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ee hearts in failed idol’s eyes RAW novel - Chapter 86
86. 변승채(2)
“그…….”
겨우 운을 뗐을 때였다. 뒤에서 우당탕거리는 발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니 처음 보는 남자가 얼굴을 왕창 구긴 채 거친 숨을 내뱉는 중이었다. 그러고는 이마를 스윽 닦더니 나와 변승채 선배를 번갈아 보고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변승채 씨! 아, 진짜… 어디 있었어요? 찾아다녔잖아요. 의상 피팅 다시 해본다니까! 빨리 오세요!”
“아~ 들켰네? 은찬 씨, 그럼 또 봐!”
매니저인 모양이다. 순식간에 남자에게 팔을 붙들린 변승채 선배는 생글생글 웃으며 손을 휘적거렸다.
‘뭐야… 도망 나온 거야?’
30분 시간이 뜬다길래 여유로운 줄 알았더니. 순 사기였잖아.
하필 중요한 질문을 하려고 할 때 이렇게 타이밍이 어긋나다니.
“아, 선배님!”
“엉?”
그렇지만 기회가 지금만 있는 건 아니니까.
급히 옆 테이블에 놓여 있는 종이 위에 전화번호를 날려 적었다. 그러고는 전화번호가 적힌 부분을 부욱 찢어 변승채 선배에게 양손으로 건넸다. 변승채 선배의 얼굴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이거 제 연락처예요. 심심하실 때 연락 주세요!”
“올~ 요즘 애들 당돌한데? 무영이가 질투하는 거 아니냐? 오냐. 보관해 둘게. 그럼 간다! 즐거웠어.”
그러고는 곧 킥킥 웃으며 건네준 쪽지를 받아 들고는 재킷 윗주머니에 넣었다. 또 보자, 하고 마지막 인사를 하는 변승채 선배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퇴근해야겠다.’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해 보니 정확히 25분이 지나 있었다. 정신없고 폭풍 같은 시간이었다. 호감도를 확인해 볼 생각조차 안 날 정도로. 별 대화를 나눈 것 같지도 않은데 시간이 너무나도 빨리 지나가 버렸다.
‘백무영 선배에 대해 더 물어봐야 했는데… 아쉽네. 변승채 선배가 꼭 연락해 주셨으면 좋겠는데… 워낙 발이 넓으셔서 나한테까지 신경을 쓰실 거라는 확신이 없다.’
무대에 대한 열정이 넘쳤던 백무영 선배가 제일 친한 변승채 선배에게 연기하고 싶다고 말했다는 거라면… 그건 정말 진심이었을까. 대화의 뉘앙스를 보면 변승채 선배도 재계약을 하고 싶어 하셨던 것 같은데. 백무영 선배가 대체 어떤 식으로 말했길래 자기의 의견을 피력하지 않고 수긍한 걸까.
‘아니, 애초에 변승채 선배가 연기를… 하고 싶어 했었나? 첫 연기가 나인틴나인틴이라는 웹드라마였던 것 같은데. 하지만 그것도…….’
나인틴나인틴.
무언가가 떠올라 입꼬리가 올라갔다. 변승채 선배는 현주인과 함께 연기한 적이 있다. 아무리 소년미의 유명세 덕분이라고는 해도, 아역배우 출신인 현주인 대신 주연 자리를 가져간 게 내심 신기하긴 했는데 그에 대한 답을 들으면 얼추 추리가 가능할 것 같았다. 현주인에게 물어보면 정확한 답이 나오겠지.
‘이래서 사람이 재산이라니까.’
통화 목록 중 최상단의 ‘이진국 형’을 눌러 전화를 걸었다.
***
스탯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데 운 좋게도 퇴근길에 스탯 분배 횟수 1회를 획득할 수 있었다. 차로 향하는 도중 관심을 가져주는 팬분들께 인사를 하는데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분을 발견했다.
[ ♡ +70% ]딱 아쉬운 수치길래 같이 셀카나 찍어야겠다 싶어 모여 있는 팬분들 틈으로 들어가 브이 하며 포즈를 취했다. 매니저 형은 눈치껏 재빨리 카메라를 꺼냈으며 그사이 재빠르게 뽑기를 돌렸다. 지난번처럼 호감도 10 상승이 나오길 간절히 빌면서.
‘진짜 다행이었지.’
-현재 유은찬 님의 뽑기 사용 가능 횟수 : 2
나의 행운 스탯 덕분인지 다행히 원하는 스킬을 사용할 수 있었다. 그렇게 호감도가 80%로 상승된 덕에 스탯 분배 횟수 1회를 획득할 수 있었고. 이걸로 2회.
‘하지만 이걸로는 리온이 스탯창 해금밖에 못 해. 최소한 1회는 더 모아야 해.’
침대에 누워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형광등을 바라보며 머리를 굴리는 중에도 뾰족한 수가 생각나지 않았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 호감도가 높을 만한 사람… 아무리 생각해도 없다.
‘가을이가 회귀 초반에 60%였던 것 같은데… 마주치면 한번 확인이나 해볼까.’
스킬이 호감도를 상승시켜 준다고 해도 10%뿐이다. 60%라면 스킬로 어떻게 할 수도 없었다.
‘그리고 어떻게 80%를 만든다 쳐도, 80%가 되면 체감 수치도 다를 테니까. 계속 붙어 다녀야 하는 가을이한테는 위험할 수도 있어.’
아무래도 나에 대한 감정이 갑자기 달라지면 본인도 이상함을 느낄 것이다.
“으음.”
은찬이 몸을 뒤척이며 인상을 찌푸렸다. 역시 이건 좋은 방안이 아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시도해야 할 마지막 방안이다.
“야.”
마침 씻고 들어온 현주인이 눈에 띄었다. 놈은 수건을 목에 두른 채 방에 들어와 스킨케어를 하기 시작했다. 좋은 인맥 매개체를 잊고 있었잖아?
“야.”
현주인은 대꾸하기 귀찮다는 듯 대답 없이 하던 일을 계속했다. 손바닥이 얼굴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네 주변에 나한테 호감 있을 만한 사람 없을까?”
그제야 놈은 내 쪽을 바라봤는데, 표정에서부터 짜증이 줄줄 읽혔다.
“네가 사람들한테 호감 살 행동을 해.”
놈은 정곡 찌르는 말을 내뱉곤 다시 제 할 일에 열중했다.
‘저 자식이…….’
웃고 있던 얼굴에 약간 지진이 왔다. 틀린 말이 아니라 대꾸하지 못하고 다시 정자세로 벌러덩 누워버렸다. 좋은 수라 생각했는데 이것도 아니었다니. 역시 정직한 방법으로 노력하는 수밖에 없나.
“야.”
“아… 또 왜.”
“그럼 너, 혹시 오디션 프로그램 나가고 싶어?”
“…….”
멤버들의 의견을 묻는 거야 딱히 눈치 보이지는 않았다. 무슨 답이 나오건 일단 팀 활동부터 열심히 해보는 게 어떻겠냐며 설득은 해보겠지만, 결국 본인의 선택을 존중하는 게 맞는 거니까. 하지만 답변을 하기까지 어느 정도의 텀이 생기면 솔직히 긴장되기는 했다.
“난 쓸데없이 귀찮은 일 안 만들어.”
“크크, 그래. 쉬어라.”
활짝 웃고는 현주인을 등지고 누웠다. 최대한 무심한 척했지만 솔직히 기뻤다. 저놈이 드디어 팀을 우선시해 주는 것 같아 뿌듯하기도 했고.
***
아직 타이틀곡이 나오지 않았기에 이번 곡 녹음은 멤버별로 스케줄에 맞춰 진행됐다. 듣자 하니 개인 파트를 나눠 부르고 추후에 합친다는 것 같았다. 확실히 효율적이긴 했지만 다른 멤버를 구경하는 맛이 사라져 조금 아쉽기도 했다.
“은찬아.”
“네.”
갑자기 MR이 뚝 끊겼다. 유리창 바깥에 있는 디렉터 형이 무언가를 살피는 모습을 보아하니 거슬리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았다.
“그 마지막 싸비 부분 말이야. 좀 더 능글맞게 불러볼 수 있어?”
“능글맞게요?”
“어. 너 음색이나 이미지상 그런 거 안 어울리는 거 알고 있긴 한데, 곡 분위기가 고혹적인 느낌이다 보니까 한번 시도해 봐도 괜찮을 것 같아.”
“음… 한번 해볼게요.”
‘능글맞게……? 느끼하게 불러보라는 건가?’
칠월칠석 때는 무거운 곡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밝게 불렀던 적이 손에 꼽았다. 원래 톤보다 한 톤 정도 낮게 불렀기 때문에 지금도 그런 느낌으로 목소리를 냈던 거고. 디렉터 형의 요구대로 원래 톤으로 불러보니 같은 파트, 같은 가사임에도 분위기가 전혀 달랐다.
‘이게 아닌가?’
파트를 마친 후 슬쩍 디렉터 형 쪽을 흘겨봤는데 표정이 영 좋지 않았다. 이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뜻. 아니나 다를까, 고개를 갸웃거리던 디렉터 형은 이쪽을 바라보며 고개를 내저었다.
“다시. 좀 야하게 불러본다고 생각해도 괜찮아. 여자 친구 꼬신다고 생각해 봐도 괜찮고.”
다시 들어온 디렉팅 지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 친구 없는데요…….’
굉장히 애매한 지시다. 정말 예술 하는 사람 같은 지시라고 할까나. 아무튼, 어떤 느낌을 원하시는 건지는 감이 왔다. 여태껏 이런 느낌으로는 노래를 불러본 적이 없어서 잘 나올지는 긴가민가했지만.
“오케이! 수고했어.”
단연코 제네시스 데뷔 이후 이번 녹음이 가장 어려웠다고 단언할 수 있었다. 몇 번을 반복한 후에야 마음에 드는 목소리를 담아낼 수 있었다.
‘그나저나 이 노래가 이런 느낌인가? 아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 곡은 리온이 자작곡이 아닌 회사 전담 소속 프로듀서에게 받아 온 곡이다. 회귀 전에도 이 노래를 수록곡으로 실었었는데 그때는 별다른 지시를 받지 않고 통과를 받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새로운 지시가 들어온 것이다.
“하아…….”
역시 첫 시도는 힘이 많이 소비된다. 보컬 스탯을 4.5까지 올려둔 덕분인지는 몰라도 비교적 수월하게 끝난 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 안 쓰던 창법을 쓰려면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니까.
‘연습 좀 많이 해야겠네. 이곡을 완벽하게 부르려면.’
여러 번의 시도 끝에 겨우 끝낸 녹음이다. 이걸 내 걸로 체화시키려면 기나긴 연습의 시간이 쌓여야 할 것이다.
‘혹시 단독 콘서트를 하게 되면 부를 수도 있고.’
멤버들도 제네시스로서의 활동 의지가 강하니 나 역시 그에 상응하는 노력을 해야 했다.
전날, 은찬은 먹잇감을 찾는 하이에나처럼 숙소를 어슬렁거렸다. 평소에는 가만히 누워 있거나 연습실로 가는 게 전부인 은찬이었던지라 멤버들의 시선이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은찬은 거실 소파에 앉아 있다가 주방을 들락거리기도 하고, 멤버들의 방에 들어가기도 했다. 그러고는 방 안을 구경하는 듯하다 뜬금없이 말을 걸었다. 첫 번째 타깃은 주혁이었다.
‘주혁아, 너 오디션 프로그램 나가고 싶냐? 난 너 안 나갔으면 좋겠는데.’
그런 은찬의 태도에 주혁이 황당한 감정에 휩싸인 건 당연지사. 은찬은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듯한 태도로 물었으나 눈치 빠른 주혁이 그 속을 모를 리 없었다. 그러고는 진저리 난다는 듯 손을 휘휘 내저으며 간결하게 답했다.
‘오디션 프로그램은 인생에 한 번이면 족해요.’
그리고 주혁의 대답을 들은 은찬은 곧장 기지개를 켜면서 일어나더니 옆에서 눈을 감고 있던 이선에게 다가갔다. 이선은 잠에 완전히 빠져 있던 건 아니었는지 눈을 비비며 하품을 했다.
‘거기 주혁이 안 나가죠? 그럼 제가 굳이 왜?’
웅얼거림이 반 정도 섞여 있는, 잠에 젖은 목소리였다. 그리고 마침 거실로 나왔던 별이는,
‘안 돼. 거기는 너무 입조심해야 해.’
라며 자기와 맞지 않는다는 의사를 보였다. 다행히 녹음실로 출근하기 전, 가을이를 제외한 멤버들의 확답은 받아낸 상태였다. 그러니 지금 눈앞의 가을이에게 꺼낼 말은 뻔했다.
“형, 수고했어.”
“아, 연가을!”
녹음실 안쪽으로 들어가려던 가을이 은찬을 마주 보았다.
“너 오디션 프로그램 나가고 싶어? 그거 인지도 높이기엔 좋대.”
“그거 나가면 우리 팀 스케줄에 차질 생기는 거 아니야?”
“아무래도 잠시간은 너 없이 활동해야겠지?”
“싫어… 형은 나 없어도 돼?”
그 반응에 결국 가을이에게는 숨기는 것 없이 말했다. 가을은 영 싫은 듯 떨떠름한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내저었다. 은찬이 그런 가을의 등을 매만지며 방긋 웃었다.
“아우, 당연히 가을이 없으면 안 되지. 다행이다!”
순조롭게 원하는 대답을 듣고 나서, 녹음실 안쪽으로 가을이를 꾹꾹 밀어 넣었다. 가을이는 으아아, 하면서도 은찬의 손길에 따라 밀려줬다.
‘오, 좀 감동이네.’
다들 팀에 대한 애정이 있는 것 같아서 새삼 가슴이 뭉클했다. 녹음실 문을 닫고 손을 탁탁 터는데 뿌듯한 웃음이 입에 걸렸다.
‘쓸데없는 걱정 말고 정규앨범 준비에나 올인 하자.’
시기상 지금이 정규 1집 앨범을 준비할 때다. 아직 ‘다음 컴백’이라고만 명시되고 정확한 기획은 나오지 않았지만 칠월칠석도 이맘때쯤 슬슬 정규앨범 준비를 시작했다. 꾸준히 안무를 연습하는 동시에 곡을 녹음하고 있으니 걱정스러울 것도 없었다.
그리고 은찬의 예감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첫 번째로는 제네시스 단톡방 속 대표님의 메시지가 그 증거였다.
[ 대표님 : 제네시스 정규 1집 컴백일 4월 17일 타이틀곡 후보 및 샘플링 청취는 다음 회의 때. ]그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