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ubscribed to the Channel of Transcendents RAW novel - Chapter (191)
190화.
시우는 감은 두 눈을 뜨지 않았다.
아니, 뜰 수가 없었다.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흘러도.
아무리 많은 시간이 지나도.
시우의 감긴 두 눈은 뜨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때서야 사람들은 떠올릴 수 있었다.
지금 시우의 모습이 시사하는 바를 인지할 수 있었다.
시우의 죽음(死).
“……”
“……”
“……”
사람들에게서는 더 이상 기쁨의 환호성이 터져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비단 시우뿐만이 아니었다.
부서진 잔해 속에 쓰러져 있는 S급 헌터들.
피를 흘리며 움직이지 않는 장 웨이를 비롯한 그의 수행원들
붉은 그림자에게 당한 수많은 사람들.
생사가 정확히 확인된 건 아니었다.
그러나 생사의 확인은 큰 의미가 없음을, 사람들은 모르지 않았다.
그리하여 떠오르는 하나의 생각.
이걸… 이딴 걸….
과연 승리라고 할 수 있을까.
“……”
“……”
“……”
사람들은 쉬이 고개를 끄덕일 수 없었다.
이런 건 승리가 아니었다.
오직 상처만 존재하는 승리에 지나지 않았다.
아니, 상처뿐인 승리라고도 할 수가 없었다.
피어난 희망이 꺾였다.
오로지 절망만이 내려앉아 있을 뿐이었다.
그 사이로.
“……”
백선평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붉은 그림자에게 당한 상처에 몸이 휘청거렸다.
자리에서 일어난 백선평은 절망만이 남은 도심의 풍경을 바라봤다.
“이래서…였나.”
백선평은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그와 동시에 아주 오래 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성녀(聖女), 루도레아.
백선평과 같은 13인의 영웅.
그런 루도레아의 임종을 지켜보던 때의 기억이었다.
루도레아는 수많은 사람들의 애도 속에서 생을 마감했다.
루도레아는 마지막 숨을 거두기 직전에 백선평을 따로 불렀다.
그리고 그토록 애지중지하던 성물(聖物)을 백선평에게 주었다.
반드시 필요한 일에만 사용하겠다던 성물(聖物).
백선평은 물었다.
‘이걸 왜 나에게 주는 거지?’
‘당신에게 주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아서요.’
백선평은 루도레아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적나라하게 말해서 루도레아에게는 슬하의 자식이 있었다.
그리고 그녀 또한 루도레아와 같은 재능이 있었다.
이 성물(聖物)은 백선평보다는 루도레아의 자식에게 주는 것이 옳았다.
그런데 지금.
‘예언인지 뭔지 하는 헛소리를 하는 건가?’
‘어머. 그걸 이제야 믿어 주시는 거예요?’
루도레아는 싱긋, 미소를 지어 보였다.
‘믿기는 무슨. 헛소리라고 말하지 않았나.’
‘쳇. 그럴 줄 알았어요.’
루도레아는 뾰로통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럼 여자의 촉이라고만 해 두죠.’
‘여자? 임종 직전의 할망구가 무슨 여자란 말이더냐.’
‘…너무해요.’
루도레아가 입을 비죽였다.
‘여자는 나이가 들어도 마음만은 언제나 소녀라고요.’
백선평은 그저 코웃음을 칠 뿐이었다.
이윽고 주어진 성물(聖物)을 바라보며 물었다.
‘무엇을 위해 사용하면 되지?’
‘그건 검선, 당신의 몫으로 남기겠어요.’
루도레아는 답을 하지 않았다.
답을 회피하려는 건지.
아니면 저 말이 답이었던 건지.
당시의 백선평은 알지 못했다.
‘지금 당장 죽어 가는 너를 살릴 수도 있다만.’
‘검선, 당신 말대로 저는 할망구가 맞나 봐요. 여자의 촉이 하나도 맞질 않네요.’
루도레아는 시무룩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그리고 백선평은 여전히 실소를 흘릴 뿐이었다.
‘아직도 마왕이 최강도, 마지막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건가? 이 성물은 그때를 위해 사용하라는 거고?’
‘아니요.’
루도레아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아, 물론 마왕이 최강도, 마지막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건 맞아요. 그러나 이 성물은 그때를 위한 성물이 아니에요.’
루도레아는 백선평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이건 검선, 당신을 위한 성물이에요.’
당시 백선평은 저 말의 의미를 알지 못했다.
‘검선, 당신의 남은 삶이 후회로 가득하지 않기 위한 저의 작은 선물이랍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그 의미를 알지 못했다.
백선평은 성물을 말없이 품 안에 챙겨 넣었다.
‘사용 방법은?’
‘검선, 당신의 기운을 불어넣으면 돼요. 당신의 기운을 대가로 수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죠. 간단하죠?’
‘그것뿐인가?’
‘한 번 사용하면 다시는 사용할 수 없으니 반드시 필요한 일에만 사용하세요.’
루도레아는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그리하여 지금.
“……”
백선평은 지금 루도레아가 남긴 성물(聖物)을 꺼내 들었다.
루도레아의 힘이 담겨 있는 이 성물(聖物)은 죽음을 거부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백선평은 이 성물(聖物)을 사용할 생각이 없었다.
평생 사용할 일이 없다고 생각했었다.
죽음 또한 하나의 흐름이었으니까.
그 흐름을 거스르는 행위 따위는 하지 않을 테니까.
그럼에도 백선평이 이 성물(聖物)을 가져온 이유.
“선제, 너를 살리고자 했건만….”
백선평의 아들, 백선제.
죽은 선제를 살릴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작은 ‘희망’을 품었던 것뿐이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작은 희망에 지나지 않았다.
사실 말이 죽음을 거부할 수 있다 뿐.
죽은 이를 살리는 건 불가능했다.
다가오는 죽음을 거부할 수 있다는 말이지 죽음 자체를 무시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죽은 악마의 부활이 불가능하듯.
이미 죽음이 찾아온 존재를 되살릴 수는 없었다.
그래서 검선은 지금까지도 루도레아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검선, 당신의 남은 삶이 후회로 가득하지 않기 위한 저의 작은 선물이랍니다.’
선제는 이미 죽었고.
백선평은 이미 후회로 가득차 있었다.
하지만 지금.
“네 녀석이었나….”
백선평의 시선이 쓰러진 사내에게 향했다.
악마의 존재를 멸살한 사내.
붉은 그림자를 상대로 버텨 낸 사내.
그 누구도 바꿀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흐름을 바꾼 사내였다.
아마, 이 사내였던 모양이다.
선제에게 세상의 흐름을 바꿀 수 있다는 헛된 희망을 심어 준 존재가.
선제가 죽음을 불사하면서까지 지키고자 했던 마지막 정의가.
“네 녀석…이었나.”
백선평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황폐한 도심의 풍경을 가로지르며 쓰러진 사내, 시우에게 다가갔다.
가까이서 본 시우의 상태는 뭐라 설명할 길이 없었다.
그냥 죽어 있다고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아직 죽음이 찾아오지는 않았다.
죽음에 한없이 가까워져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일까.
“……”
백선평은 주저했다.
죽음을 거스르는 일.
이는 스스로의 정의에 어긋나는 일이다.
그러나 그 아비에 그 자식이라는 걸까.
“…나 또한 선제, 너와 같았구나.”
백선평 또한 모순적인 존재였다.
허세란 허세는 모두 부려 놓고 정작 스스로의 정의조차 지키지 못하는 어리석은 존재였다.
그렇기에 지금.
백선평은 검선(劍仙)이 아니었다.
13인의 영웅 또한 아니었다.
“못난 자식 놈 같으니라고.”
아버지, 백선평.
내뱉는 백선평의 목소리가 떨려 왔다.
아비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것도 모자라 참….
못난 자식도 이런 못난 자식도 없지 않은가.
그러나 어쩌겠는가.
아비로서 자식의 마지막을 지켜 줘야 하지 않겠는가.
하여, 이 시우라는 사내.
이 사내가 선제, 너의 마지막 정의라면.
화아아아아악!
터져 나오는 새하얀 빛.
생명의 힘을 품은 빛이 절망으로 내려앉은 풍경으로 퍼져 나갔다.
* * *
온 사방을 잠식한 새하얀 빛.
따스한 기운을 품은 빛은 황폐한 도심의 풍경을 감싸 안았다.
그리고.
“어, 어라…?”
“어떻게… 내가?”
쓰러졌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부서진 잔해 속에 쓰러져 있는 이들.
붉은 그림자에게 당해 피를 흘린 채 움직이지 않는 사람들.
이하린, 이시윤, 유한나, 금천규.
그리고 장 웨이를 비롯한 그의 수행원들까지.
죽음의 문턱까지 내몰렸던 이들이 서서히 정신을 차렸다.
붉은 그림자에게 당해 쓰러져 있던 수많은 사람들 또한 하나둘씩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어, 어떻게…?”
일어난 사람들은 어리둥절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그때서야 풍경을 가득 메운 새하얀 빛을 인지할 수 있었다.
그 안에 깃든 생명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어떻게 이런…?”
“이 힘은 대체….”
쓰러진 사람들의 상처는 서서히 치료되어 가고 있었다.
그 순간.
두근!
멈춰 있던 시우의 심장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한없이 미약했다.
“시, 시우 씨!”
그러나 채린은 분명 들을 수 있었다.
채린은 놀란 눈으로 시우의 이름을 불렀다.
시우는 여전히 답이 없었다.
그러나 까딱.
미약한 움직임을 내보였다.
꺼져 가던 생명의 불씨가 살아나고 있었다.
“이, 이게 어떻게….”
채린은 뭐가 어떻게 되어 가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 순간.
“…쿨럭!”
한쪽에서 격통 어린 신음 또한 들을 수 있었다.
그리 멀지 않은 곳.
백선평이 각혈하며 몸을 휘청거리고 있었다.
“검선님…?”
“…괜찮다. 힘을 소모해 지친 것뿐이니.”
백선평은 아무 일도 아니라며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계속해서 괜찮다며 채린을 안심시켰다.
그러나 누가 봐도 괜찮아 보이지 않았다.
숨은 거칠다 못해 헐떡거리고 있었다.
휘청거리는 백선평의 몸은 끝내 털썩, 쓰러지고 말았다.
그리고.
“검선님의 기운이….”
검선에게서 그 어떠한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붉은 그림자에게도 밀리지 않았던 강대한 기운.
그 강대한 기운이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채린의 감각으로 느껴지는 백선평.
그는 더 이상 검선(劍仙)도, 13인의 영웅도 아니었다.
평범한 노인.
하여 채린은 알 수 있었다.
지금 보이는 이 기적적인 현상.
이건 백선평이 자신의 모든 힘을 대가로 사람들을 살린 것이다.
이러한 기적에는 마땅한 대가와 이유가 있는 법이었다.
“…신경 쓰지 말거라.”
채린의 눈치를 안 것인지 백선평이 말해 왔다.
말을 내뱉는 백선평은 태연했다.
이윽고 백선평의 시선이 하늘로 향했다.
게이트가 완전히 사라진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푸르렀다.
그러나 하늘을 올려다보는 백선평의 노쇠한 두 눈.
“하늘은 내게 죽음도 쉬이 허락하지 않는군.”
어딘가 공허하게만 느껴질 뿐이었다.
빈 껍데기만 남은 듯한 백선평의 모습이었다.
“…남은 삶을 후회로 살아가라는 형벌인 건가.”
백선평은 자그마한 미소를 흘렸다.
그러나 그 미소 안에 담긴 무게를 채린은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채린은 백선평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감사하다는 말을 해야 할까.
죄송하다는 말을 해야 할까.
채린은 그 어떠한 말도 꺼낼 수가 없었다.
바로 그 순간.
“국장님?!”
어디선가 하늘을 찌르는 듯한 외침이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웅성웅성, 큰 소란이 일었다.
바라본 그곳엔 수많은 가더들이 한데 모여 있었다.
그런 수많은 가더들 속.
중심에는 선선한 인상의 미중년이 서 있었다.
시찰국장, 백선제.
백선제의 몸에는 가느다란 침들이 꽂혀 있었다.
동시에 상태 또한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몸이 회복되는 대로 달려왔건만….”
그러나 들려오는 목소리를 보면 목숨에는 큰 지장이 없어 보였다.
백선제는 주위를 둘러보고는 가더들에게 물었다.
“벌써 상황이 다 끝난 건가?”
“아, 아니… 국장님이 어떻게 여기에…? 국장님은 분명….”
“아, 그게 말이지.”
바로 그때.
“선제…?”
백선평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방금 전까지 허탈했던 표정은 온데간데없었다.
부릅, 떠진 두 눈.
백선평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백선제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윽고 백선제의 시선 또한 백선평에게 향했다.
그리고 백선평의 모습을 마주함에.
“아버…지?”
백선제 또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하하, 그러니까 이게….”
백선제가 금방 멋쩍은 표정으로 볼을 긁적거렸다.
민망함, 부끄러움, 무색함, 겸연쩍음.
이와 비슷한 온갖 감정들이 백선제의 얼굴에 떠올라 있었다.
그런 백선제를 바라보며 백선평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힘이 빠진 노쇠한 몸이 자꾸만 휘청거렸다.
채린은 황급히 다가가 백선평의 몸을 지지해 주었다.
백선평은 채린에게 기대어 겨우겨우 몸을 일으켰다.
천천히 그리고 한 발자국씩.
백선제를 향해 걸음을 내딛었다.
그렇게 백선제를 향해 다가갈 때마다.
사라지지 않는 백선제를 바라볼 때마다.
이 모든 것들이 꿈이 아닌 현실이라는 자각이 들 때마다.
백선평은 지난 날.
루도레아가 남긴 말을 조금씩 이해할 수 있었다.
‘이건 검선, 당신을 위한 성물이에요.’
당시의 백선평은 저 말의 의미를 알지 못했다.
‘검선, 당신의 남은 삶이 후회로 가득하지 않기 위한 저의 작은 선물이랍니다.’
방금 전의 백선평도 저 말의 의미를 알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
“맹시우 헌터가 다 죽어 가는 저를 살려 주는 바람에 어쩌다 보니….”
와락!
“아, 아버지?”
백선제가 크게 당황했다.
백선평의 갑작스러운 행동.
백선제가 알던 백선평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러나 끌어안은 백선평의 힘이 너무도 약해져 있음에.
“…….”
백선제는 말없이 아버지, 백선평을 끌어 안아 주었다.
던전 게이트가 사라진 서울의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푸르렀다.
그런데 대체 왜일까.
찬란한 태양의 광휘가 내리쬐는 푸르른 하늘 아래.
툭, 투툭.
투명한 물방울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 * *
물속을 유영하는 듯한 몽롱한 정신이 이어졌다.
무엇하나 뚜렷하게 인지되는 것이 없었다.
이윽고 사아아….
산들거리는 바람이 볼 끝을 스쳐 갔다.
…응?
처진 의식 사이로 일순간 의문이 떠올랐다.
그와 동시에 엥?
또다시 의문이 떠올랐다.
그도 그럴 것이 의문이 떠오른다는 건 의식이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한 마디로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뜻이다.
그럴 리가 없을 텐데…?
의문 사이로 뚜렷한 의식이 살아났다.
그렇다면 사후세계?
아니면 설마….
‘갓튜브?!’
번쩍!
시우의 두 눈이 일시에 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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