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uck at the gate alone RAW novel - Chapter 189
192화. 한정판.
당장은 아니었지만, 곧 닥칠 일이었다.
그전에 한국 내 환자들에 대한 태도를 정해야 했다.
이 결정에 앞으로의 내 삶이 달려 있었다.
“설마, 치료하지 않으려는 건 아니지?”
“능력이 있는데, 치료는 해야겠지. 그런데, 이런 일을 계속해도 될지 그건 잘 모르겠어.”
“왜?”
“앞뒤가 맞지 않잖아. 난 그냥 한 사람의 인간으로 작은 행복을 누리고 살고 싶어. 그런데, 이 세상의 다툼을 모두 없애겠다거나, 기후 위기나 식량 부족을 해결하는 차원은 물론이고, 이 세상에서 병을 없애다니.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 일개의 개인으로 남을 수 있을 리 없잖아.”
“그래도 일부러 멈출 수는 없는 문제잖아.”
“그렇긴 하지.”
이번 외유에서 난 꽤 많은 것들을 알게 됐다.
인간의 욕구와 본성에 대해서도, 인간에게 왜 신이라는 존재 여부가 확인 가능하지도 않은 불투명한 존재가 필요한지도.
다툼과 전쟁이 없고, 갈등을 대화와 타협, 이성으로 해결하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 얼마나 터무니없이 어려운 꿈인지도 깨달았다.
그래. 내가 꿈꾸는 세상은 나흐얀 대통령이 내게 건넨 너무 큰 다이아몬드 반지 같은 것이다.
너무나 가치있고 귀하지만, 거의 존재할 수 없어서 일반인에겐 허락되지 않은 이상향.
조금 먹고 조금 싸는 것이 인생의 즐거움이라 생각하는 내가 품기엔 너무 커다란 꿈이었다.
이제는 안다.
그런 세상은 인간인 내가 아니라, 사람을 넘어서는 절대적인 권능을 가진 신이 펼쳐야 하는 세상이다.
신은 필요하다.
사람인 나로서는 부족하다.
내가 원하는 세상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따라야 할 보편의 질서와 도덕으로 사람들이 좀 더 서로를 배려하며 존중하는 세상이다.
그런 세상을 위해 난 여태까지 내 생각을 뚜렷하게 밝혀왔다.
하지만, 그것이 구원의 약속을 내건 사람의 맹목적인 믿음 아래서 하나의 행동 양태가 된다면, 이 세상은 어떻게 변할까?
인간에겐 하느님의 신성이 가득하니 더 소중히 대해야 한다는 말이 먹히면서 미국 내에서 총기사고가 급격히 줄고 있었다.
이 세상엔 신이 필요하다.
다만 전해져야 하는 건 신의 권능이 아니라 신의 말과 생각일 뿐이다.
* * *
역시나 농장엔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있었다.
아버지는 몹시 반가운 표정으로 나를 맞았는데, 기뻐하는 얼굴의 한편으로는 당혹감이 가득했다.
“잘 왔어. 이야기할 게 있어. 너희들 날 따라와라.”
“네.”
아버지는 얼굴에 걱정이 가득했다.
“왜 그러세요?”
“치료수 말이야. 예전이랑 달라졌어.”
“네?”
“더는 치유력이 전해지지 않아. 예전엔 치료수 한 방울을 커다란 병에 넣어도 그 병의 물이 모두 치료수가 됐었잖아. 그게 되질 않아.”
“언제부터요?”
“언제부터라고 말하자면, 정확한 건 아니라도 대강은 네가 예루살렘 병원에서 죽은 사람을 살리지 못했을 때쯤이었을까?”
난 급히 새로운 생수병에다 신성력을 쏟아부어서 치료수를 만들었고, 병의 물은 매우 진한 붉은 색으로 물들었다.
투명한 색이 아니었다.
“어? 상민아. 치료수 색이 달라졌는데?”
“그러게. 왜 이렇지?”
“혹시. 그거 때문에 그런 거 아닐까?”
“응?”
“널 믿고 따르는 사람 말이야. 네가 인간이 되기로 선언하면서 네게 향하는 사람들의 믿음이 식거나 줄어버린 것 아닐까?”
“그럴지도 모르겠네.”
세계는 연결돼 있다.
SNS와 인터넷은 공간적 제약이 없이 압도적으로 빠른 시간 안에 전해진다.
“희택아.”
“어.”
“생수 회사들에 연락을 좀 돌릴 수 없을까”
“왜?”
“신성력이 더 떨어지기 전에 있는 신성력이라도 몽땅 포션을 만들어 놓는 게 좋잖아.”
“그렇구나! 당장 연락할게.”
희택이는 재빨리 생수회사들에 협조 부탁 연락을 돌리기 시작했고, 생수 회사들도 회사차원에서 즉각 영업소에 보관하던 생수를 우리 쪽으로 돌려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이 소문 역시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김상민 말이야. 치유력이 예전만 못하대. 예전엔 치료수를 무한정 만들 수 있었는데, 예루살렘에서 실패한 후 그게 되지 않나 봐.
└진짜? 사실이야?
└사실임. 그런데 김상민은 김상민임. 미친 짓 하고 있음.
└무슨 일 하는데?
└생수 회사에 부탁해서 농장에 생수를 트럭째로 부르고 있음. 그리고 그 생수를 모두 치료수로 만들고 있음.
└대박. 그럼 그게 마지막 치료수일 수도 있다는 거잖아. 난리날 것 같은데. 그거 훔쳐가거나 빼앗으려는 소란이 생길지도.
└네 눈으로 직접 봐봐. 그럴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님.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내가 치료수를 만드는 과정을 자기 핸드폰으로 찍어 중계하고 있는 걸 알았지만.
제지하진 않았다.
전 세계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난 1톤 트럭 2대 분을 모두 치료수로 만들었다. 이전과는 달랐다.
신성력이 빠져나갈수록 극심한 허기와 공허감, 허탈감을 느꼈다.
치료수의 색도 점점 옅어져서 새빨갛던 치료수의 색이 어느새 엷은 핑크빛이 됐다.
“그만해. 상민아. 그만해도 돼.”
“응?”
“더 이상 하다가는 너 쓰러져. 하더라도 좀 쉬었다 해.”
고개를 들자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나를 보는 수도 없는 사람들이 보였다.
일어서려다가 순간 극심한 현기증을 느꼈다.
악!
저걸 어째.
나를 보던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다.
다행히 쓰러지진 않았다.
희택이가 나를 붙잡았고, 난 희택이에게 기대서 겨우 다리에 힘을 주고 일어났다.
목이 말랐다.
배도 고팠다.
엷어진 치료수의 색을 보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여기까지인 건가?
난 희택이의 부축을 받으며 자리를 떠났다.
그 뒤에 남은 건 농도가 다른 치료수 2톤 분량이었다.
* * *
“오빠 괜찮아요?”
“어. 괜찮아. 잘 기다렸니?”
“어. 보고 싶었어.”
안젤리나는 마치 예전부터 그랬던 것처럼 내 품을 파고들어 날 껴안았다.
고백도, 반지도 없었지만, 안젤리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자기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고, 내 품속에서 몸을 조금씩 떠는 안젤리나의 온기가 위로가 됐다.
평온한 척 하지만 걱정이 역력한 떨림이었다.
안젤리나가 품속에서 속삭였다.
“오빠. 세상을 구하지 않아도 돼. 그냥 우린 여기서 딸기 나오면 딸기 먹고, 사과 나오면 사과 먹으면 되잖아. 배고프면 우리 문현 농장 빵집에서 빵 사먹으면 되고. 나도 이제 떡볶이는 잘해. 그러니까 무리하지 마요. 난 지구와 판게모니아 양쪽 세상 전부보다 오빠가 소중하니까.”
무어라 대답하려다 나도 모르게 안젤리나를 품에 안고 그대로 잠이 들었다.
내가 깨어난 것은 3시간 정도 후였다.
깼더니 안젤리나는 옆에 없었다.
꼬르륵.
여전히 배가 고팠다.
아공간 반지에서 안젤리나에게 주려고 사온 케이크와 커피를 꺼내서 먹고 났더니 조금 정신이 들었다.
“깼냐?”
희택이가 나를 살피러 들어왔다가 깨 있는 나를 보고 흠칫 놀랐다.
희택이의 얼굴엔 곤란함이 가득했다.
“왜? 무슨 문젠데?”
“그게 말이야. 좀 골치 아픈 문제가 생겼다. 아! 잠깐만.”
희택이는 얼른 방문을 닫고 어딘가를 다녀왔다.
희택이의 손엔 생수병이 들려 있었다.
“물은 왜?”
“치료수를 만들어 봐.”
“그렇지! 그걸 실험해 봐야겠네.”
난 생수병에 다시 신성력을 부었고, 생수병 속 물은 짙은 선홍색 치료수로 변했다.
희택이는 돌아온 치료수의 색에 기뻐하면서, 내가 쓰러진 3시간 동안 일어난 일에 대해 말했다.
아비규환이었다.
“네가 피를 토하는 것 같은 모습으로 치료수를 만들고 쓰러지는 게 전국에 중계가 된 거잖아. 마지막의 치료수는 치료수라고 말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색이 옅었고.”
“혹시. 쟁탈전 같은 게 벌어진 거냐?”
“어. 그런데, 그 쟁탈전 말이야. 끼어든 이름이 장난이 아니야.”
가장 먼저 손을 뻗은 것은 당연히 농장에 모여있던 환자들이었다.
“아버님이 치료수를 나눠주려 했는데, 그것도 중계되고 있었나 봐. 대통령실에서 나한테 전화가 왔더라.”
“대통령실에서? 뭐라고?”
“그게 마지막 치료수일 수도 있는데, 무분별하게 나눠줘서는 안 된다고.”
재수없는 태도지만, 그건 대통령실의 판단이 맞을 수도 있었다. 알레르기성 비염이나 아토피는 괴롭지만, 죽지는 않는 병이다.
현대 의료로 치료할 수 있는 병이라면, 얼마남지 않은 치료수를 그런 곳에다 소비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아버님이 전의 기준대로 난치병 환자들 보호자들만 따로 줄을 서라고 했는데, 그것도 제한당했어.”
“응?”
“정부에서는 치료수를 일종의 공공재나 전략물자로 생각하더라. 그래도 아버님이 보통 분이시냐? 대통령실이 뭐라고 하셔도 들을 분이 아니시잖아. 난치병 환자들에게 치료수를 나눠줬거든. 먹어보고 혹시 남으면 남은 건 가져다 달라고 하면서.”
아버지의 판단은 멋있었지만, 20분도 되지 않아 경찰이 출동했다고 한다.
“경찰이?”
“어. 하지만 헛발만 쳤지. 이미 출동했을 땐 치료수를 다 나눠준 상태였거든. 2리터짜리 68병이 사라졌지. 그 뒤로 내 전화기나 아버님 전화기로 엄청난 곳들에서 전화가 오기 시작했어.”
“엄청난 곳들?”
“어, 이름을 알만한 재벌가들에게서 전화가 오기 시작했지. 처음엔 한 병에 10억부터 시작했는데, 네 뜻을 알기 전까지는 팔 수 없다고 했더니,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서 한 병에 100억원이 되더라. 돈 벌기 진짜 간단하더라고.”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전화를 받았다가, 그 꼴이 전부 중계됐다고 했다.
그랬더니 이번엔 중동이나 이름을 들어본 세계의 부자들이 더 큰 금액을 불렀고, 결국은 미국에서도 나섰다고 했다.
“미국에서도?”
“어. 인류에게 남은 마지막 치료수라면, 그걸 누군가에게 줘서 없애기보다 어떻게든 연구해서 복제해야 한다고. 트럭 1대분은 미국에 양도해 달라고 대통령에게 직접 요구했다나 봐.”
“개판이다.”
“개판이긴 한데, 그래도 이런 코미디 같은 막장극 때문에 우리가 더 큰 지지를 받고 있어.”
“응?”
“그동안 치료수를 나눠주면서 돈 받은 적이 한 번도 없잖아. 한 병에 100억씩 받을 수도 있는 귀한 약을 물처럼 그냥 뿌려온 걸 사람들이 이제야 깨달았어.”
희택이가 내민 핸드폰엔 정말로 나에 대한 찬양과 후회가 가득했다.
―언제까지 계속될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이런 엔딩이라니. 좀 서운하지 않아?
└뭐가 서운한데? 김상민이 그럼 뭐 목숨 바쳐서 치료수 공장이라도 됐어야한다는 거야?
―그런데, 김상민으로서는 정말 최선을 다해온 거 아니야? 막말로 구원의 영약이나 마찬가지잖아. 한 병에 백억에 팔겠다고 해도 사겠다는 사람 줄을 섰을 거 아니야. 그런 걸 여태까지 그냥 나눠줘 온 거잖아.
└지쳐서 휘청거리는 김상민이 집으로 들어가는 걸 보면서 눈물이 핑 돌다가 나도 모르게 저게 뭐지 싶더라. 김상민 집 밀이야. 그냥 우리 시골집이더라.
└어떻게 될까? 정부고 미국 놈들이고 치료수 남은 거 가지겠다고 난리던데.
└풋. 다들 잊고 있는 게 있는데, 그걸 가져가면 뭐? 그게 지금처럼 무적의 효험이 있을까?
└무슨 소리임?
└치료수가 듣지 않았던 케이스가 있잖아. 다들 잊었어? 의협회장 말이야. 그땐 지금보다 더 효과가 좋은 치료수였는데도, 그냥 맹물이나 마찬가지였잖아.
└XX. 그러네. 그럼 어떻게 되는 거지?
└김상민이 지금쯤 깨어났을까? 이젠 치료수 못만들면 어떡해?
└ㅁㅊ 쓰러진 사람에 걱정은 안하냐?
―나 김상민 완전 빠거든. 김상민 매니아 입장에서 보자면, 내가 아는 김상민이면 그냥 있는 거 홀랑 다 써버리고 없으면 없는 대로 살자고 할 것 같아.
희택이가 나를 보며 물었다.
“어떻게 할 거냐?”
“어쩌긴 뭘 어째. 여기 자칭 김상민 매니아도 말했잖아. 써버려야지. 치유력이 없는 나를 이 세상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너무 궁금해. 알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