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uck at the gate alone RAW novel - Chapter 125
125화. 김상민의 설명.
영국의 언론들이 내게 물은 건, 과연 어떻게 하면 영국의 경제가 다시 활력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거였다.
당황스러웠다.
나는 경제학 전문가도 아니고, 영국에 대해 딱히 생각해 본 적도 없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하지만, 해주고 싶은 말은 있었다.
난 나를 찾아 대전까지 내려온 영국 언론의 한국 주재 기자에게 우선 지금 내가 하는 말들은 영국의 국민에게 하고 싶은 말일 뿐, 전문가도 나이도 아직 어린 내가 대영제국이라 불렸던 영국을 향한 조언과 충고를 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냥 의견의 하나로 생각해 달라고 당부한 뒤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사실 전 영국에 경제 위기가 닥친 것도, 굶는 아이가 그 정도로 많은지도 몰랐습니다.”
“그런가요?”
“네. 한국과 영국은 거리가 멀기도 했고, 몇년 전까지만 해도 전 가난해서 해외여행을 다닐 형편이 되지 못했습니다. 영국과 상관이 없던 제가 굳이 이 인터뷰에 나선 것은, 제가 잘못을 수습하는 일반적인 방법을 알고 있어서입니다.”
“그렇습니까?”
난 동양엔 인과의 법칙이 있다고 말했다.
“인이란 일이 벌어진 원인, 과는 결과를 말하는 말입니다. 어떤 일이 일어난 데엔, 결국 그 일이 일어난 이유가 있다는 뜻입니다.”
“영국의 불황에도 이유가 뜻이겠군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발생한 문제에 대한 원인을 찾는 건 쉬운 일은 아니에요. 뻔해 보이는 문제도 여러 이유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거든요.”
난 이번 ‘파라오의 저주’에 관한 문제를 예로 들었다.
“기자님은 왜 영국 정부가 그냥 이집트에 유물을 돌려주면 되는 간단한 대책 대신 점이 난 프랑스 사람들의 입국을 막는 바보 같은 선택을 했다고 생각하세요?”
기자는 뜻밖의 질문에 허를 찔린 듯했다.
한참을 고민하던 기자는 내게 다시 물었다.
“그러게요. 왜 영국 정부는 그런 선택을 했을까요? 처음엔 대영박물관을 찾는 관광객 때문에 그런 걸까 했지만, 프랑스 인들의 입국에 제한을 두는 것이 더 큰 손해가 될 것 같은데, 이유를 모르겠네요.”
“가장 큰 문제는 대영 박물관에 소장된 이집트의 유물이 영국 정부의 것이 아니라 대영박물관의 소유이기 때문일 거예요. 사유재산제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떠받치는 기본 원리 같은 거니까요.”
“아! 그렇겠네요.”
“하지만, 영국 정부는 프랑스에서 일어났던 엄청난 사태를 직접 눈으로 봤죠. 프랑스는 유물을 돌려주는 것으로 모든 소요가 끝났다는 것까지도요. 정부는 다소 무리가 따르더라도 이집트에 유물을 돌려주는 결단을 했어야 해요.”
기자는 내 말에 적극적으로 맞장구를 쳤다.
하지만, 내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난 그가 마음에 걸릴만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꺼내기 시작했다.
“영국 정부가 당연해 보이는 쉬운 결단을 할 수 없었던 것은, 영국 정부가 내릴 그 당연한 결정에 반대할만한 사람들이 무척 많아서예요.”
“네?”
“사회는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돼요. 하나의 층위로 이룰 수 없죠. 영국은 제국주의 시대를 연 그레이트 브리튼이지만, 2차 대전 이후 주도권을 잃은 잊힌 제국이에요. 하지만 소수지만 그 시대를 경험했던 노인층이 여전히 살아 계시고, 그 시대의 정서를 향유하는 매우 많은 사람이 있어요.”
기자의 눈이 진중해졌다.
이는 영국 내에서도 종종 말이 나오는 문제였다.
난 영국인들을 무작정 비난하지는 않았다.
“이성적인 판단보다 감정적 판단이 앞서는 사람은 인류의 절반은 될 거예요. 과거의 유산이 현대에 영향을 미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에요. 예를 들어 한국은 전쟁을 끝낸 지 벌써 70년이나 됐지만, 북한과의 전쟁을 겪지 못한 대부분의 사람들도 북한에 대한 적대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죠. 대를 이어 흐르는 대영제국인이라는 자부심, 우수한 영국인이 하등한 제3세계인을 함부로 해도 된다는 우열의식은 영국인들의 DNA중 하나예요.”
하아.
기자가 한숨을 토했다.
“만약 영국 정부가 이집트에 유물을 돌려줬다면, 제가 말한 DNA를 가진 사람들에게 엄청난 비난을 받았을 거예요. 하지만 그 결단을 하지 못해 12명이 죽었어요. 비난받더라도 돌려주는 게 옳은 판단이었죠.”
빌드업을 마친 난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사람은 모두 달라요. 각자의 성장 환경이라던가, 교육 수준에 따라 사안에 대한 판단기준이 다르죠. 때로 무작정 싫은 일들이 있죠. 그것이 옳다고 여겨지는 것들이라도요. 예를 들어 동성애 결혼 같은 문제요. 아. 전 정치적 올바름을 이야기하려는 건 아니에요.”
“그러면요?”
“사안에 대해 제대로 보는 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이익을 따져야 하죠. 영국이 힘들어진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EU체제에서 탈출한 것이지만, 전 지금도 영국 국민 대부분이 EU에서 탈출하는 일의 장단점을 모르고 있다고 믿고 있어요.”
난 드러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그 사안에 대한 불편부당한 시선과 그 일이 일어난 원인을 살펴 과감히 수정하되, 국민의 이해를 돕기 위한 제대로 된 설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자존심을 앞세우는 국민들에게 실리적인 판단을 이해시키고 납득시켜야한다고 말했다.
“설명은 중요해요. 어쩌면 제가 하는 일과 비슷할지도 모르겠네요. 번역은 문장을 그대로 직역해서 전달하는 일이 아니에요. 그 말이 지닌 뉘앙스나 속 뜻을 파악해서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는 말로 풀어서 설명하는 일이죠. 지금 영국 정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사회의 잘못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객관적인 눈과 그 잘못을 해결할 수 있는 차가운 이성, 그리고 불편함을 느낄지도 모르는 국민에게 친절하게 설명할 수 있는 입이에요.”
그날, 난 내가 생각하기에도 말을 잘했다.
내 인터뷰는 그대로 영국 언론을 탔고, 이례적인 조회수를 기록했다.
바로 다음 날 연락 온 BBC는 내게 영국이 이집트의 유물을 왜 돌려줘야 하는지에 대해 설명을 부탁했다.
난 마주 앉은 기자에게 간단히 이번 일을 설명했다.
우선 이집트의 유물은 영국에 있어선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큰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애초에 이집트 거였다는 걸 배제해서 생각해도 마찬가지에요. 아이들 먹을 거리를 걱정하는 사람들 중에서 대영 박물관에 이집트 코너가 있든지 없든지 중요한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요. 오히려, 프랑스에서 일어난 괴질 같은 심각한 일의 원인일지도 모르는 유물을 반환하고 이집트인들의 마음을 얻는 것이 더 이득이 되는 일이죠.”
“네?”
“이집트는 산유국이에요. 영국과 그리 멀지도 않죠. 이집트는 1억 1천만의 인구를 가진 소비시장이기도 해요.”
“……!”
“전 영국이 EU에 복귀해야 한다고 믿지만, 그 전에 1억 1천만의 시장을 잡는 게 낫다고 생각해요. 이집트는 아프리카와 중동의 관문이 될 수도 있는 나라에요. 유물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중요한 나라죠.”
현재 ‘파라오의 저주’라고 이름 붙은 괴질에 가려져 모두가 잊고 있지만.
이집트는 아프리카 안에서도 손꼽히는 시장 중 하나였다.
난 아프리카나 중동에서 벌였던 영국의 제국주의에 대한 비난을 하지 않았다. 그저 지금 순간 영국이 택해야 하는 선택에 집중했다.
사회를 맡은 영국 방송의 기자는 내게 영국 사회의 다양한 문제에 대한 의견을 물었지만, 난 거기에 대해서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대답을 정부 관계자들에게 미뤘다.
“지금 기자님이 하신 질문을 영국 의회와 정부에 그대로 전달해 주세요. 저한테 물을 일이 아니잖아요. 하지만 약속드릴게요. 영국이 이집트에 유물을 돌려주신다면, 전 정부 관계자의 대답을 영국 국민이 알아들을 수 있게 다시 설명하겠습니다.”
기이하기 그지없는 제안이었다.
자국 언어로 된 정부의 답변을 외국인 통역사가 통역해서 국민에게 다시 설명하겠다는 대단히 독특한 통역이었다.
하지만, 내 제안은 엄청난 호응을 얻었다.
사실상 정부의 의도를 제대로 파헤쳐 알려주겠다는 말에 모두가 찬성표를 던졌다.
영국 정부는 고작 이틀 만에 유물반환을 결정했다.
‘김상민’이라는 이름이 아프리카를 넘어 영국 사회에 크게 알려지는 순간이었다.
* * *
난 무려 일주일에 한 번 무려 BBC 메인 뉴스에 15분씩 출연하기로 했다.
내가 영국 국민에게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한 결정이었다.
이 일은 국내에서도 엄청난 화제가 됐다.
내가 영국 정부와 국민 사이의 소통창구가 됐기 때문이다.
난 국민이 궁금한 것을 묻고, 정부의 대안을 들어 그것을 다시 국민에게 다시 설명했다.
난 그 역할을 하기에 꽤 적당한 사람이었다.
난 객관적인 시선으로 사안을 대할 수 있는 외국인이었고, 영국 사회에 뿌리가 깊은 각종 이권과 줄서기에서 자유로웠다.
정부의 대응이 이해가 가지 않으면 계속 물어서라도 대답을 가져왔고,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문제면 그걸 그대로 이야기했다.
난 행정력이 뛰어난 한국 정부와도 끈이 닿아 있어서, 영국 정부의 대응보다 더 나은 방법을 찾아서 역으로 제안하기도 했다.
-작가님, 대박이에요! 여론조사 결과 지지율이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의외의 일이 벌어졌다.
사실상 정부의 정책을 칭찬하기도 하지만 비난하기도 하며 적나라하게 해부하는 논담이었지만, 오히려 이는 정부와 정책에 대한 신뢰를 높이고 있었다.
금요일 메인뉴스의 코너 ‘김상민의 설명’은 단번에 인기 코너가 됐고, 난 프랑스의 국영방송사 TF1으로부터 같은 코너를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기도 했다.
“프랑스에서도요?”
“네. 그쪽도 일이 많더라고요. 거절했어요.”
“아니, 왜요?”
“언제까지 이런 일을 해요. BBC 일도 이집트의 유물반환 절차가 끝나면 그만 둘 거예요.”
“아니, 그래도…….”
강 과장은 내 선택을 이해하지 못했다.
난 점점 국제적으로 중요 인사가 돼 가고 있었지만, 그 과정에서 한국 정부와 조금씩 멀어지고 있었다.
강 과장을 필두로 한국 정부는 계속해서 내게 연락해왔지만 나는 적절히 끊어내고 있었다.
하지만 정말로 일이 많았다.
내 농장 사업에 전국적인 관심이 쏠렸다.
꽤 많은 지자체에서 나와 희택이에게 연락해왔다. 말리 청년들과 함께 새로운 도약을 꿈꾸겠다는 사람도 꽤 많았다.
그리고 그런 과정에서, 정부의 너무 까다로운 이민정책이 적나라하게 비판받았다.
이에 대해 정부에서도 연락이 왔었지만 마땅한 개선책 없이 좋은 말 좀 해달라는 게 전부라 무시했다.
“네 엄마 고향은 어떠냐?”
“조마요?”
“어. 조마. 네 외삼촌도 있고.”
“거긴 시내랑 너무 가깝지 않아요? 땅값이 너무 비쌀 텐데요.”
“조마도 촌구석으로 들어가면 아주 형편없어. 거기도 애들이 부족해서 학교도 분교가 됐다더라. 그나마 그 분교도 1, 2학년은 아예 없대고.”
“그래요?”
“문현리 이장이 네 외삼촌이랑 친구라는데, 그 친구가 전화와서 사정사정하더라. 그리고 젊은 사람이 아예 없는 동네보다는 그래도 어느 정도 사람도 있는 편이 낫잖아.”
좋은 조건이었지만, 엄마의 고향은 찐 경상도다.
외지인에 대해 배척하지는 않을지 걱정되었다.
“말리 사람들에 대한 경계심이 있지 않을까요?”
“그건 약속하더라. 네 외삼촌 말로도 텃세나 그런 건 없다고 하더라고. 그리고 네가 농장에서 월급을 주기만 하면, 땅을 전부 내놓겠다더라.”
“그래요?”
“어. 동네 2개를 전부 살 수 있어. 각종 농기계들도 다 있어서, 당분간은 말리 사람들 없이도 운영할 수 있기도 하고. 조건이 좋아.”
아버지와 그런 대화를 한 게 이틀 전이었다.
관련자들과 통화하며 얼추 초안을 잡아가는데, 강 과장에게서 연락이 왔다.
“안녕하세요, 작가님. 정부에서 요청이 왔는데 말입니다….”
오랜만에 찾아온 강 과장은 내가 농장보다는 국제적 영향력을 유지하며, BBC에서 하던 정책 홍보를 KBS에서도 해주길 바랐다.
지지율을 생각하는 속셈이 노골적이었다.
나는 단호하게 거절하며 대답했다.
“아니요. 농장을 어디다 지을지 결정했어요. 이번 주 안으로 농지 구매에 들어갈 거예요.”
“벌써요? 어디입니까?”
“김천시 조마면 문현리요. 외삼촌이 계시는 곳인데, 아주 낯선 곳보다는 일단 시작부터 하고 대규모 농장지를 2차로 수배하는 쪽으로 발전시키려고 합니다.”
“…정부에서는 걱정이 많습니다. 김 작가님이 추진하는 농공단지나 농장사업은 현실적으로 성공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전 경제적으로 성공하기를 바라는 게 아니에요. 돈을 이미 충분히 벌고 있어서요.”
“농장의 인력은 어떻게 해결하실 생각이십니까?”
“일단 당장은 동네 분들을 고용할 생각입니다. 정부에서 허가한 단기 계절노동자 중 저희 농장에서 배정받을 수 있는 최대한을 받을 생각이고요.”
강 과장은 내가 새로 하는 농장 사업에 국제적 시선이 모일 것을 걱정했다.
“새롭게 시작하는 일이에요. 분명 잘 되지 않는 부분도 있을 거예요. 전 이번 농장 건으로 제가 난민이나 이민자들을 받아들여서 생기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가는지를 보여줄 생각이에요. 이미 BBC와 탐사 다큐멘터리 계약도 했어요.”
“네?”
“그러니 한국 정부도 최선을 다해 주세요. 한국 정부의 대응도 BBC 보도를 통해 세계로 타전될 거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