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uck at the gate alone RAW novel - Chapter 192
195화. 게이트.
기묘한 열기가 온몸을 가득 채웠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이라면 죽은 사람이라도 살릴 수 있을 것 같아서 외려 소름이 돋았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말은 신이나 내뱉을 수 있는 말이어서였다.
멍하니 주위를 둘러 보다가. 비가 내리는 세바툼의 하늘을 보며, 비가 개기를 바랐다.
그 순간 비가 그쳤다.
기겁할 듯 놀랐지만, 내 힘인지 아니면 저절로 그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난 다시 막 틔운 싹이 빠르게 자라길 소원했다.
빌어먹을.
진짜로 돋았던 싹이 숙주나물 크듯 자라나서 사막이 온통 초록색으로 물들었다.
무서웠다.
“돌아가자.”
“응? 아! 저것 좀 봐. 진짜 기적이 임하신 거냐?”
판게모니아와 마법은 물론 그동안 있었던 모든 일을 아는 희택이조차도 비가 그치고 풀들이 자라난 걸 내가 했을 거라고 감히 상상하지 못했다.
희택이를 잡아끌고 방으로 돌아왔다.
“아까 그거 말이야.”
“어. 진짜 어떻게 된 거지?”
“그거 내가 한 거야.”
“응?”
“내가 한 거라고. 사막에서 비 내리는 풍경을 보는데,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신성력이 끓어넘치더라. 혹시나 될까 싶어서 해봤는데, 되는 거야. 이거 어쩌지? 정말 미치겠네.”
“왜? 되면 좋은 거지.”
“비를 그치고, 사막을 순식간에 초원으로 만드는 사람이 사람이냐?”
대답하던 희택이가 어이없다는 눈으로 나를 봤다.
“그럼 지금까지 우리가 했던 일들은? 치료수를 만들어서 말기 암을 고치는 건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냐? 흡착봉을 만들어서 몽골 사막에 물을 들이붓는 건? 뭘 그런 걸로 놀라?”
“넌 아무렇지 않냐?”
“내가 왜 게이트를 쓰자고 했게. 사람들은 더 이상 널 보통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아. 이미 모든 사항에서 예외의 존재가 돼 가고 있지. 그래서 하자고 한 거야. 더는 눈치 볼 게 없어졌으니까. 네 말대로 영국이랑 한국을 오가는 게 김천에서 구미나 거창 가는 것처럼 되면 좋으니까.”
처음엔 일의 심각성을 모르는 줄 알았다.
환자의 치료나 게이트를 이용해 물류를 유통시키는 것과 사람이 전지전능한 존재가 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하지만 희택이는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고, 이미 수단의 정당성을 따질 필요가 없어졌다고 했다.
“목적과 결과만 이 세상에 이로우면 돼. 신성력은 결국 사람들이 널 믿는 정도잖아. 넌 비를 내리고, 풀을 자라게 만들 수 있을 만큼의 믿음을 얻은 거야. 그 마음을 배신하지 않으면 그만이야.”
그 말에 여러 생각이 들었다.
희택이는 내가 남의 눈치를 봐서 굳이 인간으로서의 삶을 고집할 필요도 없다고도 말했다.
“넌 이미 수차례 신이 아니라고 밝혔잖아. 그거면 됐어. 기든 아니든 믿음은 강요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 갑자기 날 믿는 사람 말고는 이교도니 다 죽여라 같은 미친 명령만 내리지 않으면, 우리가 지금까지 해온 일들만 해도 까방권을 만 장은 받아도 충분해. 무리하지 말고 살아. 좋은 일 하면서 그냥 우린 우리대로 살면 돼. 가끔 살다가 실수하면 어떠냐? 네 말대로 신이 아니잖아. 결정적인 실수만 아니면, 사람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의 실수를 사랑스러워 해.”
희택이 말이 맞다.
난 콘서트 중 말 실수로 도도독을 외친 아이돌 가수의 영상을 수십 차례 볼 정도로 좋아했었다.
그제야 숨을 쉴 수 있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굉장한 부담을 느끼고 있었던 모양이다. 날 감싸고 있던 중력이 한순간 사라지고, 몸이 날아갈 듯 가볍게 느껴졌다.
“기왕 그런 능력이 생긴 거면, 세바툼에 큰 호수나 강을 만들어라. 물이 생기면, 도시 건설이 100배는 빨라질 거야.”
희택이와 다시 세바툼으로 넘어가서 다시 비를 뿌리고, 지반을 굳혀 비가 흐르는 시내와 비가 모이는 커다란 호수를 만들었다.
너무 거대한 일에 기진맥진했지만, 모인 신성력을 이렇게 써버린 게 오히려 좋았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노곤한 몸으로 안젤리나가 엄마에게 배워서 끓여준 참치김치찌개와 계란프라이를 먹었다.
김치찌개는 짰고, 계란 후라이는 흰자가 탔다.
그래도 맛있었다.
실수가 사랑스럽다는 희택이의 말은 사실이었다.
신의 역사를 해내고 왔다. 하지만, 막상 저지르고 보니 신의 역사라는 건 그리 대단하지도 않은 일이었다.
안젤리나가 차린 서툰 솜씨의 저녁상이 훨씬 더 감동스러웠다.
* * *
“작가님. 세바툼의 기적 말입니다. 작가님과 관계있으신 게 아니신가요?”
“아니요. 저도 뉴스를 보고 너무 놀라서 친구와 공사 현장까지 갔다가 풀이 갑자기 자라고 호수가 만들어지는 것을 직접 눈으로 봤는데, 벌린 입을 다물지도 못하고 2시간이나 비를 맞고 있었습니다.”
“그렇습니까?”
“네. 너무 꿈같은 일이라 너무 좋아서 비를 맞는 것도 모르고 있었는데, 2시간 넘게 비를 맞았더니 몸이 으슬거리더라고요. 안젤리나에게 등짝을 얻어맞고, 쌍화탕을 2병이나 먹었습니다.”
세바툼의 기적에 관한 내 인터뷰는 다시 한번 호감을 이끌어냈다.
―이번 건, 진짜 김상민이 한 건 아닌 것 같지?
└그렇지 않을까? 김상민 성격에 자기가 한 일 같으면 했다고 하겠지. 김상민도 그렇고 이 실장도 그렇고 비를 어찌나 맞은 건지 입술이 시퍼렇더라.
└맞음. 문현 농장 근처에 약국도 없어서 안젤리나가 하누아나 차 타고 김천 시내까지 가서 쌍화탕 사왔다던데 뭘. 오빠 차려준 저녁밥상이라면서 김치찌개랑 계란프라이에 맛김까지 야무지게 찍은 사진도 함께 올렸더라.
―김상민 말이야. 진짜 대단하지 않아?
└김상민 대단한 거야 두말하면 입아플 이야긴데. 뭘.
└그게 아니라, 치료수 말이야. 정말 조금도 남기지 않고 전부 다 나눠준 거잖아. 난 솔직히 농장식구들이나 김상민이나 이 실장 부모님 몫으로 한 두 병 정도는 쟁여놨겠지 했거든.
└오오. 진짜 그러네.
세바툼의 기적은 많은 것을 바꿨다.
신의 손길이 직접 닿은 성지를 꾸미는 일에 로마 교황청도, 아랍의 부호들이나 왕가도 매우 적극적이었다.
신기한 것은 모스크나 성당 건립 계획을 밝히면서도, 상대 종교를 향해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는 것 뿐이었다. 그저 모든 곳에 존재하는 공기, 물, 산처럼 대하며 알아서 구획을 나누고 자리를 잡았다.
고향 땅을 빼앗긴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인들은 신이 친림한 신림지에 살 수 있게 된 영광을 감사해했다.
이스라엘과 유태인 사회는 여전히 혼란했다.
새롭게 발족한 비상대책 위원회는 시온주의를 배격하고, 팔레스타인과 평화협정을 서둘러 공인했지만, 그들에게 남은 건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땅을 빼앗아 이룬 민족국가를 완성한 것을 축하한다는 조롱섞인 시선과 신의 전승자나 예언자, 신의 사명을 받은 것만은 분명한 나를 다시 한번 쫓아냈다는 혐오감 뿐이었다.
신의 기적이 나타난 지금도. 유태인 사회는 이 문제와 대응책에 대한 찬반으로 양쪽으로 갈라져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은 죽은 사람을 살리지 못한 당연한 일을 비난하며 결국 나를 쫓아낸 일을 사과하고, 팔레스타인들 역시 세바툼으로 보내는 대신 이스라엘 사회에 포용해야 한다고 했고, 반대 측은 민족과 종교가 다르고 지난 수십 년 동안 전쟁을 해온 당사자들을 국내에 체류하게 내버려 두는 것은 몹시 위험한 일이고, 내가 요구한 평화협정도 결국 10년 동안 이주하겠다는 것 아니었냐는 의견을 내세우며 맞섰다.
갈등은 첨예했지만, 이를 지켜보는 나는 전에 없이 마음이 여유로웠다.
온 세상의 모든 갈등을 모두 해결할 수는 없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새로운 땅을 줘서 지난 수십년 동안의 전쟁을 완전히 끝냈으면 그걸로 내가 할 일은 다했다.
난 다시 판게모니아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레몽드는 하와이와 호주의 경제력과 생산력으로 제국을 압도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대단했던 것은 레몽드가 펠리페 2세를 주축을 하는 완전한 중앙집권제를 유지하는 동시에 하와이와 호주에 관해서는 전혀 새로운 정치체제를 표방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하와이와 호주는 레몽드와 말리의 이주민, 드워프들의 대표가 회의를 통해 주요 사안을 결정하고, 그 결정을 안토니 왕자의 이름으로 실행했다.
마법과 현대의 기술, 풍부한 자연과 넘치는 인력으로 하와이와 호주는 날이 갈수록 쏟아내듯 농산물들을 배출해냈고, 그렇게 생산된 작물들은 레몽드를 제국과는 비교할 수 없는 ‘백성이 배부른 나라’가 되게 했다.
레몽드는 판게모니아 대륙에서 처음으로 생겨난 백성이 국왕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나라가 됐고, 펠리페 2세는 더는 제국이나 나라의 크기에 집착하지 않았다.
“어서 오게. 보여줄 것이 있다네.”
펠리페 2세는 내가 안젤리나와 결혼할 것을 선언한 이후 내게 반 존대를 하기 시작했다.
펠리페 2세가 나를 데리고 자신의 집무실로 향했다.
거기엔 처음 보는 물건이 있었다.
모니터처럼 보이는 대략 20인치 정도 되는 크기의 판이 펠리페 2세의 집무실 책상에 놓여 있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우리 제너 경(마법사 할아버지)과 드워프들이 마법과 기술을 총동원해서 만든 역작이라네. 거기 앉게. 다행히 2인 플레이가 막 가능해졌으니까.”
펠리페 2세는 나를 의자에 앉힌 후, 모니터에 박혀있는 붉은색 보석에 집중하라고 했다.
“타이니라이트에 집중하게. 눈을 깜빡이지 않고, 7초만 집중하면 우리 앞에 새로운 세상이 열릴 테니.”
붉은빛을 뿌리는 작은 보석에 집중하자 눈앞의 풍경이 바뀌었다.
이곳은 매우 익숙했다.
대전의 내 방이었다.
환상이 아니었다.
실제로 감각이 있었다.
벽을 만지자 벽지의 문양이 만져졌고, 연한 시트러스 향도 느껴졌다.
지잉.
게이트가 열리며 그 자리에 펠리페 2세와 비슷한 얼굴의 청년이 뛰어 들어왔다.
안토니 왕자와 닮았지만, 우직한 그에게는 없는 장난스러운 눈매와 활기찬 몸짓.
펠리페 2세였다.
정확히는 그의 아바타였다.
“신기하지?”
“전하십니까?”
“하하. 날세. 아직 외부 세계는 구현하지 못했다네. 내가 만든 세계에서 지금 갈 수 있는 건 자네의 방과 왕궁뿐이야.”
“어떻게 이런 걸?”
“다리프(드워프)가 게임에 빠져버렸어. 뭐라더라? 르니버스라던가? 제너 경이 다리프의 꾐에 빠져서 게임에 몰두하더니, 이런 걸 만들었어.”
“그런데, 전하의 외양이…….”
“아. 이건 내 22살 때라네. 판게모니아에서 미남 왕자로 소문이 자자했을 때지.”
게임에서 빠져나왔다.
아까봤던 집무실이 눈앞에 있었지만. 너무나 생생한 감각에 아까 본 풍경이 현실과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두 사람이 재미로 만든 것이지만, 아주 효과가 높아.”
“네?”
“이 게임은 자신의 정신력으로 세계를 구현할 수 있다네. 일단 세계를 구축하면, 그것을 저장할 수도 있지. 1인까지지만 다른 이를 초대할 수도 있고. 나는 익숙한 왕궁과 자네 방을 만들어봤네만, 다리프와 제너 경은 본격적으로 이 게임으로 자신들의 세상을 만들었다네.”
“두 사람은 어떤 세상을 만들었습니까?”
“다리프는 세상에 있을 수 없는 기묘한 건축물들을 만들더군. 하늘 위를 나는 신천옹 위에 집을 만들어 세계를 구경하고 있다네.”
“마법사 할아버지는요?”
“온갖 마법 시약을 만들더니, 온갖 마법 실험을 다 해보고 있다네. 죽기 전에 어떻게든 7서클 대마법사가 되어 안토니와 자네가 만드는 이 평화로운 세상을 좀 더 즐기겠다더군.”
세상을 창조할 수 있다니.
엄청난 흥미가 생겼다.
나도 할 수 있을까?
내가 느낀 이 불합리한 세상을 완벽하게 꾸며보고 싶었다.
“대단하군요. 이 기물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게이트라네. 다리프가 명명했다더군. 새로운 세상을 여는 문이라고 말일세.”
게이트라.
흥미가 돋았다.
펠리페 2세가 내게 모니터를 내밀었다.
“이걸 가져가게.”
“네?”
“나같은 늙은이야 생각할 수 있는 세계가 고작 왕궁과 자네 방 뿐이지만, 자네는 다르지 않나. 한 번도 보지 못한 세상을 만들어 주게. 난 자네가 만든 세상이 너무나 궁금하다네. 난 군주야. 자네의 세상을 보고 훔쳐 배워서라도 레몽드의 신민이 보다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고 싶어서 그렇다네. 어서 받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