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uck at the gate alone RAW novel - Chapter 130
130화. 보고 있나?
말리의 거주비자 발급이라.
이에 대해 정부에게 받은 연락은 아무것도 없었다.
판단이 서지 않을 땐 잠시 뒤로 미룬다.
농장을 키우는 건, 농사를 짓는 것과 비슷한 면이 있다.
결과물을 얻을 때까진 시간이 걸린다.
당장 뭘 하지 않아도 큰 문제가 생기진 않는다.
봉화군의 제안에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다.
그 뒤로 쏟아진 다른 이들의 제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정부와 혹시 모를 대립각을 세울 이유가 없다.
하지만 내가 잠잠하다고 해서 사람들이 조용해지는 것은 아니다. 연일 정부의 정책에 대해 찬성과 반대를 논하는 자들로 여론이 들끓기 시작했다.
때때로 나로 인해 촉발된 대립에 관해 의견을 묻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상식적이고 원론적인 대답을 반복했다.
사회의 발전이란 것이 원래 그랬다.
이론으로 세운 예방책보다, 현실에서 겪으며 대처한 경험이 수백 배는 유용했다.
정부의 정책 역시 선제적으로 생기기보다는 결국 지금처럼 사회적 갈등이 촉발된 후, 그걸 수습하는 과정에서 마련되고 실행되었다.
상황을 지켜보는 동안, 농장은 계속해서 굴러갔다.
자두를 모두 팔았다.
자두의 매출액은 작년보다 2배 가량이나 높았지만, 자두 농가가 손에 쥐는 목돈은 많지 않았다.
계약에 의해 판매액의 20%만을 지급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것도 적은 돈이 아니었지만, 쇼핑몰에서 팔리는 가격과 자기 밭에서 출하되는 양을 정확히 알고 있는 할아버지들이 이 일로 문제를 삼지 않을까 좀 걱정하긴 했다.
물론 내가 매일 일당을 지급하고 있다고 해도, 원래 사람은 이미 받아버린 돈은 쉽게 잊기 마련이어서였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매일 할아버지 할머니를 응대하는 미영이에게 반응을 물었더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럴 리 없잖아요.”
“응?”
“예전엔 자두를 팔기 전까지는 계속 돈이 들어가다가, 수확할 때야 겨우 돈을 만지는 거였잖아요. 그런데, 요즘은 농사짓는 데 들어가는 돈은 우리가 모두 내고 일주일에 한 번씩 따박따박 일하는 만큼 일당이 나가니까 손에 쥐는 게 훨씬 많잖아요.”
“그래?”
“힘든 일도 말리 5인방이랑 하누아나가 다 도와주기도 하고요. 이것만 봐도 얼마나 사정이 좋아졌는지 알 수 있어요.”
미영이가 보여준 건 쇼핑몰의 주문리스트였다.
농장을 사들이고 우리가 처음 들어왔을 때보다 족히 두어 배의 물품이 동네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만큼 주민들의 수요와 씀씀이가 커졌다는 뜻이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게 다가 아니에요.”
“뭐가 또 있어?”
“강곡리의 하나로마트에서 퇴근 전까지 3만 원 이상 시키면 배달해주기로 해서요. 거기서도 적어도 하루에 2번 이상 주문하거든요. 정말 동네가 많이 바뀌었어요.”
동네가 바뀐 점은 또 있었다.
동네에서 외부로 보내는 택배 역시 엄청나게 늘었다.
문현 농장이 유명세를 타며, 자신이 생산한 맛있는 농산물을 자식들이나 지인들에게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문현 농장은 상당히 발전하고 있었고, 확실히 농장의 구성원들은 그 혜택을 톡톡히 보고 있었다.
그 결과가 바로 나타났다.
떡을 해오셨던 복사골 할머니가 날 찾아오셨다.
“김 사장.”
“네 할머니.”
“여긴 우리 손잔디, 올해 군대를 다녀왔어. 학교는 고등학교까정 나왔고.”
“네.”
“우현아. 어서 인사를 드려.”
“김우현입니다.”
말썽깨나 피웠을 얼굴이었다.
얼굴에 반항기가 가득했다. 취업을 부탁하는 것인가 했더니, 역시나였다.
“공부는 잘 못했습니다. 대신 몸으로 하는 건 뭐든 자신 있습니다. 받아주십시오.”
덩치가 좋았다. 반항 어린 눈 또한 힘을 쉽게 쓰는 인상에 가까웠다.
어쩐지 불쾌한 일이 있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우현이라고 했지?”
“네.”
“혹시 누굴 때리거나, 괴롭힌 적 있니?”
김우현의 눈에서 그러면 그렇지 하는 체념 같은 게 보였다.
“싸움은 좀 하고 다녔지만, 누굴 괴롭힌 적은 없습니다.”
“미안.”
“네?”
“못 믿겠어. 솔직히 농장에서 일하는 게 뭐 대단한 일도 아니고. 학력이 필요하지도 않아. 하지만, 이 일은 네 생각보다 더 큰 미래가 달려있어. 이렇게 하자.”
“아니, 김 사장. 뭘 어떻게 하려고.”
할머니의 만류에도, 난 김우현에게 선택권을 줬다.
한 달간 복숭아밭에서 일하는 동안 영상을 찍어 공개하고, 댓글에 학폭 사실이 확인되지 않으면 농장의 식구로 받아들이겠다는 제안이었다.
“댓글에 누가 시비를 털거나 거짓말을 하면요?”
“네 말을 먼저 들을게. 하지만 확인은 할 거야. 싫으면 시작하지 않아도 돼. 이 일은 한국의 젊은 사람이 하기엔 여러모로 불편한 게 많으니까.”
“혹시 미리 이야기하면 봐주나요?”
“뭘?”
“어렸을 때 한 짓이요. 고등학교 땐 걸리는 게 없는데, 중학교 때 애들 앞에서 폼잡고 그러느라고 몇 번 그랬던 적이 있어요.”
“때렸니?”
“네.”
“얼마나 심하게?”
“좀 많이요. 학폭위나 그런 건 열리지 않았었는데, 때리긴 했었어요.”
“몇 명이나?”
“기억나는 건 대여섯 명 정도예요.”
복사골 할머니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자가 다른 아이들을 때리고 다녔다는 말에 얼굴을 감싸 쥐었다.
문현 농장은 아직 시작단계다.
말리 사람들은 아직 오지도 않은 상황인데, 한국에서 김우현을 받아들이는 건 무리가 있다.
굳이 만들지 않아도 될 논란을 일부러 만들 필요는 없다.
하지만 아까 봤던 체념 어린 얼굴이 신경쓰였다.
“넌 왜 우리 농장에서 일하고 싶은 건데?”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는 없잖아요. 솔직히 기술도 없고 공부 머리도 없고 할 줄 아는 건 몸 쓰는 것 밖에 없어서요. 그리고 형이 좀 멋있어 보였어요.”
“내가?”
“네. 마음껏 하고 싶은 대로 사는 것 같아서요. 돈도 엄청 벌었다면서, 형 나이에 그 돈 벌어서 이런 데 쓰는 사람 없잖아요.”
다행이다.
김우현은 적어도 솔직하긴 했다.
난 김우현에게 다시 다른 제안을 했다.
“우리 농장에선 널 못 써. 취직한 순간 영상으로 얼굴이 팔릴 텐데, 자칫하면 농장의 이미지까지 나빠질 테니까. 잘못한 죄값은 받는 거야. 네가 애들 때리고 다니면서, 학교에서 처벌받지 않은 벌을 지금 받는 거라고 생각해.”
“…….”
“그래도, 중학교 때 일로 인생을 끝낼 순 없잖아.”
“네?”
좌절하던 김우현이 미심쩍지만, 그래도 희망이 깃든 시선으로 날 바라봤다.
“사과해. 때린 애들에게 가서 진심으로 사과해. 그때 왜 그랬는지, 왜 지금에 와서야 이런 사과를 하는지 그대로 모두 이야기해. 농장에 취업하고 싶어서 사과하러 왔다는 네 지금 처지도 솔직히 이야기하고. 어떻게 용서받을 수 있을지도 물어.”
“용서하지 않겠다고 하면요?”
“어쩔 수 없지. 용서해 주고 말고는 그 사람 마음이니까. 난 네가 그 모든 걸 다 하면, 난 그 영상을 올린 후 널 말리로 보낼 거야.”
“말리로요?”
“어. 한국에서 말고 말리에서 새로 시작해. 말리에도 문현 농장이 있으니까. 거기서 널 모르는 사람들이랑 새로 관계를 맺어. 아마 친절하게 널 대해줄 거야. 너도 그렇게 해 줘. 말리에서 1년을 보내고 여기 할아버지들이 말리 5인방을 대하는 것처럼 말리 부족분들도 그런 반응이 있으면, 난 대한민국 국민 전부가 반대해도 널 내 옆에 데리고 있을게.”
쉽지 않은 제안이다.
전국민에게 자신의 죄를 고백한 것도 모자라, 한국의 모든 것을 버리고 말리로 떠나야한다는 이야기니까.
심지어 말리 농장은 한국 농장에 비해 임금도 낮지만 거의 아프리카 깡촌 정도라, 환경도 좋지 않다는 것은 이미 너튜브를 통해 널리 알려진 상황이었다.
김우현은 잠시 망설이다가, 눈에서 눈물을 주욱 흘리더니 내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고맙습니다. 진짜로 열심히 해볼게요.”
***
김우현의 영상은 다시 논란에 불을 지폈다.
굳이 학폭 가해자를 써야 하느냐? 하는 의견과 중학교 때 일로 평생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죄인처럼 살아가야 하느냐 하는 의견이 팽팽히 맞섰다.
하지만, 김우현이 자기가 괴롭혔던 사람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용서를 구하고, 그중 두 명에겐 끝내 용서받지 못한 채 아프리카 말리로 떠나자, 비슷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의 지원이 넘쳤다.
이미지가 묘하게 잡히기 시작했다.
농장은 정신적으로 지쳐 있거나, 학력이 부족하거나 사람들과의 관계가 불편한 사람들의 도피처처럼 보여졌다.
그리고 그건 한국에서만 있었던 일은 아니었다.
영국에서 날 찾아오는 젊은 사람들이 있었다.
말리로 보내도 좋으니, 자신이 살아갈 방법을 찾고 싶다고 했다.
계속 살아가고는 싶은데, 현실에 지쳐 절망 직전에 다다른 눈들이었다.
난 그중 선별한 영국 청년들 50명을 말리로 보냈다.
말리엔 해외 파견할 인력들에게 영어를 가르쳐줄 사람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영어 선생님으로 일하지만, 난 필수적으로 열흘에 한 번은 농장에서 일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숙식이 제공되지만, 영국 현지에 비해 형편없는 연봉이라는 것도 미리 고지했다.
하지만, 지원자들은 말리에서 새로운 삶을 찾았다.
땀 흘려 일하고, 환하게 자신들을 반겨주는 미소 속에서 말리 농장 사람들과 같은 걸 먹었다.
정서적 결핍에서 벗어나 건강함을 찾는 모습이 영상을 통해 공개됐고, 영국 현지에서도 한국에서도 굉장한 호응을 얻었다.
그때, 영국에서 연락이 왔다.
심지어 이번에는 전화도 아닌 방송국의 간부가 직접 농장으로 찾아와 내게 허리를 숙였다.
“작가님. 50명을 구해주신 것처럼 6,500만 명을 구해주셔야 합니다.”
“네?”
“김상민의 설명 코너를 다시 맡아 주십시오. 코너를 다시 맡아서 EU 재가입 문제를 국민들에게 설명해 주십시오. 궁금한 것은 대신 물어봐 주시고요.”
“제가요?”
“작가님 밖에는 없습니다. 작가님. 국왕께서 작가님을 버킹엄 궁으로 초청하셨습니다.”
‘국왕이 날?’
명예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초청은 전략적 차원에서 가치가 있는 일이었다.
내가 하고자하는 일들에 박차를 가할 수 있을 듯 했다.
작가님들이 그려내는 문현 농장의 일상은 땀이 가득하지만 아름다웠다.
문현 농장의 구성원들은 점점 사정이 좋아졌고, 그런 과정들은 모두 영상을 통해 국민들에게 직접 공개됐다.
어마어마한 조회수에 내가 안젤리나 공주의 너튜브 영상을 팔아먹는 용도로 문현 농장 프로젝트를 시작했다는 음모론이 생겼지만, 곧 여론에 밀려 사라졌다.
난 여전히 투자 대비 전혀 실익을 거두지 못하고 있었고, 문현 농장의 농산물 전부가 최상품으로 생산돼 고가로 팔려도 투자 수익이 실현되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이 보도됐기 때문이다.
더구나 난 말리에서의 볼륨을 계속 늘려가고 있었다.
말리 정부나, 송가이 족에서 돈을 내서 운영하는 독립채산적인 농장이라 하더라도 문현 농장은 3호 농장까지 늘었고, 말리 문현 농장산 농산물들은 말리 내에서 최고급으로 팔려나갔다.
바마코를 찾는 외국인 수가 역대 최고를 달리기도 했고, 바마코와 팀북두 등 주요 도시에 호텔이나 리조트를 짓는 해외 자본 투자가 이뤄지기도 했다.
난 아직 대사관이 없는 말리의 공식적인 한국 창구였고, 말리 정부에서도 그걸 인정했다.
인터넷의 갈등이 슬슬 현실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김상민이 이렇게 일을 열심히 하는데, 정부가 도와주는 건 무엇이냐? 라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내가 봉화군의 제안을 공식 거절하면서 중국 인세로 자금은 확보했지만, 지금으로서는 내가 농장을 또 하나 짓는다고 해도 1 농장과 같은 일이 벌어질 뿐이라고 대답했기 때문이다.
정부를 압박하진 않는다.
하지만 나라는 사람의 볼륨이 커지면,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아진다.
일주일에 한 번 방송 촬영 정도야 충분히 치를 수 있는 대가였다.
BBC 금요일 메인 뉴스에 김상민의 설명이 재개된다는 뉴스와 함께 내가 영국 국왕의 초청을 받아 만찬을 하고, 영국 시민과의 만남을 가지기로 했다는 소식이 BBC를 통해 영국에 알려졌다.
BBC는 150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자체 스튜디오에서 김상민의 설명 공개방송을 하겠다고 발표했지만, 곧 엄청난 지원자가 몰렸고 공개 방송의 규모는 점점 커져서 2만 석 규모로 늘었다.
난 작가님들과 안젤리나 공주, 하누아나와 희택이, 미정이와 함께 런던으로 출국했고, 일행에 안젤리나 공주와 하누아나가 있다는 것으로 말리에서도 내 아번 출국은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내 개인 일정이어서 한국 언론에 알리진 않았지만, BBC의 보도로 인해 이미 한국 대부분의 언론에서 나의 이번 국왕 예방과 런던 공개방송 일정을 상세히 소개했다.
“작가님. 이번 국왕 예방 때 영국 국왕과 어떤 이야기를 나누실 예정이십니까?”
“최근 말리에 저수량이 엄청난 지하수층이 발견됐습니다. 영국은 전형적인 식량 부족국가기도 합니다. 영국 자본으로 말리에 대규모 농장을 개발하는 일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영어를 배우고 있는 말리 청년들의 영연방 취업도 부탁해볼 생각입니다.”
“협의가 된 사항입니까?”
“네. 사인만 남았습니다. 일이 막히면 돌아가면 됩니다.”
출국을 기다리며, 핸드폰에 뜬 속보뉴스를 확인했다.
내가 출국하며 인사하는 모습의 사진과 함께 오른 기사 제목이 근사했다.
‘한국 정부, 보고 있나?’ 였다.
계획은 더없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