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uck at the gate alone RAW novel - Chapter 115
115화. 돌려받다.
경무국장은 내 경고, 아니 위협에 몸이 굳었다.
하지만 난 할만큼 했다.
종일을 붙잡혀 있었다.
해야할 일도, 하고 싶은 일도 모두 했다.
풀려날 때가 됐다.
“국장님. 전 제가 드릴 수 있는 모든 말을 다 했습니다. 그런데 전 언제쯤 풀려날 수 있는 겁니까?”
경무국장은 신기한 사람이었다.
그는 항상 남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저 자기가 궁금한 걸 물었다. 반쯤 두려워하고 있는 와중에도 한결같은 게 신기했다.
“방금 하신 그 말은 사실입니까?”
“확인해 보시면 될 일이 아닙니까? 아마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에게 표식이 생기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크게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네?”
통역반지는 역시 신통했다.
국장의 말은 어느샌가 ‘하오체’에서 완벽한 존칭으로 바뀌어 있었다.
난 국장에게 이집트의 상황을 설명했다.
“표식은 평상시에는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이집트의 앨시서 대통령님도 표식이 있으시죠. 대통령님께 표식이 나타났을 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온갖 검사를 다 받으셨지만, 이전과 완전한 동일한 결과를 얻었을 뿐입니다.”
“그렇습니까?”
“애초에 잘못을 하지 않으면 되는 문제 아닐까요? 국장님도 경찰이시니까 잘 알고 계시겠지만, 범죄자가 아닌 일반 사람들은 경찰을 두려워하기보다는 든든히 여기니까요.”
간단한 일이다.
벌이 무섭다면, 죄를 짓지 않으면 된다.
신을 의심한 군인과 도굴꾼들을 제외하고는 5천만이 넘는 보균자 중 누구도 특별한 일을 겪지 않았다는 이집트의 상황에 경무국장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난 경고를 잊지 않았다.
안도하는 국장에게 난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저도 이 모든 일련의 일들이 그저 우연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신의 가호인지 저주인지 알지 못하지만, 실제로 누군가는 병이 들고, 누군가는 죽기도 하니까요. 그래서 말인데, 약속을 지켜주셨으면 합니다.”
“약속이라면……?”
“이집트의 유물을 반환한다는 약속 말입니다. 사람은 상황이 좋아지면, 어려웠을 때 했던 약속을 쉽게 잊습니다. 하지만 이건 당연한 일이잖습니까. 무덤의 부장품을 원주인에게 돌려주는 건데요.”
국장은 내 말에 동의했다.
하지만 난 이 약속이 쉽게 지켜지기는 어려운 일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프랑스의 주요 수입 중 관광은 매우 큰 포지션을 차지하고, 파리를 상징하는 가장 유명한 관광지 중 하나가 루브르였다.
더구나 선례가 생기면, 당연히 선례에 따른 요구가 발생한다.
이집트의 요구를 들어주면, 주요 예술품을 많이 빼앗겼던 그리스나 이탈리아가 같은 요구를 하지 않을 리 없다.
그들이 가장 곤란한 점은 이집트에게만 유물을 돌려주는 명분을 어떻게 확보하느냐다.
프랑스 정부는 이집트에 유물을 돌려주며, 실체가 있지만, 전혀 과학적이지 않은 ‘파라오의 저주’를 이유로 들 수 없을 테니까.
그 나라의 유물은 그 나라가 관리하는 게 옳다는 내가 한 말은 정론이지만, 그것을 따랐다가는 루브르의 7할은 비워야 한다.
하지만 그건 내 알 바가 아니었다. 경고를 했으니 결과를 기다릴 뿐이다.
결국 프랑스는 차일피일 미루거나, 어쩌면 루브르 박물관의 분원을 이집트에 만들겠다고 할지도 모른다.
똑똑.
노크 소리가 났고, 내게 총을 겨눴던 경찰관이 들어와서 귓속말로 뭔가를 보고했다.
워낙 작은 목소리여서 내용을 전부 듣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전염’이나 ‘위급’같은 단어가 들렸다.
난 그 두 단어만으로 파라오의 표식인 점을 가진 사람이 늘고 있으며, 낫지 않은 6명의 환자가 위급한 상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경찰관이 보고를 마치고 나가자, 경무국장은 내게 이전과는 전혀 다른 태도로 부탁했다.
“마지막 부탁입니다. 작가님 말씀을 모두 믿지만, 그래도 사람이 이런 일로 죽는다는 게 말이 되는 일입니까? 약속은 반드시 지키겠습니다. 어떻게 방법이 없을까요?”
“이런 일이라면, 신의 위엄을 모욕하고 조롱한 일을 말하는 것입니까? 그 일을 그리 가볍게 여기시는 겁니까?”
“아닙니다. 그런 건 아닙니다. 하지만 눈 앞에서 사람이 죽어가고 있지 않습니까?”
“안타까운 일이지만, 야훼께서도 모든 인류를 홍수로 멸하신 적이 있지 않으십니까?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죠. 그래서 말인데, 제게 총을 겨눈 아까 그 경찰은 어떤 처벌을 받게 돼 있습니까?”
뜬금없는 내 질문에 경무국장은 당황했다.
“처벌이라니요?”
“사실, 지금도 프랑스 경찰은 제게 큰 외교적 무례를 범하고 있는 겁니다. 국장님, 전 대한민국의 외교관입니다. 외교관 여권을 가지고 있죠. 제가 몇 번이나 총을 맞을 뻔하고, 몇 시간씩 구금된 정당한 이유를 설명하실 수 있습니까?”
이제껏 모두가 외면하고 있거나, 잊고 있던 사실을 주지시켜주자 국장의 얼굴에 곤란함이 스쳤다.
마찬가지로 그 이유를 설명하고 납득시키기 위해선 ‘파라오의 저주’라는 비과학적이고 미신적인 일에 대한 공식적인 인정이 필요하다.
잠시 고민하던 경무국장은 내게 개인적으로 사과했다.
“작가님도 오늘 일어난 일들이 이성적인 판단이 불가능할 정도로 급박한 상황이라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불가피한 일이었지만, 프랑스 경찰을 대표해서 오늘 작가님이 겪게 된 불쾌하고 불편한 일에 유감을 표합니다.”
매끄러운 사과였지만, 개인적으로 밀실에서 몰래 하는 사과는 아무런 힘이 없다.
난 당당히 요구했다.
“지금 그 말씀을 프랑스 경무국장의 공식 사과로 르몽드를 통해 발표해 주십시오.”
“네?”
“다짜고짜 민간인이자, 관광객인 제게 아무런 경고 절차 없이 총부터 겨눈 방금 그 경찰관도 인사조치 해주십시오. 마지막으로 전 지금 이 자리에서 벗어나 최대한 빠르게 출국하길 원합니다. 프랑스에 입국하고 난 뒤 좋은 기억이라고는 조금도 없어서요.”
입국해서 지금까지 8시간이 넘게 지났지만, 물 한 잔도 제공받지 못하고 내내 구금된 문제에 대해서는 반드시 보상을 요구할 것이라는 내 불평에 경무국장은 크게 당황했다.
난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사실을 짚었다.
팬데믹과 다름없는 엄청난 일이 하루 안에 벌어졌지만, 그 과정에서 나라는 개인이 겪은 고초는 적은 것이 아니었다.
수차례의 생명 위협에 밥은커녕 물조차 제대로 먹지 못했고.
내 결백을 호소했음에도 정당한 수사조차 받지 못했다.
대사관과의 연락을 막은 것도 중요한 문제였다.
“아니면, 언론에 인터뷰라도 해드릴까요?”
나에 대해 되짚어보던 경무국장의 얼굴이 또다시 창백해졌다.
난 이집트 관련 서적의 출판으로 130만 권을 판 유명 작가이고, 현지인처럼 쓸 수 있는 언어가 10개도 넘었다.
자기들이 몰아댄 20대의 동양인 청년은 생각보다 더 거물이었다.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식사를 준비하겠습니다.”
“아니요.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당장 구금의 해제와 출국을 원합니다.”
똑똑.
쾅.
내게 총을 겨눴던 경찰관이 들어오라는 허락을 구하지도 않고 거칠게 문을 열었다.
그리고는 처음 풍토병에 걸렸던 6명이 모두 죽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 소식을 듣는 순간.
나를 보는 경무국장의 얼굴이 공포에 질렸다.
“지금 당장 공항에 모셔다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던 공식 사과와 인사조치도 약속드리겠습니다. 더불어 의회와 상의해서 한국의 유물도 반환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순식간에 뒤바뀐 태도.
그는 저주와 죽음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 * *
다시 돌아온 샤를 드 드골 공항은 평범한 일상을 회복한 모습이었다.
난 퍼스트 클래스 전용 라운지에서 간단한 식사를 하면서 핸드폰으로 실시간 뉴스를 확인했다.
놀랍게도 기사로 공개된 부분은 내가 공항에 도착해서 한 기자회견까지였다.
공항에서 일어난 대혼란과 잠시였지만, 실제로 행해졌던 공항 폐쇄는 전혀 뉴스에 나지 않았다. 실제로 기자와 사람이 끔찍한 몰골로 쓰러졌고 2차 전염도 있었지만, 프랑스의 포털에선 아무런 정보도 찾을 수 없었다.
자유를 표방하는 프랑스는 생각보다 더 보도 통제가 심한 나라였다.
원래는 이집트로 돌아가려고 했지만, 이집트보다 한국행 비행기가 빨랐다.
빨리 이곳을 뜨고 싶었던 난 바로 한국행을 선택했고, 프랑스 정부에서 퍼스트클래스 티켓을 대신 잡아줬다.
비행 시간을 기다리며 난 이집트 외교부 국장에게 지금의 상황을 전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국장은 나와 공항에서 같이 억류됐다가 나를 병원으로 끌고가며 먼저 풀어준 이집트 대사를 통해 이전까지의 상황을 모두 들은 뒤였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전 괜찮습니다. 이집트에선 하스페 대사님을 향한 프랑스 경찰의 불합리한 폭거를 항의해 주십시오.”
-그건 당연한 일입니다.
“아. 그리고 기자회견장에서 절 모독했던 시민과 기자들 여섯이 사망했습니다. 유물 반환 이야기는 잠시 멈추셔도 좋을 듯합니다. 곧 프랑스는 어떤 형태로든 유물을 돌려줄 겁니다.”
-그 잘난 척하는 프랑스를 무릎 꿇리다니. 정말 속이 후련합니다.
난 통화를 끊은 후 잠시 차분하게 상황을 되짚어봤다. 모든 게 잘 흘러가고 있었다.
프랑스에서 소문을 막는다면, 나로선 나쁠 게 없다.
내 자신이 파라오의 저주를 퍼뜨리는 사람으로 알려져서 얻을 이익이 없다.
루브르로부터 유물을 돌려받고, 이집트 내에서 강한 신뢰를 얻을 수 있으면, 내가 이번 외유로 얻을 수 있는 최선의 결과를 모두 달성한 것이다.
다행히 돌아가는 직항편은 대한항공이었다.
난 퍼스트 클래스의 안락함을 느끼며 달콤하게 잠이 들었다.
꽤 만족스러운 외유였다.
* * *
기대했던 바와 달리 프랑스 정부는 공항에서의 대소동을 막지 못했다.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 언론을 통제하려 했지만, 공항은 모든 국적의 사람들이 드나드는 곳이다.
당시 공항에서 상황을 지켜봤던 꽤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본 미스테리하고 흥미로운 사건을 자신의 sns나 너튜브 채널, 커뮤니티에 쏟아내기 시작했고, 내가 한국에 도착하기도 전에 이미 온 세상의 인터넷이 드골 공항의 미스테리로 난리였다.
난 무려 비행기에서 한국 외교부에서 온 확인 전화를 받아야 했다.
내게 연락한 사람은 역시나 나와의 소통을 쭉 이어오고 있는 강영식 과장이었다.
뜬금없이 연결된 기내 전화여서, 강 과장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 궁색했다.
자다 깨서 머리가 순간적으로 멍한 것도 있었다.
“과장님이 지금 말씀하신 정보엔 확실한 사실과 확실하지 않은 사실이 뒤섞여 있습니다.”
-그렇습니까?
“우선 알려진 사건은 모두 사실입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에서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동굴이 발견된 것도 맞고, 그 안에서 유물 반환을 지시하는 석판이 나온 것도 사실입니다.”
-대단한 일이네요.
“네. 그동안은 이집트에서도 매우 중요하게 여겼던 문제여서 말씀드리지 못했습니다. 제가 문구를 해석하고 프랑스에 유물반환을 요구한 것도 맞습니다. 단지 조금 다르게 알려진 것은 제가 파라오의 저주를 뿌렸다는 겁니다.”
강 과장은 자신은 그런 헛소문은 믿지 않았다고 이야기했지만, 실제로 그 사람들이 괴질에 죽었다는 말에 너무나 놀랐다.
-사람이 죽었다면, 파라오의 저주라는 게 정말로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사실 전 프랑스에서도 내내 비슷한 오해를 받았습니다. 괴질을 치료하라는 황당한 요구까지 받았습니다.”
-그렇습니까?
이야기가 점점 이상한 쪽으로 빠지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좋은 떡밥이 생각났다.
“어찌 됐든 프랑스는 이집트에 루브르 박물관 이집트관의 유물을 반환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네? 그게 정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실제로 사람이 죽는 바람에 잔뜩 겁을 집어먹었거든요. 저도 그 분위기에 편승해서 한국 유물 이야기를 꺼내뒀습니다.”
“한국 유물을요?”
“네. 의궤와 직지심경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어느 정도는 긍정적인 대답을 받았는데, 외교부 차원에서 프랑스 정부와 반환 협상에 들어가셔야 할 것 같습니다.”
역시 예상대로였다.
성실하지만, 출세욕이 있는 강 과장은 갑자기 외교부 손에 떨어진 2점의 국보 이야기에 흥분해서 파라오의 저주 같은 황당한 이야기를 잊고 말았다.
하지만, 입국장의 게이트를 통과하자마자 난 눈빛을 빛내는 꽤 여럿의 기자들을 마주해야 했다.
희택이가 얼른 내 앞을 막았지만, 기자들의 광기어린 눈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