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uck at the gate alone RAW novel - Chapter 120
120화. 속이 풀리다.
푸른 물고기가 사신 중 하나인 청룡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다.
‘흠?’
단지 신성력이 끝없이 빠져나갔다.
나비가 백호가 됐을 때도, 마생목 숲에서 닭이 주작으로 변했을 때도 신성력이 빠져나갔지만, 이번 푸른 물고기 때는 차원이 달랐다.
신기했던 것은 신성력이 빠져나갈수록 이질적이지만 새로운 종류의 힘이 신성력이 빠져나간 공간을 채운 것이다.
느낌이 달랐지만, 불안하지는 않았다.
새로 채워진 힘은 신성력처럼 포근하고 안온했다.
맛은 다르지만, 비슷한 결인 콜라와 사이다 같았다.
푸른 물고기가 내 몸을 가득 채웠던 신성력을 반 이상이나 빨아 먹고 나서야 난 내 안을 새로 채우는 힘의 실체를 알 수 있었다.
그건 시계신에게 향하는 레몽드 백성들의 신앙심이 아니라, 파라오를 향한 이집트인들의 마음이었다. 그러다 이번엔 또 다른 제 3의 힘도 느껴졌다.
놈모를 향한 말리인들의 신상심이 내게 향했다.
공중에 떠 있는 물고기의 짙은 푸른색 비늘이 조금씩 더 밝아졌다.
투명한 연파랑색 물고기가 된 순간, 급격히 체구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1미터도 넘어 보이던 녀석이 몸의 길이가 10cm의 작은 열대어 크기가 되어 내게로 날아왔다.
허공을 날아 내 눈앞에 물고기가 나타났을 때에야 난 그 물고기가 청룡이 아니라 물의 정령 운디네라는 것을 알게 됐다.
새로 생긴 두 종류의 신성력은 시계신을 통해 우회로 얻은 신성력과는 달랐다.
좀 더 직접적이었고, 더 선명했다.
[운디네, 생명의 근원]생명의 근원은 물이에요. 운디네는 물을 찾아내고 만들 수 있어요.
오옷.
물이 없어도 만들 수 있다니.
이건 정말 너무 대단한 일이다.
물이 흔한 한국에서야 여느 식당에 가도 물을 무료로 마시지만. 해외에서는 물 한 잔에 천원, 이천원을 매기는 건 흔한 일이었다.
사실, 운디네를 발견하고 나서 너무 기뻤지만, 난 조금 다른 걱정을 하고 있었다.
미국의 농장들이 말라버린 지하수 때문에 속속 문을 닫는다는 뉴스를 봐서였다.
같은 뉴스에선 지하수를 너무 많이 써버려서 지반이 무너져 내린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모습도 보여줬다.
자원은 한정되어있다.
운디네가 나타나자마자 난 운디네가 노움처럼 지표 속 물을 찾아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걱정은 역시 근원적으로 물이 없을 경우였다.
그런데 물을 찾는 것뿐만이 아니라 만들어낸다니.
이건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희소식이었다.
강수량이 너무 적어 아프리카엔 특정 지역을 제외하곤 지표수가 매우 부족한 형편이고.
말리의 북부 지역은 그 유명한 사하라 사막이다.
아프리카의 대표적인 강인 니제르 강이 국토의 남부를 통과하지만, 기본적으로 말리의 연간 강수량은 매우 적고 점점 사막화되는 지역이 늘고 있었다.
당장 해보고 싶었다.
운디네가 만들어낼 수 있는 수량(水量)이 얼마나 되느냐에 따라 다음 행보가 정해질 수도 있다.
말리의 사막에 녹지와 숲이 생긴다면, 모토바 대통령은 한국에 작은 말리를 만드는 대신, 말리에 한국과 비슷한 나라를 만들어 가는 선택을 할 수도 있다.
운디네를 도곤족 마을의 마생목 숲으로 보낼까 하다가, 직접 가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다.
살라만더를 시공간을 초월해서 보낼 수 있게 되면서, 난 도곤족 마을을 찾지 않고 있었다.
이참에 운디네의 능력을 직접 확인할 겸 마생목 숲에서 달걀을 찾는 아이들을 보고 싶었다.
숲이 자라는 만큼, 숲의 닭이 크는 것만큼 아이들은 빠른 속도로 자랐다.
하누아나의 아버지인 족장님을 만나서 어디에 물이 샘솟는 못이 생기는 게 좋은지 물어보는 게 농사를 위해서도 더 유리할 것이다.
게이트도 있으니 적당한 시간을 맞춰, 찾아가면 그만이다.
도곤족 마을은 레몽드 왕궁이나 하와이처럼 찾을 때마다 기분이 좋아지는 장소였다.
마을 아이들에게 뭘 사다 줄까 하다가 말리킹 버거가 생각났다.
도곤족 마을에서도 안젤리나 공주의 너튜브를 통해 말리킹 버거의 영상을 늘 보고 있으니 맛이 궁금할 것이다.
다짜고짜 킹 버거로 가서 200인분을 준비해 달라고 했다.
“200인분이나요?”
“응. 우리 말리킹 버거의 음식들이 궁금하다는 사람들이 있어서 좀 가져다주려고.”
“대박. 그런데 지금은 재료가 부족한데요.”
“지금 당장 준비해 달라는 게 아니야. 내일 오후 3시쯤 찾으러 올게. 괜찮아?”
“그럼 괜찮아요. 이따가 퇴근하기 전에 재료를 좀 더 넉넉하게 주문하면 돼요.”
“다들 사는 건 어때? 괜찮아?”
점장이자 5인방의 대표 격인 다르함이 활짝 웃었다.
다르함은 송가이족 대표로 선발됐는데, 말리의 가장 유명한 대학인 바마코 과학기술대를 수석으로 졸업한 부족과 나라가 기대하는 인재였다.
다르함이 한국어를 익혀 고작 햄버거집 직원으로 한국에 가는 문제에 대해서 부족내에서 격론이 일어날 정도의 뛰어난 재원이었다.
“네. 날씨가 추운 걸 빼면 너무 좋아요. 공기도 신선하고 먼지도 없고요.”
“그래? 혹시 말리에서 사람을 좀 더 불러오면 어떨 것 같아?”
다르함과는 좀 더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
난 다르함에게 모토바 대통령의 계획을 설명했고, 의견을 구했다.
“그렇게 되면 좋긴 한데, 좀 서운하기는 하네요.”
“응? 어떤 부분이 좋고, 어떤 부분이 서운한데?”
“저도 동생들에게 자주 듣는 이야기인데, 말리에선 이미 한국이 꿈 같은 나라거든요. 우리 대통령님도 그렇고, 안젤리나도 한국 국민들에게 엄청나게 사랑받고 있잖아요. 저희도 장사가 아주 잘 되고요.”
“그렇지.”
“다들 알아요. 프랑스 같은 나라에서 우리 말리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한국은 다들 다르다고 믿고 있어요. 한국엔 놈모의 대리자인 작가님도 있으니까요. 한국에 우리 돈으로 땅을 사고 사람을 불러올 수 있다는 건 좋은 일이에요.”
“그런데?”
“기왕 땅까지 샀는데, 영구 거주가 아니라 임시로 잠깐 살다가 다시 말리로 돌아가야 한다면, 그걸 좋아할 사람은 없을 거예요. 어쩌면 도망쳐서 불법체류자가 될지도 몰라요.”
다르함은 그 밖에도 꿈과 희망을 가득 가지고 와서 한국에서 어쩌다 마주치게 될 냉대나 멸시를 미리 알려야 한다고도 말했다.
기껏 와서 받은 일자리가 마음에 안들 수도 있다는 것도.
그러면서도 다르합은 부족하지만 모토바 대통령의 계획만이 빠르게 추진됐으면 좋겠다며 웃었다.
말리 안에서 보고 듣는 것보다 한국에서 직접 겪는 세계는 차원이 다르다면서.
“당장 동생들에게 한국어 공부를 더 열심히 하라고 해야겠는데요.”
“나도. 나도.”
다르함의 옆에서 콜라를 마시며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밤바라족 출신의 붕고도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적으로 좋은 생각이 났다.
“너희들이 해줘야 할 일이 있어.”
“네? 뭔데요.”
“너흰 알잖아. 한국어만 잘한다고 한국에서 환영받을 수 있는 게 아니야. 한국과 말리는 너무 다른 나라잖아. 너희가 한국에서 살면서 한국에서 해야할 일들이나 다르함이 말한 것처럼 혹시 겪을지도 모르는 불쾌한 일들, 간단하지만 필수적인 한국어 같은 걸 가르쳐 줘.”
“저희가요?”
“그래. 너흰 직접 살고 있는 사람들이니 더 믿음이 갈 거야. 어차피 너튜브 채널도 있잖아. 영상 편집이 가능한 직원을 붙여줄게.”
“해 볼게요. 역시 작가님이세요. 작가님 말처럼 저희 뒤에 올 사람들도 착하고 좋은 사람이어야지 저희가 받는 사랑을 계속 받을 수 있을 거예요.”
제법 근사한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조금은 가벼워진 기분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 * *
“어디 갔다 왔냐? 작업실에서도 일찍 나갔다던데?”
“좀 걸었어. 심사가 복잡해서.”
“왜?”
“골치 아프잖아. 대영박물관 쪽에서 유물반환을 전면 거부했는데, 프랑스에서 있었던 일 생각하면 영국에 아드바크를 보낼 수도 없잖아. 그냥 모른 척 넘어가려고 했는데, 이집트에선 영국이 건방지다고 난리고.”
잠깐 좋아졌던 기분이 다시 푹 가라앉았다.
내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젓던 희택이는 빠르게 영국 관련 뉴스를 컴퓨터로 검색했다.
최근 안젤리나 공주에게서 통역 목걸이를 얻은 희택이는 업무의 영역과 속도가 빠르게 늘고 있었다.
“어?”
“왜?”
“어쩌면 네가 아드바크를 보내지 않아도 잘하면 잘 해결되겠는데?”
“어? 왜?”
“영국에서 얼굴에 점이 있는 프랑스인들의 영국 입국을 금지했어. 신체 검문도 추가하려고 하나봐. 지금 그걸로 완전히 난리인데.”
과학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유물반환을 거절하더니, 이번엔 얼굴이 점이 있다는 말 같지도 않은 이유로 프랑스 인의 영국 입국을 금지하다니.
“프랑스 인이 영국에 입국하려면 2년 전에 찍은 여권 사진에도 점이 있어야 한다네.”
“에? 여권 사진 같은 것도 점 같은 건 보정하잖아. 그런 사람들은?”
“당연히 입국 거절이지. 그렇지 않아도 브렉시트로 가장 가난한 선진국이 된 영국이잖아. 반대여론도 꽤 세. 고작 유물을 지키겠다고 입국자를 제한한다고 다들 난리야.”
가능한 이야기다.
영국 시민의 입장에선 대영박물관을 보러 오는 사람들보다 얼굴에 점이 있다는 얼토당토 않은 이유로 입국이 거절된 가장 가까운 프랑스 사람들이 훨씬 더 소중할 것이 뻔했다.
“프랑스 쪽도 난리야. 이번 사건의 책임을 지고 대통령이 하야해야 한다는 여론조사가 65% 이상이야.”
“그럼 좀 더 두고 봐도 되나?”
“일단 있어 봐. 이집트 쪽엔 지금 양국 상황을 알려주고 좀 달래면 되잖아.”
어차피 이집트 쪽에서도 내가 아드바크를 보내 괴질을 일으켰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없다.
그들은 이 괴질이 신의 분노라고 믿고 있었다.
희택이 말대로 앨시서 대통령에게 전화가 오면, 양국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을 이야기하며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며 기다리자고 할 작정이었다.
신께서 마땅한 결정을 내리실 거라고 하면 되겠지.
희택이와 엄마의 식당에서 저녁을 함께 먹었는데, 그 사이 강영식 과장에게 전화가 왔다. 강 과장의 대답은 애매했다.
-작가님께서 전하신 말리 대통령의 제안을 듣고 각 부처가 모여 장시간 회의했습니다. 결론을 먼저 말씀드리면 농공단지를 만드는 것은 좋지만, 그곳에 집단 주거 시설을 만드는 것은 사회적 불안을 야기할 것 같아서 어렵다는 의견입니다.
“역시 그렇습니까?”
-대신, 말리와 저희 대한민국은 전략적 동반자 협정을 맺은 만큼, 한국어 가능자에 한해 단기 취업비자를 대폭 늘릴 용의는 있습니다.
“네. 정확한 숫자와 한국어 능력 정도를 알려주시면 말리 쪽에 전달하겠습니다.”
-말리에서 생산한 금은 전량 한국은행을 통해 매입하겠습니다.
전형적으로 좋은 것만 빼먹고, 불편한 일은 하지 않겠다는 마인드였다.
화가 나진 않았다.
운디네의 출현으로 말리에도 새로운 방법이 생기기도 했고, 말한 것처럼 한국이 아니더라도 돈만 있다면 비슷한 작업을 할 수 있는 곳은 많다.
순간.
좋은 생각이 났다.
“네.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그런데, 금 구매건은 좀 어려울지도 모르겠습니다.”
-네?
“강 과장님과 전화를 한 뒤, 이집트의 외교부 국장님과도 통화를 했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말리의 계획을 이야기했더니, 말리 사람들을 이집트에서 고용하겠다고 나서시더라고요.”
-이집트에서요?
“네. 말리는 프랑스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이 많고, 영어에 익숙한 사람도 많아서요. 정착촌 문제도 나일강 주변에 빈 땅이 많으니, 수량이 적당해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을 국가 차원에서 분양해주겠다고 했습니다.”
갑자기 나타난 이집트라는 경쟁자에 강 과장이 긴장한 것이 느껴졌다.
나는 계속해서 말했다.
“그러던 중에 말리에서 금이 대량으로 채굴된 소식을 듣더니, 이집트에서 그 금을 사겠다고 나섰습니다. 그것도 할인된 가격이 아니고 국제 시세로요. 모토바 대통령은 신의가 있는 사람이지만, 가난한 나라의 대통령이지 않습니까? 아직 실제 계약이 체결된 것도 아니고요. 톤 단위의 매장량이 확인됐다던데, 2%는 너무 큰 돈이라 설득이 어려울지도 모르겠습니다.”
-작가님. 내일 다시 통화하시죠. 지금 들은 정보를 바탕으로 다시 회의하고 내일 바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꺼억.
통화를 마치자마자 속에 쌓였던 체증이 내려앉으며 트림이 나왔다.
속이 한결 편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