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ee hearts in failed idol’s eyes RAW novel - Chapter 95
95. 변화
“너 이런 거에 예민하지 않았나?”
내가 별다른 반응이 없는 게 현주인은 의아했던 모양이다. 놈은 덤덤하다 못해 웃기까지 하는 내 얼굴을 올려다보며 눈썹을 꿈틀거렸다.
‘알계… 원래 예민하긴 하지. 이런 건 아무리 거짓말이라고 해도 진짜로 믿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원래 소문이란 게, 거짓말이라고 해도 누군가 지속적으로 주장하면 진실로 굳어질 때가 있는 법이었다. 사람들은 워낙 이슈를 좋아하는 데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지 않는다’라는 말로 합리화를 하곤 하니까. 하지만 그것도 거짓말을 ‘잘’했을 경우나 해당하는 거지.
“이런 건 너무 하수잖아.”
까놓고 칠월칠석 때는 ‘땐’ 굴뚝이 맞았다. 켕기는 게 있었으니 소문은 무성해졌고, 날조가 99%였던 현주인 사생 친목 건도 사진이라는 떡밥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 글은 너무 무맥락이다. 증거도, 논리도, 연관성도 없는 그냥 ‘까글’. 그리고 요즘 사람들은 이런 글에 속아 넘어가지 않는다.
인용된 글이나 밑에 달린 답글로 사람들의 반응을 확인해 봐도 원글쓴이에 대한 조롱밖에 없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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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덕입니다 @iamjobdeok
이 새끼 인혐인가ㅋㅋ 걍 싫으면 싫다고 말해 시발 존나 어처구니없는 말 지껄이지 말고 쓰면 다 글인가? 글고 소년미 팬덤도 이제 애들 품었는데 니가 뭔데 지랄임 대표라도 됨? 개꼽주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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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구 @mmmmyapricot
다른 건 모르겠고 애들 눈에 안 보이게 해라 곧 컴백인데 멘탈 흔들릴까 봐 걱정댐 ㅇㅇ 반응을 주지 마 관종한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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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덕입니다 @iamjobdeok
액땜ㄹㅈㄷ 이번에 우리 애들 1위 먹어보는 거 아님? 아직 좆소라 듣보인 줄 알앗는데 알계도 붙고 감격스러워 죽겟다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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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키 @jooinni_kk
요즘 애들 폰 안 내나요? 학교에서 폰을 걷어 가야 이딴 글 안 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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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어느 정도 인지도 있는 그룹만 이런 거 뜨던데… 솔직히 좀 기분 좋네… 나 진짜 변탠가?’
차라리 포인트를 하나로 집중시켰으면 납득이라도 갈 텐데, 문장이 하나하나 따로 놀아서 더더욱 신뢰가 가지 않는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달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확실히 해둬야지.’
굴뚝을 아예 봉쇄해 버려서 나쁠 것도 없다. 히죽거리던 은찬이 주인에게 홱 시선을 던졌다.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연애 중 아니다.”
“응. 그럼 상관없지.”
이제는 척하면 척이구만. 현주인은 내가 뭘 물어올지 예상했다는 듯 곧장 답했다. 그 답변 사이의 텀이 1초도 없었기 때문에 잠깐 웃음이 나올 뻔했지만 가까스로 입을 닫고 고개만 끄덕였다.
‘그럼 다 구라로 점철된 글이잖아.’
그나저나… 이건 어떻게 한다? 반응을 하지 않는 게 기본이겠지만 회사나 매니저 형에게 보고라도 해야 하나. 고민됐다. 악의와 터무니없는 요소로 이루어진 글이어도 세상이 내 생각대로만 굴러가는 건 아니니. 혹시나가 역시나가 되는 경우도 있고, 회사 측이 알아둬서 나쁠 건 없으니까. 우리끼리 알고 있는 것보다는 타인에게 책임을 이관시키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회사에 말하는 게 낫겠지?”
“굳이?”
“말해둬서 나쁠 건 없으니까.”
현주인은 그러든가, 하고 간결한 답으로 대답을 갈무리했다. 곧바로 현주인에게서 그 글의 캡처본을 전달받아 매니저 형에게 전송했다.
코멘트도 잊지 않았다.
“웃기지도 않은 글이네. 액땜을 이렇게 하는구나.”
“우리 쇼케이스 날부터 저러는 거 보니 어지간히 관심이 많나 보지.”
“…그러네!”
은찬의 얼굴에 급격히 화색이 돌았다. 언제 피곤했냐는 듯이 생기까지 돌아왔다.
‘우리?’
웬일로 팀에 소속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은 말을 한담. 현주인의 입에서 ‘너’, ‘나’가 아닌 ‘우리’라는 말을 듣게 될 줄이야. 듣기가 좋아 다시 한번 말해달라고 괜히 옆에 붙어봤는데, 두 번은 택도 없었다.
“은찬아, 이리 와. 화장 지우자.”
“넵.”
아쉬움을 안고 메이크업을 지우기 위해 눈을 감았다.
얼굴 위로 차가운 느낌이 닿았다. 눈앞이 컴컴하니 방금 보았던 알계의 내용이 다시 한번 복기됐다.
‘백무영한테 기생한다.’
그나마 좀 신경 쓰이는 부분이었다.
‘지가 뭘 안다고?’
다시 생각해 보니 기분이 팍 상하네.
솔직히 내가 개인적으로 도움을 받은 건 있다고 해도 제네시스가 선배의 도움을 받은 적은 없다.
‘빠돌이인 것도 죄냐?’
게다가 백무영 선배의 후임으로 MC가 된 것도, 선배가 추천을 해주었다는 것도 아는 사람은 관계자와 선배, 그리고 나뿐. 선배는 어디 가서 그런 이야기를 하고 다닐 성격도 아니라 주변인들이 알 리가 없다.
‘…날 아는 사람이려나?’
가능성 하나가 머리를 스쳤다. 하지만 곧 입술을 깨물고 그 생각을 지웠다.
‘아닌가… 너무 많이 넘겨짚은 걸 수도.’
기본적으로 내가 백무영 선배의 자리를 넘겨받았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몇 안 된다. 주변 사람 중에는 의심할 만한 사람도 없고. 그냥 현주인 말대로 내가 이런 까글에 예민한 것이리라. 백무영 선배에 대한 내용에 너무 신경 쓰고 있는 것이다. 깊게 심호흡을 했다.
‘성장형 아이돌이라니… 좋은 거 아닌가? 발전이 있다는 거잖아. 그리고 우리 멤버들도 얼마나 노력하는데. 그리고 나만 빼곤 거의 완성형이었거든.’
곱씹어보니까 다 짜증 나네. 무시해야 되는데.
“다 됐다. 이제 눈 떠도 돼.”
스타일리스트 누나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눈을 번쩍 떴다. 매니저 형에게서 간결한 답장이 도착해 있었다.
[ 이진국 형 : ㅡㅡ저 미친놈이 넌 신경 쓰지 말고 있어 저런 놈들 어차피 아무것도 못 해~ 심해지면 회사에 알릴게 ]은찬 또한 답장 내용에 고개를 끄덕였다. 매니저 형 말이 옳았다.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니 무시해야지.’
엄청난 인격 모독을 해서 정식으로 법적 절차를 밟는 게 아니라면 익명이 철저하게 보장되는 곳이다. R로 시작하는 계정에서 떠벌리는 헛소리야 신경 쓸 거리도 못 되지만 찝찝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숙소에 도착한 은찬은 간만에 눈을 감기 전, 묵주반지를 만지작거렸다.
‘몸에서 떨어뜨리지만 않으면 된댔으니까.’
목걸이를 풀어 기도하듯 두 손에 쥐었다. 그러고는 할머니와 엄마를 떠올리며 속으로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엄마, 할머니… 오랜만이지? 미안. 나는 나름대로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아. 처음엔 느닷없이 주어진 두 번째 기회에 어안이 벙벙했는데, 지금은 가끔 감사도 하고 있어.’
손에 쥔 묵주반지의 존재감이 오늘따라 유독 또렷했다.
‘나는 지금까지 내가 이 세상에서 점 하나에 불과한 줄 알았는데, 요즘은 내 세상의 주인인 것 같기도 하네. 이 기분이 나쁘지 않아.’
눈을 감고 있어서인지 하루 동안 쌓여 있던 피로가 단번에 밀려들었다. 곧 까무룩 잠에 빠질 것만 같은 상태.
‘염치없지만… 멤버들하고 같이 더 성공하고 싶어. 팀이 너무 소중하다. 나 지켜보고 있다면 더 열심히 할 기회를 좀 주라. 아, 체력도…….’
이 말을 마지막으로 곧 그대로 잠에 빠져들었다. 반대편에서 들리는 책장 넘기는 소리가 ASMR처럼 귓가에 사부작거렸다.
***
COMING UP NEXT! GENESIS
“은찬~ 다음 주부터 무대 서잖아? 병행하기 힘들지 않아?”
오늘의 MC 의상이었던 컬러 재킷과 롤러스케이트를 벗던 중이었다. 발랄한 목소리가 내 쪽을 향해 다가오며 물었다.
‘그러고 보니 MC 진행하면서 무대랑 병행하는 게 벌써 두 번째네.’
오늘 방송 중간쯤, 다음 주 컴백에 대한 멘트가 나갔다. 그와 동시에 뮤직비디오 영상 일부분과 커밍 업 넥스트 영상이 함께 나갔으니 진행하는 입장에서 궁금한 것도 당연했다.
“에이, 누나에 비해서는 아무것도 아니죠.”
“지난번부터 보고 느낀 건데 무대랑 진행 소화하느라 왔다 갔다 하고 옷 갈아입는 게 대단해. 그렇게 뛰어다니려면 보통 힘든 게 아닐 것 같은데.”
“음… 조금 정신없긴 해요.”
은찬이 지난번 활동을 떠올리며 웃었다. 틀린 말은 아니라 볼 옆을 검지손가락으로 살살 긁으면서.
제네시스의 무대 차례가 다가오면 무대 뒤로 내려와 재빨리 의상을 갈아입고 메이크업 수정을 받는다. 그리고 무대를 끝마치고 나면 다시 무대 뒤에서 배어난 땀을 닦고 의상을 갈아입는다.
‘나보다는 스타일리스트 누나의 노고가 녹아 있지…….’
나야 좀 분주하게 뛰어다니면 되지만.
“근데 텀이 좀 짧지 않아? 안 힘들어?”
“음… 인지도가 조금이라도 올라갈 때 더 활동하면 좋긴 하니까요. 아마 이 활동 끝나면 공백기가 좀 있을 것 같아요.”
“아아~ 못 쉬는 것 같아서 마음 아프네.”
칠월칠석 때는 공백기가 워낙 길었기 때문에 텀 없이 일하는 지금 상황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하루하루 바쁘게 사는 게 적성에 맞나, 하고 생각할 정도였으니까. 그래서 휴일에도 하나씩은 꼭 일정을 만들었다. 한가한 게 불안했기 때문이다.
“누난 촬영 잘되어가고 있어요?”
하지만 구구절절 말할 만큼 좋은 내용은 아니었기에 웃음으로 대답을 때웠다. 그러고는 세주 누나에게 질문을 토스했다. 정규 MC 촬영에 들어가기 전, 크랭크인에 들어간다고 하셨으니 지금은 촬영이 한창일 터였다.
“나는 얼마 전에 오디션 프로그램 MC 할 줄 알고 좀 떨고 있었는데, 못 하게 됐어. 조금 아쉽지만… 일 하나 더 늘리지 말고 하는 일에 집중하라는 뜻으로 알려고.”
익숙한 프로그램명에 귀를 열었다. 오디션 프로그램 MC? 조만간 진행될 오디션 프로그램이라면 하나밖에 없지 않나?
’그때 프로듀싱 365 MC 누가 맡았더라?’
게다가 언론에도 진행자는 공개되지 않은 상태였다. 출연자만 공개되었을 뿐, 진행자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는데.
’아, 세주 누나였다.’
그러고 보니 회귀 전에는 세주 누나가 프로듀싱 365의 진행자를 맡았었다. 처음에는 아이돌 출신이 아닌 배우가 진행자를 맡는 것에 대해 논란이 일었는데, 누나는 진행 실력으로 그 논란을 뒤덮었다.
“내가 그거 맡기에는 아직 연차나 필모가 좀 부족하긴 하지.”
“…….”
“그거 누구한테 넘어갔다고 들은 것 같은데. 누구지…….”
’누구한테 넘어갔다니?’
세주 누나가 진행자에서 제외된 것까지는 ‘변한 것이 있다’로 퉁칠 수 있지만.
‘넘어갔다’라는 표현은 조금……?’
쾅-
입을 일자로 닫고 누나의 말을 경청하던 중에 문이 거칠게 열렸다. 세게 열린 문이 벽 쪽에 쿵 하고 닿는 소리에 누나의 말도 멈추었다.
“이야, 여기만 아주 그냥 공기가 뽀송한 게 확실히 출연진 대기실이 아니라 MC 대기실이라 그런가 보네?”
“누가 여길 함부로…….”
“승채 선배!”
잔뜩 짜증이 난 듯 이를 악물었던 누나는, 문 쪽으로 날카로운 시선을 던지더니 곧 표정을 밝게 폈다.
“아, 변승채 씨?”
“요즘 핫한 분도 계시네~”
“안녕하세요!”
세주 누나는 백무영 선배를 경계할 때와는 달리 밝게 변승채 선배를 맞았다. 잠깐의 경계심마저 온전히 녹은 모습에 은찬마저도 살짝 놀랐다.
하긴 원래 저런 누나였다. 밝고 똑 부러지고. 백무영 선배나 회귀 전 우리에게 날을 세웠던 모습이 워낙 강렬하게 남아 있어서 의외라고 느껴졌을 뿐.
“나 여기 방송국에서 진행될 프로에 2회 정도 카메오로 출연하거덩~ 그래서 겸사겸사 답사하러 왔지. 그러고 보니 여기 두 분이 음악방송 MC들 아니신가?”
변승채 선배는 자연스럽게 우리와 인사를 나누고 앞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러고는 특유의 능글거리는 얼굴로 생글거렸다.
‘이 방송국에서 진행될 프로라면……?’
오디션 프로그램밖에 없지 않나? 어떻게 딱 그 얘기 중이었는데, 선배마저도 그 프로 이야기를 꺼내는 건지. 세주 누나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중이었는지 변승채 선배에게 곧장 되물었다.
“출연하세요?”
“나? 그거 춤 선생 될 건데. 어디 가서 말하진 마. 무영이가 말하지 말랬는데.”
“무영 선배가요?
“어. 걔 그거 진행자라 같이 들어가게 됐다던데?”
세주 누나와 눈이 마주쳤다. 몇 초간 무언의 눈빛이 오갔는데, 입 밖으로 말을 내지 않아도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 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