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ubscribed to the Channel of Transcendents RAW novel - Chapter (238)
237화.
이예준은 정말이지 가소로웠다.
가소롭다는 말로도 부족했다.
기가 찰 지경이라고 해야 할까.
크르르르…!!
다름 아닌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자그마한 새끼 강아지.
어디서 튀어나온 건지 모르겠지만 꼴에 이빨을 들이미는 것이 애처롭기 그지없었다.
그렇기에 짜증도 치밀었다.
한낱 개새끼 따위가 자신에게 겁을 먹지 않고 대들고 있지 않은가.
“꼴에 충성심의 동물이라는 건가.”
이예준은 같잖은 실소를 터트렸다.
분수와 주제도 모르는 충성심.
그러나 과도한 충성심은 제 명을 부추기는 법이었다.
이예준은 손을 앞으로 뻗었다.
그와 동시에 사아아아─!
대자연의 기운을 품은 힘이 이예준의 손안으로 깃들었다.
말은 가소롭다 했지만 실로 놀라운 힘이었다.
가히 인간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힘이라 할 수 있었다.
‘한채린….’
그렇기에 이것이 한채린에게서 빼앗아 온 힘이라고 믿기지 않았다.
복제[複製](S).
이예준의 개성이자, 이예준을 S급 헌터로 만들어 준 힘이었다.
이예준을 인간의 정점으로 올려 준 힘이었다.
상대방의 모든 것을 말 그대로 복제할 수 있는 힘.
그러나 실상은 모든 것을 복제할 수 없었다.
복제[複製](S)가 갖는 능력 범위 밖의 것은 복제할 수 없었다.
또한 능력을 아득히 뛰어넘는 것은 열화판으로도 복제할 수가 없었다.
한계가 명확한 힘이었다.
한계가 명확했던, 힘이었다.
하지만 지금.
콰아아아아아아─!!
형용할 수 없는 대자연의 힘이 이예준의 손아귀에 깃들었다.
완벽한 복제.
지금의 이예준은 모든 것을 복제할 수 있었다.
이 세상 모든 것들을 가져와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
그냥 얻은 힘은 아니었다.
정체불명의 여우 가면.
그가 누구인지는 지금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여우 가면이 말하기를, 이예준이라는 존재의 정체성과 고유성을 대가로 바쳐야만 한다고 했다.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었다.
존재의 정체성과 고유성이 사라지면 어떤 결과가 초래되는지도 알 수 없었다.
어떤 여우 가면은 그에 대해 그 어떠한 말도 해 주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이예준은 개의치 않았다.
여우 가면이 누군지도 상관하지 않았다.
맹시우를 죽일 수만 있다면.
그의 여동생을 죽여 맹시우에게 끝없는 절망을 안겨 줄 수만 있다면.
그깟 인간 따위.
한낱 인간성 따위.
“죽여 주마!!”
버려도 상관없다.
콰콰콰콰콰─!!
휘몰아치던 대자연의 기운이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그것은 이예준의 검붉은 마력과 더해지며, 한 치의 틈도 없는 마력의 세계를 만들어 내었다.
한채린에게서 빼앗아 온 힘이나 지금 이 힘은 한채린을 뛰어넘고 있었다.
이예준이 뻗은 손을 휘저었다.
휘젓는 이예준의 손짓에 따라 펼쳐진 마력의 세계 속으로 수 천개에 달하는 마력의 송곳이 떠올랐다.
이윽고 이예준이 다시 손을 휘젓자, 쐐애애액!
수천의 마력 송곳이 전방위를 뒤덮으며 쏘아져 나갔다.
피할 곳 따위는 없는 절대적인 죽음.
하지만.
꽈아아아앙!!!
흑돌이의 흉악한 이빨이 펼쳐지는 마력의 세계를 찢어발겼다.
공간을 찢고, 쏘아지는 먹선의 송곳을 파훼한다.
그와 동시에 꽈지직!
이예준을 담고 있던 공간이 우그러졌다.
공간 자체를 격하며 덮쳐 오는 힘.
전조의 증상조차 없는 현상에 이예준은 미처 반응을 할 수가 없었다.
“끄아아아아악!”
끔찍한 고통에 비명이 절로 터져 나왔다.
흔들리는 시야 속.
이예준은 어깨부터 옆구리까지 사라진 몸을 볼 수 있었다.
몸의 3분지 1이 물어 뜯겨져 나가 있음을 볼 수 있었다.
“……!!!”
이예준의 두 눈이 경악으로 뜨여졌다.
지금…. 지금 내 힘에 저항한 것도 모자라 역습을 가했다고?
아니, 대체 어느 틈에─.
“끄아, 아아아악!”
형용할 수 없는 고통에 생각이 제대로 뻗질 못했다.
응당 죽음을 맞이했어야 할 치명상에 정상적인 사고가 불가능했다.
하지만 꾸르르륵.
뜯겨져 나간 몸의 살점이 일시에 끓어올랐다.
기생오라비 같은 놈에게서 빼앗은 힘.
초재생[超再生]의 힘이 뜯겨져 나간 이예준의 몸을 순식간에 복구시켰다.
그제야 정신이 조금씩 되돌아왔다.
황급히 눈을 치켜뜨며 바라본 시야.
어느새 자그마한 흑색 강아지, 흑돌이가 달려들고 있었다.
크르르르르!
울부짖는 소리와 더불어 시야 가득히 검은빛이 드리웠다.
“한낱 개새끼 따위가!”
이예준이 크게 소리치며 마력을 폭사시켰다.
붉디 붉은 피의 안개가 피어난다.
그것은 앞선 공간을 완벽하게 장악하며 흑돌이를 구속했다.
하지만.
꽈아아아앙!
힘과 힘이 충돌하며 피어난 피의 안개가 소멸한다.
그 충격에 이예준의 몸이 크게 뒤흔들렸다.
“으아아아아아아!!!”
광기 섞인 외침을 터트리며 이예준이 움직였다.
그로써 펼쳐지는 심연의 세계.
그 안으로 존재의 죽음을 갈망하는 굶주림이 엿보인다.
그것이 틈을 보인 흑돌이를 집어삼킨다.
그 순간.
꽈지직─!
굶주림이 찢어졌다.
그 위로 드리운 것은 흑돌이의 앞발이었다.
그 단순한 행동 하나가 이예준이 펼친 심연의 세계를 찢어 버렸다.
꽈아아아아아앙!
그대로 땅을 짓누르면서, 흑돌이가 묵빛 마력을 터트렸다.
꽈꽈꽝!
크나큰 충격에 정신이 뒤흔들리며 푸확!
이예준의 전신으로 새빨간 피가 솟구쳐 올랐다.
빨갛게 물드는 시야 속.
이예준은 볼 수 있었다.
단순한 짐승의 눈동자가 흉악한 맹수로 바뀌는 순간을.
…맹수?
아니, 그런 종류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포식자(飽食者).
저것은 이 세상 모든 만물을 집어삼키는 절대적인 포식자의 눈빛이었다.
‘이게 대체….’
털썩.
이예준의 몸이 허망하게 바닥으로 쓰러졌다.
존재의 격이 다르다.
힘의 농도가 다르다.
이건… 이건….
꾸륵, 꾸르르륵.
갈가리 찢겨진 이예준의 몸이 재차 재생을 반복해 보였다.
으드득!
이예준은 이를 부서져라 깨물었다.
아무리 강한 힘이라고 한들 빼앗으면 그만이다.
그렇기에 오히려 강한 힘일수록 좋다.
복제한다면 그 힘은 자신의 힘이 되는 것이니 말이다.
키이이이잉─!!
통제에서 풀려난 마력이 폭발한다.
폭발한 마력이 닿는 모든 것들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흑돌이에게 그 힘이 뻗었을 때.
“……!!!”
이예준은 끝내 경악의 심정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삼켜…지고 있었다.
인간이 되기를 포기함으로써 얻은 힘.
이예준이라는 존재를 규정하는 모든 것.
이예준의 세계가, 삼켜져 소멸한다.
종말(終末).
이예준은 자신의 세계에 고해진 종말을 감히 어찌할 수가 없었다.
* * *
초신속[超迅速](SS+)을 터트리며 달려온 SH병원.
아니나 다를까 병원은 아주 난리가 나 있었다.
일단 병원 입구부터 난리가 나 있었다.
소식을 듣고 몰려온 건지 온갖 기자들은 물론.
각종 소식들을 전해 나르는 일명 렉카 유투버들이 바글바글, 해 보였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막아서는 검은 제복 복장의 사람들.
“물러나세요! 여긴 환자들이 있는 병원입니다!”
“사건에 대해서는 조사가 끝나면 발표하겠습니다!”
시찰국의 가더들이 현장을 통제하고 있었다.
하지만 워낙에 사람들이 많기 때문일까.
“자꾸 이러시면 무력을 사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가더들이 현장 통제에 애를 먹고 있었다.
시우는 엎치락뒤치락하는 광경을 한눈에 담으며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가까이서 바라본 병원의 풍경은….
‘상황이 꽤 심각한가 본데.’
폭탄이라도 터진 것처럼 박살이 나 있었다.
특히나 최상층의 병동.
서아가 있는 특특실의 병동이 아작이 나 있었다.
서울의 재앙 속에서도 멀쩡했던 병원이었건만.
‘설마….’
시우는 괜한 불안감을 느끼며 병원 정문으로 향했다.
그러자 시찰국의 가더가 시우의 앞을 막아섰다.
“이봐요! 물러나라고 분명…?”
하지만 고개를 갸웃.
이리저리 시우의 얼굴을 확인하더니.
“매, 매, 맹시우 헌터님?!”
가더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소리쳤다.
“뭐?! 맹시우 헌터가 있다고?”
“어디? 어디 어디?!”
다소 큰 목소리에 주변의 이목이 단번에 집중되었다.
이윽고 사람들 역시 시우의 얼굴을 확인하더니.
“진짜다! 진짜 맹시우 헌터다!”
“대박! 유투브 조회수 떡상 각이다!”
“맹시우 헌터님! 한 말씀만 부탁드립니다!”
우르르르, 시우를 향해 몰려들기 시작했다.
당황하는 사이 시우 주변을 뺑 둘러싸 초신속[超迅速](SS+)을 사용할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무력[武力](SSR)을 사용하자니 사람들이 크게 다칠 수도 있었다.
이를 어찌해야 하나 싶던 찰나.
“비키세요! 저리 비키세요!”
“다쳐도 모릅니다!”
일련의 무리들이 모여 있는 사람들을 갈라 버렸다.
완력으로 밀어내며 모세가 홍해를 가르듯 시우 앞으로 길이 쫙, 펼쳐졌다.
그리고 보인 한 명의 여인.
뒤로 질끈 묶은 포니테일의 머리.
냉소한 분위기가 인상적인 미녀.
“아, 민정 씨.”
시찰국의 가더이자 팀장직을 맡고 있는 이민정이 시우에게 다가왔다.
길을 터준 가더들은 역시나 이민정의 팀원들이었다.
“안으로 드시죠.”
시우는 이민정의 안내를 따라 별문제 없이 병원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물론 중간중간 격한 몸부림이 있기는 했었다.
“에헤이! 그러다 다칩니다!”
“우리가 왜 인간 도살자라 불리는지 알고 싶으신 건 아니시죠?”
하지만 이민정의 팀원들이 살기를 뿌리자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이윽고 이민정의 시우와 마주 걸으며 말했다.
“자세한 경위는 조사 중에 있습니다만, 피의자는 S급 헌터인 이예준으로 파악되었습니다.”
역시나 이예준이었던 모양.
또한 용의자가 아닌 피의자라 확정 짓는 것을 보아 조사도 끝난 것 같았다.
“이예준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게….”
이민정은 쉽사리 답을 해 오지 않았다.
왜 그러나 싶은 것도 잠시.
“직접 보시는 게 빠를 듯합니다.”
이민정은 그렇게 말하며 사건 현장으로 안내해 주었다.
시우는 말없이 그런 이민정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음.
시우는 이민정이 왜 직접 보는 게 빠르다는 말을 했는지 단번에 깨달을 수 있었다.
뭐라고 해야 할까.
딱히 다를 바가 없었다.
아공간 주머니에 들어있는 혐오스러운 흉물.
지금 보이는 이예준의 모습.
둘 사이에 이렇다 할 차이점을 느낄 수가 없었다.
그 이유로는 크게 두 가지를 들 수 있었다.
첫 번째는 이예준 역시 존재성을 포기했다는 것.
그리고 두 번째는….
왈!
어디선가 들려오는 흑돌이의 목소리.
시선을 돌리자 흑돌이가 꼬리를 흔들며 헐레벌떡, 시우를 향해 뛰어왔다.
시우는 가볍게 흑돌이를 안아 들었다.
“흑돌아, 네가 이렇게 한 거야?”
왈!
흑돌이가 마구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헥헥.
칭찬해 달라는 듯이 흑돌이가 시우에게 부벼 왔다.
그런데 음.
‘이걸 잘했다고 해야 하는 건가?’
그도 그럴 것이 병동 자체가 박살이 난 풍경을 좀 보라.
다행히 다친 환자는 없어 딱히 문제가 될 건 아니었다.
다만 한 가지.
‘이예준한테도 뭘 물어보긴 글렀네.’
시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런 시우의 모습 때문일까.
끼잉….
품에 안긴 흑돌이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주눅이 들었다.
시우의 눈치를 살며시 살피는 것이 ‘내가 어떤 잘못을 한 걸까…?’ 그렇게 말하는 것만 같았다.
영락없는 새끼 강아지였다.
얘를 보고 대체 누가 이러한 광경을 만들었다 생각할까.
시우는 작게 웃음을 지으며 흑돌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니야. 흑돌아 정말 잘했어. 고마워 흑돌아.”
그러자 흑돌이가 왈왈!
다시금 해맑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시우가 살며시 내려놓자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그 기쁨을 표출했다.
그런 격한 흑돌이의 움직임을 가만히 지켜보던 그때.
흑돌이 목덜미 주변으로 나른거리는 실의 형태가 보였다.
흑돌이를 옥죄고 있는 족쇄, 글레이프니르(Gleipnir).
시간이 될 때마다 끊어준 덕분인지 지금은 굉장히 느슨해져 있었다.
그러나 완전히 끊어지지는 않아 여전히 흑돌이의 움직임을 얽매고 있었다.
‘음….’
숙련도 100%가 넘은 괴력[怪力](SS)으로도 차마 끊어 낼 수가 없었던 글레이프니르.
“흑돌아, 잠깐 이리로 와 봐.”
흑돌이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시우에게 다가왔다.
시우는 나른거리는 끈을 잡았다.
그러자 흑돌이가 화들짝, 놀라 보였다.
눈빛이 크게 떨리며 두려운 기색을 내비쳐 보였다.
글레이프니르는 흑돌이를 억압하는 족쇄.
예전부터 흑돌이를 고문하는 용도였다.
혹시 나를 아프게 하려는 건 아닐까.
흑돌이의 눈빛은 잔뜩 겁에 질려 있었다.
물론 시우가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건 알고 있을 터였다.
그러나 트라우마라는 건 이성과는 별개였다.
글레이프니르는 여전히 정신적으로 흑돌이를 괴롭히고 있었다.
시우는 그런 흑돌이를 안심시키듯, 머리를 한 번 쓰다듬었다.
그리고 양손으로 글레이프니르를 붙잡았다.
“흐으읍!”
모든 힘을 쥐어짜 내보였다.
꽈득, 꽈드득!
근섬유들이 폭발하며 찌직─!
글레이프니르에서 유의미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찌지지직─!
헤라클레스의 괴력[怪力](SS)을 기반으로 진화한 힘.
무력[武力](SSR).
툭.
글레이프니르가 끊어져 떨어졌다.
손에 들린 끊어진 글레이프니르가 나풀나풀, 거렸다.
그러나 그 속성은 변하지 않았다.
형태만 끊어졌을 뿐, 그 안에 담긴 속성은 그대로 담겨 있었다.
‘이거로 장비 만들면 좋을 거 같은데.’
그런 생각이 문득 들던 찰나.
……!!
흑돌이의 올망똘망한 눈동자가 찢어져라 떠졌다.
매우 당황한 표정은 스스로를 주체하지 못하고 있었다.
전신으로 느껴지는 끝없는 해방감.
처음 느껴 보는 기분에 흑돌이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이윽고 시우를 바라보는 표정은 툭, 건들면 울음이 터질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와락!
흑돌이가 시우를 덮치듯이 안겨 왔다.
그리고 글레이프니르가 끊어진 흑돌이의 온전한 힘.
“자, 잠깐! 흑돌아!”
그건 시우조차 쉬이 감당할 수가 없었다.
무력[武力](SSR)의 힘으로도 안겨 오는 흑돌이를 제지할 수가 없었다.
괜히 종말의 늑대라 불리는 흑돌이가 아닌 걸까.
꽈당.
시우는 흑돌이의 힘에 못 이겨 뒤로 넘어졌다.
흑돌이는 넘어진 시우의 품에 안겨 얼굴을 비벼 왔다.
이윽고 흑돌이가 파고든 가슴 부근이 촉촉하게 젖어 왔다.
끼잉─.
울먹거리는 듯한 흑돌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북유럽 신화 속, 펜리르.
펜리르는 언제나 혼자였다.
태어날 때부터 황폐한 땅에 버려졌다.
너는 흉악한 괴물이야.
이 세상에 살아 있으면 안 돼.
펜리르는, 흑돌이는 평생토록 그런 말들을 들어왔다.
이성이 없는 괴물이 되기를 강요받아 왔다.
가족도, 친구도, 그 누구도.
흑돌이 옆에 있어 주지 않았다.
홀로 외로움을 묵묵히 견뎌야만 했다.
모두가 고문하고, 괴롭히고, 놀리기나 했던 나날들의 연속.
낑… 끼잉─.
글레이프니르를 끊어 주었다고 해서 흑돌이가 예전과 같은 힘을 얻는 건 아니었다.
흑돌이가 약화된 근본적인 이유는 신격(神格)의 부재였으니까.
신격(神格)을 다시 얻지 않는 한, 세계를 삼키는 일은 없었다.
‘그래도 한국 정도는 가볍게 삼킬 수 있을 것 같은데.’
시우는 품에 안긴 흑돌이를 토닥이며 생각할 뿐이었다.
* * *
우는 흑돌이를 겨우 진정시킨 뒤.
시우는 그제야 서아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었다.
“얘는 이 난리 통에도 잘 자네.”
정말이지 누가 업어가도 모르게 곤히 자고 있었다.
고요한 특특실의 병실은 이곳만 다른 세상에 동떨어져 있는 것 같았다.
이 모두가 흑돌이가 지켜 준 덕분.
시우는 조심스레 병실 문을 닫았다.
그리고 서아의 안전을 확인해서일까.
시우는 그때서야 주변의 상황이 눈에 들어왔다.
일단.
“넌 왜 여기에 있는 거냐?”
“아하하….”
김이준이 멋쩍게 웃으며 말을 흐렸다.
슬금슬금, 시우의 시선을 피하며 답을 회피했다.
시우는 뭐라 한 소리 하려다가 문득.
“너 설마, 다쳤어?”
심상치 않은 김이준의 모습에 놀라 물었다.
“아, 조금요.”
김이준이 별거 아니라는 듯 손사래를 쳐 보였다.
하지만 누가 봐도 별 게 맞았다.
보아하니 팔이나 다리가 잘렸던 모양.
결코 조금 다쳤다고는 볼 수 없었다.
“그보다 저도 저입니다만, 형님.”
그러나 김이준에게는 조금 다친 게 맞았다.
“한채린 누님이 많이 다치셨습니다.”
“뭐? 채린 씨가?”
시우는 놀란 눈을 떠 보였다.
그리고 그때서야 한채린이 이 현장에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한채린은 마음의 병이니 뭐니 하는 이유로 SH병원에 입원 중이었다.
한채린 성격상 이 난리 통에 가만히 있지는 않았을 터.
어차피 김이준이야 다쳐도 알아서 재생할 테니….
시우는 다급히 한채린에게 다가갔다.
“채린 씨, 괜찮으십니까?”
한채린은 별다른 답이 없었다.
물끄러미 시우를 바라만 봤다.
정말 많이 다쳤나…?
싶은 생각이 들던 순간.
휙.
한채린이 시우에게서 등을 돌렸다.
고운 흑단의 머리칼이 흩날리며 시우의 시야를 가리는 것도 잠시.
한채린이 시우를 피해 어디론가 걸음을 옮겨 사라졌다.
“…….”
그런 한채린의 모습에 시우는 그만 할 말을 잃어버렸다.
다름 아닌 뒤돌아서던 한채린의 눈망울에 맺힌 무엇.
‘…쟤는 왜 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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