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ee hearts in failed idol’s eyes RAW novel - Chapter 69
69. 불청객이 되어버렸다(2)
방송이 연결된 걸 확인하자마자 입꼬리를 위로 쫙 끌어 올렸다. 하여간 이놈, 한 번도 라이브 방송을 켜본 적이 없다 보니 처음에 설정하느라 꽤나 애먹었다. 연결 후의 기쁨이 두 배였다고 해야 하나.
‘불효자라니… 그래도 현주인이 볼 수도 있는데 말이 좀 심하시네. 물론 신경 쓸 놈도 아니고 본인이 자초한 일이긴 하지만.’
팬들 사이에서는 소통을 자주 해주는 멤버를 ‘효자’, 그렇지 않은 멤버를 ‘불효자’라고 부르는 듯했다. 물론 반쯤은 장난이었지만 그 말에 뼈가 담겨 있다는 걸 은찬은 모르지 않았다.
‘그런 맥락에서 공개 계정에 잘 찾아오지도 않고, 데뷔한 지 거의 반년이 다 되었는데 라방을 처음 켠 놈은 불효자라고 불리기에 적합하긴 하지.’
게다가 멤버들이 공개 계정에 셀카를 올린 날에는 사진을 첨부해 달력 같은 걸 만들기도 하는 것 같던데, 오죽하면 현주인 팬들은 텅텅 빈 달력을 올리며 푸념을 했겠나. 현주인이 멤버들의 등쌀에 못 이겨 공개 계정에 사진이라도 올리는 날에는 울며 사진 저장을 한다고 들었다. 그러니 놈이 라이브 방송을 켜도록 한 건 아주 탁월한 선택.
“아, 주인 씨~ 빨리 앉으세요!”
화면에 대고 생글거리던 은찬은 고개를 위로 올리더니 누군가를 잡고 밑으로 끌어 내렸다. 위에서 잠깐 ‘놔’ 하는 목소리가 짧게 들렸으니 그게 주인이라는 사실을 팬들이 깨닫는 것은 아주 잠깐의 시간이었다.
[ 어, 현주인이다. ] [ 제발 저 잘생긴 얼굴 좀 자주 보여줘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 [ 개안 실화야… 나 주인이 사복 너무 좋아… ] [ 제발 자주 좀 보여줘………… 네 얼굴 못 보는 건 인류의 손해야 시간의 손해라고 ]‘이렇게 좋아하시는데 얼굴 좀 자주 비치면 어디가 덧나나? 닳는 것도 아니고.’
화면 속 빠르게 사라지는 댓글들을 읽어 내려가던 은찬이 주인을 흘긋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옆에 앉아 있는 주인에게 가볍게 손짓했다. 화면 앞이라 무시도 못 하는지라, 주인도 그런 은찬의 장단에 맞추어 상체를 은찬 쪽으로 기울였다.
‘말.’
‘해.’
이 두 음절을 말하기 위해 귓속말을 시도한 거다.
이놈은 그래도 카메라 돌아가면 이미지 관리 차원상 웃는 건 잘하니까. 뭐라도 떠들어야 라이브 방송이 가능한 건데 입을 꾹 닫고 있으니 은찬만 짜증이 차곡차곡 쌓이던 참이었다. 애초에 불효자 이미지 쇄신 좀 하라고 멍석 깔아줬더니만.
[ 머야 둘만 귓속말하지 말고 우리도 알려줘~! ] [ 뭐냐… 둘이 엄청 친하네?! ]“아! 옷 정리 좀 하라고 말해줬어요. 지니한테 들키면 부끄러울까 봐.”
은찬의 어설픈 핑계에 주인도 고개를 끄덕이며 멀쩡한 옷을 만지작거렸다. 쳐다보는 눈빛에 좀 더 좋은 수는 없었냐는 듯한 짜증이 담겨 있었지만 은찬은 가볍게 무시했다.
“그럼요! 저희 친해요! 연습생 시절도 계속 함께했는데?”
“네. 여기 저희 집이에요.”
[ 주인이 본가 갔어~? ]현주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 이건 말 안 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의외…….’
이런 친근한 방송 같은 건 솔직히 뚝딱거릴 줄 알았는데, 놈은 생각보다 수월하게 팬들과 대화를 나눴다. 적당히 앞머리를 쓸어 넘기며 얼굴을 보여주기도 하고, 나에게 친근한 척을 하며 장단을 맞추기도 하고. 내가 더 많이 말해야 할 줄 알았던지라 이런 협조적인 태도에 조금 놀라긴 했다.
[ 아니아니 모처럼 둘이 투샷인데 둘이 연습생 시절 썰 좀 풀어줘 ㅋㅋㅋ ]‘연습생 시절……?’
솔직히 기억 안 난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안 좋은 기억밖에 없다. 회귀 후의 연습생 시절이야 상황을 파악하느라 별다른 기억이 없고, 딱히 친하지도 않았다. 게다가 회귀 전에도 솔직히 좋은 기억은 없는데. 팬들한테 풀어줄 만한 이야기가…….
“저 사실 은찬 형이랑 연습생 때는 그다지 안 친했는데.”
머리를 열심히 굴리고 있는데 옆에서 주인이 먼저 운을 떼었다. 그것도 약간 불안한 시작으로. 지금까지 무난하게 대화를 나누던 은찬이 바짝 긴장을 했다. 저거 또 헛소리하면 수습을 해야 된다.
“이 형이 좀 바보 같긴 하지만 열정적이고 사람 착한 면이 있거든요. 제가 배우랑 아이돌 중에 고민하고 있을 때도 같이 하자고 설득해 주고, 대표님께도 말 잘해주고요.”
‘어?’
왠지 칠월칠석 때의 이야기도 조금 섞인 듯한데.
“가장 기억에 남았던 건… 연습 귀찮아할 때마다 저 쫓아다니면서 같이 연습하자고 했던 거예요. 처음에는 엄청 귀찮았는데 결국 따라 하게 되긴 했거든요. 좋은 영향을 많이 받았죠.”
주인의 이야기를 잠자코 듣던 은찬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속으로는 전혀 다른 생각을 했다.
‘사기꾼 새끼…….’
낯빛 하나 안 바꾸고 저런 거짓말을 술술 하다니. 확실히 연기력 하나는 타고난 놈이다. 저거 연습생 생활 아는 놈 없다고 칠월칠석 때 얘기 섞어 말하는 거 내가 모를 줄 아나. 심지어 그때마다 무시로 일관하거나 내 말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 놈이 뭐가 어째? 사람이 하도 어이가 없으면 헛웃음도 안 나온다던데, 지금이 딱 그런 상황이다.
[ 은찬이가 빤히 쳐다보는 거 봐 ㅋㅋㅋㅋㅋㅋ 감동받았나 봐~~ ]“뭐, 믿는 건 자유지만 진심이에요.”
게다가 화룡정점으로 마지막 한마디로 종지부를 찍은 놈은 나를 바라보며 웃기까지 하는 중이었다. 대체 연기에서 뭘 배워 온 건진 모르겠지만, 저렇게 화사하고 아련하게 웃으면 난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하는가?
‘이런 미친… 카메라만 안 돌았어도 한 소리 해줬을 텐데.’
어찌 됐든 카메라 앞이니 어색하게나마 입술을 달싹거렸다. 억지로 웃는 건 역시 쉬운 일이 아니었다. 팬들에게 진실을 알려줄 수도 없으니 어차피 은찬은 이도 저도 못 하는 상황이었다. 그저 약간의 억울함을 품고 웃을 수밖에.
“은찬이 그 묵주반지 정보 좀 알려줘~! 주인이가 자랑한 거 보면 혹시 우정링?”
때마침 화제를 돌릴 만한 댓글이 눈에 띄어 은찬은 그 댓글을 차근차근 읽어갔다. 처음에는 경쾌하게 읽던 것이 문장의 끝으로 갈수록 점점 목소리가 작아졌다. 말을 끝마친 은찬이 당황스러운 얼굴로 손을 내저었다.
“아, 아니에요. 이건 저희 엄마가 물려주신 거예요. 그래서 애착 반지가 된 거고. 그래도 많이들 궁금해하셔서 언젠가 말해야지 싶긴 했는데… 그래서 저도 정보를 몰라요. 죄송해요.”
은찬도 확인했던 부분이다. SNS상에서 은찬의 묵주반지에 대한 정보를 많이 궁금해하고 있다는 것은. 굳이 솔직하게 말할 필요는 없으니 적당히 에둘러 답을 했더니 다행히도 다들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팬들이 궁금해하는 질문에 적당히 답을 해주는 대화를 10분 정도 더 이어가다가 라이브 방송을 종료했다.
‘오늘은 헛소리를 들어서 그런가 이상하게 피곤하네…….’
은찬이 양팔을 머리 위로 쭉 뻗어 기지개를 켰다. 라이브 방송이 종료되자마자 얼굴에서 표정을 싹 지운 주인은 태블릿을 정리하며 덤덤하게 말했다.
“너 그 얘기는 하지 않는 게 나았어.”
“묵주반지? 팬들이 계속 궁금해하는데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보다는 낫지.”
“불특정 다수가 보는 데다 인터넷에 삽시간에 퍼질 텐데. 네 위험과 직결되어 있는 물건이면 좀 더 조심하는 게 맞지 않나.”
“…음, 괜찮아.”
이게 내 옆에서 떨어지면 사고가 날 수도 있다고 했던가. 그 말을 생각하면 아예 걱정되지 않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세세하게 이야기한 것도 아니니 피부로 닿는 불안은 없었다.
‘백무영 선배라면… 이미 알고 있고.’
게다가 현주인이 말하기 전까지는 나조차도 몰랐던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보통 인물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내게 있어 위험한 사람을 파악할 수 있는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그냥 괜찮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뭣하면 내가 해결할게.”
게다가 스스로 그런 상황을 헤쳐 나가지 못한다면 주변에 민폐만 끼치게 될 거다. 그건 죽어도 싫다. 더군다나 팬들에게 의문을 남겨주는 것도 싫었으니까. 지금 나에게 무엇보다 1순위는 제네시스의 안정과 성공이다.
“네가 알던 그렇게 멘탈 약한 유은찬은 아니야, 현주인.”
칠월칠석 시절의 날 기억한다면 저런 걱정을 하는 것도 예삿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회귀 후의 모습을 봐온 만큼 걱정을 조금은 덜어도 괜찮을 텐데.
‘…내가 믿음직스럽지 못하구만.’
여전히 못마땅한 얼굴로 일관하는 주인을 보며 은찬이 멋쩍게 웃고는 목을 가다듬었다. 그래, 현주인이 제일 걱정하는 건 이거겠지.
“무작정 쉴드 칠 만큼 빠돌이도 아니다.”
“…뭐, 그래.”
“잠옷이나 빌려줘. 일찍 잘래.”
백무영 선배한테 찍소리도 못 할까 봐.
충분히 걱정스러운 것도 이해는 가지만 나를 좀 더 믿어주었으면 좋겠다. 이건 내 욕심이기도 하니, 앞으로 신뢰를 줄 수 있도록 더 노력해야 할 것 같다.
집이 넓다 보니 부모님과 욕실이 겹치지 않아도 되는 점은 다행이었다. 방과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욕실에서 씻고 나온 은찬은 주인이 일러준 자리에 누웠다. 그러고는 익숙하지 않은 잠자리에 누워 오지 않는 잠을 청하며 구독 계정에 접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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윾찬이 갤주 아이돌파 실화냐
ㅇㅇ(113.235)
오늘부터 품는다ㅇㅇ
ㄴ 보는눈이있음ㄹㅇ
ㄴ 연생 때부터 꼰대질 존나 할 줄 알았는데 서먹했다는 거 보면 그건 아니었나 봄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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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봄새끼 원래 배우만 시킬 생각이었음?
ㅇㅇ(101.111)
감 없는 새끼… 윾랑둥이 아녔으면 은발도 못 볼 뻔했네
ㄴ ㅅㅂ 어느새 윾찬이 윾랑둥이 됨?
ㄴ 갤주가 그 정도로 칭찬한 거면 품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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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ㅊ이랑 ㅈㅇ이 사이 안 좋다고 루머 퍼트리던 계정
ㅇㅇ(198.21)
없어지거나 글 다 삭제한 거 실화냐?ㅋㅋㅋㅋㅋㅋ 어휴 할 짓 없는 새끼들아 그래 봤자 ㅈㄴㅅㅅ는 쭉쭉 클 일밖에 안 남음ㅇㅇ
ㄴ 밑바닥이라 위에 올라갈 계단은 많겠지 당연히ㅋㅋㅋ
ㄴ 응 느그 오빠 혼전임신 애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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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캡쳐본 속 격한 말투지만 대충 상황 파악 정도는 할 수 있었다.
‘확실히 이제 사이 안 좋다는 여론은 쏙 들어가겠네. 너무 가까워진 것 같은 느낌이 들기는 하지만.’
그래도 사이 안 좋은 것보다는 친하다는 여론이 백번 낫다. 불편한 잠자리라고 칭하긴 했지만 피로가 누적되었던 탓인지 은찬은 핸드폰을 확인하다 자신도 모르게 잠에 빠져들었다. 꿈도 꾸지 않고, 중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를 정도로 아주 깊게.
***
“와아, 이렇게까지… 감사합니다, 어머님!”
“아니야. 많이 남아서… 나눠 먹으면 좋지. 다음에 또 놀러 오렴.”
은찬은 양손 가득 과일을 받아 들고 현주인의 어머니에게 감사 인사를 건넸다.
‘역시 좋은 침구는 좋은 잠자리랑 직결되나 봐.’
여기서 대체 어떻게 잠을 자나, 하고 고민했던 게 무색하도록 너무 푹 잤다. 몸 상태가 가뿐할 정도로. 그런 나와는 대조적으로 현주인은 그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표정이 똥 씹은 것처럼 영 좋지 않았다. 저런 상태의 현주인은 괜히 건드리지 않는 게 답이었다.
‘나중에 물어봐야겠네. 자기 입으로 말해줄 스타일은 절대 아니니까.’
콜택시를 부르며 숙소로 향하면서도 놈은 여전히 표정이 좋지 않았다.
‘진짜 왜 저래?’
게다가 숙소에 도착해 선물받은 과일을 전부 깎아 정리해 두는 중인데도 표정이 안 좋았다. 어제 라이브 방송 끝냈을 때까지만 해도, 자라고 방문 닫기 전까지만 해도 저런 느낌은 아니었는데. 지금은 꼭 잘못 건드리면 터질 것 같은 위험한 분위기를 물씬 풍겨대고 있었다.
띠링-
냉장고에 깎아둔 과일을 전부 넣자 핸드폰이 울렸다. 식탁 위에 올려둔 핸드폰을 확인한 은찬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 코디누나 : 연말 무대 컨셉은 동물인데 어때, 얘들아? 이의 있는 사람? 근데 이미 옷 수선 다 해놨어 ㅎㅎ ]이건 이의가 있어도 제기하지 말라는 암묵적인 돌려 말하기다. 여기서 불만을 제기했다가는 스타일리스트 누나의 우울한 얼굴을 보게 될 수도 있다고.
‘…누나 취향이 저번부터 약간… 뭐랄까…….’
첨부된 사진을 확인하자마자 눈앞이 아득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게 도대체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