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ubscribed to the Channel of Transcendents RAW novel - Chapter (311)
311화.
신(神, God).
이 단어 혹은 개념을 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역시나 종교였다.
초인간적, 초자연적 힘을 지녀 인간의 복을 내린다고 믿어지는 존재.
그렇기에 신은 인간보다 우월한 존재였다.
인간은 물론 이 세상 모든 것들보다 우월하다 할 수 있겠다.
전지전능(全知全能).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존재.
세계의 창조와 소멸에 영향을 끼치는 존재.
누군가 신(神)에 대해 묻는다면 이렇게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하여, 이 정의론에 입각해 보면 갓튜브의 인물들도 어찌 보면 신(神)이라 할 수 있었다.
하나님, 야훼.
최초의 부처, 본초불(本初佛).
태초의 혼돈, 카오스.
그리고 아몬과 비슈누 등.
갓튜브에는 신(神)의 정의에 부합하는 존재들이 있었으니 말이다.
[그들은 신(神)과 가까울 뿐. 그들 역시 초월자의 범주에 속하는 존재들입니다.]하지만 아도니스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들을 일컬어 한계를 뛰어넘은 자들.
초월자(超越者)라 정의할 뿐이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드는 의문.
신(神)이란 무엇인가.
아도니스가 정의하고 말하는 신(神).
갓튜브의 인물들이 바라보는 신(神).
그리하여 갓튜브의 존재들이자 초월자들이 말하는 진정한 의미의 신(神)은 무엇일까.
신의 존재는 대체 무엇이라 정의할 수 있을까.
사람마다 그리고 존재마다 각기 다르게 정의할 것이다.
그리고 아도니스는 이렇게 정의했다.
[그는 관찰자입니다.]관찰자(觀察者).
사물이나 현상을 주의하여 살펴보는 자.
아도니스는 신(神)의 존재를 그렇게 정의했다.
“관찰자요…?”
당연하게도 시우는 그 의미를 쉬이 이해할 수가 없었다.
신(神)이 관찰자라니?
관찰하긴 뭘 관찰한단 말인가.
아니, 고작 관찰하는 존재가 어찌 신(神)이라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아도니스는 잠시 목을 가다듬었다.
그리고는 기나긴 이야기를 시작했다.
* * *
태초라는 시작점이 발생하지 않은 머나먼 과거.
아직 우주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던 시기.
이 세상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세상이라는 표현도 할 수 없음이 정확하겠다.
공간이 없어 물질은 형성될 수가 없었고.
공간이 존재하지 않으니 시간 역시 존재할 수 없었으니 말이다.
대공허(大空虛).
빛조차 정지된 세계이자 오직 혼돈만이 가득한 무(無)의 세계.
[대공허의 세계는 무한한 과거로부터 하염없이 존재해 왔죠.]그렇기에 무엇하나 규정된 것이 없었다.
존재란 남과 비교하여 특정되는 무엇.
허나, 대공허엔 존재가 없다.
그러니 설령 무언가 존재하더라도 그 즉시 존재성을 잃어버린다.
그 누가 비교하고, 바라봐 주지 않으니 말이다.
남과 비교하여 자신을 특정 지을 수가 없으니 말이다.
그러니 존재라는 개념조차 발생할 수가 없다.
무엇하나 정의되지 않는 혼돈의 세계.
그때.
어떤 미지의 존재가 나타나 혼돈을 관찰한다.
그는 스스로가 관찰한 기준에 따라 모든 것에 대한 정의를 내린다.
그리하여 무한하게 과거로 뻗어 있던 대공허의 시공간을 잘라 낸다.
그의 관찰에 따라 공간이 생겼다.
공간이 생기니 그 안으로 시간이 생겨났다.
시작점, 태초.
이 우주의 태초가 시작되는 순간이자 대공허의 세계에 질서라는 것이 부여된 순간이었다.
[나아가 그는 우리가 관측할 수 없는 머나먼 세계까지 내다보았죠.]인간의 인지로는 온전히 관측할 수 없는 무한한 우주.
관측 가능한 우주의 시공간을 넘어 무한한 너머의 우주까지 관찰하여 질서를 부여한다.
그리하여 이 우주 전체를 가로지르는 하나의 질서.
물리법칙(物理法則) 혹은 자연법칙(自然法則).
이 세계만의 법칙을 만들어 낸다.
[그로써 이 세계는 그가 관측한 세상의 법칙 속에서 질서를 찾게 되었습니다.]안을 안이라 말하며 밖을 밖이라 부른다.
왼쪽을 왼쪽이라 정의하며, 오른쪽을 오른쪽이라 말한다.
위와 아래의 공간을 구분 짓는다.
과거는 지나가 굳어지고.
현재는 흘러가 사라지며.
미래는 아직 다가오지 않는다.
별이 탄생하고 죽어 폭발한다.
그리하여 공허했던 세계에 생명이란 존재가 잉태된다.
생명이 탄생하는 순간 그가 관찰한다.
생명이 세계를 영위함에 그가 관측한다.
비로소 생명이, 존재가 영위할 수 있게 되었다.
존재가 이 세계에 존재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존재.
비교하고, 바라봐 주고, 관찰해 주는 존재.
이 세계를 굽어살피는 관찰자(觀察者).
[그가 바로 갓튜브의 설립자이자, 진정한 의미의 신(神)입니다.]그리고.
[이런 의미로 저희들의 존재는 모두 갓튜브의 설립자. 즉, 신(神)이 관찰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비단 갓튜브의 인물들만이 아니었다.
시우를 비롯한 지구의 모든 인간들.
나아가 지구에 살고 있는 모든 존재와 현상들.
그 모든 것들은 신(神)이 관찰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기에 신격을 포기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입니다.]그 역시 신(神)이 관찰하여 부여한 것이었으니까.
신격을 포기한다는 건 신(神)의 관찰을 포기한다는 것과 같았으니까.
존재가 존재로서 영위할 수 있는 신(神)의 관찰.
그것을 버린다는 건 곧 존재성을 잃어버린다는 뜻과 같았다.
하지만.
그 일부만을 버릴 수 있다면 어떠할까.
존재를 유지하면서 그가 부여한 존재성만 거스를 수 있다면 어떠할까.
[판데모니움은 강구했고, 끝내 찾아냈습니다.]아도니스는 잠시 숨을 고르고는 말을 이었다.
[스스로의 이름을 버리는 방법을 말입니다.]이름.
남과 비교하여 자신을 특정 짓는 가장 핵심적인 수단.
나아가 존재성을 확립하는데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개념.
[판데모니움은 스스로의 이름을 버려 가며 신(神)의 관찰을 거부했습니다.]그리하여 부여된 신격(神格)을 거부했고, 신(神)이 정의한 법칙을 거스를 수 있었다.
해서 그들은 본래라면 있어서는 안 될 차원.
즉, 지구에 존재할 수가 있게 되었다.
‘생각해 보니….’
정말로 그러했다.
모두가 스스로의 이름을 사용하지 않았다.
지구에 존재하고 있는 갓튜브의 인물들은 스스로의 이름을 사용하지 않았다.
일단 판데모니움의 상처급 간부들.
미친 여우는 레비아탄이라는 이름의 악마였다.
그러나 그 이름을 사용하지 않았다.
게으른 원숭이 역시 아스타로스라는 악마였다.
그러나 역시 게으른 원숭이로 부르고 불릴 뿐이었다.
다른 상처급 간부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인색한 너구리, 천박한 토끼, 우직한 소.
모두가 본인들의 이름을 사용하지 않았다.
서로가 서로를 부름에 있어도 이름을 사용하지 않았다.
판데모니움의 상처급 간부들은 진짜 이름을 사용하지 않았다.
권능 해방했음에도 탐(貪), 식(食), 색(色).
그들이 갖는 죄악으로서 불릴 뿐이었다.
이름은 버렸으나, 존재의 정체성은 사용하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붉은 그림자도 스스로의 이름을 사용하지 않았어.’
유다 이스카리옷.
이 정체가 확실한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붉은 그림자는 스스로의 이름을 사용하지 않고 있었다.
그는 13인의 영웅, 사두즈였다.
판데모니움의 지배자, 붉은 그림자였다.
‘이렇게 보니….’
모두가 그러했다.
지구에 존재하는 갓튜브의 인물들은 모두가 진명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렇다는 건 즉.
‘금발의 남자도 진짜 이름이 따로 있다는 건데….’
그의 정체는 교만이라는 죄악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름은 아니었다.
미친 여우가 ‘질투’라는 죄악의 ‘레비아탄’인 것처럼.
게으른 원숭이가 ‘나태’라는 죄악의 ‘아스타로스’인 것처럼.
금발의 남자 역시 ‘교만’이라는 죄악의 ‘무엇’일 것이다.
금발의 남자가 갖는 진명은 따로 존재한다.
‘음….’
그의 진명은 무엇일까.
금발의 남자는 대체 정체가 무엇인 걸까.
아직 풀리지 않은 의문들이 많았다.
그러나 풀린 의문은 있었다.
판데모니움의 간부들이 스스로의 이름을 버리며 지구의 차원에 강림한 이유.
신살(神殺).
판데모니움은 갓튜브의 설립자이자 진정한 의미의 신(神)을 살해 하고자 했다.
“그게 무슨….”
그러나 시우는 좀처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수많은 개념들이 머릿속이 뒤죽박죽 엉켜와 너무나도 혼란스러웠다.
일단 앞선 신(神)의 개념부터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정말이지 뭐가 뭔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시우는 차분히 생각을 가다듬었다.
이해한 부분과 이해할 수 없는 부분.
그리하여 이해할 수 없는 의문들을 정리했다.
일단 첫 번째.
“고작 이름을 버리는 것만으로도 신(神)의 법칙을 거스를 수가 있는 겁니까?”
당장 인간들만 하더라도 이름을 자주 개명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법칙을 거스르다니?
이름 하나 바꾼다고 존재가 사라지지는 않지 않은가.
그저 불리는 이름만 바뀌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저희들이 갖는 이름은 의미가 다릅니다.]갓튜브의 인물들은 아닌 것 같았다.
[저희는 이름에 힘을 부여받기 때문입니다.]아도니스는 확신에 찬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이름의 힘. 즉, 진명(眞名)의 힘이라고 들어 보셨을지 모르겠습니다.]그리고는 기나긴 이야기를 시작했다.
꽤나 복잡한 설명이자 이야기였으나 요약하자면 간단했다.
진명(眞名).
즉, 갓튜브의 존재들이 불리는 이름에는 특별한 힘이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러고 보니….’
시우는 그때서야 이름에 관한 의문을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앞선 관찰자니 신이니 뭐니.
이런 복잡한 것들은 아직 잘 모르겠다.
그러나 이름에 관한 이야기만은 얼추 이해할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각종 신화에서도 이름이 갖는 힘.
즉, 진명(眞名)의 힘을 굉장히 중요시 다루고 있었으니까.
‘이시스가 라를 이길 수 있었던 이유도 이름 때문이었지.’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이시스였다.
이집트의 통치권을 두고 라(Ra)와 격돌한 이시스.
그러나 사실 이시스는 라(Ra)를 이길 수가 없었다.
라(Ra)는 이집트 신화 속 모든 신들의 제왕.
라는 하늘과 땅은 물론 명계에 미치는 모든 공간을 다스리는 절대자였다.
모든 세계를 통치하는 만물의 창조신이자 절대적인 신.
이집트의 모든 신들이 달라붙어도 이길 수 없는 최강자였다.
일례로 라의 홍염[紅炎](SSS)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물론 현실조작[現實操作](SSS)도 사기적인 힘이었다만 홍염[紅炎](SSS)도 그에 못지않았다.
하물며 홍염[紅炎](SSS)은 라(Ra)가 갖는 일부의 힘이었다.
그보다 더한 권능과 힘이 라(Ra)에게 있었다.
이시스는 때려죽여도 라(Ra)를 이길 수 없었다.
그럼에도 이시스는 끝내 태양신 라(Ra)를 패퇴시켰다.
그리하여 이집트의 통치권을 찬탈할 수 있었다.
그 이유는 단 하나.
이시스가 라(Ra)의 진명(眞名)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새벽의 케프리.
정오의 라.
석양의 아툼.
태양신은 변화하는 태양의 모습에 따라 그 이름 또한 다르게 불린다.
그러나 이는 그의 진짜 이름은 아니었다.
태양신의 진짜 이름은 숨겨져 있었다.
해서 태양신이 갖는 진명(眞名)은 알려진 바가 없었다.
다만, 신화 속 이야기에 따르면 라의 진명(眞名)에는 어마어마한 힘이 깃들어 있다고 전해진다.
이에 대한 신화 속 한 구절을 살펴보면.
-라의 진명(眞名)을 언급할 때면, 눈을 감고 닫고 닫는 것만으로도 세계에 빛을 충만케 하거나 어둠을 내리게 할 수 있다.
더하여 신의 참된 이름을 소유하게 되면 그 신 자체를 소유할 수 있다고 전해진다.
이름을 안다는 건 곧 그 이름의 주체에 대한 주권을 갖게 되는 것.
이름을 부르는 것으로써 그 존재의 본질과 특성을 알게 된다는 것.
이시스는 모종의 계략을 통해 라(Ra)의 진명(眞名)을 알게 된다.
그리하여 이시스는 그 권능 사용하여 라(Ra)를 패퇴시킬 수 있었다.
이는 이집트 신화만이 아니었다.
각종 신화에서도 진명(眞名)은 굉장히 중요한 것으로 다뤄진다.
신들에게 있어 이름은 모든 것을 의미하는 바였다.
하여, 그 이름을 버린다는 것.
[그것은 즉, 신이 관찰한 존재성을 버린다는 것과 같으며 스스로의 신격 역시 포기할 수 있습니다.]조금은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모든 것을 이해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모든 의문이 해결된 건 아니었다.
하여, 두 번째 의문.
“판데모니움은 신(神)… 그러니까, 왜 갓튜브의 설립자를 살해하려고 하는 겁니까?”
신살(神殺)의 목적은 무엇인가.
이에 아도니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 세계의 모든 법칙은 신(神)의 관찰에 의하여 형성된 것입니다.]하여, 그러한 신(神)을 살해한다는 것.
[판데모니움은 이 세계의 법칙을 본인들의 뜻에 맞게 다시금 재정립하고자 했습니다.]그것은 이 세계의 법칙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다는 뜻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