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ee hearts in failed idol’s eyes RAW novel - Chapter 88
88. 보이는 라디오(1)
‘이거지…….’
바리케이드 가장 앞줄에서 셔터를 누르다 말고 잠시 흘러넘치는 눈물을 참았다. 슬퍼서 우는 게 아니라 감격의 눈물이다. 교복 입은 현주인이 졸업생 대표로 상장 받는 게 기뻐서 흘리는 눈물.
미지예고의 명물인 졸업식은 굉장히 복잡했지만 그래도 타 예고에 비해선 굉장히 질서가 잘 지켜졌다.
연예인, 특히 아이돌들이 많이 재학하는 학교인 만큼 지난 몇 년간 자잘한 사건 사고들이 많았는데 이를 방지하기 위해 몇 년 전부터 실행한 시스템이 꽤 괜찮았기 때문이다. 내부 출입은 금지되어 있었지만 바깥에서도 다 볼 수 있도록 해줘서인지 공방 뛰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이 정도면 그냥 촬영 가능한 행사나 다름없지.’
제네시스 동갑 라인 모두가 미지예고라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셔터를 갈겼다. 블레이저가 미친 듯이 잘 어울렸다. 음방에선 찍지 못한 교복 현주인을 이렇게 찍을 수 있어 다행이었다.
‘꽃다발도 예쁘고.’
아까 같은 그룹 멤버인 유은찬이 쫑알거리면서 내미니까 못 이기는 척하면서 받던데, 파란색과 하얀색, 그리고 보라색 위주로 담겨 있는 꽃들이 은발 머리와 아주 찰떡이었다.
“현주인 개잘생겼다.”
“옆에 도이선 쟤도 존나 잘생김…….”
뒷쪽에서 웅성대는 여학생들의(확신하건대 타 팬이다. 제네시스 좋아하면 도이선 잘생긴 거 정도는 누구나 다 안다.) 대화 내용에 남몰래 미소 지었다.
‘이제 떡상만 남았다.’
지난 컴백 반응도 좋았고, 이번에 백무영 대신 유은찬이 MC로 들어가서 인지도도 서서히 높아지는 중이다. 곡만 잘 만나면 된다, 곡만.
김광춘 미친놈이 본인 취향 가득 때려 박지만 않으면 중박 이상은 무조건이다. 대박이면 좋겠지만 미닛츠는 좆소다. 거기까진 기대 안 한다.
‘오리온이 작곡하는 거 타이틀로 내세우면 오히려 잘될지도.’
저번에 만든 곡이 꽤 좋았으니까. 객관성 탑재해서 평가한다고 해도 지금 상태에서 중독성만 조금 더 추가하면 소위 말하는 머글 픽이 될 거라 장담한다.
“…다시 한번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어느새 졸업식이 끝났다. 이만큼 찍었으면 본전 뽑고도 남았기에 만족한 상태로 가려는데, 제네시스가 이쪽으로 다가왔다. 카메라 렌즈 후드를 덮으려다 말고 자연스레 다시 자세를 잡았다.
“인사하자, 얘들아. 우리 축하해 주러 와주셨잖아.”
미친? 지금 유은찬이 뭐라고 말하는 건지 귀에 잘 안 들어왔다. 정면에 제네시스가, 최애인 현주인이 서 있었다. 꼭 저를 알아보고 이쪽에 발걸음을 멈춘 것처럼.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감사해요!”
“감사합니다.”
“…축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미 혼이 나간 지 오래였으나 손가락만은 할 일을 착실히 해내고 있었다. 셔터가 끊임없이 눌렸다.
“다들 조심히 들어가세요!”
“…어…….”
이런 걸 기대하고 온 건 아니었는데.
팬한테 예의 있는 아이돌, 진짜 최고잖아.
***
2월 넷째 주.
미지예고 3인방의 졸업식 이후 일주일이 지났다. 그리고 일주일 사이에 꽤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우선 그날 이선의 셀카는 SNS상에서 꽤 화제가 됐다. 이번 연도 미지예고 졸업생 중에서 볼만한 얼굴이 또 나왔다는 반응과 함께. 그 덕분에 제네시스를 알고 있던 사람들은 물론이고, 별다른 관심이 없었던 사람들에게도 멤버들의 이름과 얼굴에 대해 알릴 수 있었다.
‘셀카에 교복과 꽃의 조합은 필승이지.’
졸업식을 마친 뒤 은찬도 제 나름의 최선을 다했다. 음악방송 MC 스케줄이나 자체 콘텐츠 회의 및 촬영이 아니라면 연습실과 숙소를 오가길 반복했다. 그사이 음악방송 스케줄이 두 번이나 있었지만 매번 만나는 사람들을 만나는 탓에 호감도를 확인할 일은 적었다.
‘이미 이 안에서는 충분히 봤어. 이미 획득한 사람한테는 다시 획득하지도 못하고…….’
환경에 변화가 없으니 진전도 없다는 뜻이다. 아이돌이란 직업에 딱 맞는 조건을 부여해 줬다고 생각했었는데, 활용하지 못하는 꼴이 우습기도 했다. 그래서 차선책으로 남용을 했다. 새롭게 만날 사람이나 상황 변화가 적으니 굳이 아껴둘 필요가 없었다. 지나가다가 호의를 보이는 사람이 있으면 닥치고 확인했다.
‘이제 스탯 분배 횟수 총 3회인가?’
그 결과로 방청객과 스태프에게서 각각 1회씩 스탯 분배 횟수를 획득할 수 있었다. 그래도 계속해서 호감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생겨난다는 것은 좋은 신호였다.
[ 스탯 분배 횟수 총 3회 모았어 언제 얘기할까? ]현주인에게 이 사실을 알렸더니 놈은 ‘아무 때나’라며 간결한 대답을 내놓았다. 그간 시간이 자꾸만 어긋나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누지 못했기에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는 중이었다.
대표님에게도 멤버 중 프로듀싱 365 지원자가 없다고 최종적으로 연락을 했다.
[ 대표님 : 알겠다~ 아쉽네ㅜㅜ ]예상했던 것보다 간결하며 깔끔한 답변이었다. 그 이후로 더 이상 이에 대해 묻는 일도 없었다.
마지막으로 가장 반길 만한 소식은 라디오 게스트 제의가 들어왔다는 것이었다. 매니저 형을 통해 전달받은 소식에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멤버가 둘이나 방 안에 있으니 입 밖으로는 기뻐하지 못했고, 오로지 속으로만.
‘그때 날 좋게 봐주신 건가? 뭐, 백무영 선배의 친구는 내 친구… 같은 발언을 하긴 했는데.’
사실 엄청난 붙임성을 가지고 계시길래 모든 사람을 이런 식으로 대하는 줄 알았다. ‘아무리 그래도 소년미 멤버가 이렇게까지 가벼울 리 없다’라는 가설에 다시 한번 힘이 실렸다. 거기다 자기가 봐왔던 변승채 선배는 꿍꿍이를 가지고 무언가를 진행할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나쁘게 말하면 단순한 거고, 좋게 말하면 꼬인 구석이 없다고 해야 하나.
‘한 번쯤은 라디오 DJ 해보고 싶었는데. MC 보던 것처럼 하면 되려나?’
변승채 선배가 진행하는 평일 저녁 타임의 라디오 방송은 보이는 라디오에 가까웠고, 적절한 선에서 입담을 뽐낼 수 있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그래서 DJ가 변승채 선배 아닌가 싶기도 하고.
‘거절할 리가 없잖아.’
이런 좋은 기회를 내 발로 걷어찰 리가. 은찬은 당장 하겠다는 말과 함께 매니저 형이 말린다고 해도 억지로라도 나갔을 거라고 답장했다. 지금은 스케줄을 골라 잡을 만한 위치도 안 됐다.
“현주인.”
“…….”
가만히 책을 읽고 있던 주인이 자신을 부른 은찬을 흘겼다. 은찬은 이어폰을 꽂고 무언가를 열심히 듣는 중이었다.
“네가 그렇게 부를 땐 꼭 뭐 부탁할 때던데. 뭐냐?”
“잘 아네.”
주인이 질색했다. 그러고는 한숨을 내쉬며 펼쳐진 페이지에 작은 종이를 끼운 뒤 책을 덮었다.
“너 라디오 게스트 출연 많이 해봤지.”
“…….”
“리온이 없는데?”
“조심해서 나쁠 것 없지. 너처럼 하다간 곧 사달 나겠네.”
“나도 다 알고 말한 거거든!”
대답 없이 눈동자만 좌우로 굴리는 게 딱 봐도 주변 눈치를 보는 것이리라. 그 의도를 바로 파악하고 안심시켜 주려던 건데 오히려 타박만 들었다. 은찬이 침대 옆 탁자에 놔뒀던 맥주를 쥐어 들었다. 곧 딸칵 하고 캔을 따는 소리가 방 안에 크게 울렸다.
“왜?”
“왜긴. 물어보려고.”
현주인이 주변을 살피는 건 이상한 행동이 아니었다. 지금 ‘제네시스’로서의 현주인은 라디오 게스트로 출연한 적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칠월칠석의 현주인이라면 다르지.’
고정 프로그램을 맡은 건 아니었지만 현주인은 여기저기 자주 불려 다녔다. 과묵한 편인 데다 성격이 더럽기는 해도 일단 주변에 사람이 많았다. 더불어 사생활에 관련된 스캔들이 있는 것과 별개로 공적인 자리에서는 선 넘는 발언을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러니 명성과 유명세 둘 다 있는 현주인이 환영받지 못할 리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저놈은 다 가지고 있던 위치에서 0부터 다시 시작하는 건데 괜찮나.’
맥주 몇 모금이 들어가니 감성적인 생각이 든다. 나야 칠월칠석 때와 견줄 수 없을 만큼 지금 상황에 만족한다지만 현주인은 다를 수도 있으니. 예전에도 걱정했던 부분이기는 하지만 현주인은 지금 만족하고 있을까.
“왜?”
“잘생겨서 좀 봤다. 안 돼?”
“좀 언짢네.”
하지만 놈은 이런 질문에 절대 답을 해주지 않을 것이다. 애초에 본인이 처한 상황을 객관적으로만 전달하는 놈이다. 속내라고 해봐야 깊지 않은 정도로만. 이 정도로 깊은 얘기를 지금 해줄 리가 없다. 계속해서 신뢰를 얻는다면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너, 내가 과거 얘기 꺼내는 거 싫어?”
“싫지 않아. 라디오는 왜? 어디 나가는데?”
“변승채 선배의 .”
“…소년미가 그렇게 좋냐? 오타쿠 같다고 생각하긴 했다만.”
“아, 일 들어온 거라고~”
말꼬리를 높였다. 쓸데없는 잡생각을 얹지 말라는 뜻을 담아서. 상대에게 그 뜻이 제대로 전달되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평소대로 해. 너 말 잘하잖아.”
“나 말 못하는데.”
“그냥 성격대로 하라고.”
“치, 너만 팁 알고 있으려고? 좀 공유해 주라.”
“시끄럽게 할 거면 잠이나 자. 방해하지 말고.”
대화가 오고 가는 느낌이 아니라 벽에 부딪힌 느낌이었다. 서로 다른 말을 하는 것 같은 기분이었으니까. 지금도 이렇게나 안 통하는데 앞으로 어떻게 협력을 이어나가라는 거냐고.
‘그래도 팁이 하나 정도는 있을 거 아니냐고.’
평소에는 논리와 합리를 그렇게나 좋아하면서 이럴 때만 입을 꾹 다문다. 기분이 퍽 상해 입을 빼죽 내밀었다.
“네네, 미안합니다.”
“변승채 선배도 소년미 멤버니까 이상한 말 하지 말고.”
“너나 처신 잘하세요.”
손에 든 맥주를 흔들거리고는 다시 침대 옆 탁자에 탁 소리가 나게끔 내려두었다.
“에이, 너 때문에 술맛도 떨어졌다. 곧 컨셉 촬영 있으니까 다이어트나 해야겠다, 난.”
놈은 그러든가, 하는 간결한 대답과 동시에 몸을 돌렸다.
‘그나저나 백무영 선배는 곧 죽어도 백무영이라고 부르더니 변승채 선배한테는 선배 소리를 붙이긴 하네.’
하긴 현주인은 기본적으로 남에게 관심이 없었다. 요즘 나나 백무영 선배 때문에 신경을 쓰느라 그 모습이 퇴색되어 보이긴 했지만. 방금 전, 소년미 출신 선배가 DJ를 맡는 라디오에 게스트로 출연한다는 말을 들어도 나를 놀리기만 할 뿐 별다른 말이 없었고. 그건 곧 변승채 선배는 현주인의 중요한 인물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의미일 테다.
‘음…….’
양팔을 머리 뒤로 넘기고 눈을 반복해 껌뻑였다. 골똘히 생각할 때 나오는 버릇 같은 것이었다.
‘요즘 리온이 많이 바쁜가. 이래저래 신경 쓸 게 많네.’
그러다 벽을 등지게끔 몸을 돌렸다. 현주인은 방금 전 나와 티격태격했던 게 없었던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집중한 채 책을 읽는 중이었다.
“야, 그리고 리온이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 의견 좀 내봐. 난 좀 잘 테니까 내일까지 생각하든가.”
여전히 대꾸는 없었지만 미간이 살짝 움직이는 걸 확인했다. 듣기는 했다는 소리다. 다시금 천장을 향해 눕고 눈을 감았다.
변승채 선배를 다시 만난 건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