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ubscribed to the Channel of Transcendents RAW novel - Chapter (302)
302화.
다우 신 사야마는 황량한 폐허 우두커니 서 있었다.
시우에게 등을 돌린 채 잿더미만이 가득한 세상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너희가 만들어 낸 지옥이니라.”
지옥(地獄).
다우 신 사야마의 정신은 가히 지옥(地獄)과 다를 바가 없었다.
“나는 인간은 모두가 선한 줄 알았느니라. 지금 당장은 선해 보이지 않더라도, 선한 마음을 품고 있을 거라 생각했느니라.”
다우 신 사야마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녀의 표정과 얼굴과 눈빛.
“나는 너희들을 위해 싸워 왔느니라. 너희들을 지키고자 고군분투 해왔느니라. 그러나 너희들은 그렇지 않더구나. 이익이 되지 않는다며, 그럴 필요가 없다며. 나를 위해 싸워 주지 않더구나.”
세상의 모든 슬픔을 짊어진다면 꼭 저러할까.
이 세상의 모든 비극을 떠안는다면 지금의 다우 신 사야마와 같을까.
다우 신 사야마의 두 눈으로 눈물이 맺혀 올랐다.
슬픔으로 빚어 올린 눈물.
절망으로 흐르는 눈물.
“나는 그런 너희들을 증오하느니라.”
그리고 증오가 되어, 떨어지는 눈물.
그 모습에서 시우는 깨달을 수 있었다.
“세상을 이리 만든 너희들을 증오하느니라.”
…마르바스가 아니다.
지금 보이는 존재는 마르바스가 아니었다.
다우 신 사야마.
오롯한 그녀의 존재였다.
생각을… 잘못했다.
모든 것이 잘못되었다.
시우는 마르바스가 다우 신 사야마의 정신을 잠식한 줄 알았다.
그렇기에 방법이 있다고 생각했다.
마르바스와 다우 신 사야마의 연결 고리.
그 연결 고리를 끊어내면 될 줄 알았다.
그러면 마르바스는 제물의 존재를 잃을 테니까.
부활 의식은 다시 불완전해질 테니까.
그리하여 끝내 마르바스는 다시 지옥으로 추방될 테니까.
시우는 그렇게 생각하고 또 행동했다.
해서 무리를 해 가며 다우 신 사야마의 심적 세계에 침범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시우의 생각이 완전히 틀려먹었다.
다우 신 사야마는 마르바스에게 잠식된 것이 아니었다.
마르바스가 다우 신 사야마의 정신을 잠식한 것도 아니었다.
“하여, 나는 이 세상을 바꾸리라 결심했느니라.”
다우 신 사야마, 그녀 스스로가 마르바스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녀가 마르바스를 원하고 마르바스가 되어 가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렇기에 끊어 낼 수 없었다.
이건 끊어 내고 자시고 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이미 엉킬 대로 뒤엉킨 두 정신.
“악인만이 가득한 이 세상을, 바꾸겠느니라.”
다우 신 사야마가 곧 마르바스였고.
【“이 세상에 종말을 선고함으로써.”】
마르바스가 곧 다우 신 사야마였다.
히죽.
마르바스가, 다우 신 사야마가 웃었다.
【“발버둥 치는 몸부림이 가엾어 두고 보았다만….”】
다우 신 사야마가, 마르바스가 말한다.
【“이 광대한 어둠 속에서 생명은 큰 가치를 발하지 못할지니.”】
마르바스가, 다우 신 사야마가 말한다.
【“하찮은 미물 따위가 억겁의 세월에 달한 존재의 정신을 들여다 볼 수 있다 생각한 것이냐.”】
순간.
익숙했던 세상이 산산이 깨어진다.
그리하여 모든 것들이 뒤죽박죽 엉켰다.
앞과 뒤가 같이 보이고, 안과 밖이 구별되지 않는다.
위를 바라봄에 아래가 보이며, 좌와 우의 방향이 뒤섞인다.
질서를 이루는 개념들이 혼재된다.
시간의 흐름조차 한데 섞인다.
과거의 시우와 미래의 시우가 현재의 시우에 공존한다.
존재는 하나이나, 여럿이나, 처음이자 끝이다.
마르바스의 정신세계.
마르바스가 기거하는 바깥의 세계.
이 세계는 존재가 영위할 수 있는 세계가 아니었다.
모든 것이 혼돈으로 가득찬 세계라.
한낱 인간의 정신과 격으로 엿볼 수 있는 곳 역시 아니었다.
【“먼지로 화할 하찮은 격이로구나.”】
시우의 정신이 사라져 갔다.
혼돈의 격류에 휘말려 그 존재가 뒤엉켜 갔다.
억겁이 갖는 세월의 무게.
이는 감히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종류가 아니다.
시우는 차마 존재성을 유지하지 못하고 소멸해 갔다.
* * *
격류에 휘말려 사라지는 시우의 존재.
마르바스는 가볍게 이죽였다.
솔직히 말하면 놀랍긴 했다.
차마 인간으로 볼 수 없는 힘과 격의 존재이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은 인간이었다.
불안정하고 불완전하며 한없이 나약한 인간.
시우라는 존재는 인간이라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또한 결국은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존재였다.
뒤죽박죽 엉키는 무질서의 혼돈.
이곳은 마르바스가 기거하는 혼돈의 세계.
【“달갑지 않군.”】
썩 달갑지 않은 세계다.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세계이기도 했다.
마르바스는 천천히 등을 돌렸다.
그리하여 실로 기꺼운 세계로의 발걸음을 내디뎠다.
그 순간.
콰아아아아아!
깨어진 세상이, 다시금 제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
의문과 동시에 마르바스의 발걸음이 멈추었다.
그리고 다시.
혼재되었던 무질서가 규칙성을 띠기 시작했다.
앞에서는 뒤가 보이지 않고, 안과 밖이 다시 구별된다.
위를 바라봄에 위가 보이고.
좌로 향함에 왼쪽이 보인다.
과거는 흘러가 굳어진다.
현재는 하염없이 흘러가나, 미래는 다가오지 않는다.
뒤죽박죽 섞였던 질서가 다시금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었다.
【“무슨…?”】
마르바스의 눈이 크게 떠졌다.
믿을 수 없는 현실에 뚜렷한 경악이 떠올랐다.
경악으로 뜨여진 마르바스의 두 눈.
마르바스는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질서를 찾은 한 존재를, 볼 수 있었다.
시우.
실로 미약한 존재의 인간이자 한계가 뚜렷했던 존재.
분명… 그러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러했었다.
또한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마르바스의 눈으로 보이는 시우는 분명 인간이었다.
미약하고 미약하며 또 나약한 존재.
그런데….
【“버티고 있다?”】
억겁의 세월 속을 견뎌 온 격의 정신을 굳건히 버티고 서 있다.
나아가 분열된 세계의 질서를 되찾고 있었다.
【“어떻…게?”】
이해할 수 없었다.
이해할 수 있는 종류도 아니었다.
이 말은 즉.
시우가 마르바스의 정신을 거역했다는 뜻이니까.
한낱 인간이 억겁의 세월을 거슬렀다는 뜻이니까.
이는 절대로 불가능 한 일이다.
그 순간.
시우의 너머로 또 다른 존재가 엿보였다.
누구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는 그저 존재하고 있었다.
다우 신 사야마 너머에 마르바스가 존재하는 것과 같았다.
시우의 너머엔 또 다른 누군가가 존재하고 있었다.
그는 굳건하고도 실로 강대한 영혼이다.
더욱 놀라운 건 그 역시 한낱 인간이라는 점이다.
두려울 것 없는 인간이나, 이 격의 격류에서 그는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니 그저, 두려울 뿐이라.
억겁의 세월을 견뎌 온 악마, 마르바스는 시우 너머의 존재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 순간.
군자불어 괴력난신 술이부작.
(君子不語 怪力亂神 述而不作).
목소리의 의지가 바람처럼 들려온다.
그리하여 혼재된 질서가 완벽히 제자리를 찾아간다.
【“……!!!”】
마르바스의 경악이 점점 더 그 세기를 더해 갔다.
시우 너머에 있는 정체불명의 존재.
그는 시우와 분간할 수가 없다.
그가 곧 시우였고, 시우가 곧 그였다.
시우가, 그가 말한다.
[“늦은 가을. 옥같이 아름다운 연못에 서리 기운 맑은데, 하늘에서 부는 바람은 퉁소 소리 흘려보내느니.”]청난새가 오지 않는 바다와 탁 트인 하늘.
[“서른여섯 봉우리 가운데 가을 달은 그럼에도 밝을지니.”]상덕치인(常德治人).
[“세상은 이토록 아름답지 않은가.”]질서를 찾은 세상이 사방으로 펼쳐진다.
바람은 시원하고, 물은 맑았으며.
하늘은 청명하고, 대지는 생명을 품는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마르바스의 경악이 극에 달했다.
질서를 되찾은 것도 모자라 풍경을 자아냈다?
이는 정신세계에 간섭했다는 것이리라.
마르바스가 갖는 정신을 뛰어넘었다는 뜻이다.
억겁의 격(格)을… 넘어섰다는 뜻이리라.
한낱 인간 따위가 말이다.
이는 결코 있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한낱 인간 따위가 할 수 있는 일 역시 아니다.
인간은 찰나와도 같은 세월에 스러져 버릴 하찮은 먼지와 같은 존재.
결코, 억겁의 격(格)을 넘을 수 없다.
분명, 분명 그러할진대….
【“어, 어떻게 이런…?”】
마르바스의 세계가 질서정연하게 정돈되었다.
그러나 정작 마르바스의 세계는 무질서하게 휘몰아치고 있었다.
* * *
시우는 천천히 되돌아오는 존재성을 느낄 수 있었다.
무질서한 혼돈 속에서 존립하는 오롯한 정신을 인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굳건한 영혼의 정신을 엿볼 수 있었다.
공자의 군자심[君子心](SSS).
시우가 그동안 배우고 깨달았던 것들.
공자의 정신과 가르침들이 이 혼돈 속에서 시우의 존재를 붙들고 있었다.
그리하여 억겁의 격류 속에 휘말려 떠내려가지 않게 도와주고 있었다.
차분히 주변을 둘러본 세계.
그 역시나 무질서한 혼돈은 보이지 않는다.
차분하면서도 따분했다.
상덕치인(常德治人).
상(常)식과 인덕(德).
통치(治)와 인(人)간.
실로 지루한 세계였다.
상(常)식은 지루했고, 인덕(德)은 고리타분하다.
통치(治)는 딱딱했고, 인(人)간은 평범하다.
그러니 괴(怪)이하고 강력(力)한 것에 이끌린다.
혼란(亂)스럽고 신(神)비스러운 것에 홀린다.
우리는 언제나 자극적인 것을 찾고 거기에 미혹된다.
그러나 가장 상식적인 것이 가장 선(善)한 것이라.
물은 맛이 없어 무미건조하나 영원토록 질리지 않는다.
달콤하고 새콤한 것들은 혀를 즐겁게 하나 잠깐의 그때뿐이다.
나의 부모님은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인간이었으나, 나의 인생에 가장 깊이 새겨진 추억이다.
뺨을 스치는 바람.
내리쬐는 햇살.
그 모든 것들은 생명이 되어 나를 숨 쉬게 한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
그것이 드러나지 않은 위대함이자 특별함이다.
하늘에는 새가 날고.
바다에는 물고기가 살며.
들에는 들짐승이 뛰노는 것.
상식이 곧 자연이고 자연은 또한 영원하다.
가장 평범한 것이 가장 영원한 것이라.
상덕치인(常德治人)의 세계.
따분하고 지루한 질서가 만연한 세계.
그렇기에 실로, 아름다운 세계.
이 세계에서 시우는 비로소 완연한 존재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너희들이 망가뜨렸지 않느냐.”】
다우 신 사야마가 소리쳤다.
반면에 마르바스의 눈은 경악의 감정을 띠고 있었다.
【“이토록 아름다운 세상을 모두 너희들이 망가뜨리지 않았느냐.”】
그와 동시에 크나큰 분노를 담고 있었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악(惡)하느니, 오로지 인류의 종말만이 이러한 세상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니라.”】
그리하여 다우 신 사야마가 소리쳤다.
인류를 위해 싸워 왔으나 인류에게 배신당한 다우 신 사야마.
핵폐기물 취급받았던 백선평과 마찬가지로 다우 신 사야마 역시 같은 일을 당했으리라.
그녀가 세속과 동떨어져 살았던 이유.
그 이유 역시 백선평과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인간은 태생적으로 악(惡)하다.
이 말을 부정할 수 있는 이가 몇이나 있을까.
【“잘난 이들만 배가 부르고, 잘 사는 이만 제 잇속을 불린다.”】
인류 역사 이래로 다수가 소수보다 더 많은 부와 권리를 누린 적은 없다.
재산과 계급이 생겨난 이래.
항상 소수의 계층이 부와 권력을 독점해 왔다.
【“인류를 위한다고 지껄이는 이들은 많았다.”】
윤리와 도덕.
이상과 낭만.
거창한 사회 규범들을 내세우며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이들은 참으로 많았다.
그런데 현실을 보라.
【“무엇이 바뀌었더냐.”】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재화와 재물이 아무리 많아져도 그것을 누리는 건 항상 소수뿐이었다.
잘사는 나라, 잘사는 사람.
오로지 소수만이 일상의 행복과 자유를 독점했다.
여전히 세계에는 굶주림으로 아사하는 이들이 속출했다.
먹을 것이 넘쳐 나는 세상임에도 말이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이기적이기 때문이라.
인간은 태생적으로 악(惡)하기 때문이라.
그렇게 악(惡)한 인간이, 이 사회에 가득하기 때문이라.
인간의 본성, 성악(性惡).
다우 신 사야마는, 마르바스는 소리친다.
그리고 시우는, 공자는 말한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선(善)하지 않다.”]인간은 본디 선(善)하지 않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