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ee hearts in failed idol’s eyes RAW novel - Chapter 72
72. 새 목걸이 줄
“이게 뭔데? 목걸이 줄?”
주인의 손에 있는 조그만 비닐 팩을 받아 든 은찬이 미간을 찌푸렸다.
“어.”
“나 선물받는 거 안 좋아한다. 빚지는 느낌이잖아.”
“안 물어봤는데.”
이런 식으로 나오면 다시 되돌려 주기 자존심 상하잖아. 하여튼 저놈은 내 신경을 건드리는 데에 일가견이 있다니까.
‘뭔데, 이게…….’
술기운 때문에 상황 파악이 빠릿빠릿하게 되지 않았다. 어쩐지 눈앞도 살짝 흐릿한 것 같아 눈가에 힘을 줬는데 딱히 달라지는 건 없었다. 천천히 비닐 팩 속에서 목걸이 줄을 꺼내 손바닥 위에 펼쳤다. 얇은 은색 목걸이 줄이었다.
“이것도 막 비싼 거 아니야? 나 저번에 선배한테 받은 것도 아무 생각 없이 받았는데 알고 보니 비싼 거라서 지금 엄청 부담스러운데. 내 어깨에 있는 돌 보여? 방금 너 때문에 하나 더 쌓였어.”
“돌 같은 소리 하고 있네. 그 정도는 아니니까 줄 바꿔 껴.”
“흐음…….”
평소라면 이놈 앞에서 백무영 선배 이야기는 그냥 생략했을 거다. 하지만 지금은 알코올 탓에 필터가 고장 났는지 할 말 못 할 말이 전부 튀어나왔다. 말하고 나서야 아차 싶었는데, 현주인은 그 부분에 대해 딱히 신경 쓰는 것 같지 않아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거… 받아도 되는 건가……?’
물론 현주인은 백무영한테도 받아놓고 뭐가 문제냐고 하겠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선물을 해줘야 하는 건 현주인이 아니라 나인 것 같아서. 생각해 보면 그동안 꽤 협조적으로 굴어줬는데.
“흐응, 내가 줘야 되는데.”
“벼룩의 간을 빼 먹지, 차라리.”
“쳇.”
아랫입술을 살짝 내민 은찬은 목걸이를 풀기 위해 손을 목뒤로 둘렀다. 술을 마신 탓인지 연결 부분이 잘 안 풀려 몇 번이나 매만진 후에야 목걸이 줄을 풀 수 있었다.
“아… 더럽게 안 풀려, 진짜.”
“하… 주정뱅이 챙기는 건 적성에 안 맞는데.”
답답했는지 현주인은 손을 뻗어 내 손에 들린 목걸이와 비닐 팩을 전부 뺏어 들었다. 그러고는 원래 목걸이 줄을 분리하곤 자신이 챙겨 온 새 목걸이 줄에 묵주반지를 걸었다.
“좀 튼튼한 거 차라고 준 거니까 착각하지 마. 그거 잃어버리면 나도 곤란해지니까 잘 관리해.”
현주인은 목걸이를 몇 번이나 살펴본 후에야 만족스럽게 끼워졌다 싶었는지 다시금 내 손에 목걸이를 돌려줬다. 그걸 받아 들고 다시 목걸이를 차는데 한 가지 의문점이 샘솟았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알코올 탓인지 질문에 필터링이 전혀 되지 않았다.
“네가 왜 곤란해져?”
“그게 왜 궁금한데?”
“그냥. 너 비밀이 너무 많아서.”
“…일부러 형 원래 차던 거랑 비슷한 걸로 샀어. 티 안 날 테니까 들킬 일도 없을 거야.”
“흐응…….”
‘얘 또 말 돌리네.’
아무리 술기운이 있어도 상대방이 말을 돌리고 있는지 아닌지 정도는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더 물어봤자 현주인은 날 취객 취급하면서 대답은커녕 듣지도 않을 게 분명했다.
‘…그래, 뭐 정신 못 차렸으면 지금쯤 밖으로 나돌았겠지. 1월 1일 새벽에 여기 박혀 있는 게 어디냐. 그런데 뭐가 곤란해지는 건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네…….’
더 이상은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안 굴러가는 뇌를 억지로 굴리려 하면 할수록 과부화가 걸리는 것 같았다. 아무렴 일단은 좋은 뜻으로 선물해 준 거니 대충 넘어가도 될 것 같았다. 징징 울리는 머리에 관자놀이를 꾹 눌렀지만 별 효과는 없었다.
“야, 고맙다.”
그래도 감사 인사는 해야겠지. 사람 된 도리로 건넨 인사에 현주인은 대꾸하지 않고 고개만 까딱였다. 하긴 이놈… 감성적인 대화 엄청 싫어했지.
‘그러고 보니 내가 몇 번이나 찾아가서 감정에 호소했을 때 전혀 효과가 없었던 것 같기도.’
그렇지만 술 마셔서 그런 생각밖에 안 떠오르는 걸 어떡해? 주정뱅이 같다는 건 나도 알고 있다.
“그냥. 협조해 줘서.”
“별… 내가 곤란해져서 그러는 거라고.”
“너 회… 쿨럭!”
“진짜 어디 모자란 거 아니냐?”
눈을 크게 뜬 주인은 은찬이 목을 붙잡은 채 컥컥거리는 모습을 보고 잠시 놀란 듯하더니 별일이 없는 걸 확인하고서 짜증스럽게 한숨을 토해냈다.
‘아! 진짜! 이 제약 열받네.’
제일 짜증 나는 건 다름 아닌 이쪽이었다. 따끔거리다 못해 얼얼한 목을 붙잡고 천천히 침을 삼켰다. 목울대가 울릴 때마다 칼날이 목구멍을 훑고 지나가는 것 같은 고통이 느껴졌는데, 덕분에 술이 좀 깬 것 같긴 했다.
‘실수하는 횟수를 거듭할수록 더 아파지는 것 같다. 이걸 어째.’
처음에는 이 정도가 아니었다. 그냥 묵주반지 쪽이 욱신거리다 목이 따끔거리고, 그다음은 목을 치는 것 같은 느낌이었지. 하지만 지금은 그것을 훨씬 상회하는 고통이 느껴졌다. 점점 아파지는 것이 마치 그 단어를 절대 입 밖으로 절대 내지 말라고 경고를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정말 실수라고. 조금 억울하다.
칠월칠석은 언급해도 되는 거고 ‘회귀’는 아예 언급조차 하면 안 되는 거야?
“…아무튼 옛날에는 네가 나 엄청 싫어하는 줄 알았거든.”
“어. 싫어해, 지금도.”
“어?”
“안 맞거든, 형 같은 타입. 보고 있으면 내 속이 다 답답해서 짜증이 치밀어.”
“아… 그래. 미안하다.”
‘내가 저놈을 상대로 무슨 분위기를 잡아보겠다고 한 건지…….’
하긴 저놈도 싫어하는 사람 상대하려면 어지간히도 짜증이 날 텐데 많이 참고 있겠다 싶다. 괜히 머쓱해져 운동화 앞코로 바닥을 쿵쿵 찧다 끌었다.
‘뭐라고 말 좀 해라…….’
차라리 현주인이 뭐라고 말이라도 더 얹어주면 좋겠는데 놈은 더 말을 얹지 않았다. 나라도 뭐라 말을 해야 할 텐데, 어떤 말을 하면 좋을지 몰라 입만 열었다 닫기를 반복했다. 손을 굽혀 엄지손가락만 내밀고 위쪽을 가리키려고 할 때였다.
“가자, 이제. 술 깼냐?”
“어… 어.”
“그리고 사과하지 마.”
하여튼 바라는 것도 많은 놈.
은찬은 혀를 한 번 찬 후 자리를 일어난 주인을 따라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옷을 얇게 입고 나와서인지 평소보다 몸이 으슬거렸다.
‘사고라…….’
생각이 많아졌다. 묵주반지가 없을 때의 위험성은 몸소 겪어서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게 현주인이 나서서 신경을 써줄 정도로 위험한 건가. 내가 모르는 사실들이 더 있는 것 같긴 한데 정확히 알 수가 없으니 속이 답답했다. 지금껏 목숨을 위협받아 본 적이 없어서 더 큰 긴장감이 들었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왜 그땐 스스로 삶을 포기하려고 했는지 의아해질 정도였다. 목숨 짐이 두 배가 되었잖아.
***
무난하게 2주가 지나갔다. 말 그대로 무탈, 무사고, 무사건인 ‘무난’.
‘칠월칠석으로 활동할 때는 매일이 비수기였는데도 비활동기가 이렇게 적적하게 느껴지다니. 사람이 적응의 동물이라지만 뭔가 웃긴 것 같아.’
소년미가 해체한 지금, 항상 소년미 타임을 함께했던 가을이와는 예전만큼 붙어 있지 않았다. 시간이 남을 때면 항상 가을이를 찾아가곤 했었는데 지금은 공통 관심사가 사라졌으니까.
‘그런데 어쩐지 가을이가 날 어색해하는 것 같단 말이지.’
게다가 묘하게 서먹했다. 내가 잘못한 게 있는지 되짚어봐도 짚이는 게 없었기에 답답하기만 할 뿐이었다. 일부러 쓸데없는 용건으로 자주 찾아가기도 했지만 예전만큼 가깝다는 기분이 들지는 않았다. 왠지 섭섭함이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나. 가을이는 아무리 사소한 변화라도 표정에서 다 티가 나니까.
백무영 선배에게 수상을 축하한다는 연락도 드렸다. 근래 찝찝해진 사이이기는 해도 나를 잘 챙겨주셨던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니 무시할 수 없었다. 좋아하던 선배가 상을 탔으니 당연히 축하할 일이기도 했고. 문제는…….
[선배! 뉴스타상 수상 너무너무 축하드립니다! 선배에게 정말 잘 어울리는 상입니다 ㅎㅎ 선배가 출연하신 드라마도 너무 재미있게 봤습니다. 영화도 개봉하면 꼭꼭 N차 뛰며 보러 갈게요!!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XD]‘바쁘신가?’
답이 없다.
하긴 그 이후 지인들에게 많은 연락을 받았을 테니 내 연락 정도야 묻힐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내심 답장 한 줄 정도는 해주실 줄 알았는데 아예 아무 연락도 없으실 줄은.
‘저번부터 계속 연락이 없으시네.’
눈앞에 뜬 메시지창을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미간 사이를 좁힌 채 한참을 들여다보다 액정을 점멸시키고 핸드폰을 엎어버렸다. 내가 고민해 봤자 답이 나올 문제가 아니었다.
이 두 가지 문제만 제외하고는 이상하게 모든 상황이 수월하게 굴러갔다.
‘비활동기가 이렇게 심심했던가~’
고작 2주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허전함이 남달랐다. 저번 휴식기야 현주인이 합류하는 이슈가 있었으니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지금은 다음 활동에 대한 기약이 없으니 더욱더 어색한 느낌.
‘하다못해 다음 자체 콘텐츠 촬영 안내라도 빨리 받았으면 좋겠다. 할 일이 없으니까 불안하기도 하고… 공식 계정에는 비하인드 영상이랑 연습 영상이 올라가는 중인 것 같지만.’
매주 있는 MC 활동을 빼면 아무 일도 없다니. 팬들을 만날 기회도 좀처럼 없는 데다 그럴 만한 활동이 없으니 모든 게 정체를 이루고 있었다. 당연한 결과로 업적이 달성되지 않으니 진전도 없었다. MC를 볼 때도 중간중간 사람들의 호감도를 확인해 봤지만 +80은 없었고.
“형, 이제 일어나요.”
“으응…….”
베개에 얼굴을 묻고 있던 은찬이 리온의 목소리에 부스럭거리며 일어났다. 몸을 반쯤 돌린 은찬은 마른세수를 두어 번 반복하다 머리를 쓸어 넘기면서 앓는 소리를 냈다.
“아, 진짜… 저 더 이상 안 깨울 거예요? 오늘 왜 이렇게 느릿해요?”
“…그냥 생각할 게 좀 많아서…….”
질린 듯한 리온의 한숨 소리에 은찬이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오전 6시. 아침을 시작하기에는 이른 시간이지만 오랜만에 스케줄이 있는 날이었다.
‘나야 6시에 일어나지만, 팬들은 지금부터 인원 체크 하고 있을 텐데… 지금도 줄 서계실 거 아냐. 빨리 움직여야겠다.’
은찬이 어젯밤 미리 준비해 두었던 간식 꾸러미를 확인한 뒤 몸을 일으켰다.
‘어제 저거 스티커 붙이느라 손끝 다 닳아버리는 줄 알았는데.’
오늘은 설날 연휴에 방영될 연례행사 중 하나인 ‘아이돌 체육대회’ 촬영 날이다.
우리 팬들에게 주어진 좌석 수대로 미리 준비해 놓은 간식 꾸러미다. 회사 측에서 도시락이 나가긴 하겠지만 우리를 응원하러 와주신 팬들을 위해 하나라도 더 챙겨 드리고 싶었다. 더불어 몇 년간 들은 게 있기도 하고 회귀 전 유토피아가 이 프로그램에 출연한 것도 봤는데 우리 회사는 팬들을 그다지 잘 챙겨주는 편이 아니었다. 역시 이런 곳에서는 가수가 직접 팬을 챙기는 게 도리에 맞지.
‘눈치껏 봐두길 잘했지. 물론 출연은 못 했지만…….’
모든 아이돌이 다 모이는 프로그램이라고는 하나 칠월칠석 시절에는 출연도 못 했다. 이런저런 말이 많기는 하지만 어찌 됐든 기회다. 은찬은 미리 협찬받은 체육복을 흘긋 바라보곤 씻기 위해 방문을 나섰다.
***
“MC가 세주 누나네?”
“얘기 나눠봤어?”
“아니? 형이랑 MC 보니까 내적 친밀감 드는 거지, 그냥.”
별이 MC석에 있는 세주를 발견하곤 너스레를 떨었다. 이번 아이돌 체육대회의 MC 중 한 자리를 세주 누나가 맡은 모양이었다.
‘하긴 원래 유명한 MC 한 명이랑 라이징 스타 한 명이 붙는 게 관례이긴 하지.’
딱히 이상할 일도 아니다. MC석에서는 이번 아이돌 체육대회 MC 세 명이 선서를 하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은찬이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좌우로 돌려 주변을 슥 바라보았다. 익숙한 얼굴들이 지천에 깔려 있었다. 게다가 가슴에 대문짝만하게 붙은 이름표 때문에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해도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동물의 왕국이라지만…….’
이건 조금 많지 않나? 이 프로그램이 이 정도였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