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uck at the gate alone RAW novel - Chapter 68
73화. 6개월 만의 해후.
아사미 대통령은 밤바라족의 족장과는 다르다.
아사미 대통령은 족장과는 달리 내가 사기꾼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아사미 대통령은 베여서 피가 흐르는 손을 치료하는 치료수의 위력을 눈으로 직접 확인했고, 위암에 걸린 자기 딸을 내 도움으로 살렸다.
그의 성격이라면 의료 차트까지도 꼼꼼히 확인했을 것이고, 의학이 발전해서 위암의 사망률이 줄었다지만, 위암은 수술 치료 없이 하루 만에 물 한 병으로 고칠 수 있는 병이 아니다.
그래서 지금 아사미 대통령의 요청이 더욱 놀라웠다.
아사미 대통령은 신의 존재를 알고 있었지만, 신을 자기 뜻대로 활용할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그것도 놈모가 전쟁을 반대해, 자기의 족장을 엉망으로 만드는 것을 눈으로 봤으면서도 말이다.
“피는 피를 부를 뿐이라는, 놈모께서 절 통해 전한 말씀을 들으셨지 않습니까?”
“피는 피를 부르는 게 맞지만, 투아레그의 바퀴벌레들이 있는 한 전쟁은 영원히 끝나지 않습니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내전을 계속하겠다는 말입니까?”
“우리 부족은 복수를 잊지 않습니다. 아자와드 분리에 찬성한 건, 전쟁을 막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라의 힘을 길러 단번에 전쟁을 끝낼 힘을 기르기 위해서입니다. 어차피 이르냐 늦느냐의 차이뿐입니다. 도와주십시오.”
섬뜩한 살기가 흘렀다.
아사미 대통령의 단호하고 잔혹한 눈을 보며 난 여태까지 내가 대통령의 처지 때문에 그를 만만한 사람으로 오해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생각하는 아사미 대통령은 엉거주춤 쿠테타를 일으켜 대통령이 됐지만, 자신의 자리에 불안해하는, 권력 기반이 약한 임시적 성격이 강한 대통령이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는 지금도 여전히 아슬아슬한 위치였다.
쿠테타에 성공했지만, 자신의 근거인 군부와 밤바라 족에선 내전 상대인 투아레그 족과 과격 이슬람 단체에 대한 더 강경한 대응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지도자가 바뀌었음에도 변함없는 환경에 대한 불만도 심했다.
쿠테타는 국제적으로 인정받지도 못했다. 말리의 경제를 좌우하는 서아프리카 경제회의는 말리와의 무역을 봉쇄했다.
나는 그런 상태의 대통령을 만났다. 도곤족을 움직여 말리의 경제 봉쇄를 풀면서, 난 나도 모르는 사이 아사미 대통령을 유약하고 결단력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믿고 있었다.
‘아니었나?’
많은 상념이 스쳐갔다.
아사미 대통령이 정권을 차지한 것은 군사적 반란을 일으켜 전 대통령을 끌어내렸기 때문이다.
수십 년간 군인으로 살아온 아사미 대통령이 유약한 사람일 리 없었다. 그건 순전한 내 착각이었다.
그는 항상 내전을 일으켜 자신의 부족과 부하를 죽인 투아레그 족에게 피의 복수를 하고 싶었지만, 그저 사정이 허락되지 않았을 뿐이었다.
“신의 말을 어기시겠다는 것입니까?”
“작가님이 계시지 않습니까? 제 방식대로 하는 것이 피를 덜 흘리는 방법입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립니까?”
“복수를 잊지 못하는 것은 우리뿐만이 아닙니다. 투아레그는 아자와드로 만족하지 못할 겁니다. 투아레그가 차지한 땅은 불모의 땅입니다. 우리 말리가 발전하면, 다시 우리 것을 빼앗기 위한 전쟁이 일어날 겁니다.”
비약으로 가득 찬 우격다짐이었지만, 아사미 대통령의 말이 아무런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200만 명 가까이나 되는 투아레그 족이 차지한 아자와드의 땅은 대통령의 말처럼 아무것도 만들어낼 수 없는 나라다.
정말로 석유라도 나오지 않는다면, 말리도 아닌 아자와드에게 손을 내밀 나라는 단연코 없다.
아이가 삼 일을 굶으면 성자도 이웃집 담을 넘는다고 했다.
궁핍은 다시 내전의 빌미가 된다.
투아레그 족에게도 사막의 쓸모없는 땅이 아니라 니제르강 유역의 기름진 땅이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마생목이 어떻게 자라는지가 너무 중요해.’
원래도 사막에서 큰 효용가치가 있으리라 여겼지만, 상황을 더 잘 알게 될수록 그 의미가 더욱 커졌다.
대통령과의 쓸모없는 대화보다 도곤족 마을로 가서 마생목이 어떻게 자라는지를 확인하고, 이동마법진을 설치해서 레몽드 왕실와 우리집, 도곤족 마을의 금역과 하와이가 자유롭게 연결되는 걸 내 눈으로 보고 싶었다.
다시 한번 말리라는 나라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상태의 말리가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
눈앞의, 결단력만 있는 독하고 무도하며 무능한 사내는 내가 원하는 나라의 지도자로는 한참이나 부족하다.
“전 신과 소통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네?”
“신의 뜻을 듣고 신께 벌을 받지만, 신께 제 뜻을 전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저 역시도 내전은 반대입니다.”
“반대라니요? 제 설명을 들으셨지 않습니까?”
“이런 식이라면, 5부족의 몫을 6부족이 나누는 게 낫습니다. 전쟁을 막기 위해서라면 전 분리 독립한 아자와드 왕국에도 쌀을 보내겠습니다.”
기이한 표정이었다.
아사미 대통령은 내 말에 화를 내지 않았다.
그의 얼굴은 다시 한 번 껍질이 벗겨진 양파같이 복수심에 불타는 군인의, 가면 뒤의 진짜 모습을 보였다.
“후우. 어쩔 수 없네요. 사실, 작가님이 어떤 사람이라는 것은 진작 알고 있었습니다. 사람을 살리는 약을 만드시는 분이 백만 명도 넘는 사람을 죽이는 일에 찬성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빌드업이다.
나는 직감했다.
아사미 대통령은 마치 군대의 작전처럼, 지금 이 말을 꺼내기 위해 신벌을 내려 투아레그 족의 멸족하자는 충격적인 말을 꺼냈던 것이다.
“작가님의 그 안건은, 뜻은 너무 훌륭하지만 저희 부족에서는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일입니다.”
“족장이 그 꼴을 당했는데도요?”
“네. 오히려 신비한 힘으로 족장님을 살지도 죽지도 못한 상태로 만든 작가님께 두려움과 혐오를 동시에 가지게 될 것입니다.”
“족장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생명엔 지장이 없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여전히 입이 얼어붙어서 말은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은 핸드폰을 꺼내서 일곱 명의 사람을 내게 보였다.
“이 사람들이 누굽니까?”
“밤바라 족은 권력이 하나로 뭉친 중앙집권적인 형태의 부족이 아닙니다. 앞의 다섯 사람은 밤바라 족 안에서도 유력한 무리를 이끄는 추장들입니다.”
“나머지 둘은요?”
“제 부하들입니다. 하지만, 족장의 아들들이라 각자 자신의 병력이 있습니다.”
무슨 말을 꺼내려는지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대통령은 신의 권위로 저들을 매장시켜 달라고 부탁할 것이다.
투아레그 족에게 살길을 틔워주는 대신, 밤바라 족을 휘어잡자는 것이다.
“금 판매대금 배분에 관한 밤바라 족의 의견을 작가님 뜻대로 하기 위해서는 이 사람들이 모두 실각해야 합니다.”
“신벌은 제 마음대로 내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니까요.”
“아니요. 그냥 말씀만 해주시면 됩니다. 그들의 비리와 부정은 제가 알려드리겠습니다. 작가님은 그저 신께 그 정보를 들었다고 하시면 됩니다.”
나쁘지 않은 제안이다.
내 능력을 알리는 동시에 밤바라 족의 차기 지도자들까지 끌어들일 수 있는 기회다.
하지만, 난 대통령의 제안을 받자마자 그를 버리기로 결정했다.
난 이미 그를 위기에서 몇 번이나 구했다.
난 대통령에서 쫓겨날 위기의 그를 신생 말리의 대통령이 될 수 있게 해줬고, 딸의 목숨을 살렸다. 그에게 제안했던 투아레그 족의 분리 독립마저도 내심 그가 바라던 것이었다.
받은 은혜에 보답할 마음 대신 내가 가진 능력에 집중하는 대통령과 함께 갈 수는 없다.
이미 대체할 사람도 있었다.
결정했다.
비리와 부정부패에 빠진 밤바라족의 윗대가리들을 모두 신벌로 날린다.
그 후 두려움이 가득한 상태의 밤바라 족에게 쌀을 나눠줄 것이다. 나에 대해 두려움과 혐오를 느낀다면, 그중 혐오를 지워버릴 만큼의 두려움을 안기면 된다.
신은 사실 별 게 아니다.
너무 힘든 삶을 견뎌내기 위해 기대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모이면 그 의지와 뜻이 모여 신이 된다.
마음을 받고, 쌀과 물, 휴식을 주면 된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인세에 강림한 신이며, 그 누구보다 가까운 구원자가 될 수 있었다.
* * *
대통령에게 그 일곱 사람을 모아달라 했다.
대통령은 자신의 부탁을 들어주겠다는 내 말을 듣고서야 퇴근을 허락했다.
난 지친 몸을 이끌고 기다리고 있던 도곤족의 사람들과 도곤족 마을로 향했다.
“아까는 어떻게 하신 것입니까? 이제는 놈모의 신력도 쓸 수 있게 되신 것입니까?”
“아주 작은 능력을 얻었습니다. 바람의 영혼을 부릴 수 있게 됐습니다.”
창을 열지도 않은 차 안에서 실프의 봄바람과 실프의 가을바람을 동시에 느낀 도곤족 사람들은 정말로 놀랐다.
하지만, 태도가 전혀 달랐다.
미래의 이익에 눈이 벌게진 대통령과는 다르게 도곤족의 사람들은 모두 내가 새로운 능력을 얻게 된 것이 자신들이 3천 년이나 기다려온 놈모에게 한발 더 다가서는 일이라는 걸 믿으며 감사했다.
대통령의 음모를 말하려다가 그만뒀다.
더러운 일은 그냥 내가 알아서 하면 된다.
나를 믿는 저 순박하고 고마운 마음들에 상처를 내기 싫었다.
2시간 반을 달려 도착한 도곤족 마을에 도착하자 그 밤에 나를 마중나온 동네 사람들이 가득했다.
난 도곤족 마을에서 머물다 한국으로 떠난 지 열흘도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몇년 만에 본 것마냥 반가워하는 이들을 보니 마음 속 응어리가 좀 사그라들었다.
눈에 익고, 대화를 나눠본 주민들이 많았다.
난 기다리던 부족사람들과 인사를 나눴다.
다정한 말과 칭찬을 나누는 도곤족의 인사풍습은 언제나 기분이 좋다.
지금 당장 무엇이든 해주고 싶었다.
안토니 왕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도착하셨습니까?”
“그렇습니다. 회의를 마치고 막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이동마법진은요?”
“아직입니다. 다시 만난 부족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왕자님. 혹시 레몽드에서 닭을 100마리 정도만 튀겨오실 수 있을까요?”
“100마리나요? 이 아침에 말입니까?”
그렇다. 레몽드는 싱크가 맞춰지며, 한국과 시각이 같다. 말리와는 9시간의 시차가 난다.
그러다 레몽드가 아니라 닭은 한국에서 준비하면 될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게이트는 혁명이다.
우선 게이트가 정상적으로 작동되는지 알아 봐야했다.
난 안토니왕자에게 우선 게이트를 설치해보겠다고 말한 후, 놈모께 기도를 드린다는 도곤족의 금역으로 향했다.
나를 족장과 3명의 종교지도자들, 그리고 하누아나의 삼촌과 도곤족 출신 재정부 직원들이 수행했다.
특별한 일을 제외하고는 항상 잠겨있다는 문을 열고 들어선 다음, 금역을 향해 걸으며 난 바로 지금 레몽드와 통하는 문을 열 것이라 말했다. 나를 따르던 도곤족 전부가 환희에 휩싸였다.
동굴 벽화 앞에 도착했다.
난 마법사 할아버지에게 얻어온 아공간 팔찌에서 마나석을 꺼냈고, 곧 이동마법진을 설치했다. 그리고는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상민이냐? 도착했다더니, 회의는 어떻게 됐냐?”
“엉망이었어요. 그런데, 지금 어디세요?”
“어디긴 가게지.”
“잠깐 제 방으로 가주세요.”
“네 방에? 왜?”
“도곤족 마을에 게이트를 설치했어요. 물건을 보내보려고요.”
“그래? 아주 잘 됐네. 그러지 않아도 이제나저제나 기다렸는데. 한 10분만 기다려. 바로 올라갈 테니까.”
“아. 식당에 하누아나도 있어요?”
“있지?”
“하누아나도 데려가세요. 물건이 잘 가면, 하누아나도 오랜만에 집에 올 수 있으면 좋잖아요.”
“그렇구나! 알았다. 번개처럼 갈게.”
가게서 집까지는 멀지 않았는데, 아버지는 30분이나 연락이 없었고 다시 전화했더니 동네 슈퍼를 털고 계셨다.
“잠깐 기다려. 그냥 갈 수 있냐? 첫인사인데. 하누아나 말로는 아이스크림이 좋을 것 같다고 해서 몽땅 사는 중이야.”
좋은 생각이었다.
시간이 걸리는 닭보다는 사막을 보며 먹는 아이스크림이 더 큰 기쁨을 줄 것 같기도 했다.
아버지에게서 무엇이라도 맛있는 걸 먹이고 싶어하는 한국의 정이 느껴졌다.
아버지에게서 집에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은 직후.
지잉.
와!
내가 힘을 불어넣는 것만으로도 이동마법진이 완성됐고, 허공에 반투명한 파란색 원이 생기자 지켜보던 모두가 소리를 지르며 흥분했다.
난 게이트로 손수건을 보냈다.
“도착했다. 왠 손수건이냐?”
“보낼만한 게 없어서요. 이제 넘어오세요.”
“그냥 넘어오면 되는 거냐?”
“네. 제가 다 연결해놓았어요. 안토니 왕자도 문제없이 왔으니 별다른 문제는 없을 거예요.”
난 아버지와 한국어로 통화했고, 당연히 나와 아버지의 대화를 알아듣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허공의 문으로 손수건이 사라지는 것을 본 도곤족 사람들은 눈이 빠질 듯 게이트를 노려봤다.
곧 파란 원이 일렁거리며 커다란 무언가를 쏟아냈다.
“아버지!”
“하누아나! 네가 어떻게?”
무려 6개월 만의 해후였다.