에 불과하지만 가능성 하나가 떠오른 것 자체가 소득이다.
‘…새삼스럽지만 한국적인 것 같기도 해…….’
노력으로 달성할 수 있다니. 정말이지 한국적이어서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런데 가을이를 보면 정말 뼈를 깎는 노력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 같다. 다른 멤버들은 스탯이 전부 그대로인 걸 보면 말이지. 어쨌든 새로운 사실 하나를 알게 되었다.
“어디까지 했어?”
연습실 뒤편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은찬이 멤버들 사이로 끼어들었다. 옆에 있던 이선의 시선이 잠시간 따라붙는다 싶더니, 어느덧 원래의 능글거리는 얼굴을 장착한 채 주혁 옆으로 쫄래쫄래 가 붙었다.
***
‘막상 휴가를 받아도… 어떻게 써야 되는지 모르겠단 말이야.’
솔직히 휴가 얘기가 나왔을 때는, 대표님이 말로만 허세 부리시는 건 줄 알았다. 그러나 의외로 대표님은 한다면 하는 사람이었다.
[ 대표님 : 얘들아, 뮤직센터 일주일 전까지는 돌아와야 한다 ㅋ 그러니까 지금부터 일주일간 편히 쉬다 와라~ ]다음 달인 1월에는 설날이 껴 있긴 하지만 ‘아이돌 체육대회’에 출연해야 하니 지금이 적기긴 하다. 물론 개인 스케줄은 각자 조정해야겠지만 뮤직센터 연말 결산도 마지막 주에 진행하니 지금 일주일간이 마지막으로 주어진 자유 시간인 셈이었다. 은찬은 갑작스레 주어진 자유 시간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몰라 멍하니 있는 중이었다.
칠월칠석 때는 어차피 일이 없었기 때문에 매일이 휴가나 다름없었다. 그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느냐는 자유였으니, 멤버들이 각자 다른 방향으로 나간 거고.
‘나는 이제 뭘 한다……?’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며 눈을 깜빡였다. 이미 리온이는 휴가 연락을 받자마자 비행기표를 예매해 짐을 꾸려 부모님이 있는 캐나다로 떠난 상태였다. 다른 멤버들도 적당히 본가에 다녀오겠지.
“하아…….”
‘그냥 숙소에나 박혀 있어야겠다. 연습실 전세 낸 것 같겠네…….’
문득 회귀 후 한 번도 찾아뵙지 못한 할아버지가 생각났다. 회귀 전 아이돌 끝물일 때는 자주 찾아뵈었는데 말이다.
고향인 완도에 다녀오기에는 뮤직센터 촬영 때문에 애매하고, 가수로 성공하겠다며 큰소리치고 고등학교도 중간에 때려치우고 온 마당에 내려가기도 좀. 적어도 1위는 해본 뒤 내려가고 싶단 말이지. 이래저래 시기가 애매하다.
‘그러고 보니 내가 회귀했으니 할아버지도 다시 젊어지셨으려나.’
물론 젊어지셨을 거다. 한숨이 저절로 터져 나왔다.
고시원도 정리하고 나왔으니 고향을 포기한 은찬에게 지금 있을 곳은 이 숙소뿐이었다. 모자랐던 잠이나 더 자자 싶어 몸을 뒤척이던 중이었다. 옆에서 부스럭거리던 주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왜에.”
“갈 거야?”
“어딜?”
손목 안쪽에 향수를 뿌린 주인이 얼굴을 찌푸렸다. 뭘 당연한 걸 묻느냐는 얼굴이었다.
“따라온다며?”
은찬이 나갈 준비를 마친 주인을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풉, 하고 웃음이 터져 나올 뻔해서 손바닥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아, 아냐. 다녀와.”
“청승맞게 지랄 떨지 말고 올 거면 일어나. 준비도 다 했잖아, 너?”
“아아, 다녀올 데가 있어서.”
일부러 잘 때 움직였는데, 언제 또 눈치를 채서는.
은찬은 속으로 혀를 차곤 어색하게 웃으며 주인을 마중했다. 밖으로 나가라고 꾹꾹 밀면서 일부러 더 과하게 행동했다.
‘이런 건 몰래 따라가야 건수를 잡을 수 있지, 같이 가서는 뭘 한다고?’
완도행을 포기하고 휴가를 숙소에서 보내기로 했다고 해서 현주인 감시까지 때려치운 건 아니었다. 그건 아예 별개의 영역이다. 이것도 나에게는 일이라고, 일.
대놓고 옆에 따라가는 건 그림도 웃길뿐더러 놈의 손바닥 위에서 행동할 수 있는 건수를 놓치는 것 아닌가. 수상한 낌새를 알아차리는 것은커녕!
그리고 따라가고 말고 할 것도 없이 현주인이 완전무결하게 결백하다는 것만 확인하면 나는 다시 얌전히 숙소로 돌아올 거라고. 암, 그렇고말고.
“진짜…….”
현주인은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는데, 그러다 말하길 포기한 모양인지 미간에 주름을 퍽 세게 새겼다.
그리고 은찬은 택시를 기다리던 주인에게 딱 들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