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ee hearts in failed idol’s eyes RAW novel - Chapter 99
99. 첫 화보 촬영
이번에 현주인과 내가 촬영하게 된 컨셉은 흑과 백. 지금 정렬되어 있는 건 흑 컨셉에 관련된 의상들이었다.
행거에 걸린 의상을 뒤적거리다 난감해졌다. 화보 촬영장의 분위기에 감탄하고 신기해하기도 전에 의상을 보고 당황을 하다니. 조금 아까운 짓이긴 했지만 고심스러웠다.
‘이 정도로 파이면 가슴 쪽 보이지 않으려나.’
흑 컨셉 의상은 세미 정장이었다. 그런데 반쯤 헐벗은 상태였다.
이너를 입지 않은 상태에서 재킷을 걸치고, 정장 바지를 입는 컨셉이었다.
그런데 화보 촬영 의상을 처음 걸쳐보는 와중, 기쁨보다 걱정이 앞서다니.
“…음.”
은찬의 표정이 더욱 난감해졌다. 벗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었다. 지금의 은찬에게 몸을 공개한다는 부끄러움 같은 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무슨 문제 있나요?”
“아, 아뇨!”
“주인 씨 개인컷 먼저 진행하고 있을게요. 준비되면 이쪽으로 오세요!”
어느새 의상까지 갖춰 입은 현주인이 먼저 호리존 조명 앞쪽으로 걸어갔다. 그 모습을 보니 더욱 마음이 급해졌다.
‘잘 가리면 안 보이려나?’
혹시라도 심장 쪽에 세로로 길게 남은 흉터가 보이지는 않을까 염려스러웠다. 괜한 말이 나오게 하고 싶지 않았을뿐더러 그다지 공개하고 싶은 곳이 아니었다.
‘뭐가 좋은 일이라고 이걸 보여주냐.’
어릴 적 심장 수술의 자국은 20년가량의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았다. 평생 가지고 가야 할 흔적이나 다름없는 흉터는 아직 세상 밖으로 공개한 적이 없었다. 몸을 가리고 싶다는 의견을 피력한 적은 없었지만 운이 좋게도 칠월칠석 때는 몸을 드러내는 의상이 없었기에 드러나지 않았다. 남자다움을 주력으로 내세우기는 했어도 기본적으로 꽁꽁 싸매는 의상들이 주였기 때문에.
‘못 입겠다고 할 수는 없잖아.’
기왕 불러주신 자리인데 싫은 소리를 하고 싶진 않았다. 게다가 첫 화보 촬영인데 괜히 미운털 박혔다간 앞으로 부를 일에도 안 불러주실 수도 있고. 나 대신 대체할 만한 사람이 지천에 깔린 게 이 업계다. 고작 흉터 하나 보여주고 싶지 않다고 뒤로 빼는 건 미련한 행동이다.
“누나.”
“응?”
“혹시 흉터도 가릴 수 있어요?”
행거 앞에서 서성거리던 은찬은 스타일리스트에게 다가가 물었다.
“너 흉터 있어?”
“아… 몸에 조금요. 티 안 나게 가릴 수 있어요?”
하긴 이 시점에는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으니까 모르는 게 당연하지. 같이 회귀한 현주인이나 알고 있는 흉터니까.
‘이왕 이렇게 됐는데 언제까지 꽁꽁 숨길 수는 없지. 앞으로 다양한 컨셉을 할 텐데 그때마다 가리겠다고 할 수는 없잖아.’
회귀 전 가을이에게 공개했을 때도 생각 외로 대단한 반응은 안 나왔다. 이번에도 분명 혼자 지레 걱정하는 것일 테다.
“일단 해볼게. 커?”
“네. 좀… 좀이 아니라 많이인가?”
“일단 갈아입고 와봐.”
‘어느 정도를 크다고 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네.’
은찬은 옆쪽의 간이 탈의실에서 의상을 갈아입었다. 옆에 놓인 전신 거울에 비추어보니, 확실히 재킷 단추로 잠근 위쪽 부분이 벌어져 가슴팍의 흉터가 흘긋흘긋 드러났다. 가만히 서 있으면 잘 안 보이겠지만 자세를 바꿔가며 촬영할 테니 가리는 게 낫겠지.
“이쪽 좀 부탁드릴게요.”
“뭐야? 전혀 몰랐어! 괜찮아? 이거 만져도 안 아파?”
“네. 어릴 적 다쳤던 거라서 완전 괜찮아요. 그냥 살이에요.”
“이거 보정 들어가면 안 보일 거야. 혹시 모르니까 조심히 만질게.”
스타일리스트 누나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날 빤히 쳐다보다 조심스럽게 흉터 부근을 만지기 시작했다. 하필 딱 허리를 펴면 보일 수밖에 없는 위치라 어쩔 수가 없었다. 옆쪽에서 컨실러를 가져오는 스타일리스트 누나에게 몸을 맡기고 작게 한숨을 내뱉었다.
‘누나도 조금 놀란 눈치잖아. 하긴…….’
부끄러운 자국은 아니다. 그저 팬분들에게 불편하게 느껴질까 봐 걱정되는 거지.
“…….”
잠시 셔터음이 끊긴 사이 옆쪽에서 현주인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시선이 느껴지는 쪽을 흘긋대자 놈은 노골적으로 이쪽을 쳐다보는 중이었다.
‘빨리 오라는 건가?’
벌써 개인컷 촬영이 다 끝난 건가. 그렇다면 무언의 압박일 텐데.
“됐어. 이 정도면 티 안 나지?”
“역시 누나 실력이 최고예요.”
고개를 숙여 가슴팍 쪽을 내려다봤더니, 완벽히 가려지진 않았지만 확실히 아까보다 흉터가 희미해져 있었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다 싶어 은찬은 재빨리 몸을 털고 일어났다.
“은찬 씨, 이거 뭐예요? 흉터 있었어요?”
“아… 미리 말씀드려야 했겠죠? 죄송해요.”
하지만 역시 한두 번 촬영해 본 게 아닌 분들의 눈썰미를 피할 순 없었다. 아무렇지 않은 듯한 표정과 말투였지만 왠지 질책을 받는 것 같아 고개를 숙였다.
“아냐. 그거 보정 들어가면 안 보여요. 근데 꼭 가려야 할까요? 인터뷰 때 흉터 관련해서 질문 들어가도 괜찮을 것 같은데. 나쁜 게 아니잖아요.”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밝게 웃었다. 차라리 지금처럼 아무렇지 않게 대해주시는 게 걱정해 주는 것보다 훨씬 낫다. 은찬에게는 정말 흉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으니까. 심장 수술을 했다고 해서 남들에 비해 체력이 부족한 것도 아니었고, 활동에 지장이 가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아주 가끔, 쉴 틈 없이 몸을 움직일 때 조금 저릿한 정도로 욱신거릴 뿐이었다.
‘그 정도뿐일 상처가 걸림돌이 되는 것은 죽어도 싫지.’
호리존 안쪽으로 들어가자 현주인은 자연스럽게 옆쪽으로 자리를 비켜주었다.
“네가 이쪽으로 서.”
앞쪽에서는 조명과 카메라가 재정비됐다. 화보 촬영은 재킷 촬영 때처럼 자세가 정해져 있는 게 아니었다.
“농염하게 해주세요~”
들어오는 컨셉에 맞춰 알아서 포즈를 취하면 되는 거지.
찰칵-
카메라 셔터음이 울리기가 무섭게 현주인은 자세를 다양하게 바꾸어갔다. 투샷이라고 하긴 했지만 이 정도로 붙어 있어야 할 줄은 몰랐기에 처음엔 어찌해야 할지 당황했지만 놈이 워낙 잘 리드해서 적응하기 쉬웠다.
‘일부러 가려주는 건가?’
여러 자세를 취하면서도 현주인은 묘하게 내 가슴팍을 가린 위치를 고집했다. 어깨에 고개를 묻든지, 몸을 붙이든지 하면서 정확히 가슴 가운데에 있는 흉터를 가렸다.
‘카메라가 움직이니까 어떻게 나올진 모르겠는데, 신경 써주니까 고맙네.’
하긴 지가 회귀했다는 걸 밝히기 전에 내 심장을 신경 써주다가 들키기도 했지. 가만 보면 은근 착한 구석이 있다니까.
‘아니, 내가 무슨 생각을.’
일에 집중을 안 하니까 이런 쓸데없는 생각이 드는 거다. 곧장 머리를 비우고 다시 표정연기에 열중하며 앞 카메라를 응시하는 것에 집중했다.
“은찬 씨, 보니까 그 흉터… 굳이 보정으로 가릴 필요 없을 것 같은데? 지금은 어차피 주인 씨랑 가까이 붙어 있는 게 많아서 안 나올 것 같고. 마침 다음 컨셉에는 개인컷도 있으니까. 나는 나쁘지 않다고 보거든요.”
“아, 저는 괜찮습니다.”
“저기 작가님, 말씀 하나만 드릴 수 있을까요.”
“응?”
촬영한 사진을 확인하던 중이었다. 은찬은 다음 제안을 하는 작가의 말에 순응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중이었는데, 옆쪽으로 주인이 다가왔다. 그러고는 의문스러운 말을 하더니 작가의 귀에 귓속말을 하기 시작했다.
“아, 난 나쁘지 않지. 오히려 그림이 더 좋을 수도 있겠네! 두 사람 우정 좋은데?”
“저희 멤버인데 제가 신경 써야죠.”
“주인 씨가 사람이 참 좋아. 은찬 씨, 의상 이쪽에서 입으셔도 돼요. 근데 사이즈 확인해야 하니까 입고 이쪽으로 잠시 와주세요.”
“아, 넵!”
정확히 어떤 말을 했는진 모르겠다. 하지만 특유의 일 모드가 켜진 현주인과 작가님의 표정이 좋았으니 나쁘지 않은 제안이 오간 것으로 짐작할 뿐이었다.
‘뭐지? 못 보던 의상인데.’
내 행거에 걸려 있는 흰색 의상은 아까까지만 해도 보지 못했던 것이었다. 문득 고개를 돌려 옆쪽의 현주인을 바라보았다. 놈의 의상은 오픈형 재킷이었다. 아까 내 쪽에 있던.
“둘이 분위기 진짜 다르다. 머리색이 반대여서 그런가? 둘 다 잘 어울리네.”
백 컨셉은 다양한 소품과 함께 진행되었다. 이번에는 상의를 입었을 때 살이 많이 드러나지 않아서 아까보다 포즈를 취하는 것이 자유로웠다.
‘쟤는 진짜 프로긴 하다.’
그에 비해 현주인은 맨몸에 재킷만 걸친 주제에 잘만 움직이고 있었지만. 놈의 은빛 머리칼과 조각 같은 몸이 어우러져 마치 CG 같았다. 개인컷 촬영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감탄의 눈빛을 보낼 뿐이었다.
화보 촬영을 마친 뒤에는 영상 촬영과 함께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제네시스와 멤버들에 관련된 평범한 질문부터 시작해서 심장 흉터에 대한 질문까지 들어왔다.
“어릴 때 심장 수술을 받았던 적이 있거든요. 아주 어렸을 땐 흉터가 신경 쓰인 적도 많았는데 지금은 그게 잘 버텨냈다는 증거 같아요. 훈장 같기도 하고. 일상생활을 할 땐 불편함이 없어서 괜찮아요. 남들에 비해 오래 연습을 못해서 꾸준히 하려고 노력하고 있고요. 저한테 마이너스가 되는 요소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안쓰러운 눈빛을 받을 것 같아 일부러 더 밝게 답했다. 옆에서 놈의 눈길이 느껴져 일부러 팔 쪽을 툭 쳤다. 집중하라는 뜻으로.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다음에도 꼭 다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스태프분들께 인사를 건네고 챙겨 온 비타민 음료를 하나씩 건넸다. 그리고 촬영용 의상들을 반납하고는 매니저 형이 기다리고 있을 주차장으로 향했다.
‘음…….’
평소처럼 아무 말 없이 무뚝뚝하게 돌아가는 현주인의 얼굴 앞에 손을 흔들었다. 현주인은 깜짝 놀란 듯 몸을 움찔거리고는 짜증스럽게 내 쪽을 돌아보았다.
‘하여튼 인상 찌푸리는 게 습관이라니까. 저러다 주름 생기는 거 아니냐고.’
하지만 지금만큼은 놈의 저런 반응도 밉지 않았다.
“야, 근데 오늘 좀 고맙던데. 일부러 신경 써준 거냐?”
“네가 직접 인터뷰하는 거랑 사진으로만 흉터가 만인에게 공개되는 거랑은 느낌이 좀 다르지 않겠어?”
“호오…….”
현주인다운 담백하고 솔직한 화법이 이렇게 와닿는 날이 올 줄이야. 형용하기 힘든 묘한 기분에 가슴이 간질거렸다. 이놈한테 배려를 받게 될 줄은 몰랐는데.
‘역시 오래 살고 봐야 하는 건가…….’
놈의 귓가가 붉어진 것 같기도 하다. 예전이라면 상상할 수 없을 장면들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보고 있자니 감회가 새로웠다.
“의상 교환을 요구할 수는 없으니까. 다행히 네 의상이 오버핏인 데다 오픈 재킷이어서 망정이지 아니면 사이즈 안 맞을 뻔했어.”
“대신 벗어줘서 고맙다고 해야 하나?”
“…….”
“아, 미안해. 근데 진짜 고마워.”
은찬이 카니발에 올라타며 활짝 웃었다. 은찬은 다른 동생들에게 자주 했듯이 주인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주인은 은찬이 팔을 올리기가 무섭게 은찬의 팔을 곧장 쳐냈지만.
“저녁에 다 같이 콘텐츠 기획 회의 하기로 했으니까 그거나 생각해.”
“가자~!”
나는 딱히 아랑곳하지 않았다. 여전히 기분이 좋아 상기된 얼굴로 생글거리며 매니저 형에게 오늘 있던 일을 종알거릴 뿐이었다.
‘자식, 부끄러워서 말 돌린 거 아니냐.’
조용히 중얼거리는 걸 들었다, 난.
‘아무도 흉하다고 생각 안 해.’
자식, 내 생각보다 훨씬 좋은 놈일지도?
***
오늘은 스케줄이 모두 마무리된 저녁에 멤버들과 다 같이 자체 콘텐츠에 관련된 세부적인 사항들을 정하기로 했다. 그동안 앨범 준비 및 연습, 그리고 소소한 일상에 대한 내용이 업로드되었다면 이번에는 간만에 큼지막한 컨셉을 잡아보자는 의견에서 나온 결정이었다.
그로 인해 정해진 게 ‘단체 MT’였다.
“MT 가면 저희 미자들은 어떻게 하나요?!”
“콜라 마시면 되겠지.”
“그럼 저희는 분위기에 취하라는 말인가요?!”
“이해가 빠르네. 그럼 미자가 술을 마시냐?”
“우와, 너무해~ 그럼 수학여행 아닌가?!”
은찬과 주인이 도착했을 땐 이미 회의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벌써 시끄럽네?”
연습실 구석 한편에 모여 다 같이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은 얼핏 보면 다투는 것 같기도 하고 떠드는 것 같기도 했지만 그게 제네시스 멤버들의 평소 모습이었다. 분위기를 띄우는 별이와 칼같이 쳐내는 주혁이. 그리고 옆에서 웃으며 방관하는 이선과 피곤한 듯 이마를 짚은 가을이과 리온이가.
“어디까지 얘기했어?”
은찬이 사랑하는 제네시스의 분위기였다. 은찬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나도 껴주… 응?”
바지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핸드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 백무영 선배 : 은찬 씨, 혹시 오늘 시간 될까요? 은찬 씨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같이 있어줬으면 좋겠어요. ]핸드폰을 확인한 은찬의 고개가 갸우뚱 기울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