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uck at the gate alone RAW novel - Chapter 193
196화. 보통의 세상.
노력했지만, 세상을 창조하는 일은 불가능했다.
작은 동네를 만든 후, 난 사람을 만들려고 했다. 자연이 아닌 세상을 구성하고, 흐르고, 성장하게 만드는 가장 큰 요소는 사람이니까.
하지만, 사람은 달랐다.
자연조건은 만들 수 있었지만, 사람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내가 만든 건 그냥 게임의 NPC였다.
시키는 일을 그냥 하는 NPC를 사람이라 부를 수 없었다.
한 사람도 불가능했는데, 내가 만들어야 하는 건 세상이다.
난 그제야 교황이 말한 사람에게 신성이 있다는 뜻을 알게 됐다.
사람의 존재는 너무 대단했다.
주어진 환경에 따라 영향을 받고, 변화하고 극복하고 좌절하는 다양한 특질을 가지는 것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변한다.
사는 곳이 덥거나 추워도, 부모가 친구가 어떤 사람인지에 따라서도 사람은 영향을 받는다.
변화는 사람의 공통적인 특질이지만, 사람에게는 고유의 본성이 있다.
환경이 같아도 사람은 각자의 본성에 따라 다르게 반응한다.
층간 소음에 관해 무딘 사람은 신경쓰지 않고 자기의 삶을 살지만, 예민한 사람은 작은 소음도 견디지 못한다.
본능과 이성을 모두 가지고 교육을 통해 환경을 극복하고 이상을 추구하는 동물은 인간뿐이다.
다양성이 바로 신성의 증거였다.
* * *
난 사흘 만에 게이트를 펠리페 2세에게 돌려줬다.
의아해하던 펠리페 2세는 사람이 모두 다르며, 누구나 자유의지를 가지고 만족하는 세상이란 있을 수 없다는 내 실패담에 고 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렇긴 하지. 레몽드에서 가장 큰 행운을 타고 태어난 나조차도 내 인생은 왜 이렇게 불행할까라고 생각했었으니 말이야.”
“전하께서도요?”
“전하는 무슨. 이젠 아버님이라고 부르게. 왕위를 이어야 하는 왕자들은 모두 엄청난 압박감에 시달리네. 끝도 없이 공부와 무예를 익혀야 하고 형제들과 경쟁하고 견제해야 하지. 다시 태어난다면, 난 그냥 적당히 잘사는 상단의 둘째 아들 정도로 태어나고 싶다네. 뭐 상단의 둘째 아들에게도 삶의 고통은 있을 테지만 말이야.”
난 삶에는 고통만이 있는 것도 아니며, 이번의 실패를 통해서 내가 깨달은 진짜 삶의 즐거움이 있다고도 말했다.
펠리페 2세의 얼굴에 호기심이 서렸다.
“진짜 즐거움이라. 그런 것을 백성 모두가 느끼게 해줄 수 있다면, 그것이 진짜 백성을 아들이나 팔다리처럼 귀히 여기는 왕이 아니겠는가? 어서 말해보게.”
“사람에겐 각자의 즐거움이 모두 따로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전 의외로 사람들의 앞에 나서는 것보다는 제가 소중히 가꾼 결과물을 사람들이 좋아해주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말 그대로입니다. 전 책을 쓰고, 드라마를 써서 그걸 사람들이 즐기는 게 좋습니다. 제가 키운 딸기나 수박, 감자를 사람들이 맛있게 먹는 것도 제가 가꾼 사막의 녹지에 사람들이 기뻐하는 것도 모두 좋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반면에 내가 보기엔 희택이는 조직을 만들고 일을 추진해나가는 것을 좋아하고, 안젤리나는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기보다는 안전하고 편안한 집에서 컴퓨터로 세상과 소통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저흰 좋은 팀입니다. 합이 아주 잘 맞거든요. 사람은 모두 각자의 성향이 있고, 자기의 성향에 맞는 일을 노력해서 성취할 때 정말로 큰 즐거움을 느낍니다. 이를 보며 생각한 것인데, 전하…… 아니, 아버님께서 레몽드 백성에게 주실 것은 기반과 기회입니다.”
사람은 쉽게 얻어지는 것, 거저 주어지는 일엔 큰 고마움도 기쁨도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성취와 도전을 위해선 일정 수준 이상의 기반과 기회가 필요하다.
“기반과 기회라.”
“세바툼엔 농토가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 제가 호수와 시내를 만들지 않았다면 생길 수 없는 희망이자 기회입니다. 레몽드인들도 노력하려면 디디고 일어설 받침대가 필요합니다.”
“과연 그렇군. 사실, 나도 하와이를 보면서 그걸 느끼고 있긴 했다네.”
“네?”
“하와이 농토의 생산량은 본국 왕실직할령의 세 배가 넘네. 아마 나와 안토니가 생산한 소출을 나누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일 테지.”
“그럴 것입니다. 아버님. 이제 달라지지 않았습니까. 레몽드에게 생긴 여유만큼, 백성들에게 자유와 권한, 책임을 주십시오.”
펠리페 2세의 얼굴이 전에 없이 씁쓸했다.
그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자유와 권한, 책임이라. 어쩐지 내 나라가 발전하기 위해선 내 손에서 내 신민을 놓아주라는 말 같군.”
“부모도, 왕도, 신도 결국은 버팀목이 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세바툼 사막의 풀이 자라는 것도 이렇게 기쁜데, 백성이 성장하고 발전하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시는 것은 더욱 즐거우실 것입니다.”
“버팀목이라. 좋군. 내 노력해 보지. 자네는? 자네는 어찌 살 작정인가? 자넨 지구에서 나보다 수십, 수백 배나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받고 있지 않나?”
그것도 이미 결론을 내렸다.
난 한 사람의 인간으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열심히 일하지만, 절 드러내지는 않을 작정입니다.”
“나서되 내세우지 않는다는 말인가? 그것이 가능한 말인가?”
“네. 그저 일의 성과로 절 증명하려고요. 세상의 모든 일은 결국 누군가가 일해서 존재하는 것들이니까요.”
난 펠리페 2세에게 넘어오기 전 이미 마지막 방송을 한 터였다.
-김상민 하이요
-오늘은 무슨 폭탄 발언?
방송을 켜자마자 파도처럼 밀려들어온 시청자들이 인사와 질문을 쏟아냈다.
“요 근래, 생각이 많았습니다. 사라진 힘도 그렇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접하며 제가 항상 옳은지, 옳더라도 그렇게 해도 되는지, 어떻게 하는 게 좋은지 항상 고민이 되더군요.”
난 담담하게 내가 깨달은 세상과 사람을 말했다.
그리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도 밝혔다.
“은퇴하겠습니다. 더는 세상에 절 일부러 드러내지 않을 생각입니다. 세상은 저 혼자의 힘으로 좌지우지하기에는 너무나 거대하고 다양한 사람이 살아가는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하지만, 전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일은 그대로 할 작정입니다.”
-은퇴? 아직 너무 젊은데
-ㄴㄴ대통령 선거 나가서 한국 좀 구해주셈
-우리는 당신을 원한다
-상냥한 조국이 널 기다린다 천재 킴
-농장은요?
-아랍을 버리지 마십시오. 예언자여.
쭉쭉 올라오는 댓글들.
의아해하는 사람들에게 난 내 성향을 말했다.
“전 농장 일을 하는 것도, 물이 부족한 나라의 사람들을 구해내는 일도 너무 좋습니다. 지금은 치료수를 만들어내지 못하지만, 언젠가 치유력이 돌아오면 사람들을 치료수로 구해내는 일에도 적극적으로 임하겠습니다. 그저 나서서 뭘 하자라고 외치는 선두에서 내려오겠습니다.”
난 고집이 있고, 소심하며 거한 것을 즐기지 않는 내 성향에 맞춰서 살겠다고 말하면서, 내 걱정을 말했다.
“전 이제 스물 여덟입니다. 지금은 이 일이 너무 좋지만, 앞으로 남은 평생 동안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일들에 헌신할 수 있는 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변하니까요.”
난 내가 하는 일이 정의롭고 훌륭한 일이라는 것을 믿는다면, 그 생각을 가진 사람들 각자가 자신이 처한 상황 안에서 녹지를 만들고, 어려운 이를 돕는 일에 도움을 줬으면 한다고 부탁했다.
“부탁드립니다. 신께서 세상을 만드실 때. 보고 아름답다고 말한 세상을 지켜주세요. 신께선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존재로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신의 행동을 하는 사람이 신을 믿는 사람입니다. 좋은 사람이 돼 주세요.”
-명을 받듭니다 예언자여
-와… 멋있다
-어디서 사고치고 수 쓰는 거 아님?
-은퇴는 한적한 프랑스에서
….
흘러넘치는 댓글을 일별하고 방송을 종료했다.
안젤리나는 채널을 닫았고 세상은 나의 은퇴를 엄청난 토픽으로 다뤘지만.
-나 어제 김상민 봄. 은퇴한 거 아녔음?
└은퇴는 했지만 은둔은 아님
은퇴를 선언한 나는 계속 사람들의 눈에 발견됐다.
난 어디서나 나타나는 유령처럼 매일 세계의 여기저기에 나타났고, 발견될 때마다 화제가 됐다.
‘김상민 찾기’는 하나의 놀이가 됐다.
세바툼이나 몽골 사막에 자라나는 풀의 사진을 찍는 모습이 발견되기도 했고, 영국의 목장에서 목장 아이들과 문현 농장 아이들 축구 시합의 심판을 보는 장면이 토픽으로 실리기도 했다.
이어서 가자 지구에 연 문현 빵집에서 피자빵을 사 먹는 모습, 말리 5인방과 농장 할아버지의 지청구를 들으며 복숭아를 따는 모습이 공개됐다.
―대박, 김상민 안젤리나랑 우리 식당에 출몰.
└식당 어디임?
└벌교. 참꼬막 비빔밥 먹으러 왔다고 함. 지지난주에 짜냥이가 왔다 가서 혹시나 기대했더니, 여지없이 찾아옴.
└김상민은 어떰?
└화면보다 살이 좀 찐 듯. 얼굴 표정은 너무 좋아 보임. 이 실장 없이 직접 운전하고 왔음. 차가 뭔지 궁금해서 주차장까지 나가서 확인해 보고 왔는데, 싼타페 신형임. 쌔삥임. 임시번호판 달려있음.
└차 샀네! 뭔지 모르지만 내가 뿌듯함. 비빔밥에 꼬막 좀 넉넉히 주면 안 됨? 아! 계좌 좀. 우리 사촌 동생이 김상민 덕에 이제 걷게 됨. 밥 한끼는 진짜 사고 싶어서.
―진짜 동에 번쩍 서에 번쩍이네. 그저께는 중국에서 전병 먹는 거 포착되더니.
└그래도 너무 좋지 않아? 은둔하면서 사는 줄 알았더니, 쉴 새 없이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온갖 좋은 일을 다하는 게.
└여기저기 가짜 김상민이 등장하는 것도 재미있음. 어젠 김상민이 뭘 해주고 갔다는 곳이 47군데나 됐다니까.
└큭큭. 그림자 분신술 짱!
└ㄹㅇ로 찰진 은퇴 생활 즐기고 잇자너
내 존재는 조금씩 모두의 일상에 스며들었다.
더는 내가 하는 말도 안 되는 기적들이 특별한 뉴스로 취급되지 않았다.
그냥 또 어딘가에서 김상민이 무슨 좋은 일을 했구나하고 여길 뿐이었다.
기대와는 달리 분쟁이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다.
자금줄이 끊겼지만, 간헐적으로 테러 단체들은 여전히 활동을 계속했다.
잠시 수그러들었던 미국 내 총기사고도 다시 평년 수준을 회복했다.
사람들이 내가 일으키는 기적 대신 유명 아이돌 스타의 공연이나 새로운 핸드폰의 발매 소식을 먼저 클릭하게 됐다.
하지만, 분명히 세상은 좋아졌다.
신이 보시기에 합당하고 아름다운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늘었다.
가짜 김상민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뿌리는 선행의 편린이 찬란하게 세상을 밝히고 있었다.
가장 놀라웠던 일이라면, 유태계 자본가들이 신이나 신의 아들, 예언자를 참칭하지 않으면서도 삶으로 하느님의 일을 증명해 나가는 나를 ‘이상적인 인간’으로 규정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정부가 무너진 이후 수차례의 정권이 들어서고 교체됐지만, 더 이상의 유혈 사태는 없었다.
지금 정권을 잡았다고 알려진 것은 유태계 자본가들인데.
그들은 내게 대량의 흡착봉을 요구하며, 세바툼은 아름다운 도시지만, 그곳에 수백만 명 이상인 가자 지구와 서안 지구의 모든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이주하는 것은 어렵다며 이스라엘의 사막지대를 녹지화시켜서 함께 살아갈 방법을 찾겠다고 했다.
“마법사 할아버지, 흡착봉 말이에요. 이번 달은 몇 개나 나올까요?”
“게이트 덕에 아이들의 수련이 빨라져서요. 적어도 1,700개 이상은 보장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나요? 진짜 다행이네요. 50개 이상 흡착봉이 더 필요했던 시점이었거든요.”
“2년만 기다리십시오. 호주 마탑에서 마나의 자질이 있는 아이들을 확인하고 있거든요.”
판게모니아에서 끝내 미대륙은 찾지 못했지만, 호주는 광활한 땅이다. 난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50만 명 이상의 사람을 호주로 보냈고, 판게모니아의 신호주는 급속도로 개발되고 있는 중이었다.
바로 흡착봉을 이스라엘로 퀵 배송했다.
며칠 뒤 기사로 돌아온 사진에는 가자지구와 이스라엘인들이 구분할 수 없을 만큼 자연스레 섞여 들어, 사막에 나무를 심는 장면이 담겨있었다.
지구도 판게모니아도 평화로웠다.
싸움만큼 기적이 보통의 일상이 되는 세상이 됐을 뿐이다.
* * *
(5년 후)
“오빠. 뭐해?”
“드라마 쓰고 있어.”
“경민이는?”
“태길이랑 놀아. 넌 뭐하다 왔는데?”
“미정이 언니랑 특품 포도 포장하다가 왔어. 찰리 쿤보 선수가 주문했더라고.”
“대박. 찰리가?”
“어. 그렇지 않아도 오빠랑 희택이 오빠가 빠져 사는 선수잖아. 할머니들도 알아서, 특별히 포도를 골라오셨다니까.”
“그래? 포장은 끝났어?”
“어. 왜?”
“직접 가져다주게. 지금 가면 시간 대강 맞출 수 있을 것 같은데. 희택이 어디갔지?”
“미친. 보스턴까지 가게? 그리고 이제 제발 그 뱃살 좀 어떻게 해. 농구는 보는 게 아니라 하는 거라니까.”
“그럴 리가. 어딜 봐서 농구가 직접 하는 스포츠야. 시즌권을 내가 왜 끊었는데.”
안젤리나의 잔소리를 피해.
추리닝을 입은 채, 특품 포도 박스를 들고 희택이와 함께 보스턴 TD가든으로 향하는 게이트를 통과했다.
두둥. 두둥.
농구공이 튕기는 소리에 가슴이 뛰었다.
-완결. 그동안 성원에 감사했습니다.
곧 외전으로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