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ee hearts in failed idol’s eyes RAW novel - Chapter 90
90. 소년미(1)
변승채 선배의 차에 얌전히 몸을 싣다 목적지에 도착하자마자 놀람을 금치 못했다. 여러 가지 의미로.
‘이런 데서 연애 많이들 하겠는데?’
가장 처음 반사적으로 든 생각은 이런 일반인다운 생각이었고, 두 번째로는…….
‘확실히 일반인들 눈에 잘 안 띄긴 하겠네.’
그런 자연스러운 생각이었다. 괜히 바깥에서 술 마시다 목격담이 뜨면 곤란해지니까. 이제껏 나도 고향에 내려갈 때가 아니라면 바깥보다는 숙소 내에서 술을 마시고는 했다.
“뭐 해? 가자.”
“아, 넵.”
변승채 선배를 따라 안쪽으로 들어가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런 곳은 서울 교외에만 있는 건 줄 알았는데 의외로 서울 한복판이었다. 공간이 칸칸이 나누어져 있었는데, 확실히 이상한 곳은 아니었다.
하긴 변승채 선배는 워낙 얼굴이 알려져 있다 보니 일부러 이런 곳을 찾은 거겠지.
‘현주인도 이런 곳에서 연애했나?’
하긴 그렇게 많이 갈아 치웠는데 걸린 건 반 정도밖에 안 되는 걸 보면 뭔가 수가 있었겠지.
“자자, 앉아! 뭐 먹고 싶냐?”
“저는 선배가 드시고 싶은 걸로 할게요.”
“아~ 나 아무거나가 제일 싫어. 내 가오도 있는데 후배 맛있는 것 좀 사주게 좀 골라봐봐. 여기 안주도 괜찮아. 알음알음 유명하다고.”
“어… 정말 괜찮은데.”
이렇게 가까이에 이런 곳이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변승채 선배 앞에서 어색한 티를 내지 않으려고 최대한 의연하게 행동했다. 그럼에도 자꾸만 뚝딱거리게 되는 것 같지만.
“술은?”
“그것도 다 괜찮아요!”
“흐음…….”
그냥 입에 발린 소리가 아니라 술은 정말 다 괜찮았다. 애초에 은찬은 술을 가리지 않았다. 다 좋아했고, 못 마시는 술이 있는 게 아니었기 때문에 정말 다 괜찮다 한 건데도 변승채 선배의 얼굴은 실시간으로 진지해지는 중이었다. 꽤나 고심스러운 모양이었다.
“소주 괜찮냐? 내가 양주는 입에 잘 안 맞더라고.”
그럼 당연히 괜찮죠. 이런 데서 양주 턱턱 시킬 만큼 주머니 사정도 여의치는 못하니까.
“저 소주파예요.”
“너도? 역시 뭘 좀 안다! 진짜 마음에 든다. 무영이가 마음에 들어 하던 이유가 있었네!”
변승채 선배는 자신도 소주를 좋아한다며 와하하 하고 크게 웃었다. 그러고는 반가웠는지 기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변승채 선배에게는 분위기를 편안하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툭툭 말하는 것 같았으나 그게 불편한 정도는 아니었다. 차분하고 다정하지만 항상 같이 있던 자리가 어색했던 백무영 선배와는 아예 다른 부류였다. 어떻게 둘이 제일 친한 사이였는지 신기할 정도로.
‘성격이 아예 다르지 않나? 뭐… 옛날 백무영 선배 같았으면 잘 맞았을 것 같긴 한데.’
소년미 리얼리티나 자체 콘텐츠만 보면 변승채 선배와 쿵짝이 잘 맞을 것도 같다. 은찬이 지금껏 봐왔던.’백무영’과는 전혀 달랐지만.
“여기 처음에 무영이가 알려줬거든~ 회식이야 평범한 식당에서 하지만 일 얘기 같은 거 할 땐 평범한 술집 찾기 부담스럽잖아? 누가 이야기를 들어도 곤란하고 어디 돌아다니는 거 목격담 뜨면 잔소리가 심해서 말이야. 이해하지?”
“그렇죠. 아무래도 선배는 얼굴도 많이 알려져 있어서 더 그러셨을 것 같아요.”
“어, 그게 얼마나 귀찮다고~”
확실히 변승채 선배 목격담이 많이 올라오긴 했지. 소년미 덕질을 할 때에도 유독 선배는 이슈가 많았다. 잔소리가 심하다는 건 멤버들이나 윗선을 얘기하는 걸 테고.
‘지금 보니까 돌아다니는 걸 워낙 좋아하시는 것 같긴 해.’
선배는 테이블 옆에 있는 키오스크로 추천 안주 두 가지 정도와 소주를 주문했다.
‘확실히 누군가와 대면하는 일이 적겠다.’
곧 소주가 먼저 도착했다. 승채는 차갑다 못해 물방울이 맺혀 있는 소주병을 돌려 회오리를 만들고 뚜껑을 땄다. 곧 승채가 은찬에게 잔을 권했다. 한 손을 가슴 위에 올린 은찬이 공손하게 잔을 받았다.
“무영이랑은 따로 술 한잔 안 해봤냐?”
“네. 그렇죠……?”
“하, 새끼… 후배 술 한번 사줄 법도 한데. 요즘 이상하단 말이야. 옛날이랑 달라졌어~”
‘많이 답답하셨나 보네…….’
변승채 선배는 그 흔한 짠도 없이 단숨에 한 잔을 원샷 해버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다 목구멍으로 술을 넘겼다. 오랜만에 맛보는 소주의 맛이었다.
‘옛날이랑 달라졌다라… 그나저나 제일 가까이서 붙어 있었을 변승채 선배마저 저 말을 하시네.’
잔을 내려놓자마자 곧바로 물을 마시며 생각했다. 지금까지 백무영 선배를 아는 사람들을 만났을 때, 모두가 저 말을 했다. 예전과 다르다고. 현주인과 세주 누나도 그랬고 이제는 변승채 선배까지.
‘내가 너무 의심하는 건가. 성격이 변했을 수도 있긴 한데.’
사람이 언제나 한결같을 수는 없는 것도 사실이지만 제일 근처에서 지켜봐 왔던 친구가 저런 말을 꺼내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만난 지 얼마 안 된 나에게까지 푸념하듯 말을 하시는 거라면 이런 생각을 하신 지도 좀 됐다는 뜻일 테고.
“아, 그리고 MC 진행 잘하던데. 백무영 차기다워. 걔가 권했다며?”
“네. 항상 감사하죠. 덕분에 이름도 좀 알린 것 같고.”
“나도 라디오랑 웹드라마 무영이가 넣어줬거든~ 근데 역시 난 아이돌 할 때가 좋았던 것 같아. 너 소년미 좋아했다며?”
“네! 완전 팬이죠. 저 선배들 직캠 정말 닳도록 봤어요. 진짜 활동별로 레전드 날짜까지 다 읊을 수 있어요.”
“와, 생각보다 장난 아닌데? 근데 그런 것치곤 우리랑 춤선이 비슷하진 않던데? 보통 그 정도로 봤으면 영향을 받지 않나?”
“선배… 그거랑 그건……!”
“아~ 알지. 농담이야, 농담…….”
변승채 선배는 말이 많은 편이었는데, 그런 편에 비해 허튼 말이 없었다. 적어도 내 입장에서는. 선배 입장에서야 그냥 하는 말이겠지만 나에게는 전부 흘려들을 수가 없는 것들이었다. 방금도 그런 경우였다.
‘웹드라마면 나인틴나인틴? 백무영 선배가 넣어준 거라고? 소년미 내에서도 언급량 많은 선배가 굳이 왜……? 게다가 아이돌 할 때가 더 좋았다니 그럼 왜…….’
변승채 선배의 한마디 한마디에 온갖 물음표가 생성되는 중이었다. 하긴 원래 소년미 멤버들은 여러 차례 인터뷰에서 서로를 언급할 정도로 끈끈한 멤버 사랑을 자랑하던 그룹이다. 회귀 전엔 조기 재계약까지 마쳤으니 선배의 저 말도 필히 거짓말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직접 만나본 건 얼마 되지 않았지만 거짓말을 하는 스타일도 아니었고.
“나도 좋았는데. 이제 팬들도 만나기 어려워져서 아주 아쉬워~”
푸념을 내뱉던 변승채 선배는 곧 웃음으로 얼굴을 갈무리했다.
‘아이돌 활동을 정말 좋아하셨던 것 같은데, 왜 순순히 해체로 합의를 봤을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앞뒤가 안 맞는데. 차라리 그냥 직진을 해볼까.’
변승채 선배는 계속해서 잔이 빌 때마다 술을 채웠다. 원래부터 술이 센 건지 템포 또한 빨랐다. 선배의 잔을 받아주고 있다 보니 벌써부터 술기운이 오르는 것만 같았다.
‘선배… 계속 저렇게 마셔도 되나?’
은찬이 물을 마시며 승채를 흘긋 흘겨봤다. 심지어 어느 순간부터는 계속 자작을 하고 있었다. 벌써 비운 병만 두 병인데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래도 질문하기에 최적의 타이밍이긴 하네.’
실수든 진심이든 술을 마시면 말을 하기 쉬워지니까. 은찬이 양손으로 승채의 잔을 채우며 넌지시 물었다.
“선배, 혹시 소년미는 어쩌다… 사이좋으시지 않았어요?”
“우리? 사이좋아, 지금도. 근데 무영이가 연기에 꿈이 있었던 모양이더라고. 그동안은 몰랐지 뭐야. 어쨌든 일도 좋긴 했지만 나한테는 친구가 제일 중요하니까~”
벌게진 얼굴이었지만 변승채 선배의 발음은 분명했고 말에는 무게가 있었다. 가볍게 말하지만 그 말이 진심이라는 것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무영이가 연기에 꿈이 있었다… 이건 내가 알고 있던 백무영 선배의 이야기와는 전혀 달랐다.
‘연기자가 하고 싶었다는 백무영 선배의 얘기는 진짠가? 애매하네. 그러면 아이돌 얘기를 꺼낼 때마다 불편해하셨던 것도 같은 맥락인가. 이제 연기자로서 집중하고 싶은데 자꾸만 아이돌 얘기를 꺼내서 발목 잡으면 불편한 것도 맞으니.’
그렇다면 백무영 선배가 변했다고 여겼던 나의 생각에 오류가 생긴다. 나는 기본적으로 백무영 선배의 과거 모습을 떠올리며 아이돌 활동에 대한 애정을 기반으로 판단했던 거니까.
하지만.’그동안은 몰랐다’라는 뒷말이 걸린다. 말 그대로 오랫동안 함께해 온 두 사람은 온갖 고민을 다 털어놓을 정도로 친한 사이였다. 인터뷰에서 그 사실을 언급까지 할 정도로. 그런 변승채 선배가 백무영 선배에 대해 모르는 게 있다는 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됐다.
멤버들, 게다가 제일 친한 사이인데 연기에 마음을 두고 있다는 걸 모를 수가 있나?
“당연히 재계약할 것 같아서 서로 그에 대한 얘기도 안 하고 있었는데.”
“…….”
“아~ 새끼, 그래도 연기에 재능 있는 것 같긴 해? 그렇게 웹드도 연기도 하기 싫다고 했는데 이제 와서 그러는 걸 보면. 실력도 엄청 늘었잖아. 너도 알다시피 걔가 잘하진 않았단 말이야. 우리 다 속여먹은 거 아녀.”
은찬은 잠자코 승채의 말을 들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얌전히 잔을 채워주는 은찬의 모습이 제법 마음에 들었는지 승채는 생글생글 웃으며 은찬과 연거푸 잔을 부딪히길 원했다. 사이사이 은찬을 띄워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혹시 중간에 무슨 일 있었어요?”
“음, 아니. 우리는 뭐 싸우고 그런 거 없는데. 아, 중간에 진혁이가 사고 한번 쳐서 애들이 뭐라고 했던 것 정도? 그냥 거슬리는 일 있으면 툭 까놓고 말해서 안 싸웠지.”
“아… 그럼 정말 연기하고 싶어서 그러신 걸 수도 있겠어요.”
“그러니까. 그런데 새끼가 이제껏 관심 없는 척하다가 그러니까 섭섭해. 미리 말해줬으면 좀 좋냐고.”
일부러 보다 깊게 찔러봤는데도 확실히 미심쩍다. 명쾌하게 해결되는 부분 또한 없었다. 이건 차후에 백무영 선배에게 직접적으로 물어보는 게 제일 나을 법했다.
“그래도 난 무영이 믿어야지. 친구니까.”
“선배 성격이 너무 좋으시다. 하긴 저도 무영 선배 엄청 좋아했어요!”
“뭐? 나는? 나도 소년미인데?”
“음~”
“와~ 유은찬… 너 이제 보니까 농담도 할 줄 아네. 더 맘에 드는데?”
은찬이 웃으며 잔을 앞으로 건네자 승채도 크게 웃으며 짠 소리가 나게끔 잔을 부딪혔다. 술병이 더 쌓여가는 와중에도 이미 흥이 오른 둘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정신 똑바로 차려야 돼, 유은찬.’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면 대선배 앞이라서 그런지 최소한의 이성은 붙잡고 있다는 점. 멤버들과 술을 나눴을 때만큼 정신을 놓지는 않았다는 점 정도다.
***
“형! 일어나요!”
“으으…….”
은찬이 귓가에 쩌렁쩌렁 울려오는 리온의 목소리에 힘겹게 눈을 떴다. 몸을 돌리자마자 누가 머리를 치고 가기라도 한 듯 쨍알쨍알 울려오는 골에 머리를 양손으로 부여잡았다. 근처에서 쯧쯧,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대박이네. 개네요, 개. 멍멍.”
“…무슨 일 있어? 오늘 일 없는데…….”
이렇게 숙취에 고생할 줄 알았으면 적당히 빼기라도 할걸. 언제나 술자리를 가질 때는 즐겁지만 다음 날은 이렇듯 괴롭다. 은찬이 깨질 것 같은 머리를 붙잡고 어제의 끊긴 기억의 조각들을 끼워 맞추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