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ee hearts in failed idol’s eyes RAW novel - Chapter 79
79. 황소개구리의 등장
‘음…….’
보통 소속사 단톡방에 띄워야 할 정도의 공지 사항이라면 소속사 내부의 이슈라는 뜻이었다. 기가 먼저 빨릴 것인지, 마음의 준비를 한 뒤 빨릴 것인지 선택을 해야 했다. 그래 봤자 조삼모사였지만.
‘좋은 소식이 있을 것 같은 제네시스 단톡방부터 보자.’
눈앞에 딸기 케이크가 있다면 딸기부터 먹는 은찬이었다. 원래 좋은 건 아끼면 똥 되는 거다.
은찬이 고개를 끄덕이며 [제네시스]라고 되어 있는 단톡방을 눌렀다. 대표님으로부터 서너 줄 정도의 공지 사항이 도착해 있었다.
[ 대표님 : 20XX 새해맞이 새로운 마음가짐을 갖고~ 너희들의 실력 향상을 위해 이번에 새로운 수업을 하나 개설했다. 앞으로 무용 레슨을 받게 될 거니까 개인 시간표 잘 확인하도록 하고~ 현대무용 재밌겠지? 무용을 무용지물로 만들면 안 된다ㅋㅋ 나중에 안무에도 섞어서 쓰면 얼마나 좋겠냐ㅋ 암튼 다시 한번 새해 복 많이 받아라~ ]대표님의 아재 개그보다 더 인상적인 단어가 눈에 띄었다.
‘무용?’
미간에 힘이 들어가다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 보니 현대무용 가르치는 소속사가 많다고 듣긴 했는데.’
물론 어깨너머로 조금 알게 된 것이다. 회귀 전에는 유토피아 멤버들에게만 가르치기도 했고. 가끔 레슨실에서 무용 레슨을 받고 있는 유토피아 멤버들을 보며 궁금해했던 기억이 있으니 어쨌든 희소식이다.
‘안무랑 접목하면 좀 더 유려한 춤선이 나올 수도 있겠다. 대표님이 웬일이래…….’
이제 다음 차례다. 은찬은 마음의 준비를 한 뒤 머리를 털었다. 그리고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소속사 단톡방을 눌렀다.
[ 대표님 : 소속사에서 몇 명 뽑아서 오디션 프로그램 진행한다는데 사전 미팅 참가하고 싶은 사람 있으면 최지수 신인 발굴 팀장한테 연락 줘. 아래는 관련 공문. ]동시에 전송된 사진을 클릭하자 문서 모양의 이미지가 화면 가득 띄워졌다.
[ 프로듀싱 365 – 글로벌 프로젝트 보이 그룹의 멤버가 되실 참가자들을 모집합니다.해당 그룹은 총 11명으로 이루어지며, 합숙과 동시에 촬영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소속사별 참가 희망 연습생들의 사전 미팅 및 오디션 후 국민 참여 공개 오디션 형태로 진행되는 프로그램입니다.
사전 미팅 일자 : 20XX. 02. 14
사전 미팅 후 합격자에게 오디션 기회가 주어집니다.
CM그룹 M-world ]
묵묵한 표정으로 글자들을 읽어 내렸다.
‘이 생태계 파괴종이 드디어 오는구나.’
그저 이런 감상밖에 들지 않았다. 이 프로그램의 등장은 몇 년이 지나도 잊으려야 잊을 수가 없었다. 프로듀싱 365는 케이팝 시장에 한 획을 그어놨다고 칭해도 모자람이 없을 정도의 프로그램이었으니까.
그동안 수많은 공중파 오디션 프로그램이 방영됐음에도 이 케이블 오디션 프로그램의 발치도 쫓아오지 못했다. 여기서 데뷔를 한 11명은 말 그대로 초대박, ‘케이팝의 황소개구리’라고 불렸으니까. 비록 1년짜리 프로젝트 그룹이었지만 방송 내내 받은 조명과 관심은 데뷔 후 배가 되면 됐지 덜하진 않았다. 물론 그것도 해체 전까지 유효했지만. 아무튼 아이돌 지망생이라면 절대 놓쳐서는 안 될 기회였다. 은찬에게는 단지 착잡할 소식일 뿐이었지만.
‘관심이 이쪽으로 쏠릴 수밖에 없을 텐데… 이걸 어떻게 붙잡는다……?’
제네시스로 성공할 생각이었으니 제네시스에 온전히 집중해야 했다.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던 중이었다. 몇 명의 연습생들이 사회생활의 대표 대답이라는 ‘넵’을 보내는 사이 익숙한 이름이 눈에 띄었다.
[ 함정원 : 네! ]이름을 보는 것만으로 사람을 불쾌하게 만들 수 있는 것도 재능이다. 은찬의 얼굴이 살짝 구겨졌다. 설상가상으로 메시지가 하나 더 도착했다.
[ 대표님 : 데뷔한 애들도 그룹 띄운다는 명목하에 연습생 신분으로 참여할 수 있다고 하던데? 그냥 그렇다고. ]묘하게 기분 나쁜 한마디가.
‘지금 데뷔한 게 우리밖에 없는데 우리한테 하는 말인가? 무슨 중고 소리 들을 일 있나…….’
핸드폰을 내려다보며 눈을 반복해 깜빡거렸다. 미간 사이에 박힌 주름은 펴지지 않았고 영 오묘한 기분 또한 나아지지 않았다. 문득 칠월칠석 당시 이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갈 수 없냐며 대표님을 찾아갔던 기억이 스쳐 갔다.
‘예전에는 참가하고 싶다고 해도 칼같이 거절하셨으면서 무슨 일이시래.’
당시 은찬은 다 내려놓고 연습생 신분으로나마 프로듀싱 365에 참가하고 싶다고 말했다. 물론 대표님은 이미 데뷔를 했는데 그게 무슨 소리냐며 다른 연습생 친구들에게 기회를 주자고 적당히 거절하셨고.
그 결과로 함정원이 프로듀싱 365에 나가게 됐고, 함정원은 1년간의 성공적인 프로젝트 그룹 활동 후에 재데뷔했다. 그 결과 소속사에서는 유토피아 초대박과 프로그램 시작과 동시에 묻힌 칠월칠석으로 인해 희비가 교차했다. 가뜩이나 바람 앞의 촛불 같았던 칠월칠석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깡그리 사라져 버린 계기기도 했다. 물론 그걸 공고히 한 건 현주인이었지만.
‘하지만 지금은 멤버들끼리 단합도 잘되고 그럭저럭 상승 곡선이니 나갈 필요가 없지.’
우리끼리 잘해낼 수 있다고.
‘아닌가… 나의 착각인가?’
어쩌면 멤버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끼리 잘해낼 수 있다는 건 나의 자신이고 믿음일 뿐이지, 멤버들의 생각을 속속들이 알 수는 없으니까. 또 다른 생각을 할 수도 있는 법이다. 이럴 때 공중파 오디션 프로그램 출신인 주혁이 떠오를 건 또 뭐냐고.
“하아…….”
몸도 피곤한데 생각을 너무 많이 하는 바람에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왔다. 정신을 차린 건 리온이 턱 밑에서 중얼거렸을 때였다.
“형, 거기서 그러지 말고 비켜주세요. 저도 씻어야 돼요.”
“어, 미안. 리온아, 그…….”
“응?”
“아니야. 고생했어.”
욕실 앞을 떡하니 가로막은 채 핸드폰만 내려다보며 인상을 쓰고 있던 은찬이 답답했던 모양이었다. 문 앞에서 물러난 은찬은 리온의 맑은 눈동자를 바라보다 고개를 내저었다. 리온은 다른 대꾸 없이 곧장 욕실로 들어갔다.
‘괜히 눈치만 보게 되네.’
혹시 멤버들 중 오디션 프로그램에 관심 있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잖아. 이게 내 기우거나 쓸데없는 생각일 가능성이 높기는 하지만.
“조용히 들어와라. 잔다.”
“네.”
일부러 손잡이를 밑으로 꾹 누른 채 조용히 문을 닫았는데도 발소리가 거슬렸던 모양이다. 말싸움할 기력이 없어 대충 대답하고 침대에 벌렁 드러누웠다. 현주인이 이쪽을 흘깃거리는 게 느껴졌다. 어차피 무시할 거지만.
‘아씨, 이런 생각을 해서 뭐 해. 더 잘할 생각을 해야지. 저 프로젝트 그룹 데뷔하면 일단은 관심에서 밀릴 테니… 어떻게든 대중의 눈에 더 띄어야 해.’
멍하니 컴컴한 천장을 응시하다 눈을 감았다. 당장이라도 침대 밑으로 빨려 들어갈 것같이 피곤한데 쉽사리 잠이 오지 않았다. 꼭 불면증이 생겼던 때처럼.
***
‘젠장… 결국 한숨도 못 잤네.’
혼자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새벽 내내 붙잡고 있었다니. 스스로가 한심해서 간밤 내내 마른세수를 반복했다.
“아침…….”
두 손바닥에 닿는 얼굴의 감촉이 버석한 것이, 누가 봐도 날밤 새운 놈 티가 날 것 같았다. 촬영 없는 날인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찬물 샤워라도 해야겠다.’
한 새벽 4시쯤에는 차라리 수면제라도 먹을걸- 하고 후회했다. 하지만 애매한 시간에 수면제를 먹었다가는 오늘 하루를 통으로 날릴 것 같아 참았더니, 지금은 또 그게 후회됐다.
어쨌든 찬물을 맞으니 굳어 있던 머리가 조금씩 굴러가기 시작했다.
언제까지고 이러고 있을 순 없으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했다. 지금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능력치를 키우는 것.
아이돌은 대중에게 보이는 직업이다. 중간에 어떤 연습 과정이 있어도 결과물이 별로라면 대중들은 알지 못한다. 그 과정까지 알아주는 게 지니들이니 팬들한테는 당연히 더욱 잘해야 하는 것이고.
‘이럴 때 스탯을 분배해야지.’
내 스탯을 이미 끝까지 올렸는데도 계속해서 스탯 분배 횟수를 주는 게 의아했는데, 이럴 때 써먹으라고 하는 거였나 보다.
그렇다면 우선 스탯 나눠줄 멤버 순서를 정하고 차례대로 배분해 줘야지.
“좋았어!”
앞머리를 쓸어 넘기며 물기 젖은 거울을 보던 은찬이 소리쳤다. 문 바깥에서 달그락거리던 소리가 끊기고 우렁찬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형, 왜 그래? 거시기 자랐어~?”
“야! 제발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옷 정리나 해!”
굳이 은찬이 발끈해서 소리치지 않아도 옆에서 태클을 걸어준다. 소리칠 수고를 덜었다고 치기엔 살짝 민망해져 괜히 목을 가다듬었다. 큼큼거리는 소리가 물소리에 묻혀 사라졌다.
“으… 추운데?”
정신을 차리겠다는 목적은 충분히 달성했으니 다시 물의 온도를 따뜻한 쪽으로 맞췄다. 역시 찬물은 오래 맞을 만한 게 못 된다.
‘지금 스탯 분배 횟수가 얼마나 남았더라.’
은찬이 작게 스탯 분배 횟수를 보여줘, 하고 중얼거렸다. 곧 물줄기 사이 벽면 앞으로 글자가 나타났다.
[ system : 스탯 분배 횟수 : 3 ]‘아씨, 역시 생각보다 적네.’
아이돌 체육대회에서 호감도가 80% 이상인 사람을 못 본 건 아니었다. 아이돌 체육대회에서 디어플러피분도, MC를 진행할 때 팬석에 익숙하신 얼굴도 전부 확인해 봤었다.
‘그러나 이번 기회를 통해 한번 추가 스탯을 얻은 인물에게서는 다시 얻을 수 없다는 사실만 깨닫게 됐을 뿐이었지.’
그 이후로는 난항이었다. 다들 애매하게 모자라거나, 아예 기준선에 부합하지 않았다. 나에 대한 반응이나 호응 정도로는 호감도 수치를 예측하기가 힘들었기에 결국 제대로 된 소득을 얻을 수 없었다.
‘현주인한테 먹혔던 호감도 10 상승을 그럴 때 써야 했는데. 뽑기는 아무 때나 쓸 수도 없으니.’
빠르게 멘트를 쳐야 하는 음악방송 MC 자리의 특성상 뽑기를 돌릴 틈이 없었다. 생방송에서는 1초의 타이밍도 놓쳐서는 안 되고, 하물며 딴생각을 하는 게 티가 나기라도 한다면 최악이니까.
‘어쨌든… 이걸 알고 있는 건 현주인뿐이니 논의라도 해봐야 할 것 같네.’
샤워기의 물을 끄고 수건으로 머리를 탈탈 털어냈다. 나가자마자 현주인과 대화를 시도할 심산이었다. 아까 북적이는 소리 속, 현주인의 목소리가 섞여 들렸으니 아마 부엌에 있겠지.
끼익-
“야, 외모 별 다섯 개짜리.”
“…뭐야?”
“푸흡.”
물론 정확하고도 객관적인 정보로 부른 것이다. 하지만 ‘외모 별 다섯 개짜리’라고 불렀는데도 곧장 뒤를 돌아보는 놈의 행동이 웃겨 웃음이 터졌다. 심지어 너무도 뻔뻔하고 당연하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놈은.
“…형, 너 낮술 했냐?”
“아니. 그냥 한번 불러봤는데.”
“외모 별 다섯 개짜리 좀 빌릴게, 얘들아. 괜찮지?”
“아, 원래 잘생긴 애 잘 안 빌려 드리는데~ 다녀와요.”
이선이 현주인의 등을 떠밀며 화사하게 웃었다. 현주인은 커피를 마시려던 참인지 머그잔을 들고 인상을 찌푸렸다. 눈을 꾹 감고 있는 게 화를 참고 있는 모양이었다.
“너 이제는 그냥 막 말하려고 작정했나 봐? 거리낌이 없냐?”
“그런 건 아니고.”
리온이 하품하며 씻으러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빨리 대화를 마쳐야 했다. 은찬은 서론을 깔끔하게 쳐내고 바로 본론부터 들어갔다.
“그래, 외모 별 다섯 개짜리야. 내가 너한테 스탯 분배에 대해 언급했었지?”
현주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남한테 줄 수 있다고 했던 것도 기억하고?”
현주인은 커피를 한 모금 홀짝이며 한 번 더 고개를 끄덕였다.
“슬슬 멤버들 스탯을 올릴 시기가 온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