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ee hearts in failed idol’s eyes RAW novel - Chapter 77
77. 본선(2)
“뭐, 뭐예요? 갑자기? 깜짝 놀랐네.”
은찬이 응원석에서 갑자기 뛰어나오더니 제 앞으로 빠르게 다가오자 깜짝 놀란 주혁이 발걸음을 멈췄다.
“왜 그래요? 저 뛰는 사이 무슨 일 있었어요?”
“…….”
은찬은 놀라거나 어딘가에 꽂히는 일이 있으면 눈이 커지는 습관이 있었다. 지금이 딱 그랬고. 게다가 은찬은 주혁을 발견하자마자 몸을 밑으로 숙인 채 주혁의 발목 부근을 조심스럽게 만지며 관찰하는 중이었다. 욱신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돌아온 주혁으로선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아~ 형이 많이 놀라셨나 보네…….”
“뭐야? 무슨 일 있었어?”
뒤이어 따라온 이선이 신기하다는 듯 묘한 얼굴로 적당히 말을 덧붙였다. 주혁의 발목을 살펴보던 은찬의 표정이 굳기도 하고 놀라기도 하며, 짧은 한숨을 내뱉는 등 시시각각으로 변했다.
‘다행히 예전에 무대장치 밑으로 떨어졌을 때만큼 붓지는 않았네… 그때는 아예 다리 한쪽이 작살났으니까.’
세게 쥐면 부러지는 거라도 만지는 듯, 은찬은 심각한 얼굴로 발목을 조심스럽게 살폈다. 주변에 장막이라도 친 듯 아무 소리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 것 같은 얼굴이었다.
“형.”
주인이 그런 은찬을 불렀다. 은찬의 손길이 간지러운지 주혁은 발목을 살짝 뒤로 물렸다.
그런 주혁의 몸짓과 주인의 말에도 은찬은 인지하지 못한 듯 아무 미동 없었다. 주인의 미간 사이가 움찔거렸다.
‘다행히 발목을 삐끗한 정도로 그친 것 같은데 그래도 빨리 조치를 하지 않으면…….’
“형!”
“어?”
주인이 다시 한번 목소리에 힘을 주어 부르자 그제야 은찬이 고개를 쳐들었다. 아직도 눈이 크게 떠져 있는 게 온전히 원상태로 돌아온 건 아닌 듯해 보였다. 은찬이 급히 몸을 일으키곤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세 명을 향해 소리쳤다.
“나, 빨리 가서 부목이랑 에어파스 받아 올게. 여기서 기다려!”
“에~ 왜 저렇게 급하게 가? 저러다 은찬 형이 다치겠네.”
그러고는 쏜살같이 중앙 관리소 쪽으로 뛰어갔다. 간단한 의약품을 받아 올 생각인 것 같았다. 주혁이 허리를 굽혀 발목을 만지작거리다 한숨지었다.
“저 형 왜 이렇게 유난이지? 발목 부러진 것도 아닌데.”
“…뭐, 걱정스러웠나 보지.”
주혁이 발목을 원래대로 돌리려다 이내 멈추곤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고는 땀에 젖어 가닥가닥 갈라진 앞머리를 위로 밀어 올리며 반대편 팔을 이선의 어깨에 둘렀다.
“네, 주인님. 어디로 모실까요~?”
“아이씨, 현주인 부르는 줄 알았네. 이 와중에 장난이 치고 싶냐?”
“장난도 못 치냐? 잠깐 여기 있자. 은찬 형 지금 심장 떨어진 것 같던데 우리 없어지기라도 해봐. 엄청 불안해할 것 같은데.”
주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절뚝거리는 주혁을 부축하며 이선은 몇 발자국 뒤에 있던 응원석으로 돌아왔다. 부축을 받아야 편하긴 해도 주혁은 제힘으로 걸을 수 있었다. 은찬이 걱정하는 정도는 아니라는 소리였다.
“우승한 걸 좋아할 줄 알았더니…….”
바닥에 주저앉은 주혁이 앞머리를 탈탈 털며 중얼거렸다. 얼굴에서 묘한 섭섭함이 묻어 나왔다. 그런 주혁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주인이 작게 미소 지으며 주혁의 등을 툭 쳤다.
“다치는 거에 예민한가 보지.”
“그랬나. 저 몸 관리 안 하는 형이?”
“…남한테 더 민감하긴 해. 이긴 것보다 다친 거에 초점 둬서 삐졌냐?”
“삐지긴 누가 삐져. 내가 도이선인 줄 아냐?”
“뭐야. 갑자기 내 머리채는 왜 잡아?”
장난조로 툭툭 말을 걸던 주인의 표정이 순식간에 조금 어두워졌다. 다른 생각이라도 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런 주인의 표정 변화를 눈치챈 주혁이 마른 입술을 축였다. 그때 뒤에서 거친 숨소리에 묻힌 은찬의 목소리가 들렸다.
“서주혁!”
“오, 왔다.”
여전히 눈을 크게 뜬 채 굳어 있는 은찬은 돌아오자마자 주혁 앞에 서더니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주혁이 살짝 당황한 듯 반사적으로 양손을 은찬 쪽으로 뻗었다. 허공에서 멈추긴 했지만.
“얼른 이거 뿌리고 덧대자. 발 뻗어봐.”
차분하지만 떨리는 목소리였다. 방금 전 화들짝 놀라 어쩔 줄 몰라 하던 것보다는 많이 가라앉았지만 여전히 놀란 티가 역력했다.
“헤에… 보건선생님 같네, 은찬 형.”
은찬이 양손에 바리바리 챙겨 온 부목과 에어파스, 탄력붕대와 아이스 팩을 내려다보던 이선이 감상을 내뱉었다. 은찬이 주혁의 발목을 만지작거렸다. 잘못 만지면 부서지기라도 하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매만지는 손길에 당황한 주혁은 발을 뻗지 않았다. 그러자 은찬은 눈만 위로 올려 주혁을 빤히 바라보았다. 빨리 뻗으라는 듯한 무언의 재촉이었다. 주혁이 짧게 한숨을 뱉었다.
“아니, 이런 거 좀…….”
발을 내밀기는커녕 여전히 머뭇거리는 주혁에 은찬이 표정을 굳혔다.
‘덧나기 전에 빨리 해야 되는데.’
물론 심각하지는 않다지만 불안한 마음이 앞서는 걸 어쩌겠는가. 이전 생에 일어났던 일을 아는 게 이렇게 귀찮은 일일 줄은 은찬도 몰랐다.
그래도 춤을 그렇게 좋아하는 애가, 다리가 아파 그걸 못 하게 되는 상황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날마다 무너지는 주혁을 무기력하게 바라보던 것만 생각하면 지금도 머리가 지끈거렸으니까.
기껏 고생해서 순위권에 든 오디션도 엎어지고, 데뷔한 아이돌그룹은 뜰 기미도 안 보이고, 기어이 무대에서 다리가 부러져 재활하느라 활동도 못 하게 되고. 이제 와서 알게 된 거지만 운도 더럽게 없던데.
‘능력이 좋은데 운이 안 따라주는 건 재앙이나 다름없지 않나.’
그러니 더 불안하고, 예민하게 굴 수밖에 없다고.
그런 은찬의 마음을 추호도 모르는 주혁은 볼을 긁적이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느새 주혁은 목까지 빨개져 있었다.
“보는 눈도 많고 부끄러운데.”
“형, 주혁이가 칭찬부터 좀 해달래요.”
“…내가 언제!”
“원래 얘는 이긴 걸 더 뿌듯해하는 놈이잖아요.”
“아… 내가 언제 그랬냐고, 미친놈아!”
“주혁아~ 보는 눈이 이렇게 많은데 욕을 하면 어떡하냐.”
“아……!”
발끈해 소리를 빽 내지르는 주혁의 머리를 이선이 익숙한 듯 살살 쓰다듬었다. 그제야 은찬도 뭔가 놓치고 있었다는 듯 짧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완전 잘했어. 너 우사인 볼트인 줄 알았다, 주혁아.”
그러고는 엄지손가락을 추켜들고 주혁의 얼굴 앞에 내밀었다. 진심이 담긴 칭찬이었는데,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일으켰다.
“…아, 진짜……!”
귀 끝까지 새빨개져 입술을 앙다문 주혁은 부끄러운 듯 고개를 푹 숙였다. 다른 생각을 하는 사이 밖으로 살짝 빠져나온 발목을 앞으로 잡아 뺐다.
‘역시 주혁이한테는 다른 것보다 칭찬이 직빵이라니까.’
우선 주혁의 바지를 무릎까지 걷어붙이고 발목에 에어파스를 뿌렸다. 코끝에 찡한 파스 냄새가 감돌고, 차가운지 주혁 또한 살짝 움찔거렸다. 양껏 파스를 뿌리고 부목을 덧댄 뒤 탄력붕대를 단단히 감았다.
‘얘네보다 오래 산 게 이럴 땐 도움이 되네.’
과거에도 연습을 하다가 발목을 자주 삐곤 했다. 그때마다 이 정도 부상은 혼자 해결하곤 했다.
‘그때는 조금 속상했는데… 이럴 때 쓸모가 있네.’
주혁은 바닥에 발을 콩콩 찧어보기도 했는데, 다행히 잘 고정된 듯했다. 그제야 은찬도 한시름 놓았는지 표정을 풀었다. 은찬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아.”
그리고 뭔가 떠오른 듯 주혁과 눈을 맞췄다.
“그리고 너 승부차기 하지 말고 쉬었으면 좋겠어. 그건 그냥 기권해도 돼. 중요한 거 아니잖아.”
이게 주혁의 마지막 경기였으면 좋았겠지만, 아직 승부차기 본선이 남아 있었다. 아무리 경상이어도 무리해서는 안 됐기에 은찬은 승부차기를 기권하겠다고 말할 생각이었다.
“네?”
그런데 은찬의 바람대로 순순히 받아들일 주혁이 아니었다. 주혁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는 듯, 얼굴을 왕창 구긴 채 표정으로 따지고 있었다. 곧 주혁의 항변이 날아들었다.
“왼발 다친 건데 승부차기가 무슨 상관이에요? 저 공 차는 발 오른쪽이에요.”
“그래도 일단은 쉬는 게 낫지.”
아무리 덧대놓았다지만 괜히 계속 움직이면 더 안 좋아질 수도 있다. 이럴 땐 가만히 있는 게 최선인데, 승부욕 강한 주혁에게는 경기를 진행하는 게 더 중요한 모양이었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은찬이 주혁의 발목을 뚫어져라 바라보다가 다시 한번 단호하게 말했다.
“어? 너 그런 상태로 어떻게 하게. 그러다 덧나. 안 돼.”
“형, 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게 시간 허투루 날리는 거예요.”
“녹화하는 거잖아.”
“방송은 출전할 때만 찍히잖아요.”
“널 계속 지켜보는 팬들도 있고.”
“팬들 앞이니까 더더욱 아픈 티 내면 안 되죠. 그 정도로 아프지도 않고요.”
주혁의 발음이 얼마나 똑바른지, 평소보다 더 또박또박해서 귀에 때려 박혔다. 몇 발자국 뒤에서 대충 들어도 무슨 말을 하는지 다 들릴 정도였으니까.
‘그 와중에 틀린 말은 하나도 없네.’
어쩌면 저렇게 맞는 말만 골라 하는지, 얄미울 지경이었다. 본인 몸을 좀 더 생각해 줬으면 좋겠는데, 주혁의 성격상 지금은 그게 안 되는 모양이다. 팬들이 보고 있다는 사실에 더 무리하고 있는 것 같았으니까.
‘나한테는 맨날 내 몸보다 남 먼저 챙긴다고 뭐라고 하면서 자기는…….’
그리고 그런 이유라면 은찬도 더 이상 말릴 수가 없었다.
아이돌이 팬한테 잘 보이겠다는데 내가 무슨 자격으로.
“하…….”
어쨌든 여기서 바로 물러날 수는 없으니 딱 한 번만 더 말해보자.
“나는 쉬었으면 좋겠는데.”
“저는 무조건 나갔으면 좋겠는데요.”
“너 앞으로도 활동해야 하고, 연습에 레슨도 받아야 하는데 영향 있으면 어떡하게. 나도 리더로서 너 챙겨야 할 의무가 있어.”
“저 그 정도 아니라니까요. 형이 조금 과하게 반응하는 거예요.”
그렇지. 여기서 수긍할 리 없겠다고 생각하긴 했다. 은찬이 양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
‘끙…….’
이 상태의 서주혁 고집은 못 꺾는다.
단순히 일이 년 지켜본 게 아니라 몇 년 동안 축적되어 나온 결론이다. 은찬이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주혁의 다리 쪽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저게 지금 파스 붙여둬서 일시적으로 괜찮다고 느껴지는 걸 수도 있는데.’
곧 있으면 승부차기 본선이 진행될 텐데, 그 전까지 이 말싸움은 결론이 나지 않을 것 같았다. 은찬이 검지와 엄지로 콧잔등을 꾹꾹 문질렀다. 주혁의 말대로 내가 예민하게 구는 건가?
“내가 잘 막으면 되겠지.”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을 하던 차에 주인이 끼어들었다.
‘아, 그러고 보니 쟤가 골키퍼지?’
예선 때도 제법 잘 막았다. 원체 키도 덩치도 있는 데다 학교에서 애들과 공을 주고받았던 적도 제법 있는 것 같았으니까. 그나저나 쟤, 날 도와준 건가. 주혁이가 다리 때문에 고생했다는 사실을 모르지는 않을 테니.
“…서주혁, 그럼 넌 최대한 가만히 있어.”
한참 눈을 내리깐 채 땅바닥만 보던 은찬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이 정도가 은찬의 타협점이었다. 주혁이 열정을 너무 불태우지 않도록 하는 것.
“내가 두 배로 뛸게.”
“은찬 형, 아까 보니 잘하는 건 아니던데요?”
“나 이래 봬도 완도 공잡이였다니까!”
딱 타이밍 좋게 이선이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주혁도 은찬이 웃는 걸 보고서야 마음이 편해졌는지 굳었던 얼굴을 풀고 다리를 스트레칭하기 시작했다.
“이해해 줘서 고마워요, 형.”
“너는~ 진짜 집에 가면 환자 취급 받을 줄 알아!”
그래도 배려를 모르는 놈은 아니라 저런 팩트 폭격들이 밉지 않은 거겠지. 말만 그런 게 아니라 정말 숙소에 도착하면 침대 신세만 지게 할 생각이다. 그때는 주혁이가 답답하다고 해도 꼭!
-승부차기 본선에 참가하시는 분들께서는 좌측 골대 옆으로 모여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