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uck at the gate alone RAW novel - Chapter 132
134화. 신의 징표.
영국을 다시 찾는 것은 좀 위험한 일이었다.
한국 사람들이 5만 명 정도 가입했지만, 영국 국민 중 35만 명 정도가 10유로짜리 펀드를 샀다.
당연히 말리인들을 위해 돈을 낸 영국인들과 대화하고 말리의 미래에 관한 논의를 하고 싶은 마음이 있긴 했다.
하지만, 영국엔 EU 재가입을 극렬하게 반대하는 세력이 있었다.
게다가 20대의 동양인인 내가 선생님이나 작가님 소리를 들으며, 유럽의 환경규제에 대해 비판하는 일을 꼴사나워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대영제국 국민인 자신들이 EU 재가입을 위해 허리를 숙여야 한다는 불만이 나를 기점으로 터져 나온 것이다.
하지만 난 관찰하고 설명할 뿐, 영국의 미래를 결정하거나 어느 한쪽으로 밀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무엇보다 난 이방인으로서 영국을 대하고 싶었다.
국왕에게 왜 내 재방문을 원하는 것인지를 물었다.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그런 것은 아닙니다. 김 작가가 찍어온 영상을 봤습니다. 김 작가가 지금 말리에 가져가는 음식들도 봤습니다.
“네.”
-왕실에서도…….
동정인가?
난 감히 영국 국왕의 말을 잘랐다.
난 비교적 단호하고 분명한 목소리로 왕의 제안을 거절했다.
“그러지 마십시오.”
-네? 그게 무슨 소리인가요?
“전 말리가 불모의 땅에 희망의 싹을 틔우는 장소가 됐으면 합니다. 영상을 보는 영국의 펀드 가입자들이 변화하는 말리의 모습을 보면서 용기를 얻을 는 게 제 이번 농장 펀딩 프로젝트의 목표입니다.”
-그런데요?
“동정은 사양입니다. 저희가 찍은 영상은 거친 사막속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현재를 보여주려고 한 것이지 빈곤 포르노를 제작하려 했던 것은 아니니까요.”
-그런 게 아닙니다.
국왕은 내가 한 것이 오해라며, 왕실에서 돕고 싶은 것은 말리 플라족이 아니라, 영국의 빈곤한 결식아동들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국가적 이미지를 위해 드러내지 않았을 뿐,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영국에도 빈민층이 있다는 것을 언급했다.
-제 마음도 김 작가 농장 노인들의 마음과 같습니다. 굶고 있는 어린 아이들에게 한 끼라도 배부른 아침을 먹이고 싶습니다. 하지만, 전 영국의 국왕입니다. 제가 하는 일은 언제나 주목의 대상이 됩니다. 전 김 작가와 결식아동 구호 프로그램을 상의하고 싶습니다.
영국 국왕이 무엇을 걱정하는지 알 것 같았다.
영국은 의원내각제 국가다.
국왕의 하나의 상징일 뿐, 실제의 나라 운영과는 관계가 없다.
하지만, 국왕과 왕실은 바로 그 국가의 상징이기에 국민의 굶주림에 더 큰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원래 왕이란 권한이 없어도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왕실의 예산 정도로는 영국의 모든 결식 아동을 구해낼 수 없다.
국왕은 우리 할머니들이 플라족 사람들을 돕는 것처럼, 진심을 이끌어낼 만한 이벤트를 나와 함께 논의하고 싶은 것이다.
귀찮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플라족 마을에서 기르던 염소를 죽이고 슬퍼하며, 식사시간에는 무표정한 표정으로 고기를 먹던 아이들의 모습이 여전히 내 머릿속엔 생생했다.
말리든, 영국이든 돈이 부족해 굶는 아이들을 일부라도 구하는 일이다.
생색을 좀 내면 어떤가?
남의 돈으로 내가 마음 아픈 아이들을 도울 수 있다면 난 얼마든 비행기를 탈 수 있다.
“반드시 좋은 생각을 해서 뵙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거절하지 않는군요.
“배고픈 아이들을 돕는 일입니다. 거절이라니요. 당치 않습니다.”
* * *
말리에 도착한 후 나와 안젤리나 공주는 항공 운송한 음식들을 말리의 냉동차에 그대로 옮겨 실은 후 바로 플라족이 지금 머무르고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나를 취재하려고 공항에 모였던 기자들과는 돌아갈 때 꼭 인터뷰하겠다고 약속했다.
“죄송합니다. 지금은 마음이 너무 급합니다. 한국에서 바마코까지 날아오는 내내 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음식을 싸주신 우리 할머니들에게 같은 농장의 식구들인 플라족이 잘 먹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음식을 전달하러 오신 것입니까?”
“네. 그리고 음식이 모두 떨어질 때까지 함께 살아보려고 왔습니다.”
“네?”
“가져온 음식을 모두 먹일 때까진 플라족 마을을 떠나지 않을 생각입니다.”
바로 며칠 전에 들렀던 마을은 여전했다.
얼굴을 봤던 내가 다시 마을을 찾자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난 모여든 사람들에게, 가져온 것들을 함께 나눠 먹으러 왔다고 말하면서 할머니들의 당부가 담긴 영상을 틀었다.
할머니들은 다정했다.
맛있게 했으니, 체하지 않게 천천히 먹으라던지.
다른 것보다 복숭아가 빨리 변할 테니 그것부터 먹으라던지.
한국도 전쟁이 끝난 후 아무것도 없는 나라였다며 용기를 내라는 말에 진심이 담뿍 담겨 있었다.
안젤리나 공주가 일일이 할머니들의 말을 통역했다.
가을걷이가 끝나면, 또 맛있는 것을 보내겠다는 할머니들의 다정한 말에 플라족 어른들의 눈에서 왈칵 눈물이 솟았다.
난 한 가지를 미리 밝혔다.
“할머니들이 보낸 음식 중에서 돼지고기 수육이 있어요. 종교적으로 허용되지 않는 거라는 건 잘 아는데, 억지로 챙겨주시는 걸 거부하지 못해서 그냥 가져왔어요. 따로 빼둘 테니 그건 드시지 마세요.”
“아닙니다. 모두 나눠 주십시오. 보내 주신 것이 독약이라도 저흰 그걸 먹겠습니다.”
목이 꽉 맨 목소리였다.
누군가하고 봤더니, 부족장 회의에서 늘 정장을 입었던 플라족의 족장님이었다.
“이 선량한 마음이 죄가 된다면, 죄를 짓겠습니다.”
“무리하지 마십시오. 계율을 어긴 죄로 종교적으로 문제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아니요. 전 잘 모르겠습니다. 김 작가님도, 농장의 할머니들도 저흴 보자마자 생긴 마음이 왜 저희가 믿는 신께는 없는 것일까요? 지옥에 가도 좋습니다. 그냥 전 이 세상에서 이 따뜻한 마음의 양식을 먹겠습니다.”
족장이 자신들이 평생 따라온 신에 대한 의심을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당황했다.
이런 식으로 일이 비화될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다.
일단 음식은 세팅하기로 했다.
광장 한가운데 늘어놓은 음식들. 한 켠에는 큰 솥이 걸렸고, 할머니들이 삶아서 싸준 수육을 찜기에 쪘다.
그리고 플라족 사람들은 마치 종교의식을 행하는 것처럼 한 점씩 돼지고기 수육을 나눠 먹었다. 다른 음식보다 먼저 수육부터 기다렸다 먹는 것이 거의 종교의식 수준이었다.
삶았던 수육을 얼렸다가 다시 찐 만큼 맛이 있기가 어려운 수육이었지만, 플라족들은 눈물을 흘리며 평생 처음 맛보는 수육과 쌈장을 맛봤다.
이 일은 반드시 문제가 될 것 같았다.
하지만, 플라족 아주머니들과 함께 고기를 나눠주며 웃고 있는 안젤리나 공주의 얼굴을 보자마자 걱정이 사라지고 말았다.
그래. 보살피는 마음이 없는 신이 왜 필요한가.
플라족에겐 꾸란과 칼을 들라는 신 대신 떡과 복숭아를 쥔 이계의 공주님의 따뜻한 손이 더 필요했다.
* * *
잔치처럼 산 건 겨우 하루였다.
그 다음 날부터 우린 플라족이 사는 방식대로 살았다.
혹독한 환경이었다.
더웠고, 목마르고 힘이 들었으며 바람이 심했다.
다만 배는 고프지 않았다.
우린 냉동차에서 매일 과일과 고기, 쌀을 꺼내 요리해서 나눠 먹었고, 아이들은 먹는 만큼 사랑스러워졌다.
촬영팀이 매일 수도인 바마코까지 오가며 안젤리나 공주와 내가 플라족 마을에서 지내는 모습을 한국의 문현 농장에 보냈고, 우리의 영상을 작가님들과 편집팀이 다듬어서 채널에 올렸다.
마을에 있는 동안엔 핸드폰을 하지 않아서, 안젤리나 공주나 나도 영상이 어떻게 소비되고 있는 것인지를 알지 못했다.
인터넷을 확인하는 촬영 팀에게 물어본다면 반응을 알 수 있었겠지만, 굳이 그러지 않았다.
나는 플라족의 구석구석을 알아본다는 핑계로 돌아다니며, 마을 사람들 몰래 운디네와 노움으로 땅 속에서 물을 찾고 있었다.
그러나 상황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대수층이 있긴 했지만, 물의 양이 한정적이었다.
비가 오지 않는다면, 도곤족 마을과는 달리 이 곳에서 새로운 환경을 만들어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대신 난 도곤족 족장님께 부탁해서 마생목을 심었다. 물이 부족해도 잘 자라는 나무라는 말에 플라족 사람들은 마생목을 심는 일 자체만으로도 기뻐했다.
하지만 이대로는 희망이 없다.
난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야 했다.
미래가 보지 않을 땐, 지금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한다.
일단 대수층에 좀 더 깊고 깨끗한 우물을 뚫기로 했다.
“우물을 파는 장비를 사줄 테니, 우물을 만들라고요?”
“네. 옮기는 유영지마다 우물을 계속 만드세요. 새로운 우물이 생기는 곳마다 숙영이 10배는 쉬워질 테니, 그곳을 중심으로 마생목 묘목을 심고 가꾸면서 미래를 준비하는 게 좋겠어요.”
“유목 생활을 계속해야 합니까?”
“지금 당장은 좋은 생각이 나지 않아서요. 하지만, 우물은 굳이 유목민이 아니더라도 필요한 것이니까요. 플라족은 우선 숲과 우물을 만듭시다. 한국에 사람을 보내주세요. 제가 전문 기술을 익힐 수 있게 돕겠습니다.”
* * *
안젤리나 공주와 내가 플라족에 머문 것은 19일이었다.
우린 냉동탑차 한 대 분의 음식을 모두 나눠 먹었다.
다시 만났을 때 우릴 반가워하던 아이들은 헤어짐에 슬퍼했다.
다시 찾아오겠다는 약속을 굳게 하고서야 사막을 떠나올 수 있었다.
돌아오는 길, 많은 생각이 들었다.
고작 19일이었다.
19일 만에 아이들의 얼굴이 변했다.
무표정하고 체념한 표정이었던, 무엇엔가 늘 화가 나있던 아이들의 얼굴에서 활짝 핀 미소와 헤어짐을 아쉬워하는 안타까운 표정을 만들고 우린 바마코에 도착했다.
말리에 다시 입국해서 20일 만에 모토바 대통령을 만났다.
대통령의 표정은 감격으로 가득했다.
“왜 그러십니까?”
“작가님. 혹시 정말 놈모가 아니십니까?”
대통령은 레몽드의 왕실이나 하와이 농장에 드나들 정도로 모든 일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
“아니. 정말 왜 그러십니까? 대통령님께선 모든 일을 다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말리 전역에, 아니 이슬람교를 믿는 아프리카와 중동 전역에 작가님과 안젤리나 공주, 그리고 플라족 사람들의 영상이 퍼졌습니다.”
“네?”
혹시 자살폭탄 테러 부대 같은 위협을 받아야 하나 걱정했는데, 모토바 대통령의 표정은 자랑스러움으로 가득했다.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종교지도자들이 작가님의 행동이 꾸란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것을 공언했습니다.”
“네? 돼지고기를 먹었는데도요?”
“네 그들은 작가님과 안젤리나가 알라의 뜻으로 알라의 아들들을 돕는 것이라 했습니다. 자비는 신의 일이라면서요.”
폭탄 대신 적극적인 수용인가?
하지만, 내가 무슬림이 아니라는 건 세상 모두가 알고 있는 일이다.
일이 어떻게 이렇게 됐는지가 너무 궁금했다.
이슬람은 종교에 관해서라면 타협이 없다.
모토바 대통령이 내게 다가와 귓속말을 속삭였다.
“영상이 공개된 후, 플라족 족장님의 말이 크게 퍼졌습니다. 배교를 선언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플라족이 위험할지도 모르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나섰습니다.”
“대통령님께서요?”
“네. 전 플라족 사람들은 모두 제 국민이니까요. 그리고 작가님과 안젤리나의 일이기도 하니까요. 알라를 대신해서 우리 국민을 돕는 작가님을 누구라도 행할 경우 전쟁을 불사해서라도 반드시 보복하겠다고 했습니다.”
알라의 이름을 언급하다니.
과했다.
하지만, 모토바 대통령의 선언에 동조하고 나선 사람이 있었다.
이집트의 앨시서 대통령이었다.
“앨시서 대통령도 작가님을 파라오의 사자라 칭했습니다. 국가의 명운을 걸고 작가님을 보호하겠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만약 작가님을 누군가 해친다면, 파라오의 저주가 닥칠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파라오의 저주는 다른 위협과는 달랐다.
파라오의 저주는 실재하는 현상이었다.
프랑스와 영국에서 없던 점이 늘어나는 사람들이 기하급수적으로 생겨나고 있었다.
이집트 사람들에게서 그 점이 신의 징표라는 게 알려지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신의 증표가 가진 위력과 두려움이 무신론자인 나와 안젤리나 공주를 알라의 자비를 대행하는 무슬림의 친구로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