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ubscribed to the Channel of Transcendents RAW novel - Chapter (278)
278화.
인색한 너구리는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역병이 치료되었다는 보고
완전히 믿는 것은 아니었다.
아니, 믿을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말이 들려왔다는 건 적어도 그와 비슷한 일이 발생했다는 뜻이리라.
벌어진 일을 무작정 부정하는 건 실로 바보같은 일이다.
지금은 냉정히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먼저였다.
“누구지?”
인색한 너구리는 생각을 정리하고는 물었다.
“대체 누가 역병을 치료한 것이지?”
“그게….”
하얀 토끼 가면을 쓴, 천박한 토끼가 잠시 말을 흐렸다.
“나도 잘 모르겠어.”
그리고는 살며시 고개를 내저어 보였다.
가면에 가려 그 표정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천박한 토끼 역시 당황하는 기색이 만연해 있었다.
천박한 토끼 또한 역병이 치료되었다는 것을 믿기 어려워하는 것 같았다.
인색한 너구리는 다시 생각에 잠겼다.
역병을 치료한 누군가.
그 누군가의 정체를 추론했다.
현재 미얀마의 국경은 모두 폐쇄되었다.
미얀마로 들어오는 모든 경로가 막힌 상태였다.
그렇다는 건 외부의 인물은 아니란 뜻이었다.
미얀마 내의 누군가가 벌인 일이란 뜻이었다.
따라서 미얀마 내의 사람이면서 역병을 치료할 수 있는 이.
그러한 사람은 딱 한 사람밖에 없었다.
“다우 신 사야마인가?”
13인의 영웅, 다우 신 사야마.
그녀라면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일이었다.
사실 다우 신 사야마라 할지라도 믿기 어려웠다.
그만큼이나 역병은 치료할 수 있는 종류가 아니었으니까.
이 세상의 지식과 방법으로는 치료할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정령을 다루는 그녀의 능력이라면….
어찌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녀는 현상 세계의 이면을 내다볼 수 있는 존재였으니까.
인색한 너구리는 그러한 결론에 닿을 수 있었다.
그렇기에 이번 일에 있어 가장 경계했던 대상이기도 했던 다우 신 사야마이지 않았는가.
하지만.
“아니. 다우 신 사야마는 아니야.”
천박한 토끼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어 보였다.
가면 안에 깃든 표정은 방금 전과는 달리 확신에 가득 차 있었다.
“다우 신 사야마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있어. 솔직히 미얀마에 있는지조차 잘 모르겠어.”
행방불명.
다우 신 사야마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그 덕분에 미얀마에서 활동이 편해진 건 사실이었다.
빠르게 미얀마를 장악하고 순조롭게 의식을 준비할 수 있었다.
“다우 신 사야마가 일부러 몸을 숨기고 있었을 가능성은?”
“그랬을 가능성은 있지. 하지만 미얀마의 상황이 이 지경이 되었는데도 몸을 숨기고 있을까.”
인색한 너구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마따나 미얀마가 국가 전복 상태까지 치달았음에도 다우 신 사야마가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영웅들이란 그러한 존재들이었다.
세상과 등을 졌던 백선평.
그런 백선평도 결국은 서울의 재앙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는가.
다우 신 사야마 역시 진즉에 나섰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다우 신 사야마는 지금까지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그녀가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만.
“다우 신 사야마는 아니란 뜻이군.”
이번 역병의 치료는 다우 신 사야마가 한 일이 아니란 뜻이다.
다우 신 사야마는 현재 미얀마에 있는지조차 확실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대체 누가.
이 역병을 치료했는가.
고민은 이어졌지만 답이 내려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조사가 필요해 보였다.
“게으른 원숭이.”
“하아암. 귀찮은데.”
인색한 너구리의 호명에 원숭이 가면을 쓴, 게으른 원숭이가 크게 하품을 해 보였다.
“의식에 있어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했다. 이 변수를 통제하지 못한다면….”
“알았어. 알았다고.”
게으른 원숭이는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설명을 듣는 것조차 귀찮다는 듯 무료한 기색만을 내비칠 뿐이었다.
그 때문에 조사 역시 대충대충 처리할 것처럼 보였다
그럼에도 게으른 원숭이를 선택한 이유는 단순했다.
게으른 원숭이의 강함.
여기 모인 상처급 간부 중 가장 강한 존재.
하지만 천성이 게으른 탓일까.
“하아아암….”
가진 바 능력을 썩히고만 있는 게으른 원숭이였다.
그러나 한 번 그 능력이 발휘되면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것이 게으른 원숭이였다.
“우직한 소. 너도 게으른 원숭이와 함께 이번 일을 조사해라.”
“에엥? 우직한 소는 싫단 말이야. 쟤는 쓸데없이 우직해서 귀찮게 군다고. 차라리 저기, 천박한 토끼랑 갈래.”
“원숭이. 게으른. 감시. 하겠다. 내가.”
“싫다니까아….”
우직한 소는 게으른 원숭이를 끌고 유적 밖으로 나갔다.
그렇게 두 간부가 떠나간 자리.
“의식은? 지장이 없나?”
“지장이 없기는 해. 역병의 기운이 사라지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일부에 지나지 않으니까.”
갑자기 사라진 역병의 기운.
그러나 아직 미얀마에 퍼져 있는 역병의 기운은 많았다.
“그래도 타격이 없는 건 아니야. 의식에 필요한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아.”
하지만 타격이 없는 건 아니었다.
그리고 역병이 한 번 치료되었다는 건 두 번도 치료될 수 있다는 뜻과도 같았다.
자칫 의식 자체가 망가질 수도 있었다.
해서 게으른 원숭이와 우직한 소를 조사 차 보냈지만 조사는 조사일 뿐.
“천박한 토끼, 너는 나와 같이 행동한다.”
일을 서두를 필요는 있었다.
* * *
우려대로 혈독제에는 약간의 부작용이 있었다.
과한 독성으로 세포가 파괴되는 부작용이 있었다.
“형님, 몸 안이 따끔따끔한데요.”
그리고 예상대로 김이준은 별문제가 없었다.
파괴된 세포를 곧바로 재생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어디까지나 김이준이었기에 가능한 일.
일반인이었다면 확실히 문제가 될 만한 수준의 부작용이었다.
시우는 김이준의 임상 실험 결과를 취합했다.
그를 바탕으로 다시 화타와의 연구를 진행.
그 부작용을 완벽히 제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시우는 혈독제의 또 다른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거 암 치료제로도 사용할 수 있겠는데?’
암(癌, Cancer).
암이란, 세포가 사멸 주기를 무시하고 비상적으로 증식하여 신체를 망가뜨리는 질병.
혈독제는 과도하게 증식하는 세포들을 억제해 줄 수 있었다.
혈독제의 독성이 지닌 사기(死氣)가 암의 세포의 생명력을 중화시킬 수 있었다.
하여 기생 생물이 아닌 암세포로 타겟을 바꿔 파괴한다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은데.’
아니, 무조건 가능했다.
마력 피폭 증후군에 이어 또 하나의 불치병을 치료할 수 있게 된 순간이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출혈이 너무 심한데.’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출혈(出血).
소모되는 피가 너무 심했다.
그도 그럴 것이 혈독제에는 시우의 피가 필요했으니까.
현재 혈독제 하나를 제조하는데 필요한 시우의 피는 대략 0.0351ml 정도였다.
대략 스포이드 한 방울 분량 정도 되었다.
한두 개라면 또 모를까 대량으로 생산하기엔 확실히 무리가 있었다.
그래도 마을 사람들을 치료하는 데에는 큰 무리가 없었다.
시우는 필요한 혈독제를 모두 생산할 수 있었다.
부작용까지 완벽히 제어한 Ver 2.0 혈독제.
시우는 혈독제를 격리소의 환자들에게 모두 투여했다.
그리고.
“어, 어라?
“내가 어떻게···?”
사람들이 하나둘씩 의식을 되찾을 수 있었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단번에 의식을 찾은 것은 아니었다.
혈독제는 역병으로 쇠약해진 체력을 회복시켜 주지는 않았으니까.
하여 상태가 그리 심각하지 않았던 이들.
역병에 걸린 지 얼마 되지 않은 이들.
“사, 살았다고? 내가?”
“이게 대체 무슨…?”
그런 이들에 한하여 의식을 되찾을 수 있었다.
의식을 차린 사람들이 모두가 물음표를 찍었다.
뭐가 어떻게 된 것인지.
내가 어떻게 깨어날 수 있었는지에 대해 어리둥절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앞서 역병이 걸린 이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그들이 어떤 고통에 허덕이고 있었는지.
그리하여 그 어떠한 방법으로도 치료가 불가능했음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보라.
“와쏘…?”
“어, 엄마···?”
“아아아···! 감사합니다! 신이시여, 정말 감사합니다!!”
역병에 걸린 사람들이 하나둘씩 정신을 차리고 있었다.
죽음의 기운만이 가득했던 마을.
그 누구도 찾아와 주지 않았던 마을.
그 마을에 점점 생기가 돌고 있었다.
“싸빼야! 싸빼야…!!”
“어, 어떻게 내가···?”
“아아···! 당신이 죽었으면 난 정말···!!”
마을은 그야말로 눈물바다가 되어 버렸다.
각자의 소중한 이들을 부여잡고 세상 떠나가라 울고 있었다.
역병에 걸린 마을에 울음이 가득했다.
모르는 이가 본다면 역병으로 죽어 버린 이를 슬퍼하는 광경이라 볼 수 있었다.
“엄마!”
“여보!”
그러나 이는 슬픔이 아닌, 기쁨에 기반한 눈물이라.
“이,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감사합니다···.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마을 사람들이 하나같이 시우에게 감사를 표했다.
울먹거리는 얼굴과 표정은 묻지 않아도 그 진심을 알 수 있는 모습들이었다.
그런 사람들의 모습에 시우는 괜시리 멋쩍은 마음이 들었다.
‘맹독 숙련도가 아쉽기는 한데….’
동시에 아쉽기도 했다.
역병을 치료하지 않았다면 숙련도를 계속해서 뽑아 먹을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사람들의 고통을 쥐어 짜내면서까지 올리고 싶지 않았다.
아쉽다 뿐.
후회는 없었다.
[역시, 내가 사람 하나는 잘 본 모양이구려.]화타는 그런 시우를 보며 아주 흡족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자네가 내 모든 것을 이어받아 준 것이 감사할 따름이외다.]화타는 감사함을 넘어 애틋한 눈빛을 지어 보였다.
“누가 보면 저 혼자 했다고 생각하겠습니다. 화타 님이야말로 제일 고생하셨지 않습니까.”
농담이 아니라 화타가 가장 많은 고생을 했다고 볼 수 있었다.
양혈제와 마찬가지로 혈독제 역시 화타의 도움이 없었으면 개발될 수가 없었다.
하지만 화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걸까.
[혈독제는 자네가 아니었으면 개발되지 못했을 치료제였소이다.]화타는 단호하게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혈독제를 제조하기 위해서는 자네의 피가 반드시 필요했으니 말이외다.]틀린 말은 아니었다.
정확히는 히드라의 맹독[猛毒](SS+)이 필요로 했지만 결과적으로 시우의 피가 필요로 했다.
[스스로의 고혈을 짜내어 사람들을 치료하는 행위.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외다.]화타는 이번엔 대견함과 기특함이 깃든 눈빛을 지어 보였다.
그런 화타의 눈빛이 부담스러워 시우는 슬며시 눈을 돌렸다.
그 순간.
띠링!
[신격[神格] 획득률 10.8%[+0.3%]>망막 위로 새로운 알림창이 불쑥, 떠올랐다.
“…응?”
갑자기 뭔데?
싶은 생각도 잠시.
“부처께서 우리 마을에 강림하셨다!”
주변으로 크나큰 외침이 들려왔다.
주변을 둘러보자 어느샌가 마을 사람들이 시우를 에워싸고 있었다.
역병에 걸려 회복된 환자들.
그러한 환자들의 가족, 연인, 친구들.
한마디로 마을 사람들 모두가 시우를 에워싸고 있었다.
그리고 모두가 울먹거리는 얼굴로 시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들 역시 모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시우가 어떻게 환자들을 치료했는지 사람들은 모르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부처께서는 인류를 구원하고자 다우 신 사야마 님을 내려 주셨고, 우리 마을을 구원해 주시고자 직접 내려 오셨다!”
“제 아이를 살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를 외면하지 않아 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흐흑.”
사람들은 정말이지 신을 목도한 신도들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맹시우 헌터님은 우리 마을의 구세주이십니다. 맹시우 헌터님은 저희에게 있어 부처님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시우를 부처와 같이 여기고 있었다.
그 때문일까.
띠링!
[신격[神格] 획득률 11.2%[+0.4%]>“이건 또 왜…?”
정말이지 뭔가 싶었다.
* * *
허름한 판자촌 안.
“어, 어떻게 네가 여기에…?”
안으로 들어가자 권필쌍이 놀란 눈을 뜨며 반겨 왔다.
확실히 역병이 치료가 된 것일까.
고름으로 울퉁불퉁하던 머리는 예전과 같은 민머리가 되어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다만, 다소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이대로는 대화가 진행될 것 같지가 않았다.
“그게 말입니다.”
해서 시우는 권필쌍에게 그간 있었던 일을 간략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렇게 길지도 짧지도 않은 이야기가 끝나고.
“그렇게 된 것이었나….”
권필쌍이 비로소 고개를 작게 주억거렸다.
“인혜는 걱정하지 마세요. 무사히 잘 있습니다. 건강도 빠르게 회복하고 있고요.”
“그런가.”
권필쌍은 다시 한번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잠깐의 정적.
“…고맙다.”
권필쌍이 툭, 말을 내뱉었다.
참으로 권필쌍답다고 해야 할까.
굉장히 투박한 말이었다.
그러나 오히려 그렇기에 진심이 전해지는 말이었다.
시우 역시 대답 대신 작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보다 어찌 된 일입니까? 어쩌다 역병에 걸려 앓아누우신 겁니까?”
그리고는 권필쌍에게 물었다.
권필쌍은 바로 답을 해 보이지 않았다.
이제 막 깨어난 정신을 가다듬으며 생각을 정리했다.
시우는 그런 권필쌍을 말없이 기다렸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미얀마에 도착한 나는 곧장 오리할콘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권필쌍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오리할콘에는 문제가 없었다. 여전히 많은 매장량이 있었고, 나는 부족민들의 허락 끝에 오리할콘을 채취할 수 있었지.”
시우는 슬쩍, 시선을 내려 권필쌍을 살폈다.
오리할콘을 채취했다는 말.
그건 오리할콘을 가지고 나왔다는 뜻이었으니까.
하지만 권필쌍은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오리할콘으로 보이는 무언가를 지니고 있지 않았다.
혹시 역병에 걸리면서 잃어버린 것일까.
“하지만 나는 오리할콘을 가져 나올 수 없었다.”
그건 아닌 모양인 듯 싶었다.
권필쌍은 계속 말을 이었다.
“그 안에서 만나게 된 어떤 존재 때문이었지.”
“어떤 존재요?”
시우는 저도 모르게 되물었다.
그러나 머릿속으로 퍼뜩, 떠오르는 존재가 있었다.
악마(惡魔).
현재 정글 숲에 드리운 악(惡)의 기운을 미루어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었다.
문제는 어떤 악마냐는 건데….
시우는 권필쌍의 말을 기다렸다.
그런데 왜일까.
“다우 신 사야마.”
권필쌍에게서 들려온 말.
“나를 막아선 건 다름 아닌 다우 신 사야마 님이었다.”
그것은 시우의 예상을 완전히 벗어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