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ubscribed to the Channel of Transcendents RAW novel - Chapter (205)
204화.
한관국을 어떻게 할 생각이냐는 백선평의 물음.
한태산은 아무런 답을 하지 못했다.
어색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이윽고 백선평이 작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오랜만에 만나는데 초장부터 무거운 이야기를 해 버렸군. 사과하네.”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더… 죄송합니다.”
한태산은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백선평은 말없이 한태산의 손에 들린 술병을 받아 들었다.
“받게나.”
한태산은 황급히 빈 술잔을 들어 백선평의 술을 받았다.
“한잔하지.”
백선평은 호탕하게 술잔을 입에 털어 넣었다.
한태산은 살짝, 고개를 돌려 술잔의 술을 비워 냈다.
탁.
깔끔하게 비워진 백선평의 술잔.
한태산은 다시 술병을 들어 백선평의 빈 술잔에 술을 채웠다.
“이렇게 보니, 자네도 나이가 많이 들었군. 자네를 처음 만났을 때는 젊은 혈기로 가득했는데 말이야.”
“아직도 그때를 기억해 주시고 계신 겁니까.”
“잊을 리가 있나. 내가 엇나가지 않도록 다시 길을 잡아 준 이가 바로 자네인데.”
백선평은 한태산의 술병을 받아 그의 빈 술잔에 술을 채워 주었다.
“세상에 대한 환멸로 가득했던 나의 앞을 자네가 가로막으며 호되게 혼냈었지.”
“제가 검선님을 혼내다니요. 말씀이 너무 지나치십니다.”
한태산은 몸 둘 바를 모르며 고개를 숙였다.
백선평은 작게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나는 지금도 그때의 일이 잊혀지질 않아. 자네가 그러면서 내게 보였던 눈빛도 말이야. 자네는 혹시 기억이 나는가?”
한태산은 고민도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검선께서 지켜 주신 이 세상을, 제가 정의롭고 떳떳하게 살 수 있는 세상으로 만들겠다고 말씀드렸죠.”
“그리하여 악한 이들이 설치지 못하는 세상. 선한 이들이 마음 편히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내게 말했었지.”
그 일념 하나로 한태산은 지금까지 걸어왔다.
물론 한태산은 백선평과 같은 힘이 없었다.
하지만 힘이란, 단순히 물리적인 힘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보다 정확히는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은 물리적인 힘만으로는 불가하다.
그건 백선평을 보면 알 수 있었다.
감당할 수 없는 힘은 되려 불안감만을 초래한다.
필요할 때만 쓰고 버리는 핵폐기물과 다를 바 없는 취급을 당한다.
해서 한태산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진정한 힘을 얻고자 악착같이 노력했다.
그리고 끝내 대한민국 재계와 정계를 움켜잡는 SH그룹의 회장이 될 수 있었다.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진짜 힘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허나 지금.
“어떻게, 그 날의 약속은 지킨 것 같은가?”
한태산은 차마 답을 할 수가 없었다.
너무도… 추악했으니까.
이 자리까지 오르기까지 너무도 추악한 일들을 많이 겪어 버렸다.
또한 한태산 스스로가 그런 추악한 일들을 행하며 이 자리에 올라왔다.
애초에 정의롭고 떳떳한 세상 따위는 없었다.
열심히 살면 된다고.
노력만 하면 된다고.
그렇게 가르치고, 그런 세상을 만들고자 다짐했는데.
막상 돌아본 세상은 젊은이들의 꿈을 짓밟고나 있었다.
못된 것만… 물려줘 버렸다.
“…죄송합니다.”
답할 말이 없었다.
부끄럽기 그지없었다.
푹, 숙인 고개.
“자네 잘못이 아니야.”
백선평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설령 자네의 잘못이 있다 하더라도, 나는 자네를 꾸짖으러 온 것이 아니네.”
“……”
“나 또한 나의 정의를 지키지 못했거늘, 누가 누구를 꾸짖는단 말인가.”
백선평은 차분히 술잔을 들어 올렸다.
한태산은 마주 술잔을 들어 올려 술잔에 담긴 술을 비웠다.
“세상의 흐름을 바꾸기란 쉽지 않아. 아니, 바꿀 수가 없는 것이지. 자네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고작 우리 두 사람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야.”
“……”
한태산은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13인의 영웅, 백선평.
SH그룹의 회장, 한태산.
이 둘은 한국을 넘어 세계조차 움직일 수 있는 거물 중의 거물이었다.
그러나 이 둘의 힘으로도 불가능했다.
세상을 바꿀 수가 없었다.
그렇다는 건 그 누구도 불가능하다는 뜻이리라.
“오만이었지.”
오만이었을 뿐이었다.
한 개인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던 오만이자 객기.
그 비참한 현실에 한태산은 여전히 말을 할 수가 없었고.
“세상의 흐름을 단번에 바꿀 수 있다고 믿었던 오만.”
백선평은 천천히 말을 이었다.
“자네가, 그리고 내가. 우리의 세대에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자만했던 것이야.”
한태산의 두 눈에 의문을 떠올렸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백선평의 말은 어딘가 이상했으니까.
백선평은 천천히 시선을 창밖으로 던졌다.
노쇠한 백선평의 두 눈동자.
그 안으로 고풍스러운 풍취를 자아내는 소나무가 비쳐 보였다.
“오래 전, 북산에 우공이라는 어리석은 노인이 살고 있었네.”
그리고 들려온 백선평의 목소리.
“그의 집 앞에는 태항산이라는 크나큰 산이 가로막고 있어서 다른 고장으로 다니기가 불편했었지.”
백선평은 하나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해서 이 어리석은 노인은 앞을 가로 막은 태항산을 옮기고자 했다네.”
그 방법은 산의 돌을 깨고, 흙은 파 삼태기에 담아 옮기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모두 어리석다며 비웃었네. 사람 한 명이 삼태기에 흙을 옮겨 봤자 얼마나 옮기겠는가.”
“……”
“무엇보다 당시 우공의 나이는 90에 가까웠네. 늙을 대로 늙은 우공은 산을 허물기도 전에 죽어 버릴 것이 분명했지. 그러나 우공은 되려 껄껄, 웃으며 이리 대답했다네.”
내가 못 하면 나의 아들이, 손자가, 증손자가 그 일을 해내 줄 것이네.
나의 자손은 대대손손 대를 이어가나, 저 산은 더 불어나는 일이 없지 않은가.
“그런 우공의 말을 듣게 된 태항산의 산신령은 화들짝 놀랐네. 정말로 그 일이 가능할 것 같았거든. 결국 자신이 설 자리를 잃게 될까 두려운 산신령은 옥황상제를 찾아가 부탁했네.”
저 우공이란 노인이 산을 없애 버리기 전에 산의 위치를 옮겨 달라.
“그리고 옥황상제는 그런 산신령의 청을 들어주었지.”
백선평의 시선이 다시 한태산에게 향했다.
“90살에 다다른 힘없고 어리석은 노인이 끝내 거대한 산을 옮겨 버린 것이야.”
우공이산(愚公移山).
한태산 또한 알고 있는 일화였다.
그런데 갑자기 이 이야기는 왜….
한태산은 의문 가득한 눈빛으로 백선평에게 물었다.
“이번 일을 겪으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
그리고 백선평은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우리가 바꾸려던 세상은, 내가 바꾸지 못할 것이라 단정 지었던 세상은. 사실 우공이 옮기려고 했던 산과 같지 않았을까.”
한 개인의 힘으로는 산을 없앨 수는 없다.
설령 그것이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90에 닿은 우공은 결코 산이 없어지는 광경을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 뜻을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그 뜻이 세대와 세대를 이어 무한히 이어 나간다면.
불가능할 거라 생각했던 거대한 산은 끝내 옮겨지리라.
“바위를 뚫는 것은 한순간 쏟아지는 폭포가 아니었네. 수백 년간 한 방울씩, 꾸준히 떨어지는 물방울이지.”
백선평은 술병을 들어 한태산의 빈 술잔에 잔을 채웠다.
“나는 다음 물방울을 믿어 보기로 했다네.”
그리고 들려온 백선평의 말.
좀처럼 의미를 헤아릴 수 없는 말이었다.
신선놀음과도 같은 뜬구름 잡는 말처럼도 들려왔다.
그러나 한태산은 왜인지, 그 의미를 알 수 있었다.
한태산은 백선평에게서 술병을 받았다.
“검선께서 믿어 보기로 하신 물방울은 어떤 물방울입니까.”
“글쎄, 겉보기로는 상당히 맹한 물방울이었다네.”
백선평은 주름진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한태산은 말없이 술병을 받아 비어 있는 백선평의 술잔을 채웠다.
한태산과 백선평.
세월이 흘러 재회한 두 노인은, 마주 술잔을 기울였다.
* * *
갑작스러운 민정수석 비서관, 김민우의 존재.
아무래도 한관국을 보호하고 있다던 정부의 존재가 저 김민우인 것 같았다.
그렇기에 한민아는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한민아가 SH그룹의 이사라지만 수석 비서관을 무시할 수준은 아니었으니까.
수석 비서관은 대통령을 보조하는 참모다.
일반 국민들 눈에 잘 띄지 않아 뭐 하는 사람인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긴 했다.
그러나 수석 비서관은 대통령의 오른팔이자, 대통령의 의사를 국가 권력 기관에 연결하는 가교 역할의 핵심 인사.
한 마디로 대한민국 정권의 실세라 할 수 있었다.
정부가 한관국을 보호하고 있다는 건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수석 비서관이 나섰을 줄은 몰랐다.
하지만 한민아는 개의치 않았다.
아무리 수석 비서관이라도 행정 체계 자체를 무시할 수는 없었으니까.
한민아는 옆으로 슬쩍, 눈짓을 해 보였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이민정이 앞으로 나서며 방금 전의 영장 서류를 내밀었다.
“한관국 이사님에 대한 구속 영장입니다.”
정적이 이어졌다.
이윽고 김민우가 차분히 자리에서 일어나 이민정 앞으로 걸어왔다.
그리고 영장을 받아 들더니 찍, 찌직.
그 자리에서 영장을 찢어 버렸다.
“이 무슨….!”
“이 영장은 기각될 겁니다.”
김민우가 작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 알고 이만 돌아가십시오.”
김민우는 그렇게 등을 돌렸다.
이민정이 싸늘한 눈빛으로 일갈했다.
“시찰국장님께서 직접 나서신 일입니다.”
김민우는 그 자리에 걸음을 멈추었다.
살짝, 고개를 돌린 시선.
“그래서요?”
김민우는 그렇게 말할 뿐이었다.
이민정은 그 이상으로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행정 안전부 산하, 시찰국.
시찰국은 대한민국 공공의 안전과 법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기관이다.
행정 안전부 소속의 정부 기관으로서 그 행정 집행을 대표하는 기관.
그리고 김민우는 민정수석 비서관으로서 행정 안전부를 쥐고 흔드는 이였다.
대한민국 정부라 할 수 있는 존재라 할 수 있었다.
“오늘은 이만 돌아가십시오.”
아무리 시찰국이라도 정부의 뜻을 거스르면서까지 행동할 수는 없었다.
권력이란 그런 것이었다.
법과 질서 위에 군림하는 초월적인 힘.
이 나라, 대한민국에서는 권력이 곧 질서고 법이었다.
“미안하구나, 민아야. 먼 길 왔는데 보다시피 내가 오늘은 바빠서 말이지.”
한관국이 비릿한 웃음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장이라도 저 입을 찢어 버리고 싶었지만 한민아는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피해자가 고개 숙여야 하는 나라.
죄를 지어도 떵떵거리며 살 수 있는 나라.
이것이 대한민국의 실체였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그리고 앞으로도나.
결코 바뀌지 않는, 세상이다.
움켜쥔 주먹이 파르르, 떨려 왔다.
그러나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함만이 밀려올 뿐이었다.
바로 그때.
웅성웅성.
갑자기 저택 바깥에서 크나큰 소란이 일었다.
뭔가 싶은 것도 잠시.
“회장님…?”
창문 너머로 SH그룹의 회장, 한태산의 모습이 보였다.
이윽고 한태산이 저택 안으로 들어왔다.
갑작스러운 한태산의 등장에 한관국은 물론 김민우까지 크게 당황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회장님께서 여긴 어쩐 일로….”
한관국이 어찌할 바를 모르며 물었다.
한태산은 잠시 호흡을 고르고는 입을 열었다.
“이제 그만하자꾸나, 관국아.”
“예? 그게 무슨 말씀….”
한관국이 순간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한태산은 그런 한관국의 두 눈을 직시하며 말했다.
“이제 그만 관련한 범행 사실을 모두 자백하고 그에 따른 죗값을 치르거라.”
일순간 떠오르는 충격.
“……!!!”
한관국의 두 눈이 부릅, 떠졌다.
그 이야기에 한관국을 물론 한민아와 이민정.
그리고 김민우까지 상당히 놀란 얼굴을 지어 보였다.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회장님. 아니, 아버지.”
이윽고 한관국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눈치로 말했다.
“범행 사실…이라니요. 자백이라니요.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내게 숨길 수 있다고 생각했느냐.”
한태산의 말에 한관국은 입을 꾹, 다물었다.
잠깐의 정적.
한관국이 이를 까득, 깨물었다.
“저는… 저는 아버지의 아들입니다. 지금 말씀은 설마하니, 저를 더 이상 아들로서 인정하지 않겠다는 말씀이십니까?”
“아니다. 너는 내 아들이다. 세상이 무너져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런데 대체 왜…!”
“아들이 잘못된 길을 가면 그걸 바로잡아 주는 것이 아비의 도리다. 헌데, 난 그동안… 그걸 하지 못했어.”
한태산은 씁쓸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지금이라도 그 잘못된 걸 바로 잡으려 한다.”
“이제 와… 이제 와….”
한관국이 이를 까득, 씹으며 말을 이었다.
“아비 노릇이라도 하시겠다는 겁니까?”
“……”
“하! 저를 이렇게 만든 건 다른 누구도 아닌 아버지입니다! 경영진의 무능은 죄다. 형제간의 싸움조차 이겨 내지 못하면 경영 전쟁에서도 승리할 수 없다. 그리 가르치신 건 바로 아버지입니다!”
“……”
“이제 와 이럴 거면 왜 방관하셨습니까. 그때 바로잡아 주시지 않고 왜 이제서야…!”
“미안하구나. 내가 늦어도 너무 늦었어.”
한태산의 두 눈에 후회가 깃들었다.
이에 가만히 있던 한민아가 소리쳤다.
“피해망상이 너무 지나친 거 아니야? 아버지가 형제간의 싸움을 방관한 건 맞지만, 범죄를 저지르라고 가르치시진 않았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싸움에서 이기라고 말씀하셨다. 범죄 또한 그 범주에 속하는 것이 아닌가?”
“비약도 적당히 해! 아버지가 언제 그렇게 말씀하셨어! 그건 그냥 오빠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한 과잉 해석인 것뿐이잖아!”
한민아와 한관국이 첨예하게 대립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둘 다 그만하거라.”
한태산이 둘의 사이를 가로막았다.
바라본 한태산의 표정은 회한으로 가득 차 있었다.
“모든 건 내 잘못이 맞다.”
“아버지!”
한민아는 소리쳤고 한태산은 살며시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이윽고 한관국을 향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럼에도 관국아, 너의 행동은 도를 지나쳤다. 형제간의 싸움은 형제간으로 끝내야 했다. 맹시우 헌터와 검선님의 희생이 없었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을지는 알고 하는 소리더냐.”
“그건…!”
“이제 그만하자꾸나.”
“…싫습니다. 저는 인정할 수 없습니다.”
한관국이 이를 까득, 깨물며 소리쳤다.
“제가 어떻게 이 자리까지 올라왔는데! 이제 와 모든 걸 포기하라니요. 수석 비서관님! 뭐라 말씀을 해 보십시오!”
한관국은 다급히 김민우를 찾았다.
그러나 김민우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이윽고 한태산의 시선이 김민우에게 닿았다.
“각하께서도 자네가 여기에 있는 걸 알고 계신가?”
“……”
김민우는 답을 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답을 할 수가 없었다.
자칫 말을 잘못했다간… 감당할 수가 없다.
아무리 김민우라도 한태산에겐 안 된다.
한태산은 대한민국 정권 너머에 존재하는 인물.
김민우가 법과 질서 위에 군림한다면, 한태산은 그 법과 질서를 조율하는 진정한 의미의 권력자였다.
한태산을 어찌할 수 있는 존재는 대한민국에 존재하지 않는다.
“복잡한 가정사에 끼어들어 고생이 많네. 허나, 가정사는 가정 내에서 해결해야 하는 법이지 않은가.”
다시 들려온 한태산의 목소리.
“지금 돌아가신다면 더 이상 아무런 말을 하지 않겠네.”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회장님.”
김민우는 한태산을 향해 90도로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저택 밖으로 나갔다.
“자, 잠시만요! 수석 비서관님!”
한관국이 애처롭게 소리쳤지만, 김민우는 돌아오지 않았다.
“이, 이럴 수는 없습니다! 회장님! 아니, 아버지!”
“…너 혼자 모든 것을 짊어지게 할 생각은 없다. 나 또한 죄가 있으니.”
한태산은 깊은 숨을 내쉬었다.
이윽고 한태산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런 한태산의 누에는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 있는 한민아가 보였다.
“고맙구나, 민아야. 이 못난 애비 밑에서 이렇게 훌륭히 자라 주어서.”
한민아를 바라보는 한태산의 눈은 한관국과는 달랐다.
기특함과 미안함.
한태산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민아야.”
“…네, 아버지.”
“염치없지만 네게 한 가지 부탁이 있구나.”
한민아를 바라보는 한태산의 두 눈이 약간 흐려졌다.
그리고 잠시.
“민아, 앞으로 네가 SH그룹의 회장으로서 SH그룹을 이끌어 줄 수 있겠느냐.”
실로 충격적인 말이, 한태산에게서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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