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uck at the gate alone RAW novel - Chapter 110
110화. 살을 붙이다.
하누아나가 가져온 가방엔 핫도그와 씨앗호떡, 감자튀김 같은 레몽드리아의 음식들이 함께 담겨 있었다.
기차에서 먹겠다고 가져온 것이지만, 두 보조작가와 미영이는 눈앞에 있는 간식거리를 지나치지 못했다.
따뜻할 때 먹어야 한다며 각자 음식들을 집어 든 사람들은 뛰어난 맛에 감탄했다.
“안젤리나, 이건 어디서 사 온 거야? 동네야?”
“동네는 아니고. 최근에 개발한 가게예요.”
“그래? 어딘지 알려 줘. 우리도 사다 먹게. 글쓰기는 의외로 체력 싸움이거든. 움직이지 않아도 글을 쓰다보면 당이 엄청 떨어진다니까.”
“진짜! 대전은 노잼에, 노맛 도시인줄 알았더니. 김 작가님 부모님 식당도 그렇고. 되게 맛있는 가게가 많네. 난 이렇게 맛있는 감자튀김은 처음 먹어 봐.”
내가 가게 위치를 아니, 가끔 사오겠다며 난감한 상황을 넘겼다. 보조작가 희정씨는 제법 큰 감자튀김을 2세트나 해치웠다.
정신없이 감자튀김과 간식을 먹는 사람들을 본 안젤리나 공주가 내 옆에 붙어서더니 내게 살짝 속삭였다.
“오빠, 이 정도면 여기에 레몽드리아를 하나쯤 열어도 되는 거 아니에요?”
“어디다? 대전에?”
“네. 한국에서 사는 건 다 좋은데, 제니가 없으니 심심해요. 오늘 가져온 거 다 제니가 만든 거예요. 우리 둘이 가게 차릴래요.”
제니는 안젤리나 공주의 몸종이다.
두 사람은 평생을 함께해왔지만, 공주가 한국에 온 뒤로는 가끔 공주가 레몽드에 갈 때만 잠시씩만 만나고 있었다. 모실 주인이 지구에 가 있으니 심심풀이로 요리를 배운다던데, 솜씨가 퍽 괜찮았다.
레몽드리아라.
좋은 생각이 났다.
그렇지 않아도 말리의 이미지 제고를 위한 사업을 하나 정도 하려 했었다.
바로 모토바 대통령의 비서실로 전화했다.
잠시의 기다림 끝에 통화가 됐다.
난 모토바 대통령에게 인력을 요청했다.
“대통령님, 사람을 좀 보내주십시오.”
-네? 저희 인력이 필요한 일이 생겼나요?
난 사정을 설명한 뒤, 이번에는 도곤족이 아니라 다른 부족의 청년들을 보내달라고 했다.
“한국어를 어느 정도 잘하는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기왕이면 키나 체격도 좋았으면 하고요.”
-그야말로 말리 대표군요.
“네. 전 대전에서 말리 식자재를 이용한 패스트 푸드 가게를 열 생각입니다. 이미 레시피도 레몽드에서 실험해서 다 만들어 뒀습니다. 사업을 추진하고 성공하는 모습을 안젤리나의 너튜브로 공개하겠습니다.”
-좋네요. 도곤족을 제외하고 다른 부족 청년들이 간다는 것만으로도 부족 통합의 첫걸음으로 부족함이 없습니다.
모토바 대통령은 도곤족을 제외한 다른 네 부족에서 한 명씩, 그리고 몸종 제니를 신분세탁까지 마쳐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한국에 보내주기로 했다.
결정권을 가진 사람과의 협조는 역시 큰 도움이 된다.
그다음으로 난 서울역으로 가는 KTX의 기차 연결구간에서 외교부의 강영식 과장에게 전화를 걸어 말리킹 버거 가게를 만드는 데 필요한 행정적 지원을 부탁했고, 행정부 차원에서의 편의를 약속받았다.
강 과장은 내가 말리 전통 음식점이 아니라 한국식 길거리 음식 전문점을 내려 한다는 사실에 놀랐다.
하지만 전통 음식만이 그 나라를 알릴 수 있다는 건 편견이었다. 우리 한국만 해도 한류 열풍을 통해 퍼진 치킨이 k-치킨, 치맥 등으로 유명세를 탔고, 짜장면은 중국의 자장멘을 넘어선 지 오래다.
“말리 스트릿 버거는 전체적으로 퓨전 음식점을 표방할 작정이에요. 이미 히트작인 토스트랑 치킨도 있고, 버거도 자신 있어서요. 말리라는 생소한 나라를 강조하며 억지로 알리는 건 촌스러워요. 그저 한국을 아주 좋아하는 아프리카 청년들이 맛있는 자국의 식자재와 음식으로 한국 사회에 성실히 적응해나가는 모습을 양국의 국민께 보여주려고 하는 겁니다.”
-훌륭하세요, 정말. 아! 작가님. 열흘 안으로 대현 로템의 이집트 철도 개선 사업 수주가 발표될 것입니다. 대현에서 곧 작가님을 찾을 겁니다. 대현에서도 이 일이 어떻게 이렇게 빨리 결정됐는지를 잘 알거든요.
* * *
강릉에 도착해서 2대의 차를 빌렸다.
한 대는 희택이가, 다른 한 대는 하누아나가 운전했다.
일행 중엔 전국 맛집을 꽉 잡고 있는 짜냥이와 검색이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희정 씨와 성희 씨가 있어서 박 작가님이 출발 전부터 먹고 싶어했던 오징어 물회 맛집을 찾아냈다.
식당에서 물회와 오징어 숙회를 맛있게 먹고 펜션에 도착하자마자 모두 늘어지게 잤다.
대본 작업은 도망자의 삶과 비슷한 구석이 있다.
작업을 시작하면 늘 쫓기듯 회차를 써 내려간다.
중간중간 쉴 때가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희택이나 미정이가 챙기지 않으면 밥도 잠도 잊고 회의와 집필만을 반복할 정도로 과몰입한 상태에서 작업을 계속한다.
완성에 이르기 전까지는 끝나지 않는 무한의 레이스. 중간에 멈춰선, 일탈에 가까운 지금의 휴식은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달게 느껴졌다.
각자의 방으로 흩어져 모두 잠이 들었다. 난 희택이, 하누아나와 함께 2층의 침실을 썼는데 두 사람도 연이은 대본 작업으로 완전히 방전된 나만큼이나 지쳐 보였다.
특히 희택이는 내가 아프리카 내에서 위상이 커질수록 바빠졌다.
희택이와 미정이는 내가 내 일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자신들의 책임이라 여기고 있었다.
하여 공부까지 해가며 아프리카 각국과의 수출입이나 출판사, 제작사, 세네갈에 세우는 대현 식품의 새 공장까지 모두 챙기고 있었다.
피곤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밥을 든든히 먹고 와서인지, 하누아나도 나도 곯아떨어지는 데에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으아.
기지개를 켰더니, 몸이 여기저기를 맞은 것처럼 욱신거렸다.
거의 5시간을 자고 일어나 화장실을 다녀왔더니, 거실에서 미정이와 안젤리나 공주, 짜냥이가 수다를 떨다가 나를 반갑게 맞았다.
“오빠. 잘됐네요. 우리 운전 좀 해 줘요.”
“운전?”
“네. 먹을 거랑 마실 걸 사 오는 걸 잊었잖아요. 배달시키려고 해도 근처에 가게가 없더라고요. 펜션 사장님께 물어봤더니, 바비큐 준비를 해 줄까 하시는데 귀찮아서 거절했어요.”
“그래. 자고 났더니 출출하네. 얼른 다녀오자.”
저녁이었지만, 다행히 가게를 닫을 정도는 아니라서 대형마트에서 엄청난 양의 음식을 사서 펜션으로 돌아왔다.
펜션에 도착해서 고기를 굽고 라면을 끓였다.
라면 냄새가 거실을 가득 채우자 냄새에 이끌린 작가님들과 희택이, 하누아나가 좀비처럼 걸어 나왔다.
먹방 전문 너튜버 짜냥이는 요리 솜씨도 상당했다. 10봉지나 되는 라면을 한 번에 끓여냈는데, 면의 익힘 정도가 절묘했다.
고기와 라면을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내부 사정을 아는 매우 가까운 사이여서 눈치보지 않고 무리한 일을 추진하는 중국 욕을 시작했다.
한참 중국 욕을 하는데 미정이에게 중국 제작사 쪽에서 연락이 왔다.
“여보세요. 네. 잠시만요.”
거의 모든 사람들이 미정이에게 스피커 폰으로 전화를 받으라는 손짓을 했고, 미정이가 핸드폰의 스피커 폰 버튼을 눌렀다.
-내 와자자하여 연락이 늦었소. 고조… 어느 정도 진행, 되었습네까?
난 그제야 미정이가 어떻게 중국 제작사와 소통했는지 방법을 알 수 있었는데, 중국의 제작사 쪽에서 한국어가 가능한 조선족 출신의 직원을 통역으로 써서 대화의 진행이 몹시 느렸다.
“미정아. 그럴 것 없어. 내가 전화를 받을게.”
“오빠, 이런 전화 싫어하시잖아요.”
“싫어하는데, 내가 쉽게 할 수 있는 일 때문에 널 고생시키는 것도 별로야. 가서 라면 먹어. 분다.”
“네.”
오랜만에 미정이의 따뜻한 눈길을 받으며, 통역을 맡은 직원에게 내가 전화를 받았으니 총괄PD와 직접 통화하고 싶다고 했다.
PD는 저녁을 넘어 밤이 다 되어가는 시간에 내가 미정이와 함께 있는 것에 좀 놀랐다.
-작가님. 이 시간에 미정 씨랑 함께 계셨어요?
“네. 이참에 재충전을 좀 하자 싶어서 작가님들이랑 제 스텝들이랑 바닷가 펜션으로 쉬러 왔어요.”
-네?
중국 제작사 PD는 하던 일을 멈추고 놀러 왔다는 내 말에 기절할 듯 비명을 질렀다.
그동안 나와 박 작가님은 정해진 일정보다 항상 더 빠르게 대본을 보냈고, 그런 와중에도 새로운 대본을 쓰는 괴물 같은 작업량을 보였기 때문이었디.
“어떻게 결정됐나요? 아직도 그놈의 대형(大兄) 제목을 고집할 생각이신가요?”
-그런 건 아닙니다. 하지만 전 단 하나의 대사도 고칠 수 없다는 작가님의 말씀에도 찬성하진 않습니다.
“그럼 PD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드라마는 대중예술입니다. 그리고 우리 드라마를 보게 될 중국의 인민은 한국의 국민처럼 성숙하지 못했습니다. 전 작가님께서 이 점을 고려하고 저희 입장을 배려해 주셨으면 합니다. 드라마는 제대로 만들어야 할 것이 아닙니까?
터무니없는 소리다.
창작자가 컨텐츠 소비자인 국민의 모자람을 탓하다니.
저 말은 자기 목소리가 통하지 않는 당국의 공무원이 아니라 설득하기 쉬운 내게 사정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같은 핑계로 이미 많은 것들을 양보해준 뒤다.
“아니요. 대중이 부족한 게 아니라 중국의 당국자가 촌스러운 것입니다. 대중의 평가는 언제나 냉혹하지만, 집단의 지성은 항상 옳은 방향을 찾습니다. PD님과 저 같은 창작자들은 적어도 자신의 양심에 부끄럽지 않는 작품을 선보일 의무가 있습니다.”
내가 말로 찌른 칼에 PD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리고 난 우연찮게도 내가 한 대답에서 드라마가 나가야 할 방향을 찾았다.
찬양 드라마를 만들되, 그 찬양을 받는 대상이 주석이 아니면 그만이다.
대형이라는 제목을 달아도 상관없다.
다만 드라마 속 대형이 지나치게 훌륭해서, 배가 나온 주석에 호감이 덧씌워지지 않게 할 것이다.
-작가님.
“혹시 물밑에서 이런 부끄러운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 이 드라마를 만들라 명령한 중국의 높으신 분도 알고 계십니까?”
제작 PD는 내 비아냥에 다시 한번 사정했다.
-작가님. 부탁드립니다. 저도 작가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드라마에 정말로 많은 사람의 밥줄이 달려 있습니다. 작가님들의 노고는 다른 방식으로 꼭 보상하겠습니다.
“아니요. 저도 박 작가님도 외부에 공개하지 못할 다른 방식으로 거래하고 싶지 않습니다. 책정한 원고료를 받으면, 저희는 최선을 다해 글을 쓰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PD님. 이렇게 하시죠,”
-네?
“정부 당국자가 보고 흡족할 만한 드라마를 쓰겠습니다. 하지만, 전 드라마 속 대형의 모습으로 이 부끄러운 아첨을 받을 누군가를 지우겠습니다.”
PD는 잠시 말이 없었다.
난 그대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럼, 그렇게 알고 끊겠습니다.”
어려운 합의였다.
통화 내내 내 노골적인 비아냥과 조롱을 PD는 묵묵히 감내했다. 그렇게라도 매달려 드라마를 만들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딱히 그의 노고와 굴욕이 불쌍하다거나 무슨 말을 들어도 참는 인내심이 대단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잘못을 잘못이라 말할 용기를 내지 못하는 사람도 결국은 잘못된 시대의 부역자일 뿐이다.
캐릭터의 성격을 다시 가다듬었다.
다행히 내 주변엔 참고할만한 많은 국가의 지도자들이 있다.
드라마의 배경이 되는 회사를 레몽드로 남자 주인공을 안토니 왕자로, 여자 주인공을 하와이 농장의 소작농으로 바꿔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이야기에 탄력이 생겼다.
대형 캐릭터를 다시 구축하는 데 정성을 쏟았다.
난 명석한 두뇌와 넉넉한 품성으로 주인공들을 안아주는 대형 대신에 백성을 향한 번민 때문에 잠들지 못하는 펠리페 2세의 간절함을 담았다.
왕은 고독한 자리다.
난 내가 바치는 가짜 충성에 빠져드는 황제의 허전함이나 답답한 국내 상황에 암담해하는 아자와드 왕국 대통령의 절망을 대형에게 안겼다.
중국제작사만 외면하고 있을 뿐, 과한 칭찬으로 조롱받는 시트콤 속 캐릭터 같던 드라마 속 대형에게 인간미가 생겼다. 아주 바람직하면서도 훌륭한 캐릭터였다.
준비가 끝났다.
다만, 한 가지 걱정은 내 조롱을 알아듣지 못하고, 드라마 속 참된 지도자의 모습을 자기라고 착각할지도 모르는 주석이었다.
깨우침을 주려했지만 이조차도 아첨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었다.
그가 조롱을 조롱으로 알아들을 수 있는 눈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랐다.
멍청한 지도자가 권력을 휘두르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중국의 인구는 14억 명이 넘었다.
죄없이 가련한 사람들이 지나치게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