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uck at the gate alone RAW novel - Chapter 108
108화. 레몽드리아.
이집트 대통령은 무슨 말이든 언제까지 다 들어주겠다는 내 말에 좀 당황했지만, 조금씩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처음 한국과의 협력할 수 있는 사업들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한 대화는 조금씩 깊이를 더했다. 난 중간중간 대통령이 했던 말을 반복하면서 그러셨구나 하는 공감과 어떻게 하죠? 하는 위로 정도만을 추임새로 보탰다.
지금은 그의 속내를 아는 것이 우선이었다.
귀에 가져다 댄 핸드폰이 따뜻하다 못해 뜨겁게 느껴질 만큼 긴 시간이 흘렀다.
앨시서 대통령은 한탄했다가 불안해했고, 체념했다가 분노를 토했다.
난 이미 같은 고민에 번민의 밤을 지새우는 사람을 여럿 알고 있다.
물론, 조금씩 입장이 다르긴 했다.
하지만, 황제나 펠리페 2세, 안토니 왕자에 아시미, 모토바 대통령까지 내가 알고 있는 많은 지도자들의 모습은 이집트 대통령의 지금 심정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책임자라는 자리는 결국 큰 부담감과 성과를 이루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같은 불안감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자리였다.
“김 작가, 김 작가는 어떻게 이 사람의 마음을 그렇게 잘 아는 겁니까?”
“그럴 리가요. 제가 아는 건 고민이 깊은 사람은 누구보다 그 해결책을 잘 알고 있다는 것 정도입니다. 지금 대통령님께 필요한 공감과 응원은 제가 잘 할 수 있는 것들이라 대화가 잘 통하는 것 같네요.”
“속이 풀리는 느낌입니다. 주책없이 늙은이가 별별 소리를 떠드는구나 싶다가도, 이런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조바심이 듭니다. 김 작가.”
“네. 대통령님.”
“바쁜 건 알고 있지만, 일주일에 한 번씩이라도 제 말을 들어주지 않겠습니까?”
이런 식으로 일이 풀려나갈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대통령의 속내를 듣는 것은 내게도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한국에서 경시당하긴 해도 이집트는 1억 명이 넘는 인구로 아프리카, 중동, 아랍을 걸쳐 가장 인구가 많은 국가였다.
흔쾌히 승낙하고는 대통령에게 우리 정부에 전해야 할 일들을 확인받았다.
대통령은 내 정리를 마음에 들어 했다.
“김 작가는 내 말을 진짜로 열심히 들었군요. 네. 그렇게만 전해 주세요. 김 작가의 지금 그 말이 제 마음과 꼭 같습니다.”
좋은 대화였다.
전화를 끊기 전, 난 앨시서 대통령에게 말리와 이집트는 다르다는 말을 했다.
“말리와 이집트가 다르다니요?”
“말리는 알려지지 않은 나라입니다. 말리에서 뭔가 훌륭한 대접을 기대하고 가는 관광객들도 거의 없을 겁니다. 말리 대통령님도 지금은 말리 단독 여행 코스를 준비한다기보다는 세네갈과 말리를 묶어서 불쾌감을 주지 않을 정도의 코스를 짜고 있습니다.”
“우리 이집트는 다르다는 말인가요?”
“네. 이집트의 관광자원이 훌륭하다는 것은 한국 뿐 아니라, 전 세계의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습니다. 문제는 큰 기대를 가지고 찾은 이집트에서 사기나 바가지, 부패한 경찰의 만행을 겪는 경우입니다. 한국은 온라인 연계가 매우 잘 되어 있는 나라입니다. 한국인들이 이집트에서 진짜 좋은 추억만을 쌓고 올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예민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이집트의 치안이 좋지 않다고 정면으로 지적하는 내용이었지만, 잠시 말이 없던 앨시서 대통령은 곧 단호하게 대답했다.
“···무슨 걱정인지 잘 알겠습니다. 쉽게 고쳐지지는 않겠지만, 국민들에게 이번 기회가 쉽게 찾아오지 않을 마지막 기회라는 걸 말하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대화 내용을 정리한 후 바로 강 과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이고. 작가님. 어쩐 일이세요?”
“카톡으로 제가 뭘 좀 보냈습니다. 혹시 확인 가능하실까요?”
“네. 잠시만요. 어, 이게 다 무슨 말입니까?”
“방금 이집트 대통령님과 한 시간 반 정도 통화를 했습니다. 제가 보낸 건 이집트 정부와 대통령님이 생각하는 한국과의 협력 사안과 기대하고 있는 부분들입니다.”
“정말입니까? 정말, 이집트 대통령과 한 시간 반이나 통화하신 겁니까?”
강 과장은 오늘 전화가 어떻게 해서 하게 됐고,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에 대한 설명을 모두 들으며, 눈으로 내가 보낸 문서를 확인했다.
“정말 대단하시네요. 정말 작가님이 욕심나네요.”
“네?”
“작가님이 하고 계신 것이 외교입니다. 외교는 결국 신뢰를 쌓아 양국 간의 발전을 도모하는 행위입니다. 주고받으려면, 먼저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아야 합니다. 작가님께서 주신 이 리포트는 저희 같은 외교관들에겐 보물 같은 겁니다.”
“우리 쪽도 잘 준비해서, 서운하지 않게 했으면 좋겠네요. 상대방에서 웃는 낯을 내밀었는데, 뺨을 날릴 수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네. 저흰 이 리포트에 대한 보고서를 준비하겠습니다. 작가님께 죄송하지만, 전화가 좀 많이 갈 수도 있습니다.”
“네?”
“우리 쪽도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건 양보할 수 있지만 어떤 부분은 왜 안되는 건지 마음 상하지 않게 이집트 정부에 전하고 싶습니다. 작가님께서 중간 다리 역할을 맡아 주셔야 합니다.”
떠넘기는 느낌은 아니었다.
이집트가 원했던 것은 한국과의 관광연계도 있었지만, 한국의 뛰어난 기술을 바탕으로 철도 사업과 방산 사업까지도 도마 위에 오른 상황이었다.
이 중차대한 순간에 공무원으로서 예의를 갖추지만, 그저 듣기만 좋은 소리가 아닌 명확한 조건과 현실을 전달하고 싶은 욕심이 보였다.
탐욕이 아닌 실리를 중시하는 태도가 느껴졌다.
번역가가 맡기엔 너무 큰 역할이었지만, 번역가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말을 예쁘게 하는 건 통역 반지가 없었을 때부터 닦아온 내 오랜 재능이었다.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은 것 같아서 부담스럽기보다는 반갑고 즐거웠다.
강 과장의 예고대로 다음날부터 난 방위사업청이나 카이, 대현 로템이나 각종 이집트 관련 외교부 포스트들의 다양한 전화를 받아야했다.
귀찮지 않았다.
몰랐던 공무의 세계에 눈을 떠가는 기분이었다.
새로 얻은 지식을 쓸 수 있는 곳이 많았다.
난 내가 얻은 지식들을 안토니 왕자와 나누기 시작했다.
* * *
“상민아. 상의할 일이 생겼다.”
펠리페 2세의 전화였다.
수면 베개를 사서 선물하러 갔던 게 어젯밤이었는데, 그 사이에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가?
다행히 작품 회의가 끝난 뒤여서 바로 레몽드 왕실로 넘어왔다.
펠리페 2세의 집무실엔 펠리페 2세와 안토니 왕자, 마법사 할아버지는 물론이고 행정관들 전부가 함께 모여 있었다.
정말로 큰일인가 해서 긴장하며 사정을 들었더니, 과연 큰일이 맞긴 했다.
레몽드랜드 때문이었다.
사행성이 없는 놀이용 게임과 간이 음식점으로 구성된 제국의 레몽드랜드와 다르게, 새로 개장한 왕국의 레몽드랜드는 다양한 게임을 갖추고 있었다.
처음, 계획은 바카라나 블랙잭, 슬롯머신 같이 돈을 잔뜩 땡길 수 있는 게임으로 도박장을 채우려 했지만, 문제는 도박장을 운영할만한 기술이 왕국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문제였다.
현대의 도박장은 수많은 시간에 걸쳐 조성된 곳, 그 시스템을 단번에 때려넣기엔 예상되는 부작용이 너무 많았다.
더구나 이미 제국에서 레몽드는 엄청난 돈을 땡기고 있었다.
닭 농장과 감자 농장이 활성화되면서, 제국의 수도엔 치킨과 반숙란, 감자튀김을 파는 레몽드리아가 3군데나 생겼고, 엄청나게 성업중이었다.
편리성과 맛, 재미까지 문화의 상대적 우위를 이미 선점한 레몽드가 파는 모든 물건과 식품들은 비쌌다. 너무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 게 문제가 될 정도여서, 사행성 사업으로 돈을 뜯어내는 인상이 되면 곤란할 지경이었다.
결국 왕국이 선택한 것은 카지노 대신 하우스의 제공이었다. 고스톱과 윳놀이, 체스와 포커 등 상대방과 대결할 수 있는 게임장을 만들고, 그 안에서 자리 사용료와 판돈의 대부사업을 시작했던 것이다.
왕국이 직접 뜯어내는 대신 수수료 장사로 방향을 선회했었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좋겠니?”
“손튼 남작은 어떤 상태입니까?”
“가진 것을 모두 잃은 데다, 이미 레몽드랜드에서 빌린 돈만 4천 골드가 넘습니다. 그런데도 돌아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고 있습니다.”
“4천 골드는 어찌 갚을 계획이랍니까?”
“가을에 수확이 끝나면, 2,500골드를 당장 갚고, 나머지는 내년에 갚겠답니다.”
도박장을 맡은 행정관이 곤란한 표정으로 대신 대답했다.
배팅에 상한선을 두지 않은 것이 실수였다.
하지만, 귀족들이 노는 게임장에서 상한선을 두는 것 자체도 이상한 일이긴 했다.
규칙을 뒀다면 불쾌하게 여겼을 게 뻔해서 배제했는데, 부작용이 예상보다 빨랐다.
“손튼 남작의 돈을 따간 사람은 누굽니까?”
“세이린 자작부인입니다. 부인은 대단합니다.”
“네?”
“부인에겐 이미 포커퀸이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지난 보름 동안 딴 돈이 족히 15만 골드는 넘을 것입니다. 작년 세이린 영지의 총소출보다 보름 동안 포커로 딴 돈이 더 많습니다. 이를 보고 더 많은 귀족들이 몰려들고 있어요.”
물론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것은 지구의 사례만 봐도 뻔히 생각할 수 있는 경우였다.
단지, 우리는 게임에 관여하지 않아 수수료만 먹을 거야라는 생각이 당연히 가지고 있어야 할 책임과 부담을 모른 척 무시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둘러앉은 이들의 얼굴에 안이하게 생각했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곤란하네요.”
“그렇지? 나도 어떻게 결정을 내려야할지 몰라서 널 불렀다. 손튼 남작을 빈털터리로 만드는 것 정도야 큰 문제는 아니겠지만, 앞으로 후작이나 공작도 노름빚에 영지를 잃는 일이 생길 수도 있음이야.”
“전하의 말씀이 맞습니다. 이건 지금 단속해야 합니다. 지금은 아니지만, 곧 왕국이 제국에서 돈을 너무 많이 벌어들이는 것도 문제가 될지 모릅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냐?”
난 한쪽으로 치우친 무역이 초래한 전쟁의 위험에 대해 설명했다.
내게서 아편전쟁의 참상을 들은 펠리페 2세와 행정관들은 긴장감을 감추지 못했다.
아무리 고객들이 자발적으로 돈을 뜯기고 있다 해도, 이를 제국의 유력층이 지적하고 문제 삼는다면 어떠한 보복이 가해질지 몰랐다.
“그럼 큰일이 아니냐?”
“레몽드랜드의 운영정책을 바꿔야겠습니다.”
“어떻게 말이냐?”
“장소제공료는 지금처럼 받되, 돈을 걸 수 없게 하는 것입니다.”
“돈을 걸 수 없다니?”
“그냥 장기처럼 유흥으로만 즐기게 하는 것입니다. 우린 장소제공과 음식만 파는 것입니다.”
“그러면 재미가 떨어질 터인데.”
펠리페 2세의 얼굴이 붉어졌다.
분명, 펠리페 2세 역시 ‘내기’를 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나는 단언했다.
“스스로 단속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합니다. 제국은 야만인들의 나라입니다. 지금은 황제가 우리 레몽드를 아끼지만, 언제고 이렇게 계속 모기처럼 돈을 뜯길 바에야 차라리 복속하는 게 낫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입니다.”
“후우. 나라가 힘이 없는 게 한이구나.”
“그것도 멀지 않았습니다. 드워프 족이 화약무기를 만들기 시작했으니, 곧 군사력도 제국을 넘어서는 날이 올 것입니다.”
“그렇겠지? 네가 바쁜 것은 알지만, 이 일의 수습은 네가 좀 맡아줬으면 하는구나.”
“네. 그리하겠습니다.”
예상외의 일에 계획한 일이 망가졌지만, 망가진 김에 잘못을 바로잡는 편이 레몽드 왕국에 더 유리한 일이 될 것이다.
난 다음 날 바로 제국으로 넘어가 황제를 알현해서, 레몽드랜드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자세히 보고했다.
제국의 귀족들이 게임에 빠져 수십만 골드를 따고 잃었다는 말에 황제는 놀라면서도 분노했다.
“그래서? 레몽드는 이 일을 어찌 처결할 생각인 게냐?”
“레몽드랜드에서는 내기 자체를 금지할 것이옵니다. 쏜튼 남작의 빚도, 이번에 한해 탕감해줄 생각이옵니다.”
“그럴 것 없느니. 빚을 졌으면 갚는 것이 인지상정이 아니냐? 내 내게 4천 골드를 내려주마. 쏜튼 남작의 빚은 짐이 직접 받아내겠다.”
영지를 몰수라도 하려는 걸까?
황제의 눈이 무엇인가 계교로 빛났다.
분명 다른 꿍꿍이가 있었다.
뭐, 그건 나도 마찬가지이긴 했다.
윳놀이나 포커, 고스톱은 매우 쉽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난 레몽드랜드에서 내기를 금지시켜, 제국을 도박으로 물들일 작정이었다.
금지한다 해도 할 놈들은 알아서 짝퉁 레몽드랜드를 만들어서라도 할 것이다.
단지 그 폭탄의 향방이 레몽드를 향하지만 않으면 충분하다는 게 내 계획이었다.
또한.
“폐하.”
“그래. 사이먼. 말 하거라.”
“레몽드리아의 점포 중 2곳을 나란 황녀님께 넘기겠사옵니다.”
“나란에게? 그런 이유라도 있는 게냐?”
“제국은 저희 레몽드에겐 아버지나 형이나 같은 나라이옵니다. 아버지 같은 제국을 편히, 즐겁게 모시고자 했으나, 버는 돈이 너무 많사옵니다. 저희 레몽드엔 금이 많이 필요하지 않사옵니다. 저희가 필요한 것은 폐하의 믿음 뿐이옵니다.”
슬며시 독을 풀었다.
황제는 독차를 마시고도 자기가 마신 차에 독이 있다고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듯, 오늘도 흡족해 마지않는 표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