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uck at the gate alone RAW novel - Chapter 155
157화. 거주의 자격 조건.
인천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주로 공항의 승객들이나 기자들이었지만, 우리 일행의 귀국을 맞기 위해 일부러 인천공항까지 나온 사람들도 있었다.
희택이가 그중 몇 명을 알아봤다.
우리가 계약했던 감자 농가분들이었다.
“아이고. 농사일도 바쁘신데 여기까지 어떻게 나오셨어요?”
“마음이 급해서요. 실장님이 농사만 잘 지어주면, 내년이나 내후년에도 계속 계약해주신다고 했지만, 어쩐지 불안하지 뭡니까.”
“상민아. 여기 평창 공기 1리 작목반 어르신들. 인사드려.”
“김상민입니다. 좋은 품질의 감자를 납품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번에 우리 감자가 맛있다는 소리를 아주 많이 들었습니다.”
수백 명이 모인 귀국 자리였다.
하지만, 나와 희택이는 마중나온 감자 농가의 농부들과 한참이나 이야기를 나눴고 그 장면은 그대로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의 핸드폰에 찍혔다.
“오빠. 잠시만요.”
미정이가 나를 살짝 불러서 돌아봤더니, 미정이가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의 무리를 가리켰다.
난 농가 작목반의 농부들에게 다가가 귓속말을 건넸다.
“괜찮으시면, 따로 뵙죠. 기다리는 사람이 많아서요.”
“따로요?”
“네. 이 실장을 통해서 연락드리겠습니다. 여기까지 마중나와 주셨는데, 식사는 같이 해야죠.”
“아이고. 대표님. 밥은 저희가 사겠습니다.”
내 귓속말에 작목반장이 고개를 90도로 숙이며 인사해서 나도 당황했다. 하지만, 다행히 작목반장은 곧 물러섰고 난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 앞에 섰다.
공항의 보안요원들이 앞을 막아서지 않았으면 대열이 무너질 것 같이 꽤 과열된 상황이었다.
많은 기자들이 내가 입국한 이유를 물었다.
질문은 적절했다.
그 질문만으로 내 거취에 대한 전반적인 사실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말리와 영국에서 해야할 일이 모두 끝났기 때문입니다. 물론 말리와 아부다비, 영국에서 각기 새로운 일이 생겼지만, 제가 해외를 떠돌며 사태를 수수방관하는 것도 옳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한국 국적을 정리하시겠다는 마음은 변함없으신 것입니까?”
가장 중요한 질문에 즉답하지 않고 잠시 뜸을 들이자 웅성거리는 소리가 커지다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고민이 많습니다. 전 이번에 말리 국적을 취득했고, 영국과 아랍에미리트에서 매우 융성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좋았지만, 확실히 제가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확인한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네? 그게 무슨 소리시죠?”
“편하지 않더라고요. 전 생각보다 더 많은 일을 하고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소시민으로 살고 있습니다. 조금 먹고 조금 싸도 아무런 불편함을 느끼지 않습니다. 각국의 지도자급 인사들과의 만찬보다 그냥 집에서 끓여먹는 라면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내 말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난 줄곧 그렇게 살아왔다.
베스트셀러를 쓰고, 드라마 작가가 됐을 때도 엄마의 식당이 크게 성공했을 때도 우리 가족의 삶이 바뀌지 않았다.
엄마는 큰 식당을 버려두고 동네 분들을 위한 더 작은 식당을 다시 만들었고, 나 역시 인생의 최절정기를 맞이했을 무렵 서울로 향하는 대신 엄마의 고향동네에 농장을 만들어 이사했다.
“그럼 한국에서 그대로 사신다는 말씀이십니까?”
“네. 일이 있을 때마다 출국해야겠지만, 한국에 뿌리를 두고 농장에서 살 생각입니다.”
국적을 버리지 않겠다는 내 말에 많은 사람이 안도했지만, 이번엔 내가 말리 국적을 취득한 것에 대해 딴지를 거는 기자가 있었다.
“그런 생각이시라면, 말리 국적을 취득하지 않으셔도 되지 않습니까?”
“전 좋은 농장의 주인인 한국인으로 살겠지만, 아프리카의 가난한 나라 말리를 위해서도 최선을 다할 작정입니다. 이미 말리 사람들에게 넘치는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원래 자기에게 잘하는 사람에게 잘하고 싶은 건 인지상정이지 않습니까?”
사람들 앞에서 난 누구를 위해서거나, 나라를 위해 어떻게 살겠다는 약속을 하지 않겠다고 못 박았다.
“다들 자기가 살고 싶은 대로 삽니다. 법률을 지키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며 살겠습니다. 전 기업가도, 정치인도 아닙니다. 사회활동가로서 살지 않겠습니다. 좋아하는 농장 일을 하면서 살겠습니다.”
대통령실장에 관한 질문이 이어졌고, 난 매우 분명하게 아직도 국민의 세금을 허투루 쓰는 실장을 이해할 수 없어서 실장의 조치를 반대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선거 때 반대표를 던지겠다는 것 정도뿐이라고 대답했다.
“정치에 관여하고 싶지 않습니다. 더는 말리인들의 입국을 위해 정부의 허락을 기다리며 매달리지 않을 생각입니다.”
“인구 소멸지에 농장을 늘려가겠다는 계획도 포기하시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런 정책은 저라는 개인이 아니라, 정부가 나서서 해야할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민자를 반기지 않는 국내의 정서를 받아들이겠습니다. 농장을 늘려가는 대신, 계약 농가를 늘려가는 방식으로 농가를 도울 생각입니다.”
난 우리 사회를 개혁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거창한 기치나 이념은 저랑 맞지도 않습니다. 그냥 제 일을 하면서 조금씩 건사하는 제 사람들을 늘려가겠습니다. 모두에게 이해받지 않아도 됩니다. 전 제 생각이 통용되는 땅을 전 세계에 걸쳐 늘려갈 생각이니까요.”
말리와 한국의 외교관계를 묻는 기자에게 난 말리는 한국 정부에 폐를 끼치지 않겠다는 말로 정부간 대화는 줄어들 것이라 단언했다.
“하지만, 말리 국민 전부가 매일 프라임 방송 시간에 농장의 너튜브 영상을 보고 있습니다. 전국에 한글 교육 학교를 늘리고 있고, 저와 안젤리나 공주, 말리 5인방과 하누아나 덕에 한국인들에 대한 호감도 매우 높습니다. 관광을 가신다면, 말리인들은 전 세계 어느 나라보다 우리 한국 사람들을 더 환영해 줄 것입니다.”
내 귀국 현장에서의 발표는 매우 많은 언론을 탔다.
포털의 메인뉴스를 장식하기도 했다.
언론들은 대통령의 외교성과 중 하나라고 생각했던 말리와의 수교가 대통령실 출신 비서관의 국회의원 자리 5개 때문에 완전히 날아간 것을 개탄했다.
각 커뮤니티에서도 정부를 향한 날 선 비난은 끊이지 않았다.
―그러니까 김상민 말은 포기라는 거잖아?
∟그거지. 어차피 말도 안 통하고. 빼 먹기만 하고 이용만 하려고 하니까, 그냥 너는 너대로 해라. 나는 나대로 하겠다 그거지.
∟하긴 정부는 말리 사람 500명 계절노동자로 받는 것도 그 생색을 내고도 아직 허가도 안 내줬잖아. 중국은 신도시 하나를 통째로 내주겠다고 하니까 말이야. 솔직히 나라도 그랬을 듯.
∟현직 영국 유학생임. 런던에선 대통령 서넛보다 김상민 영향력이 더 큼. 실질적으로 사는 게 훨씬 편해졌음.
―그보다 너무 멋있지 않아. 김상민의 생각이 통하는 땅을 넓혀가겠다는 말 말이야. 듣는데, 짜릿하더라.
∟솔직히 대통령보다 김상민이 일을 더 많이 하긴 함. 한한령 푼 것도 결국은 김상민 공 아님?
∟예언! 성지글 예약. 영국이 EU 복귀하면, 김상민은 영국 왕에게 축하전화나 하고 말 테지만, 대통령실에선 외교성과 어쩌고 떠들 것임.
∟그나저나 진짜 말리랑 관계 날아가 버린 거 아님? 말리에서 금도 쏟아지고, 석유도 난다던데. 영국이나 프랑스 좋은 일만 시키게 생겼음.
외교부나 대통령실에선 아무 연락이 없었다.
우린 마중 나온 작목반 어른들과 칼국수와 수육을 먹는 영상을 올렸고, 우리 영상이 올라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기사가 쏟아졌다.
– 문현 농장인 김상민, 문현 농장 1호의 존속을 약속
– 감자 농장주를 위로하는 ‘한국인’ 김상민
오랜만에 도착한 집은 평화로웠다.
할머니들과 마을 회관에서 영국과 말리에서 가져온 과자 같은 걸로 잔치를 했는데, 할머니들은 우리가 말리로 떠나지 않겠다고 해준 것이 너무나 고맙다고 했다.
* * *
우리가 귀국한 지 열흘이 지났다.
대통령실이 궁지에 몰렸다.
발표되는 여론조사마다 큰 폭으로 떨어지고 있었고, 총선 전망은 매우 어두웠다.
실장이 경질되고, 말리인들의 계절노동자 입국 허가가 났지만, 말리에선 아무도 입국하지 않았다.
정부는 정부의 허가에도 말리 쪽에서 거절했다는 식의 언플을 했지만, 이렇게 전격적으로 결정할 수 있었던 일을 왜 진작 하지 않았느냐는 비판만 더 얻었을 뿐이었다.
새로 임명한 대통령실장과 외교부 차관, 강영식 과장의 전화까지 받았지만, 난 정부와 정치권 모두와 거리를 두겠다는 말을 반복하기만 했다.
그리고 그러는 와중에 엄마의 찜닭 밀키트가 출시됐다.
하루에 200세트 한정이었는데, 또다시 피케팅이 시작될 정도로 맛과 퀄리티에 호평이었다.
그리고, 엄마의 찜닭 밀키트는 말리의 식품 공장에서도 동시에 출시되어 150세트 씩을 팔기 시작했는데, 말리 내에서도 엄청난 화제였다.
한국에서는 먹지 못하자 말리의 것을 구매하려 시도한 네티즌들까지 있을 정도였다.
문현 농장의 브랜드 파워는 갈수록 커졌다.
우리 농장에서 키운 것이 아닌, 예산과 충주의 농장에서 딴 사과를 영국과 아부다비 왕실에 수출 성공시키자 전국의 최상품 과일 농가들이 앞다퉈 희택이와 약속을 잡았다.
“오빠. 대박이에요.”
“뭐가?”
“희택이 오빠에게 제안이 들어왔는데요. 내년에 우리가 만들 월병 말이에요. 벌써 600만 달러 어치나 선주문이 들어왔대요.”
“아직 농사도 시작하기 전인데?”
“그러니까요. 다들 난리예요.”
“돈이 꽤 쌓였지?”
“네. 금 판 돈도 아직 좀 남았고, 갈수록 우리 영상 보는 사람들도 늘어나서요. 더구나 우린 자체 소화가 많으니까요.”
농장의 수익은 점차 늘고 있었다.
우리가 1차 생산물인 농산물 자체로 파는 비중보다 식품의 형태로 가공해서 파는 비중을 늘리고 있어서였다.
영국의 목장을 다수 사들였지만, 거기서 생산한 우유 전부를 우리가 자체적으로 급식 업체와 말리의 식품공장으로 보내 소화하고 있다는 것이 수익성을 개선하는 방편이 됐다.
한국의 감자 농가처럼, 영국의 우유로 만든 식품들이 각 나라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생산하는 식료품들은 모두 품절을 일으킬 정도로 구매 요청이 많은 편이라 빠르게 규모를 늘릴 수 있었고, 한국과 말리의 식품 공장에서 더 많은 식료품을 생산할수록 농장의 수혜를 입는 영역이 날이 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한국의 식품 공장에선 1주일에 한 번씩 영국으로 즉석식과 야채전 믹스들을 수출하는 배를 띄우고 있었고, 영국에서 우리 급식 업체의 밥을 먹는 학생은 어느새 25개 학교, 9,300명이 넘었다.
-작가님. 모토바입니다.
“네. 대통령님.”
-정착촌에서 1기 인원들을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몇 명이나 됩니까?”
-637명입니다.
“꽤 많네요,”
-안토니 왕자와 통화를 했는데, 호주도 준비를 어느 정도 끝난 상태라고 합니다.
“그래요? 잘됐네요.”
-그런데, 다 좋은데 저들에 대한 국제적인 관심이 크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일단 호주로 옮기세요. 그리고 정착민들에 대한 처우와 관리는 제가 발표하겠습니다.”
-그렇게 해 주시겠습니까?
“네.”
대통령과 작전을 짰다.
일단 정착민들을 대통령궁으로 부른 다음, 대통령궁 안에서 바로 호주로 보내기로 했다.
들어가는 사람이 있지만, 나오는 사람이 없다. 하지만 대통령 궁인 만큼 그 누구도 뒤질 생각을 하지 못할 터.
모토바 대통령이 정착민들과의 만찬을 한 이틀 뒤 난 말리의 자연환경과 닮은 판게모니아의 호주 숙영지에서 어리둥절하는 정착민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공개했다.
“이 영상은 말리의 모처에 집단 수용된 정착민들의 모습을 찍은 것입니다. 보시다시피 꽤 훌륭한 정착촌입니다. 저흰 정착민들이 그저 말리인으로 특별하지 않은 삶을 살길 원합니다. 다만 당분간은 좀 더 분리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곳에서 아자와드 공화국의 폭력 정권이나 테러조직과 관계없다는 것이 증명되면 다시 바마코나 도곤족 마을 등 기존 말리 국민들과 섞여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공식적으로 말하진 않았지만, 구제할 수 없을 정도의 마약 중독자들도 간단히 거를 예정이었다.
난 이 정착촌을 문현 캠프라 이름 짓고, 이곳에선 모든 종교적 자유가 허락된다고 말했다.
“어려운 세상입니다. 전 신이 있다면, 사람에게 다른 신을 믿는 이웃을 해치라는 명 대신 손을 내밀어 안아주라는 명령을 내리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사랑과 자비, 배려는 모든 종교가 가르치는 공통적인 규범입니다. 먼저 손을 내밀고 잡는 것. 이것이 제 땅에서 사는 사람들의 처음이자 마지막 조건이자 의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