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uck at the gate alone RAW novel - Chapter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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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물교환 2.
통역반지의 위력은 뛰어났다.
단지 외장하드 속 비장의 컬렉션뿐만이 아니라 스트리밍 싸이트의 다양한 컨텐츠를 자막 없이 볼 수 있었다.
심지어 초월적인 통역이었다.
난 외국 문화에 대한 지식이 많이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웃음 포인트에서 같이 웃을 수 있었다.
이건 대단한 일이다.
영어뿐만이 아니라 배워본 적도 없는 중국이나 프랑스의 컨텐츠까지, 실험해본 모든 영상을 자막 없이 볼 수 있었다.
안그래도 국내 컨텐츠들을 거의 다 봐서 지루하던 차였다.
난 정신없이 해외의 다양한 컨텐츠들을 소비했다.
그때였다.
나비가 울어서 고개를 돌렸더니, 마법사 할아버지가 공기 속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듯 스르르 모습을 드러냈다.
곤란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한동안 시간이 걸릴 것 같았는데, 무슨 일이신가요?”
“그게 말이야. 상황이. 좀 곤란하게 되었네.”
“편하게 말씀하세요. 이쪽으로 앉으시고요. 차를 한 잔 드릴까요?”
“염치없지만 부탁하겠네.”
익숙하게 믹스커피를 탈까 하다가 너무 자극적일 것 같아 현미녹차 티백을 꺼냈다.
“무슨 일이 있으셨나요?”
“여기서 거의 30분 정도를 머물다 가지 않았나?”
“그랬었죠.”
“돌아가니 3분 정도가 지나있더군. 전하부터 마탑의 제자들까지 모두 나를 기다리고 있었네.”
마법사 할아버지는 던전이 다른 차원의 세상과 연결됐다는 것을 밝히고, 증거로 탁상용 선풍기와 약과를 꺼냈다고 했다.
“그 선풍기라는 기물도 그랬지만, 그 과자 말일세. 대단했네. 자네가 사는 이 세상이 우리 판게모니아에 비해 더 진보한 문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모두 단번에 믿었다네.”
“네? 왜 그렇죠? 맛 때문인가요?”
나는 의아했다.
사람들은 보통 자신의 인식 안에서 다른 세계를 본다.
현대 문명과는 궤가 다르지만, 마법 역시 몹시 고차원의 학문이다. 바람이 나오는 선풍기는 신기할 수 있지만, 레몽드 왕실에서도 바람이 나오는 장치 정도는 윈드 마법을 인챈트한 아이템 같은 것으로 충분히 대처가 가능할 것이다.
약과도 마찬가지였다.
“이 과자의 포장 때문이네.”
그런 생각은 하지 못했다.
레몽드 왕실의 사람들은 약과의 포장에 감탄했다고 했다.
“과자를 먹을 수 있다는 만으로도 이미 고급 문명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네. 과자란 사치와 문화의 영역이니 말이네.”
“그렇네요. 끼니 걱정을 하면서 술이나 과자를 만들 수는 없으니까요.”
“무엇보다 전하께선 과자를 하나하나 개별 포장한 것에 놀랐네. 위생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 아닌가. 난 전하의 말씀을 듣고서야 자네의 방이 소름 끼치게 깨끗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네.”
아는 만큼 보인다.
왕실의 집무실엔 국정을 책임지는 고위 관료들이 모여있다.
그들은 과자의 존재와 개별 포장에도 놀랐지만, 포장재와 포장재에 쓰인 인쇄 기술에 경악했다.
“왕국은 물론이고 제국에도 고작 과자 포장지에 이렇게 다양한 색감과 세밀한 글씨를 쓰는 법은 없네. 혹시 이 글자들 말인데, 기계로 쓴 것인가?”
“그런데요.”
“과자 포장지에 그렇게 높은 기술을 적용할 필요가 있는가?”
“그 과자는 개인이 만든 것이 아닙니다. 음······레몽드 왕국으로 치면, 상단에서 만든 것이지요. 제가 사는 세상엔 많은 상단이 있고, 자신들의 상품을 더 많이 팔기 위해 경쟁하고 있습니다. 맛있고 보기 좋아야 상품이 팔리는 건 당연한 이치이지 않습니까.”
나는 말을 이어가다가 피식 웃었다.
선풍기가 훨씬 더 주목받을 거라 생각했지만, 약과 이야기를 계속하는 것과 돌아왔을 때 지었던 곤란한 표정으로 난 마법사 할아버지가 무엇 때문에 돌아왔는지를 눈치채고 말았다.
왕이나 귀족들이 약과를 더 가져오라 졸랐을 것이다.
“혹시, 과자가 더 필요하신 건가요?”
“후우. 부끄럽지만 그렇다네. 전하께서 포장을 뜯고 맛을 보신 후 극찬하시는 바람에 다들 아주 조금씩 나눠 먹었는데 모두 맛에 반하는 바람에······.”
“잠시만요.”
약과는 더 있었다.
솔직히 통역 반지의 성능에 너무 감탄하고 있어서, 약과 정도는 얼마든지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남은 약과를 종이 가방에 챙기는데, 마법사 할아버지가 아공간 팔찌에서 무엇인가를 꺼냈다.
금덩어리였다.
“전하의 채근에 자네에게 과자와 선풍기를 받아오며, 통역 반지를 줬다고 보고했네.”
“이번에는 금을 주고 과자를 사 오라는 명령을 받으셨나요?”
“그렇다네. 그 과자를 좀 더 많이 구할 수 있겠는가? 상단에서 파는 물품이라지 않았나? 가격을 알고 싶네. 혹 모자란 것은 아닐 테지?”
대용량 약과 한 봉지에 금덩어리 하나라.
심지어 이를 제공할 수 있는 것은 나뿐이다.
“충분해요. 아니, 차고 넘쳐요.”
속이고 싶지 않았다.
마법사 할아버지는 선의를 가지고 날 찾은 사람이다. 굳이 속이지 않아도 이 거래는 내게 큰 이익을 가져다줄 것이다.
“넘친다고?”
“이 정도 금이라면, 이 과자를 적어도 5천 상자 정도는 살 수 있을 것 같은데요.”
“5천 상자나 말인가?”
“네. 전 제가 사는 나라에서 귀족이나 왕이 아니에요. 그냥 백성이죠. 그 과자는 백성인 저도 무리 없이 살 수 있는 대중적인 과자예요. 비싸지 않아요.”
“그 과자가 대중식품이란 말인가?”
“네. 그리고 통역 반지를 사용해 봤는데, 효과가 아주 좋아요. 보답으로 남은 과자를 모두 드릴게요. 그리고 다음에 오시면 다른 과자도 더 주문해 놓을게요. 금은 됐어요. 너무 비싼 물건이에요.”
마법사 할아버지는 내 태도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고맙네. 하지만 금은 받아두게. 앞으로 부탁할 게 많을 것 같으니 말이야.”
“그럴까요. 이건 할아버지와 저의 우의의 표시니까요. 아! 이것 말고도 다른 것들도 있으니 그것도 가져가세요.”
“다른 것?”
난 냉장고를 열어봤다.
제로 콜라 캔이 있었지만, 탄산을 경험하지 못했을 레몽드 왕국의 사람들의 취향을 맞출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다행히 냉동실에는 아는 누나가 제주도 여행을 다녀오면서 사다 준 한라봉 초콜릿이 있었다.
싱크대에서 컵라면도 찾아냈다.
먹는 방법을 설명하려다가, 마법사 할아버지가 입맛을 다시는 게 보였다.
할아버지도 사람이다.
“이렇게 하는 게 좋겠어요. 전 왕실 분들 입맛을 잘 모르니까 할아버지께서 드셔보시고 맛있는 것을 가져가세요. 그리고 전 그걸 지금 가져가시는 과자처럼 준비해 놓을게요.”
“아무리 그래도 전하께서도 드시기 전에······.”
“미리 맛을 테스트한다고 생각하시면 되잖아요. 막상 가져갔는데, 왕실 분들의 입맛에 맞지 않을 수도 있는 거니까요.”
“그러면 부탁하겠네.”
할아버지는 순진하고 솔직했다.
부끄러워하면서도 내 제안을 거부하지 못했다.
난 간단하게 새우 맛의 컵라면과 우유를 대접했다.
“이렇게 표시된 선까지 뜨거운 물을 부으면 됩니다.”
“매우 간단하군. 그런데, 물을 어떻게 끓인 건가?”
“선풍기처럼 전기를 사용해서 끓였지요. 아마 이 주전자 안에 구리선이 있고, 그 선을 전격으로 데워서 물을 끓이는 방식일 것입니다.”
마법사 할아버지는 내 말을 주의 깊게 듣더니, 작은 수첩을 꺼내서 뭔가를 적었다. 통역 반지는 말은 통했지만, 글을 읽을 순 없었다.
“뭘 적으신 것입니까?”
“실험하고 싶은 것들이 하나 가득하다네. 그 선풍기라는 것도 마법진으로 회전 날개를 돌리기만 하면 우리 쪽에서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전격마법으로 물을 데울 수 있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된 것이라서 말이야.”
우리는 그 뒤로도 한참 이야기를 나눴다.
확실히 깍듯하게 예의를 지켰던 처음보다는 서로 대하기가 쉬웠다.
3분의 시간을 들여 맛본 새우 컵라면을 마법사 할아버지는 땀을 흘리며 매워했지만, 정신없이 먹었다.
“이건 대단하군. 새우야. 새우 맛이네.”
“맞습니다. 여기 새우 그림도 있질 않습니까?”
“자네의 세상은 정말 알 수가 없군. 아무리 물산이 풍부하다 하더라도 포장에 이렇게 큰돈을 들이다니 이해하기가 어려워.”
“디저트로 이걸 드십시오.”
새우 컵라면을 아쉬운 듯 매만지던 마법사 할아버지는 한라봉 초컬릿의 달콤함에 매료됐다.
“이것이네. 이걸 좀 잔뜩 사주게. 이거야말로 우리 왕국 사람들에게 딱 맞는 맛이야.”
“네. 그러죠. 그런데 이건 바로 살 수는 없어서 입수할 때까지 좀 시간이 걸려요.”
“그럴 테지. 이 정도의 맛인데. 한 달 후 정도라면 되겠나?”
“아니요. 지금 주문하면 내일 새벽에는 도착할 거예요.”
할아버지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금이 여기서도 비싸다지만, 그래도 자네도 우리 왕국의 것이 필요한 게 있으면 좋겠네. 뭐가 좋겠나?”
“저도 과자를 가져다주세요. 왕실에서 먹는 과자니 얼마나 맛있겠어요. 아. 과일도요. 외국 가면 항상 그곳의 과일을 먹어보는 게 취미거든요.”
“과자와 과일이라. 좋군. 우리 왕국에도 맛있는 과일이 꽤 있으니 기대하게.”
종이가방에 컵라면과 남은 약과, 한라봉 초콜릿까지 챙긴 마법사 할아버지가 돌아가려 했다. 난 잠시 기다려 달라며 할아버지를 붙잡았다.
“왜 그러는가?”
“얼굴을 뵌 적은 없지만, 그래도 일국의 국왕 전하를 알게 된 거잖아요. 특별음식을 주문해뒀어요. 가져올 시간이 됐으니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아니? 언제 말인가? 자네는 나와 계속 함께 있었지 않은가?”
난 핸드폰을 보여주며, 핸드폰으로 배달 주문을 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대단하군. 통신용 수정구랑 비슷하지만, 음성이 아니라 그림을 보고 주문까지 할 수 있다니 말이야. 그런데, 그 귀한 음식은 말이야. 그건 시식이 필요 없는 겐가?”
“그건 그냥 드시면 됩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너무나 궁금한 얼굴이었다.
너무나 순진한 6서클 마법사의 얼굴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해식이 두 마리 치킨이 도착했다.
“일부러 두 개를 시켰습니다. 하나는 전하께 드리고, 나머지 하나는 아무도 없을 때 혼자 드세요.”
“그리 귀한 음식인가?”
“음··· 이 과자 70개 정도 가격일까요? 귀한 것도 귀한 것이지만, 이건 저희 세상에선 모두 좋아하는 음식이라서요. 진짜 맛있어요.”
“고맙네. 정말 은혜는 잊지 않겠네.”
마법사 할아버지는 올 때처럼 공기를 가르고 쓰윽 사라졌다.
계속 이야기하던 사람이 없으니 어딘지 허전했다. 할아버지가 먹고 간 컵라면을 치우다가 할아버지가 놓고 간 금덩이가 눈에 들어왔다.
이걸 현금화할 수 있을까?
순도는 어떻게 될까?
궁금한 게 많았다.
아무래도 금덩이보다는 이걸 다시 맡겨서 새로운 형태로 만든 예술품 같은 걸 받는 게 나을 것 같았다.
혹시 드워프 같은 것들도 있나?
있으면 대박일 텐데.
치킨은 분명히 먹힐 것이다.
한라봉 초콜릿과 약과를 주문하려다가, 굳이 약과가 아니라도 상관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달콤하고 푹신한 것을 좋아한다면, 무적의 아이템이 있지 않은가?
초코파이를 주문하다가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선풍기를 충전하기 위해 오가는 건 비효율적이다. 발전기는 기름이며 준비해야 할 것이 많지만, 고용량 파워뱅크가 있다면 큰 전기가 필요하지 않은 다양한 전기제품을 쓸 수 있다.
빠르게 파워뱅크를 검색했는데, 생각보다 꽤 비쌌다.
물론 금덩이를 팔면 자금 문제는 해결이 되지만, 금덩이를 법적 문제 없이 파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올바른 물물교환을 위해선, 돈이 될만한 레몽드 제품이 필요했다.
마법사 할아버지에게 부탁해야 할 게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