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ubscribed to the Channel of Transcendents RAW novel - Chapter (52)
52화.
적막한 정적이 흘렀다.
정적?
이것을 과연 정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거대한 지진이라도 난 듯 사방으로 갈라져 버린 땅.
갈가리 찢겨진 지면 위로 토사들이 솟구쳐 올랐다.
하늘의 색이 뒤바뀐다.
어둡지도, 그렇다고 파랗지도 않은 하늘.
그곳엔 거미줄과 같은 흰색 균열이 새겨져 있었다.
그것은 곧 깨질 유리창처럼 툭, 건들면 산산히 조각나 부서질 것만 같았다.
마치 세상을 구성하는 윤곽에 금이라도 간 듯한 모습이었다.
그리하여 세상을 구성하는 기본적인 법칙, 시공간.
쩍─. 쩌적─!
그 법칙이 모조리 깨어져 부서지는 광경이었다.
“…..!!!”
“…..!!!”
사람들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어 갔다.
크게 떠 진 두 눈.
쩌억, 벌어진 입.
충격과 경악.
이 세상의 그 어떠한 단어를 들이밀어도 지금 느끼는 심정을 대변할 수가 없었다.
특히나 마법사 헌터가 갖는 충격과 경악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이, 이건… 이건….”
말조차 쉬이 새어 나오질 않았다.
인지를 아득히 넘어선 충격.
마주한 현상에 정신이 아파왔다.
“말도… 말도 안 돼….”
마법사로서의 냉철한 이성은 눈앞에 보이는 현상을 부정해 보였다.
그러나 눈앞으로 버젓이 보이는 현상은 현실이었다.
“이, 있을 수 없는….”
알 수 없는 괴리감이 정신을 혼란스럽게 해 왔다.
붕괴되는 만상 속.
사람들이 시선이 일제히 한 곳으로 향했다.
그곳엔 한 사내, 시우가 널브러져있었다.
온몸에 피칠갑을 해 보인 채 의식이 보이지 않았다.
죽은… 건가?
자연스럽게 그런 생각이 들 정도의 모습이었다.
이윽고 채린이 시우에게 다가갔다.
귀를 가까이 대어 호흡을 느꼈다.
손으로 맥을 짚어 생명의 신호를 확인했다.
그리고.
“죽지 않았어요.”
채린이 담담하게 말을 내뱉었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은 결코 담담하지 않았다.
충격과 경악.
사람들이 느끼고 있는 감정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아아아아─.
알 수 없는 바람이 불어왔다.
불어오는 바람 사이로 작은 알갱이들이 흩날리며 사라져 갔다.
주변을 둘러보자 모든 풍경이 꿈처럼 흩날려 사라지고 있었다.
던전이 붕괴되어 소멸하고 있는 것이리라.
채린은 고개를 돌려 마법사 헌터에게 물었다.
“지민 씨. 붕괴된 던전 안에 고립되면 어떻게 되죠?”
“모, 몰라요….”
지민이라 불린 마법사 헌터는 고개를 저어 보였다.
모른다.
그런 현상 따위 겪어 본 적도, 들어 본 적도 없으니까.
던전의 차원을 붕괴시킨다니.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날 리가 없지 않은가.
무엇보다 마법사는 이 세상의 진리를 탐구하는 자들이다.
오직 신만이 알고 있는 진리.
그것을 인간 이성의 영역으로 끌어내리려는 자들이다.
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자들이다.
결단코.
“이, 이게 지금 어떻게 된….”
신을 넘어서려는 자들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
쩌적─! 쩌저적─!
“마, 말도 안 돼. 이게 어떻게 가능…하다는 거야….”
지민은 혼란한 정신에 횡설수설할 뿐이었다.
채린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런 채린의 시야에 붉은 광채를 번뜩이는 흑색 늑대가 보였다.
흑색 늑대는 당황하고 있었다.
고개를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며 붕괴되는 차원에 어리둥절해하고 있었다.
저 늑대 또한 지금의 현상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리라.
이윽고 늑대의 시선이 이쪽을 향했다.
정확히는 채린의 아래.
쓰러져 있는 시우에게 향했다.
채린 또한 천천히 고개를 내렸다.
그리고 널브러진 시우를 바라봄에.
“……”
채린은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정확히는 어떤 생각도 들지 않았다.
검은 트롤의 던전에서 보인 모습에 특출난 사람인 건 알고 있엇다.
단순한 무개성의 각성자가 아님은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방금 보인 힘.
이 던전 자체를 붕괴시켜 버린 그 아득한 힘.
그 힘은 도무지….
대체 뭐 하는 사람인 걸까.
채린은 가만히 쓰러진 시우를 바라봤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채린은 쓰러진 시우를 들쳐 업었다.
“이곳을 빠져나갑니다.”
지금은 감상에 젖어있을 때가 아니다.
던전이 완전히 붕괴되기 전에 빠져나가야 한다.
채린의 말에 팀원들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채린은 시우를 업은 채로 빠르게 몸을 움직였다.
천천히 돌아 본 시선.
흑색 늑대는 그 자리에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시우의 말대로 그 시선에는 어떠한 적의가 느껴지지 않았다.
서서히 멀어지는 시야.
흑색 늑대는 그때서야 서서히 몸을 움직였다.
어디로 가려는 걸까.
아쉽게도 그 답을 알 길은 없었다.
* * *
붕괴되는 던전의 공간.
펜리르는 멀어져가는 인간들을 가만히 지켜봤다.
다짜고짜 찾아와 공격을 해 온 인간들.
누군지도 모를 인간들이었다.
왜 자신을 공격하는지도 솔직히 잘 알지 못했다.
다만, 어렴풋이 인지할 뿐이었다.
포악한 괴물.
자신은 포악한 괴물이었으니까.
언젠가, 세상을 멸망으로 이끌 존재였으니까.
그런 존재를 없애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비단 저 인간들 뿐만 아니라 다른 모두가 자신을 그렇게 대해 왔다.
태어날 때부터 황폐한 땅에 버려진 펜리르.
너는 흉악한 괴물이라며.
이 세상에 살아 있으면 안 된다고 그랬다.
네가 살아 있으면 사람들이 다치고 괴로워한다고 그랬다.
종말의 괴물, 마랑(魔狼).
그것이 펜리르가 평생토록 들어 온 말이었다.
그래서 가족도, 친구도 그 누구도 없었다.
펜리르 옆에 있는 건 오직 하나.
온 몸을 구속하는 글레이프니르.
매일 되풀이 되는 고문만이 펜리르와 함께 한 유일한 친구였다.
그 무엇도 기댈 곳이 없이 펜리르는 외로움과 고통을 견뎌 왔다.
솔직히 원망도 많이 했다.
증오심과 적개심을 품은 적이 수도 없이 있었다.
자신을 이렇게 만든 이들을 모두 물어뜯어 죽여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펜리르는 마음을 다잡았다.
광기에 굴복하지 않았다.
만일 정말로 정말로 그렇게 되어 버린다면.
광기에 굴복하여 사람들을 해쳐 버린다면.
아무도 자신과 친구가 되어 주지 않을 테니까.
이 세상에 평생토록 홀로 있어야만 했으니까.
펜리르는 광기와 싸웠다.
끝없는 고문 속에서도 펜리르는 정신을 놓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 찾아왔다.
처음 보는 존재.
그는 자신을… 뭐라고 그랬더라?
기억이 잘 떠오르지가 않는다.
안개 속에 가려진 것처럼 기억이 희미했다.
다만 확실한 기억이 하나 있었다.
글레이프니르를 풀고 싶다면 자신의 말에 따르라고 했다.
글레이프니르는 모순된 재료로 만든 족쇄.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으로는 끊어 낼 수 없었다.
그러니 그는 다른 곳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펜리르는 의심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믿어 보고 싶었다.
이 끔찍한 고문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말이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 보니.
이상한 곳에 떨어져 있었다.
신계와는 다른 이곳.
글레이프니르는 역시나 끊어져 있지 않았다.
되려 알 수 없는 또 다른 힘이 펜리르를 억압하고 있었다.
매일 같이 반복되던 고문은 더욱더 강해져 있었다.
정신을 잠식하는 광기의 힘도 거세어져 있었다.
나가고 싶었다.
그런데 나갈 수가 없었다.
알 수 없는 이곳에 갇혀 버린 것만 같았다.
누군지도 모를 인간들이 찾아왔다.
다짜고짜 자신을 공격했다.
그럴 때마다 머릿속에서 자꾸만 알 수 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것들을 죽여.
물어뜯어 찢어 버려.
그게 네 존재의 이유야.
계속해서 더해져만 가는 광기.
펜리르는 싸웠으나 점점 제 정신을 유지할 수 없었다.
그렇게 점점 희미해져가는 정신 속.
‘펜리르는 우리를 해치고 싶어하지 않았던 겁니다.’
이상한 인간이었다.
그리고 처음…이었다.
자신의 진심을 알아준 존재.
자신을 종말의 괴물로 여기지 않은 이.
태어나 저 인간이 처음이었다.
그 인간은 더 이상 자신을 적대시하지 않았다.
또한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사아아아아─!
모래 알갱이로 흩어져 사라지는 공간 속.
펜리르를 속박하던 알 수 없는 힘 또한 사라져 가고 있었다.
모두 그 이상한 인간이 행한 일이었다.
왜… 그랬던 걸까.
나는 세상을 물어뜯을 종말의 괴물인데.
정말이지 이상한 인간이다.
펜리르는 멀어져 가는 그를 보며 그렇게 생각할 뿐이었다.
사아아아─.
붕괴되어 사라지는 공간.
펜리르는 몸을 움직였다.
그러다 문득.
생각해보니 이곳을 나갈 방법을 알지 못했다.
애초에 이곳에 떨어진 이유도 몰랐다.
어떻게 나가지.
펜리르는 자리에 멈춰 서 고민했다.
그러다 다시 한 번 문득.
인간들은 알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인간들은 더 이상 시야에 보이지 않았다.
어디로 갔는지도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러나 이 무너지는 공간 전체로 드리운 힘의 잔재.
킁킁.
그 이상한 인간의 냄새가 강렬하게 느껴졌다.
* * *
[다음 속보입니다.] [SH헌터 길드의 대표 한채린 헌터가 끝내 S-등급 던전을 공략했다는 사실이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앞서 공략에 실패한 이후. SH그룹은 헌터 산업 진출에 제동이 걸렸었는데요.] [그 실패에 굴하지 않고 재공략에 나서 SH그룹의 저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로써 SH그룹은 S등급 던전을 자력으로 공략할 수 있는 길드이자 기업.] [이른 바 ‘S클래스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으며, 앞으로 SH그룹의 행보가 기대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네티즌들의 반응 역시 뜨거운데요.] [과연 천재 한채린이라는 반응과 더불어─.]꾹.
리모컨의 전원 버튼과 함께 TV의 화면이 일시에 꺼졌다.
“이게 어찌 된 일이지?”
그리고 들려온 중후한 사내의 목소리.
사내는 고급진 소파에 앉아 있었다.
SH그룹 한관국 이사.
SH그룹의 회장, 한태산의 첫째 아들이자 한채린의 백부(伯父).
즉, 큰아버지 되는 이였다.
등을 지고 있는 한관국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등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상당한 무게감을 담고 있었다.
“절대로 공략하지 못할 것이라 하지 않았나?”
“죄송합니다.”
한관국의 말에 소파 뒤쪽.
누군가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한관국은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다시 입을 열었다.
“난 이유와 과정을 물었다.”
“아무래도… 한채린의 역량이 저희 생각보다 뛰어났던 것 같습니다.”
한관국은 잠시 침묵했다.
소파 팔걸이로 검지 손가락을 탁탁, 두들기는 소리만이 들려올 뿐이었다.
그리고.
“그것뿐인가?”
한관국이 다시 입을 열었다.
잠깐의 침묵.
“한채린의 옆에 다른 누군가가 있는 것 같습니다.”
뚝.
팔걸이를 두들기던 한관국의 검지 손가락이 멈추었다.
기나긴 정적이 내려앉았다.
그렇게 얼마 간의 시간이 지났을까.
“누구지?”
“그것까지는 아직….”
다시 한 번 내려앉는 정적.
“조사해 보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누군가 방을 나서는 소리만이 들려올 뿐이었다.
* * *
번쩍!
감겼던 두 눈 떠지며, 낯선 천장이 시야에 들어왔다.
뭐지? 싶은 물음도 잠시.
기억이 주입되듯.
앞선 기억들이 파노라마처럼 밀려들어 왔다.
S-등급 던전의 입장.
펜리르와의 조우.
끝내 밝혀낸 펜리르의 진실.
그리고 헤라클레스 신투술[神鬪術](SSS).
그 중에서도 구룡(九龍) 히드라를 짓뭉개 버렸던 일격, 낙룡각(落龍脚).
아쉽게도 그 결과는 볼 수가 없었다.
시전과 동시에 정신을 잃어버렸으니까.
정확히는 죽음을 각오하고 펼친 일격이었으니까.
그리하여 지금.
“살았…네?”
시우는 살아 있음을 인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대충 낯선 천장을 보아하니….
시우는 이곳이 어딘지 알 수 있었다.
그러니까 낯설지만 낯설지 않은 천장.
“병원 특실이네.”
그것도 SH병원의 특실.
그래서일까.
시우는 혹시나 싶은 마음에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얼음장처럼 차가운 표정.
그러나 숨길 수 없는 청순의 미(美).
“괜찮으신가요?”
시우의 옆 침대에 한채린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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