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uck at the gate alone RAW novel - Chapter 167
169화. 딸기.
바로 하와이로 넘어갔다.
볼 때마다 그 모습이 달라지던 하와이는, 오랜만에 들른 만큼 크게 변해있었다.
아스팔트나 시멘트로 포장되진 않았지만, 잘 닦인 도로가 시원시원하게 뚫려 있었고.
농장 근처로 가자 드워프들이 안전모를 쓰고, 레몽드인과 말리인들이 섞인 일꾼들에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형, 왔어요?”
“저 건물들은 다 뭘 만들고 있는 겁니까?”
“창고를 만들고 있어요. 마법 주머니를 대량 생산해서 엄청나게 압축했는데도, 생산량이 너무 많아서 마법 주머니를 쌓아둘 공간이 필요해서요.”
“얼마나 생산될 것 같습니까?”
“감자는 300만 톤 이상. 고구마도 100만 톤은 캘 수 있을 것 같아요.”
300만 톤은 굉장한 양이다.
감자가 주식 중 큰 포지션을 차지하는 유럽 전체의 감자 생산량이 5천만 톤 정도다.
이 정도의 생산량이라면, 레몽드에서는 절대로 소화할 수 없을 정도의 양이다.
과잉 생산이다.
난 과잉 생산이라는 말에서 하나의 아이디어를 얻었다.
“왕자님. 이렇게 하시죠. 30만 톤 정도면, 제국에 보낼 양을 제외하더라도 레몽드에서 충분히 쓸 수 있지 않습니까?”
“나머지는 어디다 쓰시려고요.”
“말리에 보내야죠. 다만 이번은 파는 게 아니라 그냥 나눠 먹는 용도로요.”
“나눠 먹는 용도요?”
“대신, 레몽드에 먹어도 먹어도 남을만한 고기와 가죽을 얻을 방법을 찾아오겠습니다.”
“그런 방법이 있습니까?”
난 지구의 호주에 유럽 토끼를 풀어놓은 결과를 말했다.
물론 그곳은 현재 150년째 ‘토끼 전쟁’을 벌이는 중이지만, 잘 관리만 한다면 엄청난 이득으로 돌아올 산업이었다.
“토끼는 풀만 먹어도 잘 자라고, 급격하게 번식합니다. 지금 우리의 호주에도 땅과 초목이 무한정으로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니 우리도 충분히 가능하지요. 결계를 정해서 그냥 풀어놓기만 해도 토끼는 기하급수적으로 늘 겁니다. 관리하지 않아도 되는 고기 농장이 생기는 것이나 마찬가지죠.”
“그거 좋네요. 소나 닭도 그렇게 풀어놓아야겠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얼마든 땅과 숲이 있으니까요.”
“훌륭한 생각이시네요.”
“말리 쪽으로 생산되는 감자를 보내겠습니다. 모토바 대통령에게 형이 미리 연락해주세요.”
난 전화 대신 모토바 대통령을 레몽드 왕실로 불렀다.
오랜만에 모토바 대통령과 펠리페 2세, 나와 아버지가 모두 모였다.
“다들 바빠 격조했습니다. 상민이가 지구에서 그렇게 큰 이름을 얻다니, 보는 저도 마음이 뿌듯하더라고요.”
“그게 다 전하와 모토바 대통령님 덕분 아닙니까?”
“그런데 작가님. 오늘은 어쩐 일로 이리 다 모으신 것입니까?”
난 하와이의 감자와 고구마 농사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성공했다는 사실과 안토니 왕자와 내가 떠올린 새로운 방목형 목축에 관한 일들을 상의하고 싶어서라고 대답했다.
모토바 대통령은 눈에 띄게 반가워했다.
“정말입니까? 농사가 잘되고 있다는 것은 듣고 있었지만, 그렇게까지 성공하고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감자는 치트키입니다. 어디서든 잘 자라고 먹으면 든든한데다, 맛도 있습니다. 100만 톤을 드릴 테니, 싸게 나눠서 공급해주세요.”
“그게 무슨 소리냐? 하와이에서 공짜로 가져가서 말리에서 돈 받고 판다고?”
아버지의 반문에 난 단호히 대답했다.
“그냥 나눠주면 안 됩니다. 적게라도 돈을 받아야 해요. 공짜는 없어요, 일을 해야 대가를 얻는다는 걸 배워야합니다. 하지만 배고프지 않을 정도로 식량이 넉넉해지고, 돈이 오가기 시작하면 분명 말리라는 나라 자체가 바뀔 거예요.”
내 지적에 두 나라의 지도자인 펠리페 2세와 모토바 대통령이 눈을 크게 뜨며 동의했다.
“하긴, 우리 레몽드만 해도 노력을 인정해주기 시작했을 때 백성들의 생각도 조금씩이지만 변하긴 했었으니까. 역시 상민이가 똑똑하긴 똑똑하네요.”
“감자 100만 톤이라니. 드디어 우리 말리에도 볕이 드는군요. 이 은혜는 정말로 죽어서도 잊지 않겠습니다.”
“호주에 사람을 좀 더 보내주시오. 토끼나 소가 풀을 뜯어먹고 저절로 자란다해도 그걸 처리할 인원은필요하니 말이오.”
“걱정하지 마십시오. 내일이라도 만 명 정도는 언제든 보낼 수 있습니다.”
난 이 일은 외신에 공표하지 않을 것이지만, 감자가 문현 농장을 통해서 들어오는 것이라는 것은 5대 부족 전부에게 전해져야 한다고 했다.
“보낸 감자와 고구마 중에서 5만 톤 정도는 아자와드로 보내시고요.”
“아자와드에요?”
“우리는 난민을 빼내 아자와드를 망하게 하려는 것도, 나라를 합병해서 석유를 탐내는 것도 아니다. 내전 끝에 독립시켰지만, 아자와드의 투아레그족은 한 솥밥을 먹던 식구들인데 굶어 죽게 그냥 둘 수는 없다고 그렇게 발표해 주십시오.”
* * *
감자가 모든 것을 바꿨다.
2천만 말리 사람들이 처음으로 배고픔에서 해방됐다.
쏟아지는 감자와 고구마 앞에서 부족 간의 갈등은 의미가 없었다.
하루가 지나고,
사흘이 지나고,
한 달의 시간이 흐를 때마다
말리가 달라지고 있었다.
마치 1950~60년대 한국처럼 교육과 일에 목숨을 거는 사람들이 도처에서 튀어나왔다.
예전과는 달라졌다.
말리는 아프리카 최초의 글로벌한 나라가 됐다.
영어를 공부하면 영국으로의 취업이 가능했다.
중국어를 익혀도 지린성에 자리 잡은 8천명의 동포가 있었다.
그중에서도 한국은 누구보다 믿을 수 있는 내가 사는 나라였다.
지금은 이민이나 이주가 막혀 있지만, 대통령이 바뀌면 모든 것이 달라질 것이다.
말리인들은 내가 그들을 그대로 두지 않을 사람이라는 것을 믿었고, 한국에서의 내 위상도 잘 알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말리의 모든 사람들이 안젤리나 공주의 너튜브를 통해 발전된 한국 사회를 직접 눈으로 보고 있었다.
드라마가 아니다.
안젤리나는 모토바 대통령의 수양딸이었고, 농장에서 내 비서 역할을 해주고 있는 하누아나 역시 도곤족의 아들이었다.
과장할 필요도 없고, 속일 필요도 없다.
작가님들이 세밀히 구성해서 내보내는 너튜브의 영상들은 한국의 시골 생활이었다.
드라마처럼 재벌가의 사람들이 으리으리한 식탁에서 스테이크를 먹는 장면이 나오지 않았다.
양푼에 열무김치를 넣고 비빔밥을 만들어 먹거나, 짜파게티 귀신인 하누아나가 할머니들과 짜파게티에 달걀 프라이를 서너 개나 올려서 먹는 단출한 모습이 방송됐다.
물론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부족 생활을 하던 그들에게는 아직 먼 이야기였다.
하지만 이제 말리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
노력하면 인생이 바뀐다.
그리고 말리는 실제로 바뀌고 있었다.
영국의 히드로 국제공항과 두바이 공항에서 바마코공항으로 직항하는 비행기 노선이 취항했다.
그리고 두 노선이 취항한 후 한 달도 되지 않아 카이로 국제공항과도 직항편이 생겼다.
거기에 나와 인연이 깊은 영국과 이집트, 세네갈과 UAE는 말리를 기특한 동생 국가처럼 생각하고 도와주니.
말라 죽어가던 과거에서 빠르게 벗어나, 희망을 손에 쥔 이들의 얼굴에서는 매일 즐거움이 흘러넘쳤다.
당연히 모토바 대통령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고, 말리 사람들은 공공연하게 모토바 대통령이 15년쯤 집권한 뒤, 안젤리나 공주와 결혼한 내가 뒤를 이어야 한다는 말을 하곤 했다.
그리고 이렇게 닥친 ‘바마코의 봄’이 주는 훈훈함은 세계를 강타했다.
발전이 과포화에 이른 지금, 전국민이 행복을 느끼는 나라는 유일무이했다.
매우 많은 서구권의 언론들이 말리에 닥친 훈풍을 취재하며 그 원인을 찾으려했다.
그리고 말리에 도착한 서구권의 기자들과 관광객들은, 가장 먼저 뛰어난 말리의 식문화에 감탄했다.
정확히는 말리인들이 즐기는 식도락에 경악했다.
메뉴 자체야 소수의 전통음식을 제외하고는 서양과 동양을 오가는 꽤 익숙한 것들이었지만, 그 맛이 남달랐다.
감자과 고기, 달걀을 주로 먹는 유럽인들에게 말리에서 만난 뛰어난 품질의 감자와 고구마, 달걀과 토끼고기의 맛은 눈을 휘둥그레 뜰 정도였다.
―작가님. BBC의 찰튼입니다.
“네. 기자님.”
―취재 때문에, 바마코에 왔는데 이거 놀랄 노자인데요.
“어떤 부분에 놀라셨나요?”
―감자 말입니다. 너무 맛있는데요. 커피랑 빵도 기가 막히고요. 처음엔 호텔이라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 시장에서 맛본 알감자의 맛에 완전히 반했습니다. 그런데 다들 문현농장과 작가님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난 문현 농장이 수입업체가 아닌 세계의 농가들과 직접 계약하고 있고, 우리의 계약 농가엔 감자와 고구마는 물론이고, 커피와 양계 농가도 포함된다고 말했다.
“계약 농가의 수나 지역은 대외비입니다. 단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농장이 계약하는 조건은 일반적인 시장가 이상이고, 각 나라의 경제 상황에 맞춰서 공급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네?
“맥도널드 햄버거도 나라별로 다 가격이 다르지 않습니까? 문현 빵집이나 문현 만두는 입지조건에 따라 지점별로 다 가격이 다릅니다. 농장이 보증할 수 있는 것은 뛰어난 맛과 품질, 이익을 생각하지 않는 운영으로 제공할 수 있는 낮은 가격 정도입니다.”
잠시 말이 없던 찰튼 기자는 딱 하나의 질문을 했다.
―영국에도 이런 감자와 커피를 공급해주실 수는 없으신 것일까요?
“조금 기다려주십시오. 지금은 말리와 UAE에 집중적으로 농산물을 투입하고 있지만, 수급에 여유가 생기면 당연히 이집트와 영국에 저희 농작물을 수출하겠습니다.”
그 직후, BBC의 말리 식문화 리포트는 영국에서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세계 최빈국의 하나인 말리의 수도 바마코 사람들이 런던 사람들보다 더 좋은 감자와 달걀, 고기를 먹고 있다는 사실을 영국인들은 좀처럼 납득하지 못했다.
그리고 일주일 후 찰튼 기자는 내 이야기를 듣고 이번엔 두바이로 날아갔고, 두바이의 문현 농장 마켓에서 말도 안 되는 높은 가격으로 팔리고 있는 감자와 고구마, 달걀과 토끼고기를 소개했다.
―말리산 달걀은 진짜로 맛있음. 도곤족 마을에 놀러갔다가 먹은 토스트는 내 인생 최고의 토스트.
└말리는 이미 아프리카가 아님. 문현 농장의 영향으로 말리에 이미 한국과 중국의 식문화가 침투했음. 아프리카 특유의 강렬한 맛을 지키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은 아프리카와 서구화가 진행된 한국의 맛이 균형미를 이루고 있음.
└헐 그럼 딱 한국인 취향 아님?
└하긴, 급식만 봐도 알 수 있잖아. 우리 거지같은 급식이랑 문현 케이터링에서 제공하는 급식은 비교가 되질 않아.
―10억 달러면, 우리도 투자할만 하지 않아?
└하긴 김상민은 항상 돈값 이상은 하니까. 솔직히 김상민이 말리 농장에 투자하라고 했던 10유로짜리 펀드 말이야. 한 천 배쯤은 뽑지 않았을까?
└영국이 EU에 복귀한 것만으로도 최소 500배는 뽑았음.
└프랑스 놈들이랑 독일 놈들이 눈이 벌게져서 말리에 진출한다더라. 프랑스는 말리 사람들 반 이상이 프랑스말을 할 줄 안다면서 막 떠들고, 독일 놈들도 이번에 난민 지원금을 내면서 독일어학원을 엄청 만들고 있나 보더라고.
한국 커뮤니티의 반응을 살피고 있는데, 리시 수낙 영국 총리에게서 연락이 왔다.
왕실의 사람들과는, 특히 조지 3세와는 할아버지에게 안부전화를 하는 손자처럼 정기적으로 통화하고 있었지만, 총리의 전화는 처음이었다.
수낙 총리는 내게 영국에도 농장의 마켓을 열어줄 수 있는지를 물었다.
―소문이 너무 자자해서, 제 귀에까지 바마코와 아부다비의 소식이 들려오더군요. 런던도 도움이 필요합니다. 최근 런던의 물가는 살인적입니다.
“이렇게 하시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방법이 있으십니까?
“말리는 누군가 끌어주면 금방 일어설 수 있는 나라입니다. 말리인들의 영국에 대한 호감도도 매우 높습니다. 세네갈과 말리에 대한 ODA(공적 투자)를 늘려주십시오. 그럼, 저도 지금까지처럼 영국을 돕겠습니다.”
―세네갈도요?
“네. 세네갈의 다카르 항구는 내륙국가인 말리와 영국을 잇는 문이 될 테니까요.”
내 세계는 확대되고 있었다.
영국의 총리는 의회의 의결을 거쳐, 세네갈과 말리에대한 공적 원조 사업을 늘릴 것을 천명했고, 세네갈 대통령은 대대적인 환영의 뜻과 함께 말리로 향하는 통관절차 간소화와 말리인의 무비자 입국을 허가한다고 발표했다.
그런 가운데 겨울이 왔다. 예상치 못한 갑작스러운 한파로, 딸기의 작황이 유난히 좋지 못했다.
금딸기라는 소리가 뉴스를 타며 이슈가 되고 있을 때.
모두가 정부 대신 문현 농장에 딸기를 싸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을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