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uck at the gate alone RAW novel - Chapter 49
────────────────────────────────────
────────────────────────────────────
뒷사정.
보생환이라는 제목 아래의 글엔 단약의 제작법이 쓰여 있었다.
특이한 것은 특별한 약초가 쓰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보릿가루와 콩가루를 섞고, 봄 쑥과 마늘을 익혀 그 모든 것을 뭉친 것에다 가이아 여신의 신성력을 뿌리는 것이 제법의 전부였다.
여신의 신성력을 제외하면 그냥 곡물가루에 쑥과 마늘을 더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이런 환약이라면 나도 만들 수 있었다.
나는 빠르게 글을 읽었지만, 곧 관심없다는 듯 컴퓨터 화면에서 눈을 뗐다.
“처음 보는 문자네요. 보생환이라고 적혀있는 것을 보면 일종의 보약 같은 것일 텐데, 다행히 단환이 3개나 있지 않습니까? 성분 분석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란 교수의 표정이 미묘했다. 그의 눈이 내 표정 하나하나를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내가 혹시나 무엇이라도 알아냈는지를 관찰하고 있었다.
이 유적에 대해 뭔가 더 감추는 것이 있나?
궁금하긴 했지만 의심받지 않으려면, 중국과 얽히지 않으려면 이 문서에 관심이 없다는 뜻을 정확히 밝혀야 한다.
“교수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이런 식으로 새로운 패턴의 단일 문서로는 그 어떤 해석도 불가능합니다. 비슷한 형태의 글자도 없습니다. 이집트나 마야의 히에로글리프(신성문자)나 쐐기문자도 아니고, 초기 갑골문과도 전혀 다른 형식과 모양입니다.”
난 원론적인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단언했다.
로제타 스톤처럼 같은 문장을 다른 글자로 표현한 글이 존재하지 않는 한 세계의 누구라도 이 글을 해석할 수 없을 것이라 했다.
“더구나 이 단환과 글이 함께 발견된 것이라면 보나마나 이 글은 단약의 제법이나 연원의 기록이 아니겠습니까? 약의 제법은 추측이나 상상으로 해서는 안되는 영역입니다. 현대 과학으로 분석하는 것이 가장 합당한 방법입니다.”
란 교수는 침을 몇 번이나 삼켰다.
뭔가를 망설이고 있었다.
역시 감추고 있는 부분이 있다는 게 훤히 보였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이든 보생환의 실체를 알아낸 이상 더 들을만한 것은 없다. 유적도 높은 확률로 가이아교단에 관한 이야기일 터. 레몽드에 요청해 알아보면 될 일이었다
더구나 중국과의 일은 항상 뒤가 깔끔하지 못한 느낌이었다.
“김 작가님.”
“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하지만, 학자의 양심을 걸고 이 일을 영원히 비밀에 붙이겠다는 약속을 해주실 수 없으십니까? 거듭 말씀드리지만, 이건 극비 사항입니다.”
“그런 중요한 일이라면 듣지 않겠습니다.”
“네?”
“전 여전히 중화의 가치를 모르겠습니다. 대문명의 수혜에 관심이 없는 소국인인 제가 중화 문명의 시작점이었던 시 황제의 유물에 관계해서야 중화의 위엄에 손상이 가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전 빼주십시오.”
“김 작가님!”
란 교수가 내 빈정거림을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난 그 소리를 들으며 자리에서 바로 일어났다.
“멀리서 오셨는데, 돕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교수님께서 하신 사과는 고맙게 받아들이겠습니다.”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를 하고 일어나 문쪽으로 걸었다.
란 교수가 급히 따라 일어나서 방을 나가려는 나를 잡았다.
“김 작가님의 힘이 필요합니다. 저희만으로는 역부족입니다.”
란 교수는 이야기라도 들어달라며, 그동안 있었던 사정을 밝혔다.
난 나도 모르는 사이 꽤 여러 시험을 거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충격적인 내용이 있었다.
“새로운 토우들의 갱이 발견된 것은 2년 전입니다. 발굴을 결정하는 데까지만 3개월 정도가 걸렸습니다.”
발견한 큰 유적을 왜 발굴하지 않으려는지 궁금했는데, 중국은 이미 오래전에 진시황릉의 발굴을 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했다고 했다.
“꽤 여러 이유가 고려됐습니다. 시황제의 릉은 고대로부터 내내 도굴의 위협을 받아왔습니다. 막상 발굴했다가 속이 비어있을까봐 걱정한 것이죠. 그러다 겨우 비공식 발굴을 허락받았는데··· 외부의 병마용갱은 달랐지만, 이번에 가장 먼저 출토된 것이 서양인의 모습을 한 토우입니다. 정책적인 고려를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란 교수는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내게 시황제의 출신에 대한 이야기를 해줬다.
주위를 살핀 그가 조심스레 내 귓가에 속삭였다.
“시 황제는 한족 출신이 아닙니다. 기록에 따르면 서융 출신입니다.”
서융은 중앙아시아다.
무협으로 치면 서장이나 대막을 이르는 땅이다.
나도 모르게 란 교수를 조소의 표정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
속이 비어있을까봐는 개뿔.
중국이 진시황릉의 발굴을 주저한 것은, 중화라는 현대 중국이 패권을 가지기 위해 만들어가는 문화 이데올로기의 시작점이 되는 시황제가 저들이 말하는 오랑캐라는 것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좀 이상하군요. 교수님의 말에 따르면, 시 황제야말로 중화의 가치에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이 아닙니까?”
나는 지금도 인기있는 온갖 문화를 끌어다 중화라 우기는 중국의 행태를 지적하며, 란 교수를 빤히 바라보았다.
후우.
거구의 란 교수가 이마에 땀이 흥건했다.
“비웃으셔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한 말이 앞뒤가 다르다는 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 발굴이 결정되고 이 보생환과 금합이 출토됐습니다. 다들 눈이 돌았습니다. 시황제는 아시다시피 불멸을 꿈꾼 사람이니까요.”
눈이 번뜩였다.
그랬다.
그걸 잊고 있었다.
진시황은 불노불사를 꿈꾸며 국력을 탕진했던 인물이다.
그런 진시황의 무덤에서 2천년이 넘는 시간 동안 변하지 않은 금합과 금박이 벗겨지지도 않은 신비의 단환이 나왔으니 흥분하지 않을 수 없다.
란 교수가 노트북을 끌어당기더니 내게 공개하지 않았던 다른 폴더를 풀었다.
로제타 스톤처럼 내가 읽었던 보생환의 제작법과 연원이 한자로 표기된 문서였다.
한자가 지금의 형태를 완성한 것은 기원전 2천년이다. 시황릉이 지어졌을 기원 2세기엔 이미 한자의 필기체인 여서체가 광범위하게 쓰일 정도의 파급력을 가지고 있었다.
음.
“왜 절 찾으셨는지 알겠네요. 보릿가루와 콩가루, 쑥과 마늘만으로는 진짜 환단을 만들 수 없었을 테니까요.”
“네. 작가님께서 방송에서 했던 로제타 스톤의 새로운 해석과 신에 가까운 고대언어라는 말에 이것이다 싶었습니다. 도곤족의 전승문자에서 신비한 힘을 느꼈다는 작가님의 말에서 희망을 보게 됐습니다.”
아! 이해가 된다.
그래서 날 버린 것인가.
공산당은 미신을 믿지 않는다.
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중국 정부가 대지의 여신 신성력의 존재를 받아들일 리 없다.
학자들이, 아마 란 교수의 주도 하에 내게 갑골문 해석 테스트를 진행했고.
보생환 레시피의 해석과 재현 프로젝트를 주장하다가 까인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절 찾았던 겁니까? 보아하니, 중국 정부는 이 유물을 인정하지 않기로 한 것 같은데 제게 오셨다는 건······.”
난 말꼬리를 늘이며 상대를 빤히 바라보았다.
란 교수의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이 뺨을 타고 주르륵 흘렀다.
란 교수는 극도의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었다.
“네. 정부는 이 유물을 세상에 공개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보생환은 만들길 원합니다. 그것이 당의 지침입니다.”
참으로 파렴치한 처사였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해가 가기도 했다.
보생환의 가치는 엄청날 것이다.
2천 년이 넘게 보존된 신비의 유물이다.
여신의 신성력이라는 믿기 힘든 말이 쓰여 있지만, 그래서 이 이름마저 귀한 단환은 더 큰 가치를 가질 것이다.
“다 말씀드리겠습니다. 작가님과 손을 놓았을 때는 보생환의 성분 분석을 맡은 과학원 쪽에서 현대의 기술로 만든 보생환을 만들어냈다는 보고를 했던 때였습니다.”
상황에 눈앞에 그려졌다.
란 교수를 비롯한 중국 사학계가 내게 여러 갑골문과 거란문서를 맡기며, 내 언어 해석력을 테스트하는 동안 과학원에서 성분 분석을 통한 복제약 개발을 맡았던 것이다.
란 교수가 날 찾아온 이유를, 매달리는 이유를 바로 직감했다.
중국 과학원은 가짜 보고로 사기를 쳤고, 불노불사를 꿈꿀 수 있는 영약이 꼭 필요한 시 주석을 비롯한 공산당의 수뇌부는 과학원의 책임자를 단죄하며, 란 교수에게 남은 가능성에 목숨을 걸라고 했을 것이다.
“도와주십시오. 꽤 여러 사람의 목숨이 달린 일입니다.”
“하지만, 이 글대로라면 결국엔 대지의 여신이 베푸는 신성력을 환에다 부여해야 한다는 소리인데, 여신의 신성력이라니. 그런 게 있을 리 없지 않습니까?”
란 교수의 표정이 더욱 암담하게 바뀌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보생환은 진짜입니다.”
“네?”
“3개의 보생환 하나는 분석을 위해 과학원이 가져갔지만, 다른 하나는 복용한 사람이 있습니다. 보생환의 효과는 놀라웠습니다. 보생환은 진짜입니다.”
“보생환을 먹었단 말입니까? 그가 누구입니까?”
“이름을 혀에 올리기 어려운 분입니다.”
얼버무린 란 교수가 다시 다른 폴더를 열었다.
이번에는 사진이 엄청나게 많았다.
“이것이 김 작가님께 해석을 의뢰할 글입니다. 보생환과 함께 발견된 서책의 모든 페이지를 찍은 사진입니다.”
관심이 생겼다.
슬쩍 맛이나 볼까 했는데, 란 교수의 파르르 떨리는 눈과 마주쳤다.
그 순간.
등골에 찬물을 들이부은 듯 정신이 확 들었다. 이걸 보면 발을 절대로 뺄 수 없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제야 란 교수가 왜 내 앞에서 저렇게 땀을 흘리고 있는 지를 알았다.
과학원이라던가. 그쪽뿐만이 아니었다. 이 프로젝트에는 란 교수의 목숨까지 걸려있었다. 그는 자신의 목숨이 달린 프로젝트에 나 역시 목숨을 걸 것을 설득하러 온 것이다.
노트북을 덮었다.
“이건 너무 위험한 일입니다. 무슨 보상이 있든 전 목숨을 걸고 싶은 생각까지는 없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전 보생환을 만드는 데 썼다는 보릿가루나 콩가루, 쑥과 마늘도 지금 세대의 것과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2천 년 전의 쑥, 2천 년 전의 콩을 구할 수 없는 한 보생환을 만드는 것은 어떻게 해도 불가능할 테니까요.”
* * *
란 교수는 내게 매달렸지만, 정말로 휘말리기 싫었다.
중국 일이 아니라도 해야 할 일이 많았다.
매달리는 교수를 거절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면서도 내내 찝찝한 마음을 감추기 어려웠다.
150페이지는 넘어 보이는 서책의 내용이 너무 궁금했다. 어쩌면 신성 마법이나 정령에 관한 내용이 적혀 있을지도 몰랐다.
그러다가 난 하나의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그 정도의 책이라면, 어쩌면 레몽드에도 있을지 몰랐다. 원래는 가이아 여신에 대해서만 물어보려 했는데, 어쩌면 겹치는 서책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레몽드의 대신전도 가이아 여신을 주신으로 모신다. 놈모도 놈모지만, 지구의 역사 속에 레몽드의 또다른 신들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난 그동안 저절로 생긴 신성력과 신성마법에 대해 너무 무관심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슨 기술이든 그저 손과 눈으로 익히는 것과 원리를 알고 익히는 일은 배움의 깊이가 다르다.
나이소 시계가 신이 되는 일은 특별했지만, 모든 진리의 근원은 하나로 통한다. 분명 어떤 방식으로든 도움이 될만한 지식들이 있을 것이다.
대신전에서 본격적인 공부를 시작할 것을 결심했다.
하나의 작은 깨달음에서 일어난 생각이 퍼져갔다.
난 제국의 닭 공출 건의 부족했던 한 가지 부분을 찾아냈다.
집에 돌아가자마자 펠리페 2세에게 전화를 걸었다.
“공출 건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일단 제국에 우리 왕국의 사정을 알렸네. 왕국 전부가 전력을 다해 농토를 확장하고 있으니, 다음 농사를 위해 콩의 반출은 어렵고 닭의 공출도 차후 늘려가겠지만 당장은 한 달에 100마리가 한계라고 전했다네.”
“제국 쪽에서는 어찌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닭 쪽은 받아들여졌지만, 콩은 보유분의 3할을 다시 요구하더군. 그리고 콩과 닭 말고도, 꽤 다양한 농산물을 요구했네. 황실에서 쓸 소고기와 돼지고기, 밀의 경작지를 늘리라는 명을 받았다네.”
제국이 원하는 바를 어느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제국은 농산물을 키워내는 레몽드의 기량에 대해 조금씩 믿기 시작했다.
“삼계탕은 완성하셨습니까?”
“왕실 요리사들이 인삼을 제외한 다른 재료의 대체품을 찾아냈네. 인삼이야 마수의 숲을 개발하며 얻은 약초라고 둘러치면 그만인데, 압력솥이 문제일세.”
“압력솥이요?”
“압력솥에 만든 삼계탕은 맛이 아예 다르지 않나?”
난 조리법을 전할 필요까지는 없다고 했다.
“그냥 완성품을 아공간 가방에 넣어서 보내십시오. 그리고 더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더 중요한 일이라니?”
“안토니 왕자에게 제국에 화장지와 닭, 콩을 팔아 모은 금을 반절 정도 들고 가서 제국의 기술을 사겠다고 하십시오.”
“제국의 기술이라니?”
난 제국과 레몽드의 ‘금’에 관한 인식이 다를 것이라고 했다.
펠리페 2세는 얼떨떨한 반응이었지만, 난 단호하게 강권했다.
“전하도 안토니 왕자도 이젠 ‘금’보다 식량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금을 모으는 것도 결국 말리를 통해 금을 유통해서 대량의 식량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까?”
“그렇지.”
“제국은 다를 것입니다. 겨우 닭이나 화장지 따위를 받으면서 금을 내주는 것이 아까울 것입니다. 전하. 지킬 힘이 없는 너무 많은 재물은 독입니다. 반절 이상을 다시 돌려주십시오. 대신, 농업의 발전을 위해 전투와 상관없는 비전투 마법이나 제국 신전의 정령마법을 요구하십시오.”
우리가 간과하고 있던 미래.
일부러 말을 아꼈지만, 이를 직감한 펠리페 2세가 침통한 목소리로 동의했다.
“······그거 훌륭하군. 그런데, 자네도 금이 필요하다 하지 않았나?”
“내일 당장 제국을 무너뜨릴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리고 제국을 무너뜨리면 제국의 금도 결국은 전하와 제 것이 되질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