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uck at the gate alone RAW novel - Chapter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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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
만음사는 준비하고 있던 웹소설 레이블의 첫 작품으로 내 ‘레몽드 제국 연대기’를 선택했다.
순문학 중심의 대기업 출판사가 웹소설 플랫폼 진출은 전례가 없었던 일이었지만, 어차피 대세는 온라인이다. 서점에서 책을 사보는 사람보다 핸드폰으로 사는 사람이 더 많다.
풍부한 작가 인프라와 유통망을 가지고 있는 만음사가 웹소설을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원래도 만음사는 [레이노블]이라는 웹소설 레이블을 만들려고 준비하고 있었고, 여러 후보들 중에 내 소설이 첫 번째 작품으로 선정된 것이다.
만음사는 적극적이었다.
내 작품의 담당이던 서수진 에디터를 [레이노블]의 판무 팀장으로 발령낸 뒤, 첫 연재처로 달피아를 선택했다.
“레몽드 제국 연대기는 여태까지 있던 다른 웹소설들이랑 전혀 느낌이 달라요. 먼치킨도 아니고 주인공 중심 능력자물도 아니어서 10대와 20대 독자층이 적을 수도 있지만, 이 작품은 분명 성공할 거예요.”
‘레몽드 제국 연대기’는 지금 레몽드의 사정을 그대로 쓰는 소설이다.
단지 다른 점이라면 던전의 방향이 반대라는 것뿐이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 폴리세 2세는 왕국의 지하감옥에서 갑자기 나타난 현대의 대학생인 김현민을 만난다.
서수진 에디터와 만음사는 인물 간의 관계가 정말 마음에 든다고 했다.
“김현민 중심이 아니라 낯선 이계인을 접한 폴리세 2세의 시점으로 소설을 진행하는 것과, 둘 사이가 서로를 속이거나 무시하지 않고 자신의 상황에서 서로를 돕고 배려하는 모습이 좋아요. 그런데 제국은 중국을 본뜬 건가요?”
“일단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새로운 지도를 그려내는 것보다 지금 세계 지도로 이야기를 구성하는 편이 독자의 이해가 쉬울 것 같아서요.”
“좋네요. 그런데, 이 그림이요. 비용처리를 해야 하지 않을까요? 지나치게 훌륭한데요.”
“초반 눈길 끌기용입니다. 돈으로 부탁드릴 수 있는 작가님은 아니라서요.”
“혹시, 캔디스 이연 씨 피규어를 만드신······.”
“맞습니다. 개인적으로 아는 작가님인데, 부끄러움이 많으셔서 대중 앞에 나서는 것을 부담스러워하세요.”
앞으로도 종종 삽화를 넣을 예정이지만, 모두 무료에 상업이용까지 문제 없다는 말을 듣고 반색한 서수진 에디터는 미리 홍보물을 만들어 놓겠다며 당장 회사로 돌아갔다.
수익이 빠르게 늘고 있었다.
방송의 힘은 대단했다.
빛이 나는 클래스 PD의 욕심과는 다르게 모니터에 불이 붙는 선공개 영상은 그리 화제가 되지 못했지만, 언어 천재 김상민의 이름은 점점 높아져만 갔다.
부모님이 하시는 슈퍼를 제외하면, 난 손을 대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찬란한 성공을 거두고 있었다. 논문으로 시작해 학계의 까다로운 검증을 미리 통과해둔 게 컸다. 한참 태클 걸어야 할 지식계층도 내 편이니, 하루하루가 순조로웠다.
한편 ‘이번 생의 건너편’과 ‘로맹 가리 단편선’의 흥행도 계속되고 있었다.
사회가 고도화될수록 정보는 집중된다.
책을 사보는 사람이 많이 줄어든 출판계에서 베스트에 오르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지만, 일단 베스트셀러가 되고 나면 좁은 구매층 전부가 그 베스트 셀러를 구매한다.
퀄리티만 괜찮다면, SNS를 타고 퍼진 입소문으로 라이트한 독자들까지도 흡수할 수 있는 시스템.
그리고 ‘이번 생의 건너편’과 ‘로맹 가리 단편선’은 유려한 문체와 낯설면서도 서정적인 이국의 감성을 그대로 느낄 수 있어 더욱 반응이 좋았다.
간단하게, 그동안 한 번도 제대로 느껴보지 못한 해외의 문학에 사람들은 중독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는, 로맹 가리라는 작가가 한국에서 잘 팔리는 작가가 아니었던 만큼.
김상민이라는 번역가의 이름을 이제 히가시노 게이고나 댄 브라운, 조앤 롤링처럼 히트의 보증수표로 만드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건 주업인 논문 번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난 매우 빠른 속도와 번역의 정확성을 자랑하는 번역가였다. 한국 논문의 영어 번역이 주였지만, 복잡하고 어려운 외국 논문을 한국어로 번역하는 능력도 난 발군이었다.
방송 일과 웹소설 집필로 일을 줄였지만, 의뢰는 크게 늘고 있어서 절반으로 줄인 논문의 번역 수입은 오히려 늘어났다. 희택이와 미정이가 일을 잘해준 덕분이었다.
확보한 여유 시간에 레몽드 제국 연대기의 4편을 쓰고 있었는데, 미정이의 전화가 왔다.
“오빠. 저예요.”
“어. 오랜만이네. 어쩐 일로 네가?”
“희택이 오빠는 문학마을이랑 미팅 갔어요. 오빠, 재미있는 일이 들어왔어요.”
“무슨 일?”
“신려전매고분유한공사라고 되게 큰 중국 제작사가 있거든요.”
“응. 그런데?”
“거기서 이번에 너의 아저씨라는 한국 드라마를 리메이크하나 봐요.”
드라마 번역인가?
너의 아저씨는 초 히트작은 아니었지만, 명작으로 이름이 아주 높은 작품이다.
훌륭하다는 말만 듣고 있다가 재훈이 형의 모니터링을 해주면서 봤던 작품인데, 보자마자 푹 빠졌던 드라마였다.
재훈이 형은 주연은 아니고, 악역 조연으로 나와서 힘을 보탰었다.
욕심이 나는 일이었지만, 그다지 땡기지는 않는 일이었다.
원작이 너무 뛰어나면, 아무리 번역을 잘해도 원작과 비교당하기 마련이다.
작품에 새로운 시각을 더할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이 되지 못한다면, 팬이 너무 많은 작품은 건드리는 게 아니다.
“드라마 번역은 별로인데. 더구나 너의 아저씨를? 괜히 건드렸다가 욕만 먹을 것 같아.”
“아니요. 번안은 중국 쪽에서 하기로 했어요. 제작사에서 요구하는 것은 번안의 감수예요. 한중 정서에 모두 깊은 안목을 지닌 오빠가 번안에 모자란 1인치를 더해주길 바란데요.”
전혀 새로운 일이다.
이런 일이 왜 내게 왔는지 이해하지 못하다가 미정이의 설명을 듣고 나서야 이유를 알았다.
“중국 쪽 주연이 이재훈 배우님이에요.”
“그래?”
“지금 찍고 계신 드라마가 워낙 잘 빠졌다는 소문이 나면서, 바로 컨택이 들어갔나 봐요. 재훈 배우님이 새 제작사 쪽에다가 오빠 이야기를 해서, 제작사 쪽에서 원래 대본과 오빠가 번역한 번역본을 검토해보고 이런 제안을 한 거예요.”
번안이라.
그건 욕심이 나는 일이다.
일의 영역을 확장할 수 있는 찬스였다.
무엇보다 책과 이야기에 오랫동안 천착해 온 나라는 사람을 보여줄 기회여서 좋았다.
하지만, 하고 싶다고 해서 모두 해서는 안 된다.
“일단 중국어로 번안한 대본 3편까지를 확보해달라고 해. 번안이 잘 됐으면 내 조언이 필요 없고, 내가 한 작품해석이 별로일 수도 있으니까.”
“중국 놈들이 오빠 의견만 빼 먹으면요?”
“그래서 3화까지만 하겠다고 한 거야. 내 실력을 보여줘야, 너나 희택이가 그쪽이랑 협상이 편하지. 어차피 돈 많은 중국이잖아. 잔뜩 불러버려.”
* * *
“상민아. 이리 좀 와 봐.”
“왜요?”
“나비 말이야. 네 말대로 영물은 영물인가 봐.”
“네?”
엄마가 나를 불러서 보여준 것은 가게의 꽃 핀 화분들이었다.
“이것 좀 봐. 이게 내가 사흘 전에 찍어놓은 거거든.”
눈앞의 만개한 화분과 달리, 사흘 전 엄마가 찍은 화분의 꽃은 꽃망울이 막 뭉친 상태였다.
어떻게 해도 사흘 만에는 필 것 같지 않은 꽃이 핀 것이 신기했지만, 꽃이야 종류에 따라 그렇게 필 수 있는 게 아닌가.
“꽃이 핀 것 때문에 그러시는 거예요?”
“꽃도 그런데, 되게 신기한 것을 알게 됐어.”
엄마가 말해준 사실은 놀라웠다.
고양이는 영역동물이다.
내가 집에 없어도 나비는 대부분 집에 있을 때가 많았지만, 나비의 털이 하얗게 변한 뒤 엄마는 내가 없을 때마다 나비를 가게에 데려올 때가 많으셨다.
나비는 털이 거의 빠지지 않아서 식당에 둬도 문제가 생기지 않는 데다, 식당에 있을 때는 절대로 화장실을 보지 않아 데리고 있어도 큰 문제가 없었다.
거기에 이전과 달리 사람을 매우 잘 따랐다.
나비를 보러 오는 여학생이 늘어나며, 나비는 가게의 마스코트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었다.
“잘 봐. 내가 신기한 걸 보여줄게.”
엄마는 나비를 한 손에 안고는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따랐다.
그리고는 1분도 지나지 않아 컵라면 뚜껑을 열었다.
“봐? 신기하지?”
라면은 푹 익어 있었다.
그냥 뜨거운 물만 부은 상태가 아니었다.
라면은 마치 전자레인지에 돌린 것처럼, 면발이 익어 면발에 투명감이 생겼다.
“내가 다른 것들도 다 해봤거든. 떡볶이도 그렇고, 삼계탕도 그렇고 나비만 있으면 요리가 빨라져.”
알 수 없는 현상이다.
그러다 나는 나비가 사신수 중 동쪽과 가을, 오행 중 금(쇠)의 화신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다.
쇠 역시 불을 만나 단단해져서 이뤄진 결과물이다.
나비가 백호라면 결실을 맺게 하는 힘이 있을지 모른다.
큰 발견이다.
두 가지 실험이 필요했다.
나비의 힘이 동물에게도 통하는지를 알아봐야 했고, 다른 고양이나 동물에게 축성을 내렸을 때 비슷한 상태가 되는지도 알고 싶었다.
미야옹.
한참 고민에 잠겨있는데 나비가 엄마의 품에서 빠져나와 내 무릎에 앉았다.
신기했다.
무릎에 앉은 나비는 뭔가 나와 동화된 것처럼 무게감이 사라졌다.
“점심은?”
“컵라면도 있으니까. 공깃밥이랑 김치나 꺼내 주세요.”
“그럴까?”
“양파밭은 어떻게 됐대요?”
“너도 기웅이 알지?”
“아랫골 기웅이 아재요? 알죠.”
“어. 기웅이가 사고 싶은가 봐. 그런데 좀 치사하게 나오는 모양이야.”
컵라면과 공기밥을 먹으면서 엄마 이야기를 들었다. 아버지는 고향의 양파밭을 구매하려는 사람이 나왔다는 말을 듣고 시골에 내려가셨는데, 거기서 이상한 요구를 받으셨다고 한다.
“기웅이가 네 이야기를 하더래.”
“네? 제 이야기 뭐요?”
“아들이 그렇게 돈을 잘 번다는데, 일가끼리 좀 봐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천만 원이나 깎아달라고 하더래.”
“그래서요?”
“네 아버지 성격에 그걸 듣고 있었겠니. 그냥 자리 파하고 올라오려는데, 천에서 700으로, 700에서 500으로 계속 액수를 줄여가면서 깎아달라고 매달리더란다.”
한 동네에서 서로 얼굴을 보면서 수십 년을 산 사이니, 어느 정도 가격을 깎아달라고 할 수는 있다. 하지만 5천 200만 원짜리 땅을 사면서 천만 원을 깎아달라고 하다니. 아무리 일가라도 양심이 없다.
거기다 치사하게 내 이름을 가져다 붙인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가 돈을 잘 벌게 된 것과 아버지가 땅을 싸게 팔아야 하는 데에 무슨 상관이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냥 올라오라고 하세요. 어차피 대출이자 정도는 제가 내도 되니까. 천천히 땅을 살 다른 사람을 찾아봐도 되잖아요.”
“땅이고 집이고 오래 비워두면 값 떨어져. 300 깎아주고 팔고 오랬어. 빚은 얼른얼른 갚아야지. 은행 빚만 생각하면 잠이 오질 않는다니까.”
엄마의 말을 듣자마자 난 위화감을 느끼고 말았다. 목에 걸린 생선 가시처럼 거슬리던 말이 기억났다. 서수진 에디터의 말이었다.
“그런데, 작가님. 폴리세 2세랑 김현민이요. 언제 돈을 버나요? 인물 설정도 좋고, 김현민이 가져온 육개장 사발면을 주인공인 폴리세 2세가 먹어보고 좋아하는 것도 다 좋은데요. 이야기가 너무 소소하지 않아요?”
그냥 그럴듯한 지적이라고 생각했던 에디터의 말이 엄마가 은행빚을 말하자마자 현실로 다가왔다.
‘이야기가 너무 소소하다’.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세계에서 유일한 판타지 세계와의 교통로를 가진 사람이다.
제국에 의해 핍박받고 있지만, 어쨌거나 레몽드 역시 큰 땅과 많은 인구를 가진 왕국이다.
하지만, 우리가 하고 있는 건 서수진 에디터의 말처럼 매우 한정적이고 작은 일들 뿐이다.
그나마 잘 되던 콩 농사와 양계장도 다시 제국에 빼앗겼다.
난 한국 최고의 번역가 중 한 사람이 됐지만, 아직도 은행빚에 시달리고 있었다.
필요한 건 돈이다.
돈을 벌어 규모의 경제를 만들어야 한다.
티끌을 백날 천날 쌓아 봐야 티끌이다.
마법을 쓸 수 있는 사람이 은행빚에 시달리다니.
이건 어떻게 생각해도 말이 되지 않았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먼저 돈을 벌어야 한다.
눈먼 돈을 잔뜩 벌 방법을 전력을 다해 생각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