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ubscribed to the Channel of Transcendents RAW novel - Chapter (131)
130화.
마주 앉은 시우와 김민재.
“마시고 싶으신 것이 있으세요? 이번엔 커피랑 홍차, 얼그레이 등등 취향에 맞는 차가 많아요. 음료수도 많이 있고요.”
주방에서 서아가 물어 왔다.
그러자 김민재가 손사래를 쳐 보이며 말했다.
“전 물이면 됩니다. 갑자기 찾아온 것도 죄송스러운데, 폐를 끼칠 수는 없죠.”
“폐라뇨.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
“아닙니다. 정말 물이면 괜찮습니다.”
김민재는 한사코 사양을 해 보였다.
서아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돌려 시우에게 물었다.
“오빠는?”
“난 콜라.”
사실 시우도 물이 좋았다.
하지만 아까 전, 오우거 탄산 방귀 때문일까.
진짜 콜라를 먹고 싶어졌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서아는 그렇게 주방에서 몸을 움직였다.
부스럭거리는 소리도 들려오는 것이 내올 과자도 준비하는 것 같았다.
그 부스럭거리는 소리 때문일까.
헥헥.
흑돌이가 꼬리를 흔들며 서아에게 다가갔다.
하여간, 세상에서 먹는 걸 제일 좋아하는 흑돌이였다.
괜히 한 달 밥값이 6,000만 원이 들어가는 것이 아니었다.
아무튼.
시우와 김민재는 마주 앉아 서아를 기다렸다.
왜인지 어색한 분위기가 흘렀다.
아니나 다를까 김민재가 몸을 꼼지락거렸다.
그리고 잠시.
“마스터 오렐리안께서 프랑스로 돌아가셨다고 들었습니다.”
김민재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시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네. 그런데 2주 뒤에 다시 한국으로 오신다고 했으니….”
오렐리안이 떠나고 꽤 시간이 흐른 지금.
“아마 오늘 내일로 곧 돌아오실 겁니다.”
“그렇군요.”
김민재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서아가 각종 다과와 함께 물과 콜라를 내왔다.
김민재는 앞에 놓인 물잔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리고는 다시 시선을 돌려 시우에게 말했다.
“그럼 혹시 프랑스 사람이 빨래를 어떻게 말리는지 아십니까?”
콜라가 담긴 잔을 내려놓던 서아.
“……?”
서아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갑자기 프랑스 사람이 빨래 말리는 건 왜 묻지? 하는 그런 표정이었다.
하지만 시우는 알 수 있었다.
저 물음의 진정한 의미를 시우는 알고 있었다.
‘왔다.’
온 것이었다.
김민재 특유의 개그.
앞서 오렐리안 이야기를 왜 꺼내나 싶었더니.
프랑스로 이어지기 위한 빌드업이었던 모양인 듯 싶었다.
시우는 잠시 그 답을 생각해 보았다.
그러다 퍼뜩.
떠오르는 생각에 속으로 씨익, 웃음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겉으로는 전혀 내색을 하지 않으며 입을 열었다.
“글쎄요, 아마….”
아무렇지 않게 툭.
“마르세유~. 라고 하지 않을까요.”
그 답을 내놓았다.
프랑스의 도시, 마르세유.
그러자.
“……!!!!”
김민재의 두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시우를 바라봤다.
이윽고 김민재가 꽤나 상당한 적수를 만난 어투로 말해 왔다.
“시우 님은… 굉장히 세, 센스가 넘치시는 분이셨군요….”
“별말씀을.”
시우는 과찬이라는 듯 살짝 손사래를 쳐 보였다.
하지만 그에 질세라 김민재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혹시 현재 이탈리아 날씨가 어떠한지는 아십니까?”
재도전을 한다는 건가.
시우는 다시 한 번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음….”
이번엔 그 답이 생각나질 않았다.
김민재가 조심스럽게 말해 왔다.
“굉장히 습합니다.”
“습하다고요?”
시우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지리학을 잘 아는 건 아니었다만 이탈리아는 지중해성 기후로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지중해성 기후는 온난하고 건조한 것이 특징.
습할 수가 없는 환경이었다.
시우는 김민재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자 김민재는 이번엔 자신이 이겼다는 투로 말해 왔다.
“습하겠디(스파게티).”
그러면서 김민재가 아주 뿌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직 자신의 센스가 죽지 않았다는 듯.
김민재의 표정은 세상 대견함을 품고 있었다.
확실히.
시우는 이번엔 졌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역시, 김민재 비서님의 센스를 따라가기엔 아직 부족한가 봅니다.”
덕분에 클레오파트라에게 써먹을 개그가 하나 더 늘었다.
클레오파트라는 이런 개그가 취향이니 말이다.
물론 클레오파트라와 또 만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시우 님도 굉장한 센스의 소유자십니다.”
시우와 김민재는 마주 웃어 보였다.
그리고 그런 둘의 모습을 지켜보던 서아와 흑돌이.
“……”
서아는 세상 할 말을 다 잃은 듯한 표정이었다.
흑돌이도 두 눈을 꿈뻑거리고 있었다.
서아와 흑돌이.
둘의 시간이 멈춰 버린 것만 같았다.
어쨌든.
어색한 분위기도 풀렸겠다.
“무슨 일로 저를 찾아오신 겁니까?”
시우는 곧바로 본론으로 넘어갔다.
“아, 그것이 말입니다….”
김민재가 살짝 뜸을 들이듯 말을 흐렸다.
잠깐의 정적.
“채린 아가씨를 도와주실 수 있으십니까.”
김민재가 의미심장한 말을 해 왔다.
* * *
의미심장한 김민재의 말.
시우가 그 의미를 물으려던 것도 잠시.
“채린 아가씨는 어릴 때부터 모든 것을 혼자 짊어지려 하셨습니다.”
김민재가 관련한 이야기를 먼저 꺼내 왔다.
그렇게 나온 이야기는 한채린의 과거였다.
어린 한채린의 시절 때의 이야기.
자세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어린 나이부터 많은 사람들에게 공격을 받으며 자라오셨죠.”
그러나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한채린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지금까지 어떤 일들을 겪어 왔는지.
시우는 가만히 김민재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게 기나긴 이야기가 끝이 나고.
“……”
시우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채린 언니가….”
서아 또한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으며 놀라 보였다.
SH그룹의 막내 손녀딸.
얼굴 예쁘고, 인성 괜찮고.
천재적인 재능에 배경까지 빵빵한 한채린.
신이 인간을 차별하여 만들지 않았을까 싶은 완벽한 여자.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진 여인.
그러나 마냥 그렇지는 않았다.
지금 김민재에게 들은 한채린의 과거.
한채린이 감정 하나 없는 로봇이 되었던 이유.
“아가씨께서는 스스로가 강해져야만 한다는 강박이 있으십니다. 또한 완벽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다. 그래야만 주변의 사람들이… 자신을 떠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시죠.”
김민재의 개그 때문이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차츰차츰 감정이 마모되어 갔던 것이었다.
보다 정확히는 스스로의 감정을 드러내면 안 된다고 생각하며 자라온 것이었다.
그리고 이번에서의 사건.
문태범에게 아무런 저항도 못하고 납치되었던 일.
“지금 채린 씨가 20시간이 넘도록 수련을 하고 있으시단 말씀이시죠.”
“그렇습니다.”
김민재는 걱정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확실히 걱정스러울 만했다.
너무도 과한 수련이었으니까.
아니, 그건 수련이라 볼 수 없었다.
혹사.
스스로의 몸을 혹사시키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기에 성장에 하등 도움이 되질 않는다.
되려 몸을 망쳐 성장을 저해할 뿐이었다.
“음….”
시우는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그리 길지만은 않았다.
과외비도 두 배나 인상 받았겠다.
“서아야, 잠깐 채린 씨한테 다녀올게.”
그 돈값은 해야 하지 않겠는가.
시우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응! 다녀와! 그리고 기회가 되면 채린 언니 집으로 데려와. 내가 맛있는 거 해 줄게!”
서아가 화이팅하는 자세로 시우를 응원했다.
왈!
흑돌이 또한 응원한다는 듯 활기차게 짖어 왔다.
“가시죠.”
그런 서아와 흑돌이의 배웅을 받으며 시우는 김민재와 함께 집 밖을 나섰다.
* * *
SH헌터 길드 사옥.
그 최하층에 위치한 연무장.
쐐애애액!
벼락같은 섬광이 허공을 스쳐 지나갔다.
다만, 땀으로 젖은 채린의 흑발은 더 이상 흩날리지 않았다.
“하악…! 하악…!”
거칠어진 숨은 금방이라도 넘어갈 것처럼 헐떡거렸다.
땀으로 흠뻑, 젖은 몸은 천근만근 무거웠다.
검을 쥔 손아귀는 찢어져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그럼에도 채린은 멈추지 않았다.
쐐액, 쐐애액!
계속해서 검을 휘둘렀다.
계속, 계속.
휘두르는 검에는 그 어떠한 묘리가 담겨 있지 않았다.
시우가 알려 준 태극(太極)이 깃들어 있지 않았다.
쐐액!
단순한 휘두름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이건 수련이라 볼 수 없었다.
육체적인 혹사에 지나지 않았다.
채린은 그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이것이 단순한 혹사에 지나지 않은 일이라는 걸 모르지 않았다.
쐐애액!
그럼에도 채린은 멈추지 않았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되었으니까.
강해져야 했으니까.
강해야만 했으니까.
그래야만. 그래야지만.
“하악…! 하악…!”
사람들을 지킬 수 있었으니까.
사람들이 자신을 떠나지 않게 할 수 있었으니까.
채린은 무아지경으로 검을 휘둘렀다.
이미 육체의 한계는 넘어선 상황이었다.
오로지 강박에 의한 정신력이 육체를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나 이 세상 모든 것은 끝이 있는 법.
강인한 정신력일지라도 결국은 마모되어 쓰러지기 마련이었다.
휘청.
일순간 채린의 몸이 기울어졌다.
황급히 균형을 잡으려고 했지만….
“흐윽…!”
아찔한 현기증에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정신이 아득해지며 멀어져 갔다.
시야가 서서히 암전했다.
휘청거린 몸이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 순간.
탁.
어떤 손길이 채린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쓰러지던 채린의 몸 또한 단단한 무언가에 안겨 기대어졌다.
흐릿한 시야.
“시우 씨….”
채린은 그 말과 함께 정신을 잃었다.
* * *
어린 채린은 할아버지와 함께 사는 것이 좋았다.
사실 할아버지는 굉장히 무서웠다.
말을 걸어도 답도 잘 없으셨다.
엄격하시기는 굉장히 엄격하셨다.
어린 채린은 할아버지가 너무 무서웠다.
하지만 할아버지 옆에 있으면 사람들이 떠나지 않았다.
모두와 함께 있을 수 있었다.
채린이 혼자 있으면 모두가 떠나가는데 말이다.
못된 일들도 무서운 할아버지에게 겁을 먹은 것일까.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았다.
채린은 그런 할아버지를 보면서 배울 수 있었다.
사람들을 지키려면 무서워야 하는구나.
무서울 정도로 강해야 하는 것이구나.
채린은 할아버지와 함께 사는 것이 좋았다.
하지만 좋은 일은 마냥 계속되지 않았다.
‘오늘부터는 따로 살거라.’
할아버지가 따로 살라고 말해 왔다.
채린은 계속 할아버지와 살고 싶었지만….
그러겠다고 했다.
싫다고 하기엔 할아버지는 여전히 무서웠으니까.
대신 민재 아저씨가 할아버지에게 말했다.
‘회장님. 제가 감히 주제 넘게 말씀드리나, 아가씨는 아직 어리십니다. 아직은 보호가 필요한─.’
‘앞으로 더한 공격들이 있을 것이다.’
할아버지는 단호하게 말을 했다.
‘채린이, 네가 SH그룹의 핏줄을 잇고 있는 한. 앞으로 수많은 위협이 있을 것이다.’
채린은 할아버지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고작 이 정도조차 이겨 내지 못한다면, 너는 앞으로도 아무것도 이겨 낼 수 없을 것이야.’
그냥 이겨 내야 한다는 것만 이해할 뿐이었다.
스스로가 강해져야 한다는 생각만 할 뿐이었다.
그래야만 사람들이 자신을 떠나지 않을 거란 생각만 할 뿐이었다.
‘오늘부터 이 저택에 들어오지 말거라.’
그렇게 채린은 다시 홀로 세상에 내던져졌다.
당시 채린의 나이 13살.
아직 세상에 대해 잘 알지 못했을 때의 일이었다.
* * *
번쩍.
채린의 두 눈이 일시에 떠졌다.
떠진 시야로 익숙하면서도 낯선 풍경이 비쳐 보였다.
뭐지, 싶은 생각도 잠시.
채린은 금방 이곳이 어디인지를 알 수 있었다.
SH병원의 특실.
채린은 특실 침대에 누워 있었다.
바로 그때.
“일어나셨어요?”
옆쪽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채린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보인 한 사내.
“시우 씨?”
시우.
채린의 옆 침실에 시우가 누워 있었다.
“시우 씨가 왜 여기에…?”
“저도 병원장님께 부탁하니까 되던데요?”
시우가 자기도 놀랐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윽고 시우가 누운 몸을 일으키며 채린에게 말해 왔다.
“어떻게, 몸은 괜찮으십니까?”
“…아, 네.”
채린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사실 괜찮지 않았다.
머리는 망치에 얻어맞은 것처럼 띵, 했다.
혹사당한 몸은 끊어질 듯이 아파 왔다.
하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그래서는 안 되었으니까.
“다행이네요.”
채린의 답에 시우가 작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 잠시.
“그럼 바로 수업을 시작하죠.”
시우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채린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수업…이요?”
수업.
그 의미를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현재 채린은 시우에게 검술을 배우고 있었으니까.
수업이라 함은 그 검술을 가르쳐 주는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지금이요?”
“네. 채린 씨 몸도 괜찮으시다고 하니, 바로 시작해도 될 거 같아서 말입니다.”
시우는 뭐가 문제냐는 듯 말해 왔다.
“설마, 채린 씨 아직 몸이 안 좋으신 겁니까? 몸이 안 좋으면 다음으로 미뤄도….”
“아니요. 괜찮아요.”
채린은 시우의 말을 끊듯이 답을 해 보였다.
사실 몸이 굉장히 안 좋긴 했다.
수업을 받을 정도의 컨디션은 결코 아니었다.
“괜찮으니 바로 수업하시죠.”
하지만 한가로이 누워 있을 생각은 없었다.
휴식이라는 것을 취할 마음은 전혀 없었다.
채린은 스스로 알고 있었다.
스스로의 재능이 뛰어남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자만을 하고자 함이 아니었다.
되려 그 재능을 잘 알았기에 썩히고 싶지 않을 뿐이다.
뛰어난 원석이라 할지라도 결국은 원석에 지나지 않는다.
그 원석을 보석으로 만들기 위해선 수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끊임없이 담금질을 해야만 했고.
끊임없이 망치질을 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원석은 빛나는 보석이 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지금.
“저는 준비되었어요.”
한채린은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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