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uck at the gate alone RAW novel - Chapter 59
63화. 발견.
약식 기자회견을 했다.
말리와 내가 어떻게 연을 맺게 됐는지, 말리의 경제 발전 가능성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대답했다.
기자회견을 마친 후 희택이를 따라 차로 향했다.
공항에 기자들이 몰려온 게 이상했다.
난 이 정도로 인지도가 있는 사람이 아니다.
‘이번 생의 건너편’이 성공한다거나, 박화영 작가님과의 협업이 화제가 됐을 때처럼 순간순간 화제성으로 인터뷰 요청이 왔을 때도 있었지만, 이렇게 공항에 여러 명의 기자가 몰려와 내 입국을 취재하는 건 어떻게 생각해도 어색했다.
물론 말리 건은 작은 일은 아니다.
한 나라가 내전을 종식하고, 적어도 천억 원대 이상의 수출입 물량이 확정된 것은 큰 사건이다.
하지만, 말리 건은 이미 오래전부터 준비돼 오던 일이었고 무엇보다 기자들의 관심을 끌 만한 사안이 아니다.
말리라는 나라 이름이 기사에 붙자마자 사람들은 클릭할 의지를 잃을 것이다.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 벌어진 데엔, 내가 알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찝찝한 기분에 희택이의 차에 타자마자 물었다.
“혹시 나 출국해 있을 동안 무슨 일 있었냐?”
“아니 별 거 없었는데, 그런 게 있었으면 바로 전화했지.”
“그래? 좀 이상해서. 말리 건이 이제야 화제가 되는 게 이상하지 않냐? 내가 뭐라고 기자가 저렇게 많이 와?”
“그런가? 금괴값만 최소 수백억 원일 거잖아. 당연한 거 아니냐? 요즘 한국에 신통한 소식도 없는데. 자랑할만한 뉴스잖아.”
희택이 말을 들으며 대통령실의 외교 성과 자랑때문인가 했는데, 강영식 과장의 전화를 받고서야 제대로 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작가님. 입국하셨다면서요? 그 신비의 돌이라는 게 뭐예요? 피곤하실 건 아는데, 그래도 잠시 저희 청사로 들렀다 가시면 안 될까요? 국장님들은 물론이고, 차관님까지 기다리고 계시거든요.”
“차관님까지요? 그런데, 신비의 돌 이야기는 어떻게 아셨어요? 혹시 벌써 기사가 났나요?”
“그게 아니라, 공항에 보낸 기자들이요. 저희가 보낸 거예요. 다 외교부 출입 기자들이에요.”
“왜요?”
“어르신들 걱정 때문에요.”
강 과장은 기자 파견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모두 이야기했다.
외교부 고위직이 직접 나선 건, 말리에서 가져간 금 때문이었다.
“주신 금괴요. 순도가 엄청났습니다.”
“그래요?”
“하나는 99.4%였고, 다른 하나도 99.32%였어요. 모두 99% 이상이라 손실분 없이 현 시세대로 전량 구매하는 것으로 결정이 났어요.”
“그래요? 잘됐네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로 금값은 계속 오르고 있으니까요. 유동성이 큰 외환보다 금을 보유하는 게 안정적이거든요. 어차피 구매 대금이 건너가도 다시 절충무역으로 우리 제품 수출길이 열리는 것이기도 하고요.”
금의 수입이 확정된 후, 말리는 다른 아프리카 국가와는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니게 됐다고 말했다.
“네? 그게 무슨 소리인가요?”
“아프리카는 무역 상대국으로서는 최악의 조건이잖아요. 아프리카의 어느 나라에 자금을 투자해도 회수할 가능성이 거의 없거든요. 서구권에서 원조는 하되 투자에 나서지 않는 건, 아프리카에 정상적인 정부가 거의 없기 때문이에요.”
강 과장의 말은 바로 이해가 됐다.
경비 요원 광식 씨에게서 들었던 경험담 때문이었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민주화가 가장 잘 진행된 세네갈이라 하더라도 동양인 혼자서 차를 타고 국경을 넘는 경우 적어도 7회 이상의 뇌물을 요구받는다고 했다.
심지어 정부에서 일하는 관료들조차 종종 뇌물을 요구한다고 했다.
우리는 관용 차량을 타서 그런 불쾌한 경우를 겪진 않았지만, 강 과장님의 말처럼 아프리카는 이미 일방적으로 물건을 팔거나, 대가를 바라지 않고 도울 뿐 투자의 대상이 될 순 없었다.
아프리카가 부패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말리는 여러 면에서 긍정적이에요. 한국 정부가 적극 투자를 진행 중인 세네갈과 국경이 맞닿아 있다는 것도 그렇고, 아예 분리독립으로 내전을 정리한 것도 훌륭해요. 무엇보다 말리는 보크사이트나 금 같이 사 올만한 환금성 높은 현물이 많다는 게 좋아요.”
외교부 고위층은 말리의 중요성을 인식하며, 나에 대한 기대와 걱정이 함께 생겼다고 했다.
“기대는 그렇다고 치고, 걱정이요?”
“네. 이번 회담 결과에 대한 보고서에 작가님의 말리 정부에 대한 영향력 분석도 함께 올라갔거든요. 그 보고를 보고 중국 라인인 동북아시아국 양석현 국장님이 문제를 제기하셨어요.”
“무슨 문제요?”
“중국의 작가님에 대한 투자들이요.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차이니즈 스쿨은 이미 중국과 작가님의 밀접한 관계를 잘 알고 있거든요.”
운전하며 내 전화 내용을 함께 듣던 희택이가 피식피식 웃었다.
그제야 이미 중국과의 관계를 정리했지만, 사정을 모르는 외부의 시선으로 보면 나와 중국은 매우 밀접한 사이로 오해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4억 원에 가까운 프로젝트 비도 그렇고, 이번에 중국 정부에서 작가님 아버님이 세 든 식당 건물도 인수해서 넘겨주지 않았습니까? 양 국장님은 중국이 이유 없이 그 정도 돈을 쓸 리가 없다고 하셔서요. 다들 공감하셨죠.”
결과적으로 외교부의 판단은 잘못된 전제 때문에 빗나갔다.
보크사이트 건으로 말리의 경제 봉쇄 해제를 위해 오랜 시간 노력해온 중국이, 말리의 성장 가능성과 말리에 대한 나의 영향력을 한국 정부보다 먼저 알고 있었다는 전제였다.
실제로는 보크사이트 물량 수급 및 가격을 후려치고 싶었던 중국이 중국 했을 뿐이지만, 밖에서 보면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지난 며칠 동안 외교부가 난리가 났어요. 대통령실에선 외교 성과를 발표하고 싶어 하는데, 말리 정부를 믿을 수 없어서요.”
“네? 말리 정부는 왜?”
“한국이 해줄 수 있는 건 중국도 해줄 수 있잖아요. 말리 정부가 한국과 수교협상을 벌이고 있는 건 한국 정부 때문도 아니고, 작가님 때문이잖아요. 확실하지 않다는 거죠.”
생각지도 않던 문제였다.
강 과장님은 씁쓸한 목소리로 부연했다.
“그리고 언제까지 국민의 애국심에 기대요. 이미 그런 시대가 아니잖아요. 중국은 10억을 쓰는데, 우리 정부는 달랑 외교관 여권 하나를 주고서 한국인이니까 도와달라고 하는 건 염치없는 짓이잖아요.”
외교부는 강온 양면작전으로 날 설득할 작정이라고 했다. 기사를 양산해 나를 국가적 영웅으로 만들어 중국과 이어질 가능성을 낮추면서, 동시에 말리와의 수출입에 대한 이익을 공여하는 작업을 진행하려는 것이다.
기자를 붙인 의도가 좀 구렸지만, 군더더기 없고 솔직한 설명에 오히려 믿음이 갔다.
“이런 이야기 모두 해주셔서도 돼요?”
“쪽팔려서요. 그리고 저도 이번 일에 목숨을 걸었어요. 아프리카중동국은 외교부에선 한직 중의 한직이에요. 이번 건은 거의 잡을 수 없는 기회거든요. 제 승진과 출세에 작가님이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시작부터 파트너를 속일 수는 없으니까요.”
강 과장과 전화를 끊자마자 막혔던 속이 뚫리는 것 같았다. 궁금증이 풀린 것은 물론이고, 생각지도 못한 정보를 얻었다.
조용히 운전하던 희택이 역시 강 과장을 높이 평가했다.
“자기 출세 때문이라지만, 그래도 공무원이 이 정도 열심히 해주면 믿을 수 있지. 그렇지 않냐?”
“그렇지. 그건 그렇고, 뭘 주려나?”
“뻔하지.”
“뻔하다니.”
“너더러 무역회사를 차리라고 하겠지. 정부야 이번 말리 건으로 대한민국 기업이 얼마를 수출했는지가 중요하니까. 네가 중간에서 한 3%정도 이익을 빼먹어도 상관없다고 할 거야.”
희택이의 말이 맞았다.
곧 연락온 외교부에선 내게 도곤족과 합작해서 대전에 무역업체를 설립할 것을 권했다.
회사 설립 절차 대행부터, 자금이 부족하면 자금까지 저리 융자를 해주겠다고 했다.
난 정부의 제안에 감사함을 표현하면서, 도곤족에게 정부의 고마운 제안을 성실하게 전달하겠다고 대답했고, 내 긍정적인 대답에 회의실 분위기가 단번에 좋아졌다.
시급한 문제가 해결되고 나자, 내가 가져온 신비의 돌 이야기가 나왔다.
“그런데, 가져오신 그 돌은 무엇인가요?”
“말 그대로 도곤족에서 오랫동안 비밀리에 모아 온 알려지지 않은 광석입니다.”
난 희택이에게 신비의 돌을 가져올 것을 부탁했고, 희택이가 차에서 내 캐리어를 가져왔다.
붉은 기가 도는 무거운 돌을 보는 공무원들의 눈엔 또다시 의혹이 가득 담겨있었다.
“저도 큰 기대는 하지 않지만, 도곤족의 족장님은 돌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냥 돌이 아니더라고요.”
“네?”
“비가 많이 오진 않지만, 비가 와서 번개가 칠 때면, 항상 이 돌들에 번개가 떨어진답니다.”
“그래요?”
“전 그 말을 듣자마자 이번에 실패로 결론이 난 상온 초전도체가 생각이 나더라고요. 그래서 돌을 가져온 겁니다.”
외교관들은 떨떠름한 얼굴로 돌을 받아 챙겼다.
정부 출연 연구소를 통해 적극적으로 돕겠다면서도 기대가 커 보이진 않았다. 시큰둥한 정부 관계자들의 태도를 본 희택이가 고개를 흔들었다.
그때, 희택이를 보고서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역시 아프리카는 아프리카더라고요.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것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요?”
“각 부족들마다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 비밀의 전승이 많았습니다. 소닝케족이라고 니제르 강 인근에 사는 부족이 있는데, 거기엔 먹으면 머리카락이 나는 과일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머리가 나요?”
“네. 올해는 수확이 끝났고, 내년 봄에 나면 꼭 제 것을 챙겨주겠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소닝케족은 머리 스타일이 좀 특별했습니다. 아프리칸 특유의 심한 곱슬도 아니었고, 부족 내에 대머리도 거의 없다고 하더라고요.”
신비의 돌과는 전혀 반응이 달랐다.
외교관들의 얼굴에 열기가 비쳤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가 다시 앉은 사람도 있었다.
그러고보니 9명이 참가한 회의장 안에서만 3명이 머리가 비어 있었다. 외교관으로서 스트레스가 많아서인지, 유독 힘없는 모발이 푸석푸석해보였다.
혹시 자신들의 몫도 빼줄 수 있느냐를 묻는 가련한 사람들에게 난 일단 내년까지 기다려보시라는 말을 하고는 회의를 마쳤다.
* * *
“그 돌 말이야. 그냥 그렇게 주고 와도 되냐?”
“내가 가지고 있어 봐야 뭘 어떻게 할 수도 없잖아. 다 준 것도 아니고. 2개는 챙겨가는데 뭘.”
“그건 어쩌게?”
“카이스트의 유 교수님께 맡겨야지. 유 교수님 전공이 신소재와 자원 쪽이잖아.”
고갤 끄덕인 희택이는 또 연락하겠다며 날 집 앞에 내려주었다.
오랜만의 집이 반가웠다.
부모님께 다녀왔다는 인사를 드리고, 방으로 돌아와서 펠리페 2세에게 전화를 걸었다.
말리에 있을 때에도 계속 연락을 취하고 있어서, 그는 대략의 상황을 알고 있었다.
대강 오늘 있었던 회의 결과를 요약해주자 펠리페 2세는 정부 관계자들의 오해를 즐거워했다.
“자네의 빈틈없는 세상에도 틈은 있군. 하긴 그리 멀리 떨어진 곳이라 하니 그게 당연할지도. 아! 기쁜 소식이 있네.”
“기쁜 소식이라니요?”
“자네의 말이 맞았네. 탐사대가 대해의 끝에서 새로운 섬을 발견했네.”
“그렇습니까?”
드디어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건가?
하지만, 이어진 펠리페 2세의 말에 난 탐사대가 찾아낸 땅이 아메리카 대륙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데, 자네의 말처럼 끝없이 넓은 땅은 아니라고 하더군. 굉장히 큰 섬이긴 하지만 말이야.”
“그렇습니까?”
“큰 화산이 있다고 하더군.”
하와이다.
아메리카 대륙에 닿진 못했지만, 확실히 판게모니아와 지구는 적어도 지리적인 특성이 같다는 게 증명되었다.
“그럼 일단 그 섬을 차지하는 것은 어떨까요?”
“그렇지 않아도 우리도 그렇게 정했네. 더 좋은 점은 그렇게 큰 섬에 사람이 살지 않다는 것이야. 그냥 우리가 차지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네. 제국도 그 섬의 존재는 모르고 있는 것 같더군.”
그 비옥한 하와이에 원주민이 없다니.
신기한 일이었지만, 판게모니아가 지구와 완전히 같지는 않을 테니,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가는 설명이기도 했다.
“이미 섬에 이동마법진을 설치했네. 농장부터 조성할 생각이네.”
다행히 펠리페 2세는 제국 황제의 바보 같은 행동을 따르지 않았다.
펠리페 2세의 목소리에서 자신감이 느껴졌다.
사람은 희망이 보일 때 2배로 노력할 수 있다.
헛발을 디뎌 수렁에 빠진 제국과 착착 진행되어가는 자신의 왕국 레몽드를 비교하며 펠리페 2세는 제국 정벌이라는 꿈이 더는 막연하고 헛된 바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