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ubscribed to the Channel of Transcendents RAW novel - Chapter (9)
9화.
도철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정확히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는 것 같았다.
조금 더 정확히는 수많은 말들이 머릿속에 맴도는 것만 같았다.
잠깐의 정적.
얼마 지나지 않아 도철의 모든 생각들을 함축하는 한 단어가 튀어나왔다.
“미친놈.”
도철은 어처구니 없는 실소를 흘려 보였다.
그리고 싸늘한 눈빛으로 시우를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거절한다.”
그런 도철의 말에 시우는 별 다른 반응을 내보이지 않았다.
당연히 예상했던 답이었으니까.
시우는 아메리카노로 목을 한 번 축이고는 말했다.
“내가 필요한 거 아니었어?”
“고작 촬영 도와주는 일에 5천이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맞는 말이었다.
촬영을 한 번 도와주는 것만으로 5,000만 원이라니.
5,000만 원은 무슨, 500만 원도 감지덕지라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도철이 처음 500을 불렀다는 것.
시우는 그 부분에서 확신할 수 있었다.
“내가 필요한 거 아니었냐고.”
도철은 지금 시우를 필요로 한다.
단순히 촬영을 도와주는 카메라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말마따나 ‘시우’가 필요한 일.
“……”
도철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무덤덤한 표정이었지만 도철을 잘 아는 시우는 모르지 않았다.
저 새끼.
정곡을 찔린 거다.
“SH그룹이 무공략 채널에 합방 제의를 한다라….”
시우는 흘기듯 말을 내뱉으며 도철의 반응을 살폈다.
살짝 꿈틀거리는 그의 인상.
“이상해도 너무 이상하지 않아?”
시우는 피식, 웃음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SH그룹은 헌터 산업에서 패퇴하다시피 했다.
투자한 막대한 자금은 허공으로 증발했다.
SH그룹의 헌터 산업은 명백한 실패였다.
그래서 SH그룹은 헌터 산업에서의 철수를 하려했다.
공식적으로 발표한 건 아니지만,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정작.
SH그룹은 또 다시 헌터 산업에 뛰어들었다.
그것도 전보다 더욱 공격적인 투자를 일삼으며 말이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여러가지가 있었다.
세간에서 나오는 추측성의 기사도 어마어마했다.
하지만 시우는 그 수많은 것들 중 하나.
한 가지의 경우에 집중했다.
SH그룹이 실력 있는 헌터들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의 발로.
그 자신감의 근거는 바로 이것.
“한채린.”
SH그룹 회장의 손녀딸, 한채린.
올해로 20살이었던가, 21살이었던가.
어쨌든 어린 나이의 그녀가 각성을 했다.
그리고 부여받은 개성은 ‘육감(六感)’과 ‘검재(劍才)’.
무려 두 개의 개성을 부여받았고, 둘 모두가 S등급의 개성이었다.
S급의 헌터들 중에서 다수의 개성을 받은 이는 많았다.
S등급의 개성을 보유한 이 또한 많았다.
그러나 복수의 개성.
둘 모두가 S등급인 경우.
이런 경우는 거의 없었다.
전 세계적으로 뒤져봐도 손가락에 꼽을 수 있었다.
한마디로 한채림은 S급 헌터가 보장되다시피한 인재였다.
세계권을 다투는 S급 헌터들 중에서도 탑급에 오를 정도의 천재였다.
심지어 그냥 천재 S급 헌터가 아니었다.
SH그룹 회장의 손녀딸.
오너 일가의 핏줄이었다.
경영권 방어와 배신과 같은 걱정 따위는 없었다.
SH그룹은 주저하지 않았다.
“SH그룹은 한채린을 앞세워 헌터 산업을 삼키고 싶은 것이겠지.”
막강한 자본력을 투자하여 한채린을 키운다.
그리하여 머지 않은 미래.
SH그룹이 헌터 산업을 집어삼킨다.
그리 허황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직은 애송이에 불과해.”
허나, 아직 한채린은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복수의 개성임과 동시에 S등급의 천재.
그러나 새끼 호랑이도 성체 고양이를 두려워한다고 했던가.
한채린은 각성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풋내기 헌터였다.
어린 나이의 그녀는 아직 재능을 꽃피우지 못했다.
그래서였다.
“경험을 쌓고 싶은 것이겠지.”
SH그룹이 무공략 채널에 합방 제의를 한 이유가 말이다.
도철의 채널, 무공략 채널.
무엇이든 공략해드립니다.
무공략 채널의 컨셉은 완벽한 공략법에 있었다.
몬스터들의 특성과 성향을 세세하게 분석하여 완벽한 공략을 하는 방식.
그 때문에 무공략 채널은 같은 헌터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구독자 21만 명 중 95%가 헌터들이니 말 다한 시점이었다.
SH그룹은 그런 무공략 채널을 눈 여겨봤고 배우고 싶은 것이다.
몬스터들의 공략법.
헌터가 몬스터를 대함에 있어 갖춰야 할 지식과 소양들.
그걸 한채린에게 습득시키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건 S급 헌터들에게는 배울 수 없는 것들이니까.
그저 압도적인 화력으로 몬스터들을 찍어누르는 천재들은 그런 것이 필요하지 않았으니까.
그런 건 발악하는 둔재들에게나 필요한 생존 방식이었으니까.
그렇기에 한채린에게도 필요치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SH그룹은 한채린을 완벽하게 키우고 싶어한다.
“그러니 내가 필요한 거잖아. 단순히 카메라를 들 카메라맨이 아니라.”
그리고 그 모든 것에는 시우가 필요했다.
그도 그럴 것이 무공략 채널에 올라온 공략법들은 모두 시우가 밤새 분석하여 내놓은 결과물이었으니까.
도철은 그걸 받아먹기만 했을 뿐이었으니까.
“……”
도철은 답이 없었다.
시우를 노려보듯 바라볼 뿐.
시우는 그런 도철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잠깐의 정적.
“…… 인정한다.”
“의외네? 사실이더라도 부정할 줄 알았는데.”
시우는 조금 놀라보였다.
말마따나 도철이 저렇게 쉬이 인정할 줄 몰랐으니까.
“예전부터 네 잔머리 하나는 쓸만했으니까.”
그러면서 도철이 혀를 한 번 차보였다.
한마디로 시우한테 시덥잖은 변명을 해봤자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뜻이었다.
그렇기에 시우는 더욱 놀라운 심정이었다.
지금 보이는 도철의 반응.
그 말은 즉, 시우의 생각이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는 것이니까.
‘뭔가 통찰력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농담이 아니라 생각의 흐름이 예전보다 매끄러웠다.
천재 지략가 제갈공명의 채널을 구독함으로써 얻은 개성.
과연 현상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힘이라는 걸까.
“나머지 것들은 죄다 병신이지만.”
저 강도철의 재수없음도 더욱 본질적으로 다가오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5천은 무리다.”
“그럼 어쩔 수 없지.”
시우는 작게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그리고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도철이 시우를 붙잡듯 말했다.
“2천. 2천을 주겠다.”
“뭔가 착각하는 모양인데.”
시우는 코웃음 쳐보이며 말을 이었다.
“난 협상이나 하자고 널 부른 게 아니야.”
협상은 서로가 대등한 상황에서나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SH그룹과의 합방은 시우가 없으면 성사조차 될 수 없는 합방.
지금의 갑은 다름 아닌 시우였다.
“그리고 너. 어차피 돈이 목적이 아니잖아. SH그룹과의 합방을 통해 인지도를 쌓으려는 생각 아니었어?”
무엇보다 도철은 이번 합방으로 돈을 벌 생각이 아니었다.
어쩌면 시우가 없는 상황에서 채널을 다른 컨셉으로 바꿀 생각일지도 몰랐다.
그러기 위해서는 새로운 시도와 환기가 필요했고 그것이 바로 SH그룹과의 합방.
“네가 네 입으로 말했잖아. 난 잔머리 이외에 다른 건 병신이었다고. 그러니 내 앞에서 어줍잖게 잔머리 굴릴 생각하지마.”
통찰력(S+)까지 있는 지금.
도철의 생각은 시우의 손바닥에 훤히 보였다.
도철은 이를 뿌드득, 갈며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5천은 과하다. 10배를 부르는 미친놈이 어디에 있어? SH그룹에서 받아들이지 않을 거다.”
SH그룹이 5천만 원을 돈으로 볼까 싶냐만은.
표정을 보아하니 여러복잡한 계약 조건이 있나보다.
그런데 뭐.
“어쩌라고.”
시우가 알 바는 아니지 않은가.
“뭐라고?”
“그건 네가 알아서 해야할 일이지. 왜 나한테 하소연인데?”
아니, 그렇지 않은가.
자기가 벌인 일. 자기가 수습해야지.
왜 엄한 사람한테 따지고 드냔 말이다.
“안되면 네 사비를 털어서 주든지. 없으면 사채라도 쓰든지. 정 안되면 네 장기라도 팔든지. 지지고 볶고 알아서 5천만원을 내 계좌에 입금시켜. 아니면 나도 안 해.”
시우는 그 말을 끝으로 자리를 떠나갔다.
떠나는 발걸음 뒤쪽으로 우드득!
도철의 이빨이 깨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 * *
[계좌 잔고] – 50,034,720 ₩스마트폰 화면 위로 보이는 숫자.
“이럴 줄 알았으면 더 부를 걸 그랬나.”
시우는 괜시리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어느 정도 계산을 통해 5천을 부르긴 했다만 막상 입금이 되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에이, 됐다.”
하지만 금방 생각을 털어내었다.
카페에서 보았던 도철의 표정을 보면 5천이 거의 마지노선인 것 같았으니까.
어쨌든, 돈을 받았으니 그만큼의 일을 하면 그뿐이었다.
“강도철이랑 다시 일하게 될 줄은 몰랐다만.”
굉장히 껄끄럽긴 했지만 뭐 어쩌랴.
5천만 원 준다는데 해야지.
시우는 생각을 털어버리고는 옆에 있는 서아의 상태를 살폈다.
현재 시우와 서아가 있는 SH병원.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SH그룹에서 운영하는 병원이었다.
그리고 시우가 이곳에 있는 이유는 역시.
“몸은 좀 어때 서아야.”
서아의 약을 다시 받아올 겸.
서아를 한 달 동안 입원시키기 위함이었다.
원래 서아의 병은 입원 치료를 받아야만 했다.
하루가 머다하고 피가 죽어가는 혈사병(血死病).
이는 지속적인 치료와 관리가 필요한 병이었으니까.
치료 방법이 없는 불치병이나, 그나마 치료라는 것을 할 수 있는 곳이 여기 SH병원이 유일했다.
시우가 굳이 서울에 눌러살고 있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었다.
하지만 병원비를 감당할 수 없었고 그나마 약을 타 먹으며 통원 치료를 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리고 일주일 동안 약을 건너뛴 서아.
그 동안 상태가 어떻게 악화되었을지 모를 일이었다.
다행히 큰 이상은 없어보였지만, 병이라는 건 겉으로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었다.
“나 괜찮다니까….”
서아는 우물쭈물하며 눈치를 보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뻔히 보였기에 시우는 걱정하지 말라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오빠 이번에 보너스 받았어.”
“그거 얼마나 된다고….”
쥐꼬리만 한 보너스라고 쏘아붙이는 의미가 아니었다.
자신이 입원 치료를 하면 나오는 병원비.
그것이 어느 정도인지 알기에 하는 걱정이었다.
“SH그룹 알지? 이번에 SH그룹이랑 합방을 하기로 해서 받은 보너스야.”
“SH그룹이랑?”
그러자 서아가 눈을 크게 떠보였다.
별 다른 설명없이 SH그룹이라는 말만 꺼냈건만 그 의미를 단번에 이해한 모습이었다.
하기사, 한국에서 SH그룹을 모르는 이가 누가 있을까.
일단 여기 병원부터가 SH병원이지 않은가.
“그래. 덕분에 보너스 정말 두둑히 받았어. 한 달 정도 입원 치료하고도 남는 돈이니까 걱정하지마.”
“그래도… 오빠가 힘들게 번 돈인데….”
“돈이야 다시 벌면 돼. 그리고 서아, 네가 잘 치료를 받아야 나도 마음놓고 치료받을 수 있어.”
시우 또한 치료를 받겠다는 말 때문일까.
그제서야 서아의 표정이 조금은 풀어졌다.
시우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니 앞으로는 약 없으면 바로바로 나한테 말해. 알겠지?”
“…… 응.”
서아는 작게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그리고 서아가 저렇게 말은 했다만.
같은 상황이 벌어지면 서아는 아마 똑같은 행동을 할 터였다.
이 빌어먹을 현실이 달라지지 않는 이상 말이다.
그러니 바꿔야했다.
이 망할 놈의 현실을 반드시 바꿔야만 했다.
“맹서아 환자분. 바로 검사 시작할게요.”
들려오는 간호사의 외침.
병실 침대에 눕는 것까지 보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그럴 시간이 없었다.
“얼른 가봐. 돈은 걱정 말고 검사 잘 받아.”
“오빠도 꼭 치료 받아야 돼. 알겠지?”
“알았어.”
시우는 서아의 당부에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그리고 서아가 안으로 들어간 것을 확인한 직후.
“바로 일 시작해봐야지.”
이번에 SH그룹과 무공략 채널이 공략할 몬스터.
“검은 트롤이라….”
등급은 B+등급.
일반적인 트롤보다 재생력이 월등히 뛰어난 몬스터였다.
재생력이 뛰어나다 못해 불사가 아닐까 싶은 놈들이었다.
머리가 잘려도 재생하는 놈들이니 말해 무엇할까.
그렇기에 공략법이 상당히 까다로운 놈이었다.
재생이 불가능할 정도로 전신을 갈기갈기 찢어놓는다. 가 알려진 공략법의 전부였다.
아니면 불마녀 채널 영상에서 봤던 것처럼 아예 잿더미로 만들어버리던가.
“시간이 빠듯 하겠는데.”
한가로이 병원에 누워서 치료를 받을 시간이 없었다.
솔직히 시간을 맞추기도 빡빡했다.
하지만 뭐 어쩌랴.
밤을 새워서라도 해야지.
“아, 참. 아주머니께 밀린 월세도 드려야지.”
시우는 그렇게 병원 밖으로 나갔다.
* * *
시간은 흐르고 흘러 합방 당일.
“준비한 건?”
도철의 말에 시우는 품 속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들었다.
도철은 그것을 받아 그 내용을 확인했다.
한 장. 두 장.
내용을 읽을 때마다 도철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그리고 끝내 마지막 장에 이르렀을 때.
“이걸 너 혼자 했다고?”
도철이 충격 어린 표정으로 물어왔다.
그도 그럴 것이 시우가 건넨 보고서.
그 보고서의 내용들이 영 심상치 않았으니까.
불사의 재생력을 가진 검은 트롤에 대한 완벽한 공략법.
비단 검은 트롤에 대한 것만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트롤이라는 종족에 대한 지식들이 모두 정리가 되어있었다.
그리하여 트롤이라는 종족이 어째서 재생력이 뛰어난 가.
그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으로부터 출발한 공략법이었다.
당장 협회에 기재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퀄리티였다.
도무지 혼자서 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그것도 무(無)개성의 F등급도 되지 못한 헌터가 말이다.
‘뭐, 나도 놀라긴 했지.’
그리고 사실 시우도 놀란 건 마찬가지였다.
검은 트롤의 특징을 분석하려고 본 유투브 영상들.
그 영상들을 보면서 검은 트롤들의 특징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으니까.
‘통찰력 때문인 것 같긴 한데….’
현상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힘.
아직 숙련도가 1%도 채 되지 않았건만.
과연 S+등급이라 할 만한 개성이었다.
“줄 건 줬으니 그럼 난 이제 간다.”
“무슨 소리지? 난 분명 카메라 맨을 고용한 걸로 기억하는데.”
“망할 새끼.”
시우는 씹듯이 한 번 중얼거렸다.
하지만 뭐, 크게 신경쓰지는 않았다.
이럴 줄 뻔히 알고 있었으니까.
시우도 사실 그냥 내뱉어본 말이긴 했다.
시우는 가져온 카메라 장비를 한 번 점검했다.
그렇게 녹화 준비가 끝난 직후.
“준비는 다 끝났어. 한채린은 언제 온대?”
“여기 있어요.”
그러자 바로 뒤에서 청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뒤를 돌아보자 차가운 분위기가 인상적인 미녀.
“준비되었으면 바로 출발할게요.”
한채린이 무표정한 얼굴로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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