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uck at the gate alone RAW novel - Chapter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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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
“하누아나예요. 도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아니요. 어렵지도 않은 일인데요. 유학생인가요?”
“네. 다행이에요. 기숙사가 답답해서 나가고 싶긴 했는데 집을 구할 방법을 몰라서요.”
“절 어떻게 아셨어요?”
“김 교수님이라고 프랑스어를 할 줄 아는 교수님께 레스토랑을 소개받았어요.”
김 교수가 누군지 알 수 없지만, 나도 아닌 부모님의 식당을 소개했다니 신기한 일이다.
나는 학교와 동네의 자랑스러운 사람으로 조금씩 알려지고 있었다. 집은 어딘지 몰랐지만, 하루에 몇 번씩 꼭 들르는 통에 식당이 우리 부모님이 하신다는 사실은 급속히 퍼지고 있었다. 하누아나 말고도 단순히 나를 보기 위해 우리 식당을 찾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다.
슈퍼는 지지부진했지만, 붙어 있는 식당은 그럭저럭 잘 되고 있었다.
알 수 없는 가격의 집밥보다는 떡볶이나 라면, 캡슐 커피로 만드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같은 것들이 잘나갔다.
맛도 맛이지만, 기본적으로 쌌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파는 깎은 과일이나 과일 하나, 양파 하나도 제법 팔리는 편이었다.
“좀 귀찮아서 그렇지. 하나씩 15개 팔면 1박스 판 거잖아. 다를 게 뭐냐?”
거기에 엄마는 없는 메뉴라도 엄마가 할 수 있는 음식이면 장을 봐서 해주기도 해서 조금씩 단골이 늘고 있었다.
모든 게 안정적이었다.
레몽드 쪽 농장 지원에 많은 비용을 투입하고 있지만, 조금씩 성과가 나고 있어서 투입 비용이 아깝지 않았고.
기본적으로 나와 공주가 번역료로 일주일에 2~300만 원 정도는 무조건 벌어들였기 때문에 생활에 어려움도 없었다.
하누아나의 차를 타고 부동산으로 이동하며, 말리에 대해 검색했다.
이름만 들어본 말리는 아프리카 북서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나라는 컸지만, 매우 가난한 나라였다.
국민 대부분이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으며 기술 또한 부족해 나라 대부분이 사막인데도, 산업의 주축이 농업이었다.
농업국가라는 글귀를 보자마자 레몽드가 떠올랐다.
혹시 마법이라면 사막에 비를 내리거나, 리비아 대수로처럼 거대한 지하수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그 가난한 나라에서 온 이 덩치가 좋은 아프리카 유학생은 어째서 이렇게 돈이 많은 걸까?
무언가 미심쩍었다.
무엇보다 말리와 한국은 교류가 많지 않았다.
내전과 쿠테타 이후 말리는 군사독재 정권이 지배하고 있는 여행 규제 국가였다.
물론 그런 나라에서도 한국에 유학생을 보낼 순 있지만, 롤렉스를 찬 하누아나는 도저히 세계 최빈국의 유학생처럼 보이지 않았다.
집이 얼마나 부자인지를 묻는다는 게 좀 어색했지만, 어차피 아파트를 얻거나 하려면 하누아나의 경제력을 알아야 한다.
“방 3개짜리 아파트를 얻으려면 꽤 돈이 들 텐데, 자금의 여유가 있어요?”
“돈은 상관없어요. 아! 좀 시끄러워도 괜찮았으면 좋겠어요.”
시끄러워도 괜찮았으면 좋겠다고?
층간소음 유발자가 환영받을 리 없다.
거기다 이런 생각을 떠올린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지만, 아파트에 덩치 큰 젊은 흑인 남자가 입주하는 것을 반대할 무식한 아줌마도 반드시 있을 것이다.
나는 그런 말까지는 할 수 없어서 층간소음은 어렵다는 말을 전했다.
“아파트 중에서 시끄러워도 좋은 곳은 없어요. 좀 어려울지도 몰라요. 예산을 어느 정도로 생각하는 거예요?”
“돈은 상관없다니까요.”
마침 신호에 걸려 차를 멈췄고, 하누아나는 어플을 켜서 자신의 은행 계좌를 보여줬다.
나는 눈을 깜박였다.
3억이 넘는 돈이 들어 있었다.
독재자의 아들 같은 건가?
아니면 석유왕의 아들이라거나.
하지만, 부모님은 뭐 하시니라는 말을 대놓고 묻진 못했다.
순박하게만 보였던 흑인 청년에게서 무언가 위험한 냄새가 풍겼다.
부동산 사장님은 나보다 소음에 민감했다. 집에서 왜 시끄러운 일이 일어나야 하는지를 꼬치꼬치 물었고, 하누아나는 전통음악을 들으며 춤을 추기 위해서라고 대답했다.
그건 진짜 곤란하다.
음악만으로도 쫓겨날 판인데, 발을 구르다니.
민폐 중의 상민폐다.
“아파트는 어렵겠는데? 1층이라도 그런 걸 받아 줄 이웃이 어딨어. 더구나 이슬람 신자라며, 하루에 다섯 번씩 기도하고 그래야 하는 거잖아. 아파트는 어려워. 바로 난리날 걸.”
“역시 그렇죠?”
“방 3개짜리면 34평형 이상이잖아. 그 돈이면 차라리 단독 같은 건 어떤지 물어봐 줘.”
“단독이요?”
“응. 자네 빌라 근처에도 구형 단독이 몇 채 있잖아. 그중에 매매 물건이 하나 있거든. 팔려고 내놓은 물건이긴 한데, 요즘 경기가 똥이니까 나갈 리 없잖아. 놀리느니 월세나 받아먹으라고 하면 돼. 돈이 급한 양반도 아니거든.”
발을 구르며 전통춤을 출 거라면 역시 단독이 유리하긴 했다. 우리 집 근처라면 학교에서 멀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단독이면 마당이 있다.
“아프리카에서 왔으니, 오히려 단독이 나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래, 볼륨을 너무 높여서 쩌렁쩌렁하게 틀지 않으면 자기 집에서 음악 좀 틀고 춤 좀 춘다고 해서 뭐라고 할 사람이 어딨겠어. 풀 옵션은 당연히 아니지만, 에어컨이랑 도시가스는 있거든. 나머지야 그냥 사면 되잖아. 차랑 시계만 봐도 갑부집 아들내미 같은데 말이야.”
하누아나는 그것도 괜찮다고 했다.
부동산 아저씨의 안내를 받아 우리집 근처의 단독주택을 둘러봤다. 지은 지 오래된 건물이었지만, 아저씨 말대로 에어컨이나 싱크대, 도시가스들이 연결돼 있었다.
청소 상태도 말끔했다.
마당의 작은 정원을 발견한 하누아나는 매우 밝게 웃었는데, 검붉은 피부와 하얀 이가 대비되며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좋다네요. 여긴 월세가 얼마인가요?”
“잠깐만, 얼마나 오래 살 거야?”
하누아나는 적어도 3년 정도는 머물 거라고 말했고, 부동산 사장은 주인과 쑥덕공론 끝에 보증금 2천에 월 75만 원을 제시했다.
“비싼 편 아니에요?”
“싼 편은 아닌데, 비싼 편도 아니야. 독채잖아. 건평도 꽤 넓고. 그리고 매매를 월세로 돌리는 건데, 그 정도 배려는 해줘야지.”
“언제 이사 올 수 있어요?”
“비어 있으니까 오늘이라도 들어올 수 있어. 도시 가스는 오늘 신청하면 내일 연결해줄 거지만, 이 더위에 가스 쓸 일도 없잖아. 밥 같은 건 하루만 밖에서 사 먹으라고 하면 되고.”
반색한 하누아나는 당장 입주하기를 원했지만, 주인을 불러 계약할 때까지 잠시 부동산에서 기다려야 했다.
한 시간 정도는 기다려야 해서, 난 그사이 집에 다녀오려고 했다. 별일이 없을 것 같긴 했지만, 공주를 혼자 두는 게 불안했다.
“기숙사에 가서 이사 준비를 하다가 1시간 후에 올래요? 내 전화번호 알려줄 테니까, 오기 전에 전화주고.”
“형이라고 불러도 될까요?”
“그래요.”
“형, 저 가구랑 가전제품이랑 사고 그래야 하는데, 그것도 좀 도와주세요. 사례는 꼭 할게요.”
나쁘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말리라는, 이름도 낯선 나라의 부자 유학생을 보자마자 떠올린 생각이 있었다.
하누아나가 권력자의 아들이든 석유왕의 아들이든 상관없다. 그런 이들과 깊은 인연을 맺는다면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아황산수소칼슘처럼 입수 루트가 까다롭거나 구할 방법을 알지 못해 힘들었던 많은 물품을 말리에 보내면서 일부 물량을 빼돌리면 된다.
금이나 보석을 말리를 통해 팔아치우고 돈을 확보할 수도 있었다.
적당한 거래를 할 수 있다면, 말리는 제 2의 레몽드가 되어서 삼각편대로 움직일 수도 있었다.
말리가 한국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땅이라는 게 중요했다.
이트롬이나 드레비아를 말리의 밀림이나 초원에서 발견한 새로운 과일이라고 우기면서 팔 수도 있었다.
더구나 말리는 내전 중이다.
내전으로 출입이 어려운 것 자체가 오히려 더 큰 메리트였다.
“도와줄게요. 기숙사에서 짐을 가져와야 하나요? 이사업체를 소개해 줄까요?”
“아니요. 기숙사는 그냥 둘래요. 학교 안에 머물 곳이 하나 더 있으면 좋잖아요.”
잠시 쉬기 위해 수십만 원을 아무렇지 않게 쓸 수 있다니.
기숙사를 세컨 하우스로 쓰는 찐 부자의 판단에 좀 놀랐다.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집으로 가는 대신, 하누아나를 데리고 동네의 전자제품 대리점으로 향했다.
대용량 냉장고와 대형 TV, 오디오와 컴퓨터에 오븐까지 일괄로 구매하겠다는 아프리카의 부자에게 전자제품 대리점 사장님은 감격했다.
“사장님. 할인되죠?”
“그럼요. 이렇게까지 사는데. 그런데 제가 먼저 집을 확인했으면 좋겠는데요?”
“네?”
“주방 사이즈나 거실 사이즈에 따라서 들어가야 할 제품 사이즈가 달라지니까요.”
“그렇겠네요. 부동산 계약 끝나고 전화 드릴 테니까 출장 와주세요. 가격은 상관없지만, 너무 최고가, 최대용량 이렇게 맞추지는 말아주세요. 한 번 파시고 마실 거 아니잖아요.”
“그럼요.”
역시 돈의 위력은 대단했다.
가구 매장에 가서도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했다. 침대와 쇼파, 커튼에 기타 필요한 가구를 모두 구매하겠다는 하누아나의 말에 가구점 사장도 당연히 방문을 약속했다.
두 매장을 돌고, 부동산에서 계약을 마무리한 후 동네 커피숍에서 하누아나와 차를 마셨다. 3시간 넘게 함께 돌아다닌 뒤여서 조금 편해지기도 했다.
하누아나의 요청으로 이제야 말을 놓기로 했다.
내가 존대가 편한 재훈이 형과 비슷한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 넌 집이 뭘 하기에 이렇게 부자야?”
“형, 난 도곤족이에요.”
“도곤족?”
처음 들어보는 부족이다.
하누아나의 설명을 들으면서, 도곤족을 검색했다.
꽤 특이한 사람들이었다.
도곤족은 아프리카 원시미술로 유명했는데, 태초에 하늘에서 내려온 외계인을 믿는 토속신앙과 결합한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들이었다.
내가 검색한 도곤족의 특징에 대해 하누아나는 비교적 맞는 설명이라고 평가했다.
“우리 부족은 보크사이트 광산을 가지고 있어요.”
대화가 중간중간 계속 끊겼다.
보크사이트가 뭔지 또 검색해야 했다.
보크사이트는 알루미늄의 주요 원료였고, 꽤 수익성이 좋은 광석이었다.
“진짜? 대박이네. 그런데, 왜 한국까지 온 거야?”
“말리에 있다가 죽을지도 몰라서요. 아버지는 그냥 사업만 하는 사람이긴 한데요. 작년 말에 인도네시아가 보크사이트를 수출 금지하는 바람에 우리 집안이 돈을 더 많이 벌게 됐거든요.”
“돈을 더 많이 벌게 된 게 무슨 문제야?”
“말리는 가난하고, 총이 많아요. 부족 간 갈등도 심하고요. 여태까지는 달라는 쪽마다 모두 돈을 줘서 갈등을 피해 갔는데 이젠 선택해야 할 때가 왔어요. 그래서 아버지가 절 한국으로 피신시킨 거예요.”
하누아나는 보이는 것 이상으로 많은 사연을 품고 있었다.
그래도 다행이었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군벌이나 정치가 보다는 자본가 쪽이 낫다.
난 사흘 동안 하누아나의 집을 드나들며, 이사와 가구, 전자제품 설치를 도왔다.
인터넷과 오디오 설치까지 모두 마친 후 하누아나는 내게 봉투를 건넸다.
손에 잡히는 두께로 대강 꽤 많은 돈이라는 걸 알 수 있었지만, 봉투를 받는 편이 서로 마음이 편해질 것 같아 액수를 확인하지 않고 고맙다며 받았다.
“고맙다. 잘 쓸게.”
“제가 더 고맙죠. 아! 형. 이 정도 소리가 괜찮은지 좀 들어봐 주세요.”
하누아나는 소중히 간직해 둔 CD를 틀었는데, 마치 주문을 반복하는 것 같았다. 역시 소리가 너무 컸다. 난 적어도 옆집에 들리지 않을 정도로 볼륨을 줄였다.
“이게 최대야. 밤이나 새벽엔 이 정도로 틀고.”
“네. 아쉽지만 이 정도면 충분해요.”
“그런데, 이 CD 뭐야? 주문이야? 뭐가 이래. 왜 신들의 이름을 주절주절 계속 말하는 거야?”
“어? 형, 어떻게 알았어요? 이건 우리 부족의 비밀언어인데요?”
말실수를 해버렸다.
통역 반지 때문에 알아서 안 될 내용까지 알아버린 것이었다.
난 입을 가린 채 아무것도 아니라고, 손을 내젓고 그만 가보겠다고 했다.
“형···!”
하지만 하누아나의 눈은 정상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심각해지는 게, 날 무슨 지상에 내려온 신을 보듯 했다. 내 손을 바라보던 하누아나가 이글이글 불타는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왜 그래?”
“형, 형은 누구시죠?”
“내가 누구긴 누구야. 네 이사를 도와준 너랑 친해진 형이지.”
“그럴 리가 없어요. 형, 이걸 좀 볼래요?”
눈을 빛낸 하누아나가 자신의 최신형 스마트폰을 내게 내밀었다.
원시 동굴 벽화를 찍어놓은 사진이었다.
그림엔 하늘에서 내려온 것 같은 신인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난 왜 하누아나가 나를 그렇게 봤는지 알게 됐다.
하늘에서 내려온 신인의 손가락에 내 통역반지와 완전히 똑같은 모양의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