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ubscribed to the Channel of Transcendents RAW novel - Chapter (66)
66화.
이민정은 순간 말문이 막혀 버렸다.
백선제가 어떤 것을 묻는 것인지 정확히 파악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이민정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일까.
“이번 일의 전말은 얼추 들었네. 제압 과정 도중에 불가피한 살생이 있었다고.”
“그것이….”
이민정은 다시 한 번 말을 흐렸다.
살아남은 암흑가의 범죄자를 모두 죽인 일.
사실 그런 이민정의 처사는 과하다고 볼 수 있었다.
그렇기에 뭐라 대답해야 할지 고민되던 찰나.
“과거, 마계의 침공 당시에 각성자는 인류의 희망이었다네. 하지만 세상이 안정되고 평화가 찾아오며, 그 힘은 한낱 돈벌이 수단에 지나지 않게 되었지.”
백선제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아버지께서는 그 또한 하나의 흐름이라고 말씀하셨네. 그 누구보다 이런 평화를 바라고 고대하셔서 수십 년간 고군분투하신 것이라며.”
긴장 어린 표정으로 앉아 있는 이민정의 맞은편.
“하지만 힘을 다른 방식으로 사용하는 자들도 생겨났지. 범죄자들. 아버지께서는 이에 대해 통탄하셨지만, 세상 앞으로 나서지는 않겠다고 말씀하셨네. 당신께서 직접 나서 세상을 통제하고 억압한다면 그들과 다를 바가 무엇이 있냐며 말이지.”
백선제가 차분히 자리하며 말을 이었다.
“아버지께서는 당신 스스로, 정의가 될 수 없다 말씀하셨네.”
이민정은 가만히 백선제의 말을 들었다.
백선제는 그런 이민정을 바라보며 차분히 말을 이었다.
“하지만 난 아버지와 생각이 달라. 정의가 될 수 없더라도 정의를 추구할 수는 있다고 생각하네. 물론 어느 정도의 선이라는 건 있겠지. 하지만 진흙탕에서 싸우는데, 진흙이 안 묻을 수는 없지 않은가.”
백선제는 작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 다시 이민정에게 물었다.
“제압 과정 도중에 ‘불가피한’ 살생이 있었다고.”
“…그렇습니다.”
이민정은 대답했고.
백선제는 웃음을 지어 보였다.
잠깐의 정적.
백선제가 다시 입을 열었다.
“자네가 한 일인가?”
아까와 똑같은 말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이민정은 이제야 저 말의 의미를 알아들을 수 있었다.
명지광을 척살하고 판데모니움을 초토화시킨 일.
그 일을 이민정이 했냐, 그리 묻는 것이었다.
“아닙니다.”
이민정은 단호히 고개를 저어 보였다.
말마따나 그건 이민정이 한 일이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백선제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던 걸까.
“누구인지 알고 있나?”
백선제는 별 다른 의문 없이 이민정에게 물어 왔다.
“모릅니다.”
이민정은 다시 한 번 단호히 고개를 저어보였다.
이 역시나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암흑가 주변으로 결계 마법과 더불어 인식 저해 마법이 걸려 있었습니다. 주변 CCTV를 모두 확인했으나 출입하는 자들의 신원을 파악할 수 없었습니다.”
“음….”
백선제는 나지막히 침음을 삼켰다.
암흑가의 범죄자들이 자신들의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사용하는 수법.
다른 누구보다 백선제가 가장 잘 알고 있었기에 이민정의 말에 별 다른 이견을 제시하지 않았다.
“살아남은 놈들이 있었다고.”
“있기는 했습니다만….”
“심문은 해 봤나?”
“네.”
이민정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이상으로 입을 열지 않았다.
정확히는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백선제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가만히 시선을 들어 이민정의 답을 기다렸다.
그렇게 조금의 시간이 지나.
“모두 정신이 나가 있었습니다.”
“정신이 나가 있었다?”
“정확히는 두려움에 제대로 된 사고 활동을 하지 못했습니다.”
백선제는 잠시 시선을 내려 보였다.
이민정의 말을 이리저리 조합해 본 바.
“S급 헌터인가?”
자연스럽게 이쪽으로 생각의 방향이 흘러갔다.
절단급 간부인 명지광을 처리한 것.
그로써 서울 지역의 판데모니움을 박살 낸 것.
그리하여 서울의 암흑가 전체를 뿌리 뽑은 것.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이들이 모두 두려움에 이성을 잃어버린 것.
이건 최소 S급 헌터의 무력이 필요한 일이었으니 말이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만….”
“짐작 가는 이가 있나?”
“그것이….”
이민정은 순간 이걸 말해도 되나 싶었다.
그도 그럴 것이 떠올린 것은 S급 헌터가 아니었으니까.
정확히는 도무지 말이 안 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민정은 들을 수 있었다.
정신이 빠져 버려 미친놈처럼 횡설수설하던 놈들.
그런 놈들 사이로 계속 들려오던 하나의 이름을 말이다.
생소한 이름이었다.
그러나 이민정의 기억에는 있는 이름이었다.
“S급 헌터는 아닙니다만….”
이민정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 * *
“흑돌아, 맛있어?”
왕!
시우의 말에 흑돌이가 활기차게 답을 해 왔다.
흑돌이는 시우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밥그릇에 얼굴을 파묻어 하구하구.
계속해서 고기를 탐할 뿐이었다.
“저 많은 고기가 어디로 가는 건지 원.”
새끼 강아지처럼 작디 작은 몸집.
쌓여 있는 고기의 양은 분명 흑돌이의 몸집보다 몇 배는 컸다.
그런데 왜일까.
와그작, 와그작.
고기는 흑돌이의 뱃속으로 끊임없이 들어갔다.
“뱃속에 아공간이 있나?”
이게 아니면 도무지 설명이 불가했다.
세계를 삼킬 수 있었던 비밀이 어쩌면 다른 데 있지 않을지도 몰랐다.
하구하구.
흑돌이는 계속해서 고기를 먹었다.
저대로라면 정육점을 싹 털어 온 고기를 죄다 먹을 기세였다.
사실 벌써 절반은 먹은 상태였다.
그런데 저 고깃값이 얼마인지 알고는 있는 걸까.
시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지만 뭐.
그 값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시우는 흐뭇하게 흑돌이가 먹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러다 문득.
흑돌이가 켁켁, 기침을 해 보였다.
고기를 급하게 먹다가 목에 걸린 것일까.
시우는 흑돌이의 상태를 살폈다.
그리고 곧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흑돌이 목덜미 주변으로 나른거리는 실.
글레이프니르(Gleipnir).
글레이프니르가 흑돌이의 목을 옥죄고 있었다.
그 때문에 고기가 자꾸 걸리는 건지 흑돌이가 자꾸만 켁켁, 기침을 해 보였다.
“음….”
시우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글레이프니르는 펜리르를 구속하는 마력의 족쇄였다.
그리고 펜리르는 그것을 끊어 낼 수 없었다.
글레이프니르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으로는 끊을 수가 없었으니까.
신화 속, 펜리르도 끊어내지 못 했다.
오로지 종말의 힘만이 글레이프니르를 끊어 낼 뿐이었다.
그렇기에 지금.
켁, 켁켁.
흑돌이는 역시나 글레이프니르를 끊어 내지 못 했다.
딱히 방법도 없었다.
흑돌이는 평생토록 저 글레이프니르에 묶여 있어야만 했다.
“으음….”
시우는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문득.
“내가 끊을 수 있지 않을까.”
글레이프니르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6가지 재료로 만든 끈.
그렇기에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으로는 절대 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헤라클레스의 괴력[怪力](SS)이라면?
가능할지 몰랐다.
그 힘은 세상에 존재하는 개념으로는 정의할 수 없는 힘이니까.
종말조차 어찌하지 못한 힘이지 않은가.
다른 신화의 이야기이긴 했다.
하지만 헤라클레스의 괴력[怪力](SS)은 종말마저 찢어 버린 힘.
“한번 해 볼까.”
예전이었다면 고민을 해 봤을 터였다.
펜리르를 풀어 줄 수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펜리르가 아닌 흑돌이였다.
시우는 나른거리는 끈을 잡았다.
그러자 흑돌이가 화들짝, 놀라 보였다.
눈빛이 크게 떨리며 두려운 기색을 내비쳐 보였다.
글레이프니르는 흑돌이를 억압하는 족쇄.
예전부터 흑돌이를 고문하는 용도였다.
혹시 나를 아프게 하려는 건 아닐까.
흑돌이의 눈빛은 잔뜩 겁에 질려 있었다.
시우는 그런 흑돌이를 안심시키듯, 양손으로 글레이프니르를 붙잡았다.
그리고 흐으읍!
모든 힘을 쥐어짜 내보였다.
꽈득, 꽈드득!
헤라클레스의 괴력이 터져 나오며, 근섬유들이 폭발했다.
그러자 찌직─!
글레이프니르에서 유의미한 소리가 들려왔다.
흑돌이의 두 눈이 놀라 떠졌다.
“으으아아…!!”
시우는 진짜 젖 먹던 힘까지 짜내었다.
농담이 아니라 바지에 지려 버릴 정도로 힘을 쥐어 짜냈다.
하지만.
“흐아아….”
안 끊어졌다.
하기사, 이렇게 끊어질 거였으면 애작에 끊어졌겠지.
하지만 가능성은 보였다.
글레이프니르가 조금은 늘어난 것이 보였으니까.
현재 괴력[怪力](SS)의 숙련도는 21%.
이 숙련도를 더 올린다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았다.
“후우, 흑돌아. 언젠가는 꼭… 응?”
흑돌이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고개를 푹, 숙인 채 끼잉. 낑─.
“울어?”
흑돌이가 울고 있었다.
혹시 글레이프니르를 끊어 내는 과정이 아팠던 걸까.
괜시리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후다닥─.
갑자기 흑돌이가 시우에게 안겨왔다.
품에 안겨 얼굴을 비벼 왔다.
안색을 살펴보니 아픈 것 같지는 않았다.
보아하니….
끼잉─.
그냥 고마운 것 같았다.
아무래도 처음이었던 모양이다.
글레이프니르를 끊어 주려 했던 사람이 말이다.
모두가 고문하고, 괴롭히고, 놀리기나 했을 뿐.
글레이프니르를 끊어 주려 했던 사람은 시우가 처음이었던 것 같았다.
어쩐지.
글레이프니르를 잡는 것에 왜 그렇게 겁을 먹나 했었다.
시우는 품에 안긴 흑돌이를 쓰다듬어 주었다.
“숙련도 열심히 올려서 꼭 끊어 줄게.”
왈!
품 속에서 흑돌이가 소리쳐왔다.
그리고 다시.
흑돌이가 품 안에서 뛰어가더니 와그작, 와그작.
남아 있는 고기를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확실히 시우의 힘으로 글레이프니르가 늘어난 것일까.
흑돌이의 켁켁, 거림이 확연히 줄어들어 있었다.
그 때문인지 순식간에 고기를 먹어 치워 버렸다.
왈!
흑돌이가 더 달라는 듯 짖어 왔다.
시우는 검지 손가락으로 입가를 막으며 말했다.
“서아가 깨면 안 되니 조용히.”
흑돌이가 고개를 한 번 주억거렸다.
그리고는 밥그릇을 물고 와 시우 앞에 살며시 가져다 놓았다.
시우는 피식, 웃음을 터트리며 밥그릇에 다시 고기를 채워 주었다.
그렇게 다시 고기를 채워 준 뒤.
“서아가 많이 피곤했나 보네.”
아무래도 간만의 외출이 체력적으로 부담이었던 모양이었다.
그래도 많이 좋아진 건 확실했다.
예전엔 외출도 쉽게 할 수 없었으니 말이다.
“신의술도 빨리 올려야겠는데.”
여러모로 한가롭게 지낼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 뭘 어쩌겠다는 뜻은 아니었다.
오늘 한바탕 싸움을 한 터라 피곤함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몸이 그야말로 천근만근이었다.
“오늘은 쉬고, 내일 바로 시작해야겠다.”
그렇게 흑돌이를 뒤로한 채 잠자리에 들려던 찰나.
시우의 시야로 뻥 뚫려 있는 현관문의 고리가 눈에 들어왔다.
구동범이 집에 침입하면서 부숴 놓은 것.
“…서아가 일어나서 보면 이상하게 생각하겠지?”
당연한 일이었다.
아무래도 서아가 일어나기 전에 고쳐 놔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지금 시간에 부르면 오려나.”
새벽 2시가 넘어가고 있는 시간.
당연하게도 올 리가 만무했다.
그렇게 어떻게 해야 하나, 싶은 그때.
“차라리 내가 만들까?”
문득 생각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
생각해 보면 현관문은 그다지 의미가 없었다.
그러니까 각성자들에겐 아무런 방해물이 되지 못했다.
언제고 이번과도 같은 일이 발생할 수도 있는 일.
흑돌이가 있다지만 혹시 모를 일도 있는 법이었다.
그러니.
“장비 제작처럼 현관문을 만들 수 있지 않나.”
완전히 똑같지 않겠지만 얼추 비슷할 터였다.
생각해보면 신[神]의 야금술(SS).
헤파이스토스의 야금술은 단순히 장비 제작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건축에도 뛰어난 역량을 발휘해 여러 신들의 집을 만들어 주기도 했었다.
그런 의미로.
“그냥 내가 집을 새로 지을까?”
의식의 흐름대로 떠올린 생각.
그런데 썩 나쁘지 않았다.
마침 새 집을 구매할까 고민하던 차였지 않은가.
시우가 집을 짓는다면 천혜의 요새와도 같은 집을 만들 수 있었다.
행여나 있을 던전 브레이크.
혹시 모를 침입자.
서아의 안전 또한 전혀 걱정이 없었다.
“문제는 어디다가 집을 짓냐인데….”
서울에서 멀어지면 안 되었다.
아직은 SH병원의 힘을 빌려야만 했으니까.
그렇기에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지금 시우가 살고 있는 이 집.
비록 월세방이나 정이 많이 든 집이다.
주인집 아주머니에게도 신세를 많이 진 집.
마침 돈도 100억이 넘게 있겠다.
3개월이면 사라질 돈이지만 그래도 웃돈 주고 이 집을 구매할 정도는 되었다.
“내일 아주머니한테 물어봐야겠다.”
그 전에.
“문고리부터 한 번 만들어 봐야겠다.”
시우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다음 날.
“서아야, 흑돌아. 나갔다 올게.”
“응, 다녀와 오빠.”
왈!
서아와 흑돌이의 배웅을 받으며 시우는 집을 나섰다.
달칵, 하며 돌아간 문고리는 제대로 작동하고 있었다.
시우가 힘을 조금 사용함에도 문고리는 멀쩡했다.
웬만한 각성자들은 부수는 것이 불가하다는 뜻이었다.
‘만드는 것도 생각보다 간단했고.’
또한 숙련도도 0.1%나 올랐다.
장비 제작뿐만 아니라 건축도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았다.
과연 신[神]의 야금술(SS).
‘집부터 구매해야겠다.’
시우는 주인집 아주머니를 찾아 문을 나섰다.
그 순간.
“말 좀 묻겠네.”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라본 그곳.
조금 떨어진 곳에서 한 사내가 시우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선한 인상을 한 미중년의 사내.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그런데 왜일까.
낯설면서도 익숙한 얼굴이었다.
그렇다고 아는 사람은 아니었다.
누구지 싶은 것도 잠시.
‘백선제?’
시우는 사내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13인의 영웅, 백선평의 아들.
현 시찰국의 국장 자리에 있는 자.
신문과 뉴스에서 많이 보았던 바로 그 얼굴이었다.
‘백선제가 왜 여기에…?’
라는 물음이 들던 찰나.
“혹시 자네가 맹시우라는 자인가?”
백선제가 다시 물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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