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uck at the gate alone RAW novel - Chapter 67
71화. 천벌을 예고하다.
내가 들어가자 드라이어를 뜯어보던 드워프들이 나를 발견하고는 곧 내게로 다가왔다.
판타지 소설 속에서 보통 드워프들은 작은 키와 엄청난 근육질로 표현되지만, 실제로 본 드워프들은 키가 좀 작을 뿐 근육질이라기보다는 그냥 탄탄하고 단단해 보이는 체구였다.
드워프들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알 수 있었다. 우리는 서로를 신기해했다. 나는 처음 보는 드워프들이 신기했고, 드워프들 역시 보통 판게모니아 사람과는 외모가 전혀 다른 나를 호기심 강한 눈길로 쳐다봤다.
“그대가 이계에서 왔다는 시계 신의 사자요?”
“그렇습니다.”
“예를 받으시오. 무지몽매한 우리에게 문명을 열어주어 고맙소.”
통역 반지를 끼고 있어서 말은 통했지만, 드워프들이 하는 말의 정확한 의미를 알기 어려웠다.
내게 보이는 정중한 태도와 깍듯한 예의에 기분이 좋으면서도 저들이 왜 그러는 것인가가 문제였다.
물론 전해 듣기도 했고, 내 눈으로 확인했으니 저들이 노예지만 대우가 좋다는 것은 알 수 있다.
하지만, 마치 기사가 영주를 바라보듯 나를 올려보는 저들의 눈에 당황했다.
여섯의 드워프 중 대표로 보이는 드워프가 내게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다.
그러면서 그는 엉뚱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드워프에겐 신이 없다오.”
“그렇습니까?”
“드워프가 믿는 것은 아름다움을 보는 자신의 눈과 무엇이든 만들 수 있는 손뿐이오. 우린 스스로를 믿지 못해 신께 의지하는 나약한 인간과는 다르오. 인간은 욕심도 한계가 없소. 인간들이 신을 믿는 것은 죽은 뒤까지 행복한 삶을 바라기 때문이 아니오.”
지독히 장인다운 신념이 인상적이었지만, 왜 뜬금없이 인간이 신을 믿는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몰랐다.
이유를 묻는 내 눈과 마주치자 드워프는 인간에 대한 자신의 판단이 틀렸다며, 오만을 반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간의 나약함과 끝없는 욕심을 비웃었지만, 그대가 보내온 물건들은 사물의 본질을 그대로 이해하지 않고서는 만들 수 없는 것들이오. 나약함과 욕심은 잘못된 것이 아니었소. 부족함을 극복하려는 인간의 의지가 만물의 본질을 꿰뚫어 편리를 만든다는 사실에 진심으로 감탄했소.”
드워프들은 자연은 순응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극복할 수도 있다는 것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다고 했다.
게다가 그들은 사물의 설계나 정교한 기술만이 아니라, 그 이상의 가치에도 주목하고 있었다.
“시계는 너무 대단하오. 정확한 시간을 정하는 것만으로 사람이 더 일에 집중하고 노력하는 모습에 숨이 멎을 것처럼 놀랐소. 물건으로 의지를 만들다니 이런 것은 처음 보았소. 그걸 보고서는 우리 손으로도 정확한 시계를 만들어보고 싶었소.”
드워프들의 말에 기대를 품었다.
만약 드워프들이 정확한 시계를 만들어낸다면 현대에서는 당연히 큰 쓸모가 없겠지만, 제국에겐 잔뜩 팔아먹을 수 있는 좋은 아이템이 될 것이다.
하지만, 드워프들의 이어진 말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하지만, 이 시계는 너무 훌륭하오. 이 이상의 정교한 기계장치를 만들기도 어렵겠지만, 그럴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소. 그래서 우리는 이걸 만들었다오.”
흰 천으로 가려진 제막을 걷어내자 굉장히 아름다운 조각상이 서 있었다.
내게 선물한 피규어보다 열 배쯤 큰 사람의 키와 비슷할 정도의 대리석 조각상은 마치 아이돌 같은 외모의 여인이 환희에 가득 찬 표정으로 시계를 보는 모습이었다.
아름답긴 했지만, 그 의도를 알 수가 없었다.
“이게 무엇입니까?”
“우리가 만든 시계 신의 신상이오.”
“네?”
“신상이란 결국 사람들이 자신의 신을 상상하여 믿음을 더하기 위해 만들어 내는 것이오. 신상은 아름다워야 하오. 우리가 생각하는 가장 아름다운 피조물을 만든 것이오. 이것으로 시계의 신을 믿는 사람들은 폭발적으로 늘게 될 것이오. 이것이 그대가 우리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준 보답이요.”
어쩐지 아이돌 뮤비가 계속 틀어져 있더라니.
안토니 왕자가 흘리듯 드워프 아저씨들도 아이돌에 빠져있다고 말했던 것이 기억났다.
난 익숙해져서 몰랐는데, 아이돌이 대단하긴 한 모양이었다.
이계의 전혀 다른 존재를 홀릴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감탄하긴 했다.
그 조각상은, 정말로 아름다웠다. 자신이 만든 조각상과 사랑에 빠졌다는 피그말리온이 떠오를 만큼.
* * *
집으로 돌아와서 일찍 잠이 들었다.
일찍 일어나 오후 1시 도하로 향하는 항공권을 끊으며 강영식 과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렇게 아침부터······, 무슨 일이라도 있으신 것입니까?”
“네. 어제 밤, 말리의 재정부 장관님께 믿기 싫은 전화를 받았습니다.”
“네? 혹시 말리에 무슨 급변 사태라도 일어난 것입니까?”
강영식 과장의 목소리가 심각해졌다.
나는 말리 최상층부와 바로 연락하는 사람이다.
말리와의 수교가 이뤄지며 세네갈의 대사관에서 말리를 모니터링하고 있지만, 정보의 접근성과 정확성에서 나와 비교할 수는 없다.
계획에 없던 일을 이렇게 급하게 추진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을 거라는 생각 때문인지, 강영식 과장이 다급하게 물었다.
“쿠데타나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것만큼이나 기분 나쁜 소식입니다.”
내게서 말리 대통령은 물론이고, 뜻을 합친 5대 부족의 부족장들이 뒷돈을 요구하고 있다는 말을 들은 강영식 과장은 놀라면서도 그럴 줄 알았다며 체념했다.
“사실은 그렇지 않아도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저희 아프리카 중동국 전부가 걱정하고 있긴 했었습니다.”
“네?”
“태어나면서부터 부족 중심으로 살아가다 죽는 것이 아프리카 사람들이니까요. 사회화를 위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너무 적으니, 자연스레 자신이 아는 한도 내에서만 사고하고 행동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강영식 과장은 내게 이 사태를 어찌 해결할 것인지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려고 하는 겁니까?”
“일단 아사미 대통령께 입장을 정해달라고 했습니다.”
“어떤 입장 말입니까?”
“말리는 새로 시작하는 나라입니다. 부패와 부족 이기주의에 근거해서 나라가 일어선다면, 돈을 아무리 때려 부어도 결국은 망하는 수밖에는 없습니다.”
“그러면요?”
“제가 가는 건 신생 말리를 위해서가 아닙니다. 전 도곤족과 함께 하는 도곤족의 종교지도자로서 만약 신생 말리에 부정부패가 생긴다면, 투아레그 족처럼 독립은 하지 않더라도 독자 생존을 선언할 생각입니다. 이는 도곤족이 요청한 바이기도 합니다.”
강영식 과장은 내 말에 공감하면서도, 이미 정해진 수교와 아사미 대통령의 방한에 영향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조심스레 부탁했다.
단어 하나하나 골라가며 말하는 것에서 그의 깊은 고뇌가 느껴졌다.
또한, 이 심각한 상황에서도 날 말리기보다는 지금 상황에서 대한민국이 얻을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을 구하려는 모습에서 공직자로서의 각오가 느껴졌다.
강 과장은 좋은 공무원이었다.
난 누그러진 목소리로 긍정적인 대답을 돌려주었다.
“그걸 조율하러 가는 겁니다. 조율은 꼭 서로의 입장을 배려하며 하는 게 아니니까요. 싸우더라도 말로 하고, 적어도 가난한 말리가 한국에서 주는 선물을 모두 받기 전까지는 내전을 하지 말자는 설득을 할 생각입니다.”
그것만으로도 반색한 강영식 과장은 공항에 연락해서 내 비행기를 모두 퍼스트로 바꿔주겠다고 했다. 게이트가 설치되면 더는 탈 일이 없는 비행기였지만, 이동에 들어가는 수백 만원이 아까운 것도 사실이라서 강 과장의 배려를 고맙게 받았다.
도하 공항에서 경유하며 기다리는 동안에도, 아프리카로 넘어가서 아디스아바바 공항에서 다카르행 비행기를 기다릴 때도 난 전화를 멈추지 않았다.
난 각 부족장들의 전화번호를 확보해서 지금 상황을 정확히 전하며, 기왕 이렇게 된 거 눈치보지 말고 부족이 원하는 최대한과 양보할 수 있는 선을 모두 정해달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도곤족은 이번 회의의 결과가 어떻게 되든 내놓기로 한 8,400만 달러를 도곤족 혼자서 독점해서 쓰지는 않을 거라는 사실을 분명히 했다.
호의를 베푼 만큼 좋은 결과가 있길 바랐다.
이미 부족들에 대한 신뢰를 잃었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최악과 차악은 있다. 기왕 선택할 거라면, 조금이라도 덜 나쁜 쪽을 골라야 한다.
다카르 공항엔 하누아나의 삼촌과 도곤족 사람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의 어두운 얼굴을 보자마자 직감했다.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폭발 직전입니다. 밤바라 족과 사이가 좋은 편이었던 플라족 마저 밤바라족의 말도 안되는 욕심에 협력관계를 청산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밤바라족은요?”
“기존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인구가 가장 많은데, 왜 우리가 다른 부족과 똑같이 돈을 나눠야 하느냐라는 주장을 물리지 않을 기세입니다.”
하누아나의 삼촌은 내게 도곤족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를 물었다.
“우리는 빠집니다.”
“네?”
“공식적으로 도곤족은 이번에 전재산을 내놓은 것으로 되어 있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아사미 대통령이 밤바라 족에게도 자세한 사정을 밝히지 않아서 밤바라족들도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어차피 이번 자금은 일회성입니다. 석유가 개발되든 말랐던 금광이 다시 생기든, 그것도 아니면 니제르처럼 우라늄 광산이라도 생기든 돈 나올 구멍이 생기기 전까지는요.”
“그건 맞는 말씀이지요.”
하누아나의 삼촌은 엘리트다.
별다른 추가 설명 없이도 내 말을 모두 이해했다.
그렇기에 밤바라족이 이렇게 노골적으로 욕심을 부릴 수 있었고, 그렇기에 도곤족은 더 나서서는 안된다는 것을 찰떡같이 이해했다.
그리고 지금 앞장서야 하는 것은 도곤족이 아니라 나였다.
“도곤족은 저를 통해 이번 자금의 집행을 공정하고 투명하게 맡는 것까지만 주관하겠다고 하십시오. 회의의 결정에 따라 자금을 집행하되, 두 가지 원칙은 지키겠다고요.”
“두 가지 원칙이요?”
“네. 하나는 금을 판 돈은 모두 현물로 나눈다는 것입니다. 쌀을 사 오든, 소를 사 오든 부족장이나 대통령께 직접적인 돈을 나눠줄 수는 없다는 것이 첫 번째 원칙입니다.”
“그건 그렇게 해야죠. 거기에 대해선 아마 전 부족장들이 모두 불만이 없을 것입니다.”
“두 번째는 모든 다툼은 부족장 회의에서 말로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니제르에서 군부 쿠테타가 일어나서 쿠테타 벨트가 완성됐습니다. 동쪽의 에리트레라부터 서쪽끝의 기니까지 아프리카는 이미 독재정권으로 하나의 띠가 완성됐습니다.”
그런 만큼.
난 말리가 이 띠에서 벗어나면서, 러시아와 척을 지는 모습을 보이는 것만으로도 서방세계에서 엄청난 지원을 당겨올 수 있다고 말했다.
* * *
대통령궁에 모인 사람들은 내가 아무런 짐 하나 없이 그냥 왔다는 사실에 놀랐다.
“급한 마음에 그냥 왔습니다. 당분간은 그냥 주는 걸 먹고, 옷은 갈아입지 않을 생각입니다. 전 여러분을 설득하러 왔습니다. 귀가 나빠서 듣지 못할 거라면 더 크게 소리를 지르겠습니다.”
난 대통령실의 직원에게 아프리카 전도를 가져와서 쿠테타 벨트를 보여줬다.
교육이 부족하다지만, 모두 한 부족을 대표하는 사람들이다.
바로 주변국의 정세에 대해 모를 리 없다.
“부르키나파소와 니제르에서 쿠데타가 일어났습니다. 아프리카 대륙이 쿠테타 세력에 의해 남북으로 갈라진 셈이죠. 그런데 마침 우리 말리는 아자와드를 평화적으로 독립시켰습니다. 니제르와 부르키나파소가 프랑스 대사관을 불 지르고 러시아를 찬양하는 것과 달리 우린 서방세계의 일원인 한국과 손을 잡았습니다. 이건 큰 기회입니다.”
부족장들의 눈이 내게 향했다.
난 그 눈을 바라보며 또박또박 경고했다.
“희망없는 곳에 돈을 투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한국은 이미 돈을 투자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군부정권이 들어섰지만, 이번 분리독립으로 민주정이 세워질 토대가 만들어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 투자를 시작하면, 미국이나 일본에서도 투자를 시작할 것입니다. 그러니 적어도 한 3년 정도는 부족 간에 다투는 모습도, 부패한 공무원의 모습도 들켜선 안 됩니다.”
싸우지 말라는 게 아니다.
싸우더라도 3년 뒤에 싸우라는 내 말에 나머지 네 부족장이 밤바라족과 아사미 대통령을 노려봤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럼 이렇게 합시다.”
“네. 말씀하십시오.”
“이번 금을 판 돈은 작가님 말대로 똑같이 나눕시다. 대신 서방의 지원이 생기면, 니제르 강 유역부터 개발하는 것으로 합시다.”
밤바라족장의 세련된 프랑스어에 나머지 부족장들이 분통을 터뜨렸다.
하지만, 밤바라족의 부족장은 꽤나 여유가 있었다.
그는 다른 부족장들에게 자신들이 장악한 니제르 강 유역을 빼면, 말리에 투자가치가 있는 지역이 없다고 단언했다.
“개발을 하려 해도 수자원이 있는 곳이나, 발전 가능성이 있는 곳에 하는 것이 더 효과가 좋을 것 아닙니까?”
뻔뻔한 부족장의 말을 듣다가 난 갑자기 몸을 떨며 자리에서 일어나 바닥에 웅크렸다.
내가 머리를 감싸쥐고 괴로워하자 도곤족 사람들이 급히 일어나 내게로 달려왔다.
“작가님. 왜 그러십니까?”
“놈모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놈모의 목소리를요?”
“욕심이 지나치면 화를 당한다는 말과 함께 화를 당할 사람이 어떤 벌을 받을지를 경험했습니다.”
“네?”
“벼락이 떨어졌습니다. 비도 오지도 않는데, 벼락이 쳐서 온몸이 타는 고통을 느꼈습니다.”
여전히 몸을 떨며, 난 밤바라족의 족장을 바라봤다. 족장의 입가에 비웃음이 떠오르는 걸 보며.
나 또한 진한 비웃음을 삼켰다.
곧, 천벌을 직접 본 족장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