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uck at the gate alone RAW novel - Chapter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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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물교환 3.
“뭐하냐? 아까 전화했더니 안 받길래, 너네 과방에도 갔었는데 없더라. 또 집이냐?”
“어. 우리 나비랑 넷플 봤지.”
“누가 집돌이 아니랄까 봐. 미정이랑 저녁 먹을 건데, 나올래?”
“그러던가. 그냥 우리 집 올래? 뭐 시켜 먹으면서 넷플이나 보자.”
“햇볕 좀 받고 살아. 집에 꿀단지라도 감춰놨냐 대체 왜 그러는 거야?”
“나비 때문에, 아직 애기라서 분리불안 있거든. 나 나가면 지쳐서 잘 때까지 계속 울어서.”
“미친놈. 내가 미정이랑 너네 집에 왜 가냐. 솔직히 말해. 너 나비 여자 꼬시려고 키우는 거지?”
“됐어. 나갈게. 어디서 보냐?”
희택이는 군대 동기다.
군대를 늦게 간 나보다 한 살 어린, 같은 대학 다른 학과 후배였다.
동기인데다 같은 학교라는 학연으로 꽤 친하게 지냈었다.
전역이 얼마 남지 않았을 무렵 희택이는 내게 형이라 부르겠다고 했지만, 군 생활 내내 반말을 쓰다가 갑자기 형이라 부르며 존댓말을 하는 게 어색해서 그냥 친구가 됐다.
나는 인문대였고 녀석은 사범대여서 다른 건물을 썼지만, 인문대 건물과 사범대 건물은 매우 가까워서 전역하고 나서도 우린 거의 매일 보는 사이였다.
희택이는 최근 같이 보기로 한 미정이라는 후배와 썸을 타고 있었다.
키도 크고 생긴 건 멀쩡하지만, 말주변이 없는 녀석은 데이트마다 날 끼워 넣고는 했다.
“오빠, 여기요.”
약속 장소에 갔더니, 희택이는 보이지 않고 미정이만 앉아 있었다.
“희택이는?”
“화장실 갔어요. 김치찌개? 생선구이?”
“김치찌개 먹어야지. 먼저 시켜놓을까?”
서촌 식당은 최근에 알아낸 맛집이다.
은초밥이라는 작은 초밥집이 망하고 그 자리에 생긴 식당이었는데, 김치찌개와 생선구이가 메인이다.
가격이 다른 곳보다 2천 원 정도 비쌌지만, 찌개도 생선도 맛있었고 무엇보다 곁들임 반찬이 맛있었다.
특히 김치찌개를 시키면 인당 하나씩 반숙 계란 프라이를 줬는데, 김치찌개랑 비벼 먹으면 정말 기가 막혔다.
거기다 공깃밥도 무한 리필이어서 서촌 식당은 매우 빠르게 인기 식당이 돼가고 있었다.
일부러 저녁 시간을 피해서 가서 그런지 식당엔 우리밖에는 손님이 없었다.
주문하고 찌개가 나오길 기다리고 있는데, 한 무리의 다른 손님들이 들어왔다.
작은 식당이라 대화하는 소리가 들렸는데, 중국 여학생들이었다.
“요즘 학교에 중국인들 엄청 많네요.”
“학교가 너무 어려우니까. 괜히 H대랑 통합이야기가 나오는 게 아니잖아. 해외 유학생이라도 많이 받아야지. 유학생은 하나하나가 다 돈줄이거든.”
사장님이 중국인 여학생들에게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서 줬는데, 중국인 여학생들이 불평하는 소리가 들렸다.
‘한국 사람들은 왜 이렇게 찬물을 좋아하는지 모르겠어.’
‘그러게. 배도 안 아픈가?’
중국 사람은 어지간해선 찬물을 마시지 않는다.
듣고 있기에 좀 민망해서, 주위를 살폈는데 정수기가 보이지 않았다. 좁은 가게여서 주방 안에 있는 것 같았다. 마침 사장님이 밑반찬을 가져오셔서 따뜻한 물이 있으면 가져다줄 수 없느냐고 물었다.
“따뜻한 물? 알았어. 금방 가져다줄게.”
“아니 저 말고요. 저기 여학생들이요. 중국 사람들인데, 찬물이 싫은가 봐요.”
“그래? 그래서 표정이 별로였나? 바로 가져다준다고 학생이 대신 좀 전해주면 안 될까?”
행동이 빠른 사장님은 중국인 여학생들에게 따뜻한 물을 가져다줬고, 여학생들의 감사 인사를 받았다.
“너 어떻게 알았냐?”
“어? 뭐가?”
“저기 여학생들이 찬물 싫어하는지 어떻게 알았냐고?”
“들리잖아.”
희택이의 질문을 받고서야 내가 통역 반지를 끼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미정이가 놀라서 물었다.
“오빠, 중국어 할 줄 알아요?”
“어. 조금.”
“난 왜 몰랐지?”
“너랑 있을 때 중국어 쓸 일이 없었잖아. 군대에 중국인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게 아니고. 여태 한마디도 안 한 게 이상하잖아. 너 같은 잘난 척 대마왕이.”
잘난 척은 아니다.
언젠가 TV에서 퀴즈쇼를 보다가 내가 답인 미토콘드리아를 맞힌 이후로 희택이는 나를 잘난 척해서 재수는 없지만, 아는 것은 많은 사람으로 여기고 있었다.
사장님이 메인인 찌개를 가져다주면서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셨다. 그러면서 작은 부탁을 하셨다.
“저기 학생. 혹시 따뜻한 물 말고 식당에서 해줬으면 하는 일 있는지 물어봐 줄 수 있어? 요즘 중국 손님들이 부쩍 늘었거든.”
역시 대박식당의 사장은 빈틈이 없다.
도와주고 싶은 마음은 있었는데, 좀 긴장이 되긴 했다.
통역 반지가 있으니 말을 통할 것은 분명했지만, 내가 하는 말과 입 모양의 싱크가 맞지 않을까봐 그게 걱정이었다.
사장님과 함께 가서, 손으로 입을 가리고 중국 사람 입장에서 식당에 바라는 게 있는지 물었다.
여학생들이 감탄했다.
“혹시 중국에서 오셨어요?”
“아니요. 그냥 인문대 학생이에요.”
“아까 사장님이 물 가져다 주신다고 했을 때 중국 사람인 줄 알았어요. 한국어도 익숙해 보여서 교포인가 했어요. 여기 식당은 다 맛있는데, 프라이가 아쉬워요. 프라이를 중국식으로 해줬으면 좋겠어요.”
“중국식이 따로 있나요?”
“기름을 넉넉하게 두르고 튀기듯이 프라이를 하면 가장자리가 바삭해지거든요.”
“말씀드릴게요.”
사장님께 여학생들의 말을 전했다.
사장님은 당장 해보겠다며 우리에게도 맛 평가를 부탁하셨다. 테이블로 돌아오니 희택이와 미정이 반응이 장난 아니었다.
“오빠, 끝내주네요. 완전 원어민 수준이에요.”
“그러게. 조금 잘하는 수준이 아니네. 넌 국문학과가 무슨 중국어를 그렇게 잘해?”
이렇게까지 잘 통할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나는 대강 얼버무렸다.
“난 그냥 외국어에 관심이 많아. 너도 알다시피 난 전형적인 문과충이잖아.”
“영어도 잘하냐?”
“어. 회화는 잘하지. 프리 토킹은 전혀 문제가 없어. 학원 같은 데를 다니지 않아서 토익은 별로지만.”
“대박.”
사장님이 새로 만들어 온 중국식 계란 프라이는 맛있었지만, 난 김치찌개와 부드럽게 섞이는 기존의 반숙 스타일이 더 좋았다.
하지만, 희택이와 민정이는 두 사람 모두 새로운 스타일의 계란 프라이가 마음에 든다고 해서 사장님을 고민에 빠트렸다.
“물어보고 신청받아서 하시면 되잖아요.”
“그러게. 학생, 중국식 프라이랑 일반 프라이를 좀 적어줄 수 있어? 나중에 중국 손님들에게 보여주고 선택하라고 하게.”
당황했다.
쓸 줄은 몰랐다.
난 프라이의 정확한 한자 표기를 모르겠다며 중국인 여학생들에게 물어봐 주겠다고 했다.
중국 유학생들은 사장의 작은 친절에 감동했다.
종이에 중국식과 한국식이라는 글자를 써줬는데, 그 정도라면 나도 쓸 수 있는 글자였다.
“학생. 진짜 고마워. 이따가 만이천 원 깎아줄게. 나가서 셋이서 커피라도 한 잔씩 해.”
좋은 일을 하고, 적지만 어쨌거나 돈이 생겼다.
같이 카페에 가자는 희택의 제안을 거절하고, 난 집에 돌아오는 내내 깊은 고민에 잠겼다.
본능적으로 통역 반지는 돈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제일 먼저 떠오른 건 컨텐츠의 자막 작업을 돈을 받고 하는 거였다.
야동이나 넷플의 컨텐츠들이나 통역 반지를 끼고 보는 맛은 전혀 달랐다.
난 같은 영상을 반지를 빼고 자막으로 확인하기도 했는데, 뜻은 같지만 재미가 배는 떨어졌다.
다른 문화권인 만큼 그 맛을 완벽히 살리지는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다르다.
재미는 누구에게나 같다. 내가 재미있으면, 다른 사람들도 재미있다. 통역반지의 힘이라면 가능했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와 영상에 자막을 넣는 방법을 검색해 본 뒤 난 깨끗하게 번역일을 포기했다. 전형적인 문과충인 내 입장에서 프로그램 사용법이 너무 복잡했다.
이건 금과 같다.
가치는 충분하지만, 돈으로 만들기에 귀찮고 복잡했다.
전문 편집 아르바이트를 고용해서 일을 대신 시키면 가능이야 하겠지만, 아무런 경력도 없는 내가 어떻게 영상을 만들어서 돈을 벌 수 있는 길을 찾아내는 게 귀찮았다.
“좀 더 생각해보자.”
이계와 소통할 수 있는 현대인은 전 세계에서 나 하나다.
어떻게든 돈은 벌 수 있다.
서두르다간 체하기 마련.
당장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지만, 느긋하게 기다리기로 했다.
할아버지가 가져올 레몽드산 과일과 과자가 기다려졌다.
“치킨은 마음에 들었겠지?”
신기한 것은 할아버지에게 무엇인가 좋은 것들을 받는 기대감만큼이나, 현대의 물품을 레몽드에게 전하는 재미가 있다는 거였다.
간장치킨의 맛이 얼마나 레몽드의 국왕을 만족시켰을지, 새로 주문한 초코파이는 얼마나 큰 열풍을 몰고 올지가 기대됐다.
고가의 파워뱅크를 사는 걸 포기한 만큼 할아버지에게 들인 돈은 크지 않았다.
두 마리 치킨 한 세트와 48개입 대용량 초코파이 2상자를 빼면 나머지는 모두 집에 있던 것들이었다.
난 그 대가로 인생의 즐거움과 편리함을 얻었다.
아! 꽤 커다란 금덩이도 있긴 했다.
줄곧 할아버지를 기다렸지만, 할아버지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주문한 한라봉 초콜릿과 대용량 초코파이가 도착했는데도 할아버지가 오지 않아서 기다리는 마음이 커졌다.
그러고보니.
할아버지가 했던 말이 기억났다.
여기서 보낸 30분이 레몽드에선 3분이라고 했었다.
시간의 폭이 10배나 차이가 나니, 어쩌면 좀 더 오래 기다려야 할지도 몰랐다.
난 거의 이틀을 할아버지를 기다리다가, 더는 미룰 수 없어서 학교에 나가 정상적인 대학생활을 하기로 결정했다.
집을 비우면서 금덩이가 신경 쓰였다.
당장 현금화할 것은 아니지만, 가치가 너무 크다 보니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결국 전통적인 방식인 침대 메트리스 아래에 숨겨놓고 나왔지만, 나비를 혼자 두고 온 것만큼이나 찝찝한 기분이었다.
다음에 요구해야 할 걸 정했다.
아공간 반지나 팔찌의 가치를 물어보고 만약 크게 비싸거나 귀하지 않으면 그걸 가져다 달라고 할 생각이었다.
아공간 반지가 비싸거나 귀하면 당분간은 금덩이를 받은 걸로 치고 다시 돌려보낼 작정이었다.
그럼 혹시 모를 도둑이 든다 해도 무사할 수 있으리라.
서로에게 신뢰감만 있다면, 레몽드는 세상 어디보다 확실한 금고이자 보물창고였다.
할아버지가 돌아온 건 일주일 정도가 지나서였다.
할아버지는 내방에 나타나자마자 아공간 팔찌에서 가져온 물품들을 쏟아냈다.
다섯 종류의 과일과 솜씨를 잔뜩 부린 과자들이었다.
과일도 과자도 양이 엄청 많아서 거실이 가득했다.
“뭘 이렇게 많이 가져오셨어요?”
“아. 자네의 후의에 보답하는 전하의 답례품이네. 다른 것은 진작 준비가 됐지만, 이트롬이 수확되지 않아 두 달 넘게 기다렸다네.”
“이트롬이요?”
“저기 붉은색 과일 말이야. 왕실 특산이지. 맛도 맛이지만 키우기도 어렵고 특별한 효능이 있어서 같은 무게의 은과 비슷한 값어치라네.”
이트롬이라는 과일은 많았다. 사과 정도의 크기의 과일이 쉰 개는 돼 보였다.
“혼자 먹기엔 너무 많은데요? 이렇게 많으면 상하지 않을까 걱정도 되고요.”
“걱정할 것 없네. 여기 전하의 다른 하사품도 있으니까.”
마법사 할아버지가 자신만만하게 꺼낸 것은 작은 가방이었다. 난 그것이 아공간 마법이 부여된 가방이라고 확신했다.
어?
그런데, 가방이 두 개였다.
이에 대해 물어보려는데 할아버지가 내 왼편을 손짓했다.
“이트롬 옆에 있는 드레비아도 효능도 만만치 않지. 저건 왕국의 여인이라면 모두가 꿈꾸는 과일이라네.”
마법사 할아버지가 자신있게 이야기한 과일의 효능은 놀라웠다.
이트롬은 먹으면 탈모가 예방되고, 드레비아를 먹으면 가슴이 커진다는 것이었다.
“이트롬은 올해 왕실 직영 농장의 1/10을 챙겨온 것이라네. 그러니 여기 이 가방에다 그 닭튀김을 100상자 정도 담아줄 수 있겠나. 원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아서 말이야.”
너무 확실한 물품을 가져온 탓인지 마법사 할아버지는 이전과는 달리 미안한 기색이 없었다.
그럴 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