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ee hearts in failed idol’s eyes RAW novel - Chapter 68
68. 불청객이 되어버렸다(1)
“아, 하, 하.”
은찬이 머쓱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자신에게 내리꽂히는 시선에 얼굴 전체가 따끔거렸다. 가능하면 고개를 돌린 것으로 상황을 회피하고 싶었지만 세상은 그렇게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일부러 늦게 나왔는데!’
은찬은 애초부터 주인을 따라 나올 생각이었다. 그래서 주인이 잠에서 깨기도 전에 준비를 다 마치고, 꼭 외출하고 돌아온 것처럼 침대에 처박혀 있었다. 다행히 리온이는 이미 캐나다로 떠나고 없었으니 현주인의 눈만 속이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주인은 은찬이 생각했던 것만큼 순순한 놈이 아니었다.
‘언제부터 알고 있던 거지? 저놈이 진짜… 그래서 아까 그렇게 한숨을 쉬다 비웃은 거였냐?’
같이 가자고 할 때 눈치채야 했다.
‘하긴 저번에 따라가겠다 한마디 했다고 선심을 쓸 놈이 아니지…….’
혼자 바보같이 기가 막힌 작전을 시행 중이라 착각하고 키득거리는 게 아니었다.
‘쪽팔려.’
이미 간파당한 걸 알고 있었다면 그냥 얌전히 따라가거나 다른 날을 노릴걸.
“아아… 나도 갈 곳이 있어서.”
“작작 하고 타라.”
“응.”
마침 주인이 부른 콜택시가 도착했고 은찬은 더 이상의 대꾸 없이 얌전히 따라 올랐다.
‘그냥 숙소로 간다고 할걸.’
냉랭하고 불편한 분위기에 곧장 따라 올라탄 걸 후회했다. 하긴 다짜고짜 이놈 집을 따라가서 내가 뭘 하겠다고, 대체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걸 홀랑 따라 탔냐. 당황과 분위기의 압박 때문에 얼결에 타버린 거지.
은찬은 턱을 괴고 창밖을 구경하다 핸드폰을 보고 있는 주인을 반복적으로 흘겨봤다. 주인은 아까부터 짧은 영상을 보거나 포털사이트 기사를 보는 등, 별 재미없는 행동만 하는 중이었다. 누군가와 연락한다든가 하는 수상한 행동은 일절 하지 않았다.
‘끄응…….’
하긴 나 같아도 연애하지 말라고 죽자고 잔소리하는 놈 옆에 있으면 당연히 아무것도 안 할 것 같다. 괜히 한숨만 새어 나왔다.
‘지금은 좀 타이밍 엇박 아닌가?’
일부러 바깥을 보는 척 시간 차를 두었다. 이제는 놈도 긴장을 좀 풀었겠지 싶어 눈을 돌리던 때였다.
“…읏.”
정확히 눈이 마주쳤다. 민망해진 은찬이 입술을 앙다물고 눈을 빠르게 깜빡였다. 주인은 그런 은찬을 지켜보다 잔웃음을 흘렸다.
“쓸데없이 힘 빼지 않는 게 나을 텐데. 연애 안 하겠다고.”
“야, 전적 있는 놈을 어떻게 믿어.”
“하게 되면 그냥 말하면 되는 거 아니냐?”
“…그렇긴 하지만.”
“그래. 얼마 안 남았으니 쉬어.”
짜증이라도 낼 줄 알았던 놈은 비웃음 한 번으로 모든 것을 퉁쳐주었다. 게다가 저런 친절한 말을 내뱉기까지. 얼떨떨하게 얼굴만 긁적이는데 놈이 내 얼굴을 감싸 쥐더니 차 시트에 기대도록 몸을 떠밀었다. 그제야 창밖으로 펼쳐진 한적하고 넓은 주택가가 눈에 들어왔다.
“아, 너희 집 숙소에서 가까웠던가.”
“뭐, 그런 편이지.”
서울 연희동에 위치한 현주인네 본가에는 회귀 전 몇 번 온 적이 있었다. 자취하는 놈을 잡으러 온 것은 아니었고, 정말 의외로 부모님께서 초대를 해주셔서 온 것이었다.
‘어머니께서 친절하시긴 하셨지… 선을 긋는 느낌이 확실하긴 했지만.’
현주인과 똑같이 생기신 어머니께서는 ‘내 아들을 잘 부탁한다’라기보단 ‘폐를 끼치지 말아달라’라는 뜻을 내비치셨다. 어쩌면 그런 뜻이 아니었는데 부정적으로 받아들인 나의 잘못인 걸까. 웃는 얼굴 위에 가면 쓰는 게 쉽다는 것쯤은 그 당시의 나도 뼈저리게 알고 있었다.
‘이맘때쯤의 나는 현주인 부모님을 뵌 적이 있던가?’
기억이 잘 안 난다. 연습생 때는 사이가 좋은 편이 아니었으니 뵌 적 없었을 것 같기도 하고.
“내려.”
“아, 어.”
괜히 까불다가 기만 빨리게 생겼다. 아무튼 불편한 사람을 마주하는 건 보통 기가 빨리는 일이 아니었으니까. 옆에서 주인이 대문의 비밀번호를 입력하는 와중에도 은찬은 이곳이 가시방석이라도 되는 것처럼 안절부절못했다.
‘역시 으리으리…….’
혼자서 좋은 오피스텔에 자취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지만 놈의 본가는 정말 화려하고 큼지막했다. 서울 중심부에 이만한 주택을 갖고 있는 것만 봐도 어느 정도는 재력을 짐작할 수 있겠지만.
기억 속의 모습과 그다지 다를 바 없는 집 안을 구경하던 은찬이 얼굴을 웃는 상으로 갈아 끼웠다. 딱 무대 위나, 촬영을 할 때와 같은 얼굴이었다.
“안녕하세요~”
그래도 어른들한테 미움받는 스타일은 아니었으니, 서글서글하게 대하는 건 자신 있었다. 기억 속 모습보다 젊은 현주인의 어머니는 활짝 웃으며 은찬을 반겨주었다.
“어머나, 웬 친구니?”
“그냥 동료.”
그냥 이럴 땐 친구라고 좀 돌려 말하면 덧나냐? 그건 그렇고 역시 이 당시에는 어머니와 마주한 기억이 없구나. 일부러라도 더욱 처음 본 것처럼 굴어야 했다.
지나치게 솔직한 대답에 속으로 이죽거리는 사이 현주인과 어머니는 짧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런데 그 대화가, 어머니와 아들이 나누는 대화라기에는 그렇게 친근한 느낌이 들지 않았다.
“네가 친구를 데려오는 건 또 처음 보네. 그 아이는?”
“누구? 올 사람 없어.”
그 아이? 또 올 사람이 있었던 건가.
“그 얘기는 그만해. 그 얘기 하려고 온 거 아니잖아. 아버진?”
“언제 오시려나… 얘, 밥 먹고 가. 온다고 해서 밥 해놨어.”
끼어들면 안 될 것 같은 이야기를 나누던 둘 사이에서 멋쩍은 웃음만 짓던 은찬은 머리를 열심히 굴리는 중이었다.
‘…언제 그만 가보겠다고 말하지?’
집에 발을 들이면 그 말을 꺼내기가 더 어려워질 것 같았다. 빨리 인사를 드리고 나가야 하는데, 도저히 대화 속에 끼어들 틈이 보이지 않았다.
“저…….”
“어머, 미안. 들어오렴.”
“네?”
현주인의 어머니는 날 보며 미안한 듯 살짝 웃더니 문을 활짝 열고 안쪽으로 들어가셨다.
‘이거 완전 타이밍이…….’
나 지금 들어가면 가족끼리 모이는 휴가 기간에 끼어버린 눈치 없는 멤버1 되는 거 아니냐고. 딱히 그런 그림을 원한 건 아니었는데. 게다가 현주인의 가족관계를 내가 알아야 할 의무는 없다고. 속속들이 알고 싶은 놈이긴 했지만 이렇게 사적인 영역까지 알고 싶은 생각은 없었고.
“뭐 해? 들어와.”
은찬이 조용히 헛숨을 들이켰다. 주인도 식은 눈빛으로 어서 들어오라며 종용을 하고 있었으니, 발걸음을 떼지 않는 게 더 민폐였다.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도 모를 것 같은데…….’
하지만 은찬의 그런 걱정과는 달리 어머니께서는 맛있게 먹으란 말 한마디를 남겨두시고 방으로 사라지셨다. 식탁 위엔 현주인과 나, 둘만 덩그러니 남겨졌다는 소리다.
‘…뭔가 이상한데.’
보통 나가 사는 아들이 오랜만에 들어오면 좀 더 살갑게 대하지 않나. 나야 엄마가 돌아가셔서 잘 모르긴 하다만, 그래도 이게 정상 궤도에서 빗겨 나가 있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다.
흘깃-
그렇다고 이런 걸 물어볼 수도 없으니, 그냥 입 다물고 밥이나 먹었다. 밥은 또 기가 막히게 맛있어서 이 와중에도 오랜만에 한 그릇을 다 비웠다.
“야.”
“어?”
“너 자고 가야겠다.”
“컥.”
방금 마지막 숟갈을 입에 넣었는데 그대로 체할 뻔했다. 방금 핸드폰을 심각하게 내려다보던 현주인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말을 내뱉었다. 지금 저 말을 한 인간이, 내가 알던 현주인이 맞는지 다시 한번 의심하게 될 정도였다.
‘이거 지금 미행했다고 받는 벌인 건가?’
그래, 그게 아니라면 이런 상황이 일어날 수 없지. 은찬은 식사를 마친 뒤 저녁이 되면 자연스럽게 인사를 드리고 집을 떠날 생각이었다. 다행히 택시비 정도야 있고, 여기는 서울이니 어떻게든 숙소로 가고자 하면 충분히 갈 수 있었다.
그런데 ‘자고 갈래?’도 아니고 ‘자고 가야겠다’라니. 확정하고 통보하는 듯한 말투라 솔직히 당황스러웠다. 친구끼리는 보통 제안을 하지 않냐, 주인아. 너는 친구가 아니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만.
“나도 싫으니까 그딴 반응 하지 말고… 아버지가 새벽에 잠깐 들르신다고 해서 어쩔 수 없어.”
“나 그냥 지금 가면 안 되는 거냐?”
“나는 방에 있지 않을 거니까 내 방에 있어도 되고… 딱히 내 방이랄 것도 없지만. 손님방이 편하면 거기에 있어.”
얘가 웬일로 자기답지 않게 군담.
그나저나 아버지라니. 딱히 되묻지는 않겠지만 무언가 사정이 있겠다 싶다. 그러고 보니 얘 예전에도 가족 모임 다녀오더니 표정이 썩어 있었지. 그것과 연관이 있는 건가.
‘평소 같았으면 그냥 썩 꺼지라고 했을 텐데…….’
아무리 사람이 변하려고 노력한다고 해도 성격마저 쉽게 변할 리는 없는데 많이 의외긴 하다. 어쩌면 이놈도 이렇게 행동할 만한 이유가 있는 거겠지.
“너 혹시 집에 있는 거 안 좋아해?”
나름대로 결론을 내린 은찬이 주인에게 몸을 가까이 하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 방에 들어가신 어머니께 들릴 수도 있으니까.
‘자식, 부탁하는 거 못하는 건 여전하네.’
대답은 없었지만 부정도 없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다고 하기에는 묘하게 수긍하는 느낌이었다. 몸을 제자리로 무른 은찬이 작게 한숨을 내쉬곤 고개를 끄덕였다.
‘이럴 때 보면 역시 어리다니까…….’
그냥 집에 혼자 있기 불편하니까 같이 있어달라고 하면 어련히 고려해 줄 텐데.
“으휴, 알겠다.”
합법적으로 놈을 감시할 수 있는 명분이 붙는 거니 이것도 나쁘지 않지. 부모님을 맞닥뜨리게 된다면 현주인 친구라고 오버하면서 활기차게 굴면 되고.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고 이 정도 협조를 못 해줄 이유도 없었다. 애초에 감시하겠다는 명목으로 불순한 짓 하다가 잡혀 온 거니까.
‘그나저나 그동안 뭐 하지…….’
당연히 숙소로 돌아갈 생각으로 나온 거라서 들고 온 게 아무것도 없는데. 지금 가진 거라곤 카드 지갑과 핸드폰뿐이다. 그야말로 대략난감 그 자체였다.
‘연습을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여기에서 모니터링을 하거나 영상을 보는 것도 좀 이상하고… 아!’
마냥 누워 있는 건 성미에 안 맞기에 심각하게 고민에 잠겨 있던 은찬이 눈을 번쩍 떴다.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는 표정이었다.
“너희 집 방음 잘되냐? 어머니께 들리면 안 되는데.”
“뭐 하게. 노래라도 듣게?”
은찬은 뭘 묻느냐는 얼굴로 입을 가로로 늘리며 실실거렸다.
“라이브 방송 하자. 저녁에.”
“…….”
“물론 너도 같이.”
이건 나쁘지 않은 기회다.
인터넷 반응을 보면 현주인과 나의 사이가 나쁜 줄 아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것도 자체 콘텐츠가 전부 공개되고 나서는 조금 사그라들긴 했지만 이럴 때 쐐기를 박는 게 중요했다. 그룹 멤버들끼리 사이가 좋네 안 좋네 하는 잡음 같은 건 아예 없는 편이 나았으니까.
‘팬들이 우리 휴가 간 것도 알고 있던데… 이럴 때 라이브 방송을 켜는 데다 장소가 본가다? 게다가 멤버랑 함께? 이것만큼 좋은 조건이 어디 있겠어?’
그딴 이야기는 쏙 사라질 게 분명하다. 오히려 사이가 좋다며 여론이 뒤집히겠지.
“…안 들리긴 하겠지만.”
“그럼 다행이네~”
주인은 주름진 미간 사이를 검지로 꾹꾹 눌렀다. 은찬의 생글거리는 얼굴을 보는 게 꽤나 고역인 듯싶었다.
“식사하셨어요?”
[ 어ㅋㅋㅋㅋㅋ웬일로 현주인이 라방을 켜? 이 불효자가? ] [ 엥 현주인 라방인데 왜 은차니가 있냐? ] [ 주인이는?!?!?!! ]화면에 얼굴을 비춰보던 은찬이 환하게 미소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