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uck at the gate alone RAW novel - Chapter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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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업.
나비가 내 안에 들어왔다.
이상한 말이지만, 나는 그렇게 느꼈다.
나비의 몸은 내 품에 안겨있었지만, 나비의 영혼이 나와 함께 하고 있었다.
이것이 정령이 보는 세상인가?
나비의 시선, 나비의 후각, 나비의 촉각으로 보는 세상은 전혀 달랐다.
느껴지지 않던 갖가지 냄새가 났다.
눈앞이 뿌옇게 흐려지는 느낌이었지만, 창을 열자 움직이는 물체들은 훨씬 잘 보였다. 평소보다 시야가 넓었다.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였다.
맡지 못하던 냄새가 맡아졌다.
놀랍게도 난 건물의 골조 안에 있는 철의 비릿한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미야옹.
나비의 울음과 함께 생경하던 감각들이 일순간에 무너졌다.
마치 진짜 작은 호랑이 같았던 나비의 짙은 털들이 다시 모두 사라졌다.
대신 하얀 털의 중간중간 금색과 은색의 털이 나 있어서 작은 나비는 매우 고급스러웠다.
링크가 해제된 후 시력은 그대로 돌아왔지만, 후각은 여전했다.
냉장고 안에 넣어둔 김치의 냄새가 코끝을 맴돌았다.
인터넷으로 고양이의 후각 능력을 검색했다.
고양이는 500만 개의 후각세포를 지닌 인간보다 훨씬 많은 2억 개의 후각세포를 가지고 있었다.
이 신기한 현상을 물어보려고 안젤리나 공주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마음이 두근거려 일이 되지 않았다.
통역 반지나 신성력 같이 레몽드와 연결된 후 내게 일어난 일들은 전부 신기한 일이었지만. 감각의 확장은 마치 새로운 세계로 넘어온 느낌이었다.
난 의자에 앉은 채로 창문으로 흘러들어오는 바람을 통해 길거리를 상상할 수 있었다.
지나가던 사람의 손에 들린 핫도그와, 신발에 밟힌 잔디에서 나는 신선한 풀내음, 차 뒤꽁무니에서 흘러나오는 텁텁한 먼지냄새···.
그냥 컴퓨터 모니터를 보면서 멍하니 한동안 앉아있다가 워드 프로세서를 켜서, 지금의 신비한 체험을 쓰기 시작했다.
사람의 기억력은 휘발력이 강하다.
조금만 시간이 지나도 지금의 이 느낌을 그대로 쓸 수 없다.
언어의 한계가 명확했다.
설렘과 황홀경, 생경함이 뒤섞인 이 묘한 기분을 글자로 그대로 옮기는 것은 무리였다.
하지만, 난 몇 번이나 거듭해서 이 이상한 체험을 좀 더 생생히 옮겨내려 노력했다.
번역은 반지의 힘에 기댄 것이지만, 내가 노력할수록 글의 퀄리티가 올라간다.
난 주기적으로 ‘폭풍우’를 번역하며 이를 확인하곤 했다.
내가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돌아보는 나만의 의식이었다.
그런데 오늘따라, 소설이 약간 낯설게 느껴졌다.
바다 앞에 선 낯선 사내와 주인공 의사의 마음이 조금씩 더 깊이 다가왔다.
이 소설에 대해서는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번역이란 결국 작가의 작품을 얼마나 더 깊이 이해하느냐의 승부라고 생각했는데, 잠깐 경험한 나비의 세상이 나의 세상을 넓혀준 것이다.
전에는 보지 못했던 작가의 의도를 이해하는 것은 물론, 어휘와 표현 자체가 더 유려해진 것 같아 마음에 들었다.
지금이 기회다.
너의 아저씨를 다시 시청했다.
하나의 장면을 배역 각자의 입장으로 생각해야 했다.
같은 사건을 대하는 각자의 마음과 생각은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 거기다 이를 실제 대본으로 빚어내야하니 더욱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통해 느낀 감각들이 남아있는 지금이라면.
나는 홀린 듯 하나하나의 배역을 형상화하기 시작했다.
드라마가 두세 편은 재생된 이후.
나는 머릿속에서 생생한 인물들이 뛰놀며 저마다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서사가 충분한 주인공들은 비교적 명확하게 역할을 구체화할 수 있었는데, 조연들이나 단역들은 달랐다.
내가 파악한 배역이 원작자가 작품을 쓰면서 생각했던 이미지와 일치하는지가 중요해졌다.
미정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빠. 저한테 연락을 주시고 무슨 일이세요?”
“너의 아저씨 말이야. 원작 쓰신 작가님이랑 연락을 좀 하고 싶은데, 제작사 통해서 연락처를 알 수 없을까?”
“혹시 왜 그런지 알 수 있을까요?”
난 방금 내가 떠올린 번역을 하기 위한 준비과정을 말했고, 미정이는 감탄했다.
“그러니까, 작품을 번역하기 전에, 그 작품 속 인물이 어떤 사람인지를 먼저 만든다는 거잖아요.”
“그렇지. 지금 재훈이 형이 대본에는 없는 매력을 갖추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각자가 맡은 역할이 어떤 사람인지를 연기자들이 아는 게 더 중요해. 내가 파악한 각자의 구성원이 원작 작가님이 쓰면서 상상하던 인물과 맞아떨어지는지 궁금해.”
“그런 이유라면 얼마든지 가능하죠. 그런데, 제작사 통해서 작가님께 연락드리기 전에 오빠가 파악한 캐릭터들을 미리 정리해서 보내드리는 건 어떨까요?”
미정이가 말한 순서가 맞다.
이미 두 번이나 봤던 드라마지만, 다시 보면서 난 하나하나의 사람을 활자로 풀어가기 시작했다.
새로운 창작의 영역이었다.
쓰면서 나는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냥 나쁘고 얄미운 짓을 반복하는 인간은 없다.
물론 반사회적인 인격장애를 가진 범죄자들도 있지만, 너의 아저씨는 보통의 사람들이 부대끼는 이야기다.
다양한 캐릭터를 분석하고 그려내는 일은, 역으로 내게 사람에 대한 많은 고민과 깨달음을 주었고. 나는 내가 인격적으로 성장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전부 이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것들이었다.
즐거웠다.
손끝에서 피어나는 캐릭터들이, 확고하게 형태를 갖춰가는 이야기들이 너무 다채롭고 아름다웠다.
사람은 말과 행동으로 자기의 삶을 보인다.
캐릭터가 하는 대사와 행동으로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만들어갔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캐릭터를 만들어 나가는 작업은 개개인을 중심으로 너의 아저씨라는 새로운 극의 스핀오프 소설을 쓰는 느낌이었다.
정신없이 작업에 몰두했다.
하루 만에 조연 캐릭터 4명의 전사를 완성했다.
미정이를 통해 내가 시작한 사전작업의 결과물을 먼저 중국 제작사에 먼저 보냈다.
그리고 당일, 중국인 제작 PD에게 연락이 왔다.
“작가님. 제작 PD 류팅이라고 합니다. 보내주신 캐릭터 분석을 봤는데요. 이런 식으로 등장하는 전 인물들을 다 새로 메이킹하실 것입니까?”
“네. 그럴 작정입니다.”
“정말로 대단하시네요. 이런 식의 번안 작업은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연기자들이 우리 작품을 하는 것만으로도 연기력이 늘겠어요.”
“개인적으로는 연기자 분들이 자신이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명확히 인식하고 나서 캐릭터를 몸 안에 체화한 후 연기를 했으면 합니다. 드라마는 진짜 삶의 이야기니까요.”
전혀 새로운 방식의 번안작업에 감탄했다며, 칭찬을 늘어놓는 제작 PD에게 난 아직 그 분석은 완전하지 않은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원작 작가님과 좀 더 공들여서 캐릭터를 만들고 싶습니다. 1차로 원작 작가님과 캐릭터를 만들면, 다시 감독님이나 연기자분들과도 캐릭터를 함께 완성해 나가야 합니다. 이 드라마는 한국에서 하는 게 아니라 중국에서 중국 배우분들이 만들어가는 것이니까요.”
“이재훈 배우님께 번안은 작가님이 아니면 안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왜 그렇게 강경하실까를 고민했었는데, 정말 대단하시네요. 한국 매니지먼트 쪽을 통해서 원작 작가님께 분석 글을 보내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저야말로 감사합니다. 작가님 정말로 두근두근하네요. 작가님, 촬영 기간 동안 중국에서 작업하시는 것은 어떠실까요? 정성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제작 PD는 5성급 호텔은 물론 한식까지도 공수해주겠다며, 여러 가지 혜택을 늘어놓았다.
솔직히 말해 뜻밖의 제안에 솔깃하긴 했다.
하지만, 한국에서 할 일이 많았다.
부모님이 계셨지만 역시 집을 비우는 것이 불안했다.
“죄송합니다. 한국에서도 해야 할 일이 많아서요. 캐스팅 오디션을 할 때는 건너가겠습니다. 출연료와 연기력 등은 제가 잘 알지 못하는 부분이지만, 전 이 드라마에 나오는 모든 인물들을 제 안에서 만들어 가고 있으니까 도울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겁니다.”
* * *
나비와의 링크는 많은 부분에서 나를 바꿨다.
난 이전과 달리 더 명확하고 냉철한 사고를 할 수 있게 됐다.
아마도 날 설득하기 위해서 대전까지 내려온 유지애 교수를 만나 난 유 교수와 협업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좀 더 건강한 사회생활을 위해서는 내 뜻을 명확하게 밝혀서 헛된 미련과 욕심을 끊어주는 편이 유 교수에게도 더 좋은 일이다.
교수는 프랑스 고고학회에게 소설가라는 폄훼를 받으며 마무리 짓는 것이 억울하지도 않느냐며 나를 자극하려 했지만, 난 학자의 길을 걷고 싶지 않다고 대답했다.
“교수님. 수천 년 전 과거 사람들의 기록이에요. 수천 년 전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해석에 상상이 들어가는 것은 당연한 거예요. 전 제 해석이 더 이해하기 쉽고 명확하다고 생각해요. 프랑스 학회가 틀린 거예요. 샹폴리옹의 해석이 무조건 옳다고 믿는 건 그들의 아집일 뿐이에요.”
유 교수는 아쉬워하면서도, 내가 학자로서 해야 할 일이 많다며 능력을 갖추고 태어난 사명을 잊지 말라는 공감되지 않는 소리를 하며 서울로 돌아갔다.
너의 아저씨 원작 작가인 박화영 작가님에게 연락이 온 것은 이틀 뒤였다.
직접 전화를 하셨는데, 내게 대뜸 24살이 진짜 맞느냐를 물어보셨다.
“정말 24살이 맞아요?”
“네.”
“정말 많이 놀랐어요. 나이에 맞지 않은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은 ‘이번 생의 건너편’을 읽을 때부터 알고 있었는데, 보내주신 글을 보기 전까지는 그냥 외국어를 굉장히 잘하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했었어요.”
“이번 생의 건너편을 읽으셨어요?”
“네. 화제가 돼서 읽었는데, 좋더라고요. 그런데, 정말 나오는 모든 캐릭터에게 이런 식의 전사를 부여할 거예요? 이건 새로운 소설 30개를 쓰는 거나 마찬가지 작업이잖아요.”
난 너의 아저씨가 내 인생에 얼마나 큰 위로를 줬는지를 고백하며, 이런 식의 글쓰기가 매우 즐겁다고 대답했다.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건 재미있는 일이긴 하죠.”
“전체적인 플롯이나 사건은 이미 완성돼 있으니까요. 캐릭터만 보강하면 되는 일이라서 크게 어렵지는 않을 것 같아요. 다만 걱정은 제가 파악한 캐릭터가 작가님이 생각하신 이미지와 달라질까 하는 거예요.”
“같이 합시다.”
“네?”
“사실 너의 아저씨에 뭘 더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었거든요. 그런데, 아니네요. 캐릭터를 이렇게 생생하게 만들면, 같은 이야기라도 새롭게 쓸 수 있죠. 나이가 들어 고목이 된 나무에 새로운 가지가 돋고 꽃이 피는 느낌이에요. 한 번 더 불태울 수 있겠어요. 같이 해요.”
의외의 제안이었다.
프로 작가에게 시간은 돈이다.
아무리 자신의 대표작이라고 해도, 지금이면 차기작을 준비하고 계실 타이밍이었다. 이미 매우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완성한 작품을 다시 손대는 것은 위험할뿐더러 이미 판권을 판 입장에서는 손해뿐인 일이다.
하지만 작가님은 그런 내 걱정에 전혀 개의치 않으셨다.
“김 작가. 김 작가도 평생 글을 쓰면서 살아갈 사람이잖아요. 미치게 하고 싶은 게 생기면, 돈과 상관없이 해야 해요. 인생에 있어서 영감은 자주 오는 게 아니니까. 같이 한 번 해 봅시다. 작품의 원작 크레딧에 김 작가 이름을 같이 올려줄게요.”
놀라운 제의다.
박화영 작가님은 나 이름을 자신의 작품을 번역하는 번안가의 자리가 아니라, 자신과 함께 새로운 원작을 완성해 낸 원작가의 자리에 올려주겠다고 했다.
“아니, 어떻게 그래요? 그건 너무 날로 먹는 거죠?”
“아니에요. 김 작가가 내게 보낸 캐릭터 분석은 보조작가가 해줄 수 없는 거예요. 김 작가도 이젠 글로 먹고 살 거잖아. 자신의 가치를 낮춰선 안 돼요. 작가는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창조주거든. 내가 만드는 세상의 주인이라고. 비루하게 보여선 안 돼.”
작가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우린 두 가지 일을 먼저 결정했다.
“전체 구조와 사건, 등장인물은 건드리지 말았으면 해요.”
“네. 저도 동의해요. 동아시아는 많은 부분에서 공통 정서를 가지고 있는 데다, 너의 아저씨는 현실에 기댄 캐릭터라 딱히 중국 현지화 해야할 부분이 보이지 않아요. 복지관련 법규나 작중에서 나오는 동네와 비슷한 이미지를 찾기만 하면 될 것 같아요.”
작가님은 물론 나 역시 너의 아저씨 속 세계와 작중 인물들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있어서 대화가 매우 잘 통했다.
우린 4시간도 넘게 통화했고, 그 네 시간 동안 먹지도 뭘 마시지도 화장실을 다녀오지도 않았다.
온전히 집중력을 쏟아부은 시간이었다.
전화를 마치자마자 기진맥진해졌지만, 만족감이 컸다.
전화를 끊고, 작가님께 치킨과 커피 기프티콘을 보냈다.
기프티콘 메시지에 ‘1화 번역을 완성하면 다시 전화드릴게요. 그땐 5시간은 각오해 주세요.’라고 보냈다.
작가님은 1분도 되지 않아 답장을 보내셨다.
‘이번은 내가 김 작가 돕는 거지만, 다음엔 김 작가가 나를 도와줘야 해. 지금 다음 작품 같이 쓰자고 제안하는 거야. 시놉시스 보낼 테니까, 캐릭터 좀 만들어 봐봐.’
* * *
박화영 작가는 내가 보낸 치킨과 커피 기프티콘을 자신의 SNS에 인증했다.
나와 네 시간 동안 통화한 시간을 찍은 통화목록의 스크린샷을 올리며, 딱 한 마디를 덧붙였다.
‘너의 아저씨 중국어판을 주목해 주셨으면 해요. 빛나는 재능을 만났고, 너의 아저씨는 새롭게 태어날 거예요. 반했고, 제 다음 드라마는 김상민 작가와 함께 하겠습니다.’
그리고, 스타 작가로 유명한 박화영 작가의 한마디는 어마어마한 후폭풍을 불렀다.
너의 아저씨를 인생작으로 꼽는 사람들은 많았다. 드라마가 종영되고 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시청자 게시판이 여전히 활성화되어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나는 이제까지 한 명의 작가라기보다는 번역가로 소개돼 왔다.
많은 외국어를 익히고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천재의 이미지로 비춰졌지만, 번역은 일종의 기술이다.
번역은 AI기술이 발전하면 가장 먼저 자리를 잃을 창작과는 상관없는 영역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박화영 작가의 지목이라니.
심지어, 반했다는 표현까지 썼다.
사람은 권위에 약하다.
너의 아저씨 팬들에게 ‘자신들의 인생작을 쓴 대작가’가 반한 김상민이라는 사람이, 전혀 다른 의미로 소비되기 시작했다.
‘이번 생의 건너편’과 ‘로맹가리 단편선’도 판매량이 늘었지만, 레몽드 제국 연대기가 폭발적인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